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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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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5.1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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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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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0화. 균열

DUMMY

***


녹호가 새하얀 복도에서 벽을 짚고 섰다.

지나가는 사람 역시 푸른 글자가 적힌 옷을 입은 채 지나간다.

앞에는 젊은 의사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유송 역시 멀찍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사나운 얼굴이 나지막이 으르렁거렸다.

당장 누구라도 죽일 듯한 기색이다.

그 서슬에, 의사 역시도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다.


“어머님께선 현재 췌장암 말기에 해당합니다. 여기까지 진행됐다면 평소에도 고통스러웠을 텐데.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이식 수술은? 장기는 갈아끼우면 되잖아?”

“소화기와 호흡기 대부분에 전이되었습니다. 완전한 일치자가 뇌사 상태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거대한 손은 복도의 지지대를 꾹 잡아 눌렀다.

그러다 뚜둑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다란 봉이 덜컹이며 떨어져 내렸다.

요란한 소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숙이고서 떠나갔다.

홀로 남은 사나운 얼굴은 얼어붙은 듯 창백해졌다.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탓이었다.



***


지하실.

녹호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두꺼운 손이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할 테지.


유송은 뒤늦게 이곳으로 내려와 그 옆에 섰다.

표정에는 도플갱어를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

당연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어머님 곁을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여 후회할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분명 그렇게 노심초사일 테지.


“그래봤자 변하는 건 없어.”

“그래도···.”

“오히려 안 좋아. 괜히 머릿속이 복잡하면 생각이 안 떠오르니까.”


하지만 녹호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마냥 절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돌파구를 고민하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왔다.


“틀어.”

“네?”

“틀라고. 확인은 끝내야 하니까.”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얼굴에는 어떠한 기대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고민할 동안 틀어두는 편이 효율적이니 켜둘 뿐이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알겠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섞인 것 같은데···.”

“상관있어?”

“아닙니다. 지금 틀겠습니다.”


유송이 고개를 저은 후 비디오를 집어 들었다.



***


브라운관에 희뿌연 화면이 떠올랐다.

영상은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위쪽 끄트머리, 문이 열리는 와중이기도 했다.


“여보. 할 말이 있어.”


양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 내가 조금 바빠. 아침 일찍 가서 저녁 늦게 돌아올 거야.”

“······.”

“산범이 일이야. 이해해줘.”


멈춘 화면 속에서 침묵이 일었다.

대답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에는 포기해야 할까?

시야는 빙글 움직여서 밖으로 향했다.


“···알았어.”


그때였다.

양어머니의 음성이 들렸다.


“나도 준비할게.”

“정말?”

“그래. 너무 늦게만 오지 마. 산범이 좋아하는 음식 차려둘 테니까.”


아직 말투에 쌀쌀한 기색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분명 여지는 존재했다.

더 나아지고 관계가 회복할 만한.


“고마워. 고마워, 정말로.”


양아버지는 기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야는 암전되었다.

······.


“산범아, 녹호야. 오늘 재미있게 놀자. 알았지?”


다시 화면이 돌아왔다.

답답한 공간과 함께 남자 다리가 보인다.

차 안에서 캠코더를 켠 듯했다.


“우리 어디 가요?”

“들으면 놀랄 걸?”


산범의 목소리.

그리고 양아버지의 목소리.

다소 들뜬 기색이 서린 채였다.


“기대하시라···. 바로, 놀이공원···!”

“와아아아아아···!”


화면이 위로 올라갔다.

희뿌연 화면에 아이들이 나타났다.

녹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러댔다.

동시에 산범은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박수를 쳤다.


“아아아아아···.”

“왜? 산범인 안 좋아?”


양아버지는 다소 실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니에요.”

“안 기쁜 것 같아서.”

“그게···, 놀이공원이 뭐예요?”


그랬다.

산범은 놀이공원을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장난감이 많은 곳이야.”

“장난감이요?”

“그래. 난 우리 산범이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모든 아이는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법이다.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산범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게 뭔지 몰라서요. 알지 못하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할 수 없잖아요.”


그래, 도플갱어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식이란, 대중화된 편견일 뿐이지.

평범한 어른은 이를 망각하고 말았다.


“휴게소 도착했네. 아빠는 간식 사올게.”

“알겠어요.”

“녹호야, 산범이 형이랑 얌전히 있어야 해.”

“네.”


시야가 몸을 숙였다.

캠코더를 의자에 내려둔 탓이다.


“형.”

“왜 불러?”

“궁금한 게 있는데, 형은 진짜 형이야?”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뱉는 질문.

아마 녹호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 내가 올해 몇 살이냐면···”

“작은 도련님!”

“······.”

“아직 큰 도련님께서는 정신이 온전치 않습니다.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고 말입니다.”


두오가 다급히 목소리를 돋웠다.

얼굴이 어떨지, 화면에 담기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질문하기보다는, 질문을 받아주시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어린 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기색이 서렸다.

도무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겠지.


“형, 궁금한 거 있어?”

“어? 음···.”


산범이 고민에 잠겼다.

알고 싶은 것들이라.


“내가 뭘 하면 좋아할까?”


그러다 나온 물음이다.

그건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슨 뜻이야?”

“그냥, 어떻게 하면 아빠가 좋아할까 싶어서.”

“어른이 좋아할 만한 일?”

“응. 잘 지내고 있으면 엄마도 만나게 해줄 테니까.”


친어머니를 보고 싶다.

도플갱어는 이 하나만을 바라고 있었다.

녹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간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공부?”

“응. 100점 맞아서 엄마 기쁘게 해주려고. 그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니까.”

“정말? 공부라는 걸 하면, 엄마랑 아빠가 기뻐해?”

“그럴 거야. 분명히.”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

그건 자기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개 부모님이 시키니까, 혹은 기뻐하니까 노력할 뿐이지.

아이는 자기만 잘하면 다 잘 풀릴 거라고 믿고 만다.


“아빠 왔어!”


양아버지가 돌아왔다.

양손에는 통감자, 핫바 같은 간식을 잔뜩 들고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야?”

“맛있겠지?”

“몰라. 궁금해!”


산범이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모두 처음 보는 간식인 탓이다.


“그래, 바닥 보면서 먹자. 알겠지?”

“네!”

“두오야, 새 테이프 몇 개 챙겨줘. 놀이공원에서 노는 모습은 주욱 찍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잠시.

화면은 다시 검게 물들었다.

······.


“산범아, 재밌었다. 그치?”

“네!”


화면이 돌아왔다.

차 안을 향한 시야는 곧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산범과 놀이공원을 다녀온 후인 듯했다.


“녹호야. 너는 그렇게 게임이 좋아?”

“···네.”

“다행이네. 게임기도 가져와서.”


어린 녹호는 차갑게 식은 액정을 툭툭 두드렸다.


“산범아, 오늘 좋았지?”

“네! 여기서 살고 싶어요!”

“그래? 그럼 아빠가 노력해볼게!”

“정말요?”

“그래. 산범이한테는 놀이공원도 지어 주고, 녹호는 게임기 잔뜩 사줄게. 원하는 만큼 말이야.”


게임기에 멍하니 꽂혀있던 시선이 곧 화면을 향했다.

그 안에는 걱정이 언뜻 비쳤다.


“무리하지 마세요. 저희는 아빠만 있으면 괜찮아요.”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가지고 싶으면 가져야지.”

“진짜 괜찮은데···.”

“애는 어른 걱정 안 하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껏 떼써도 돼. 어른들 사정 다 봐주면, 애들 인생 망가지고 말거든.”


믿음직한 목소리.

하지만 갈수록 음울한 기색이 서렸다.

분명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겠지.


“산범이도 곧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양아버지는 억지로 쾌활한 음색을 내뱉었다.


“신원 회복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야. 정 못 살리면, 새로운 신원 구해서 입양 절차 밟을 거고.”

“네? 그게 뭐예요?”

“몰라도 돼. 아빠가 다 알아서 한다는 소리야. 금방 학교도 갈 수 있도록 말이야.”


돈과 인맥은 충분했다.

어떻게든 산범이로 살아가게 할 수 있을 터였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원래와 똑같은 생활로 돌아가게 되겠지.

네 명이 단란하게 지내던 과거로.


“다 왔네. 다들 엄마한테 가자.”


차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멈춰 섰을 때, 양아버지와 두 아들이 먼저 내렸다.

화면은 싱글벙글 현관을 향했다.

곧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안으로 들어선다.


“여보 우리 왔어.”

“엄마!”

“그···, 엄마···?”


산범이 어색하게 양어머니를 찾았다.

녹호는 그보다 앞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이상한 분위기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도 그 탓이겠지.


“아빠? 다들 음식 나르고 있는데요?”

“맛있는 거 해준다고 했는데. 그래서인가 보다.”

“근데 그릇이 조금 이상해요. 다 나무로 돼 있어요.”

“···뭐?”


화면이 한 차례 움찔했다.

그다음, 사용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린 목소리가 말한 대로, 나무 그릇에 음식이 담겨 있었다.


“사장님 오셨어요?”

“아···.”

“사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느리게.

아주 느릿하게 화면이 움직인다.

그건 무언가를 예상한 듯한 발걸음이었다.


끝없이 망설이며 앞으로 향했다.

확인은 해야 하지만, 그 순간을 맞이하고 싶진 않은 듯했다.

하지만 다가간다는 말은 언젠가는 맞닥뜨린다는 뜻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지.


“당신 왔어?”


양어머니가 등을 진 채 물음을 던졌다.

그 앞에는 나무로 된 식탁과 그릇, 갖가지 음식이 갖춰져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산범이 사진과 그 앞에 향, 좌우에 촛불까지.

그건 누구나 알 법한 의식이었다.


“내 새끼, 안 헤매고 찾아왔겠지? 좋아하던 거 잔뜩 있으니까 맛있게 먹고 있겠지?”

“······.”

“당신도 산범이가 좋아하는 거 사 왔어? 힘들게 와서 배곯지 않게···.”


제사.

화면이 뚝 떨어졌다.

바닥 외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소리, 그뿐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왜 손에 그런 게 들려 있어? 산범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없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함이었다.


“···여보.”

“설마···. 아니지? 기억하고 있었지? 우리 산범이 기일···, 기억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


점차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짙어졌다.

이곳에 자식이 찾아왔으리라 믿는 어미는 애달프게 물었다.

아비가 설마 제 새끼를 잊었느냐고.

제발 이곳에 있을 아들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엄···, 마?”


어색한 한 마디가 들렸다.

누군가의 기대를 망가뜨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어떻게···!”


화면이 곧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여보, 미안해! 내가···!”

“욱, 우욱! 끄엑···. 우웨에에에에에엑···!”


시야가 깨졌다.

부부의 모습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쩍 갈라진 채 까맣게 흐려지고 말았다.


작가의말

100화까지 왔네요.

제목은 이렇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읽힐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고, 5000자를 꾸역꾸역 써서 한 번이라도 띄우면 그나마 다행일 테니까요.


아무도 안 봐도 완결 낸다.

아무도 안 봐서 완결이라도 내야 한다.

솔직히 1년 전만 해도 제가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모쪼록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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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06화. 하늘 24.05.16 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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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8 0 13쪽
» 100화. 균열 24.04.29 13 0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6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7 0 12쪽
97 97화. 행운 24.04.23 8 0 12쪽
96 96화. 최후의 눈치 게임 24.04.22 6 0 12쪽
95 95화. 안 들려요 24.04.19 7 0 12쪽
94 94화. 가위바위보 24.04.18 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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