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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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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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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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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7화. 행운

DUMMY

“정 안 풀리면 그때 다른 걸로 바꾸면 되죠.”

“하긴···.”

“빨리 보고 싶다.”

“그래. 해서 손해는 없으니까.”

“자, 그럼 타이머 준비해주세요. 결승전에 올라오신 분들도 앉아주시고요.”


진행자 겸 주최자가 결정한 일이다.

상품까지 내건 사람인데, 불만을 가지긴 그랬다.

해보고 말해도 되는 문제니까.

생존자 셋은 우선 자리에 앉았다.


“다들 이제부터 아무 말도 하시면 안 돼요. 알겠죠?”

“······.”

“좋네요. 그럼 최후의 눈치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경기.

그렇기에 사방은 금세 침묵으로 돌아섰다.


“셋, 둘, 하나, 시작!”


타이머가 움직인다.

10초, 9초, 8초.

숫자가 차츰차츰 줄어간다.

이를 보는 대부분은 여전히도 의문스러운 표정이다.


참가자의 눈빛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명은 이게 뭔가 싶은 표정이다.

또 다른 한 명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마지막 한 명은 불안한 시선을 두 사람에게 던진다.


“······.”


7초, 6초, 5초.

그러다 눈빛 하나가 번뜩였다.

머리가 좋던 남자, 지금 전략이 떠오른 모양이다.

당장 두 사람을 살폈고 곧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통했다.

이내 남자는 타이머를 향해 턱 짓을 했다.

여자 역시 무언가 있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없이 알아챌 수 있을까?

4초, 3초, 2초, 시간만 무심히 지나간다.


“아.”


1초.

짧은 단말마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정적을 깨기엔 충분했다.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여자에게로 쏠렸다.

의아함이라는 감정이 좌중을 스친다.

몇몇 사람만을 제외하고서는.

그리고 끝나기 직전이 됐을 때,


“1!”

“1!”


숫자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어?”


첫 마디는 대부분 똑같았다.


“뭐야? 언제 짰어?”

“이게 돼?”

“카운트 다운을 이렇게?”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각자 떠들어댔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얼핏 당혹스러운 기분도 들겠지.

이내 한 명, 당황을 지나 분노를 표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뭔데! 왠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


1등.

불운의 아이콘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 끝까지 살아남나 했더니, 이렇게 또 최후의 1인이 되었다.


“아아아아아악···!”

“어수선하죠? 마지막으로 두 분 빠르게 가위바위보하고 넘어갈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다 함께 외칠게요. 가위, 바위, 보!”


모두가 목소리를 모아 외쳤다.

남자는 가위, 여자는 보자기를 냈다.

2, 3등은 이렇게 갈렸다.


“승부가 나왔네요. 자, 다들 내막이 궁금하죠?”

“네에!”

“그럼 2등, 3등한테 가볼까요?”


천선은 모든 과정을 알고 있다는 양, 미소를 지었다.

이내 산뜻한 발걸음으로 남자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네.”

“이번엔 가만히 있는 게 안전해 보였어요. 그런데 숫자를 외치고 살아남았고요. 이유가 있나요?”


그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문제를 내셨으니, 분명 해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요?”

“예. 10초 눈치 게임을 굳이 계속하시지 않았습니까?”


답이 있으니 문제를 냈을 거라니.

이에 멈추지 않고, 해법을 고안한 뒤 증명했다.

자신이 탈락할 확률이 그토록 높은데도 말이다.

주변에서는 온갖 찬양이 울려 퍼졌다.


“이야, 이걸 예상하고 한 거였어?”

“잘생긴데다가 머리도 좋네.”

“진짜 뇌까지 섹시하다···.”


그 두뇌전을 뒤늦게야 알아챈 덕이다.


“그냥 안 일어나도 상관없었잖아요? 그게 더 안전했을 텐데.”

“아. 그 경우를 생각 못 했습니다. 푸느라 바빠서.”


첫 번째 인터뷰가 이렇게 끝났다.


“다음에 스피커 도둑님.”

“네.”

“벌써 와계셨네요.”


천선이 몸을 돌리자마자 여자가 나타났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된 채였다.


“한 번만 더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음, 두 번도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신이 나서 바로 안겨든다.

약속받았던 팬 서비스다.

동시에 사방에서 야유가 잔뜩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아니, 야유가 아니라 역정이었다.

목소리엔 질투와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만큼 천선은 여성 팬 비중이 높았고 또, 높아지는 중이다.


“이만해야겠네요.”

“아···.”

“스피커 도둑님도 배신 안 했네요? 믿음이 있었나요?”

“그냥 급했어요. 안 일어나면 큰일 날 줄 알고.”

“하긴, 마지막까지 보자기를 냈죠? 처음 다짐 그대로.”

“맞아요. 아, 2등이신 분이 그래서 가위를 낸 거였어요? 그거 기억해서?”


쉽게 말해, 비겁한 방법을 떠올릴 새가 없었다.

정말 단순하게 행동한 것이다.

그래도 차 한 대를 얻었지만 말이다.


“아마 그렇겠죠.”

“와···.”

“자, 그럼 이제 대망의 순서죠? 1등한테 가볼까요?”

“하, 진짜. 탈락해야 했는데···.”


천선은 불운의 아이콘 앞에 섰다.

얼굴엔 여우 같은 미소가 가득했다.

하얀 손은 이내 주머니를 뒤져 사탕 하나를 집어 들었다.


“1등 상, 주마줌스예요.”

“네. 압니다, 알아요. 그리고 뭐가 궁금하세요? 전략이요? 현재 심정이요? 한 3박 4일 떠들어댈 수 있어요.”


물론, 그렇겠지.

억울해 미칠 지경일 테니까.


“자, 그럼 대회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하지만 천선은 몸을 돌렸다.

은근함이 잔뜩 서린 웃음은 미련 없이 좌중에게로 향했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두 확실하게 깨달았다.


“잠깐만요?”

“우리 모두 약속했죠?”

“네에!”

“지금껏 탈락하신 방송인분들도 따로 한 약속이 있고요?”

“맞아요! 탈락하면 본격적으로 방송 켜기로 했어요!”

“자, 카메라랑 셀카봉 들고 오는 안내요원분? 그럼 계속 멀리서 찍어주시겠어요?”


다가오던 사람이 뒤로 주춤한다.

아마 매니저쯤 되는 사람이겠지.


“야, 너! 너는 와야지! 누가 월급을 주는데!”

“손해배상 위자료를 생각하셔야죠.”

“야, 너. 너는 가야지, 내가 위약금 내는데.”


어느덧 화면은 타이머가 사라졌다.

그 대신 지금 이 모습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채팅창 역시도 떠올랐다.


-저 형 어쩌냐

-진짜 운도 지지리도 없지

-운만 없냐 눈치도 없고 머리도 나빠

-그것만 문제냐 성격도 나쁘고 머리도 빠지더라

-야 형 놀리지 마

-그래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진짜 심각한 거 안 보이냐

-얘네 착한 거 봐 진짜 답 없으니까 오히려 말리네


그러는 와중에 2등, 3등은 상품을 향해 안내받았다.

연출로 쓰기 위해서라도, 떠나는 모습을 찍어야 했다.

약속대로 1등은 이 모습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석양을 아래에서 내뱉는 말은, 묘하게 운치가 있었다.


“하, 썅. 저게 내 차였는데.”


화면에도 작게 찍혀서, 분위기가 초라하기만 했다.

방송 웃음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런 만큼 당사자에게도 나쁜 일만은 아니겠지.

천선도 쐐기를 박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럼 행사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관심 감사드립니다. 아, 카메라는 이대로 찍어주세요.”


모두가 빠져나갈 때까지 저 모습이 방송에 나갈 터였다.

초라할수록 더욱 화제가 되어.


“다들 재밌었어요? 테이도 재밌었고?”


그동안 천선은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네. 조금 신기했어요.”

“이렇게 인기 많은 줄 몰랐어요.”

“진짜 연예인 같아요.”

“시청자 수 봤는데, 여기저기 다 모으면 20만 명은 될 것 같아요. 엄청 대단한 거 아니에요?”

“맞아. 신고 안 하고 방송 찍던 사람도 있던데?”


언뜻 선망도 느껴진다.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더군다나 너무나 빛나는 듯했으니까.


“처음에 했던 이야기 기억하죠? 성공보다는 자기만족이 중요하다고요.”

“네?”


분명 그런 얘기를 했지.

설득력이 느껴지도록, 눈앞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도 했다.

선망의 대상이 된 만큼 분명 그 말은 힘을 가질 터였다.


“팬인데, 혹시 사인해줄 수 있어요?”

“사진 같이 찍어주세요!”

“저도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 탓이다.


“네, 다 해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몇 시간 진행 후에, 곧바로 팬 서비스라.

분명 피곤하겠지.

모두 지레짐작하고 조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작 천선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진 않았지만 말이다.



***


둥근 브라운관에 뿌연 화면이 올라왔다.

다만, 늘 보던 지하실이 아니었다.

파란 하늘에서 밝은 빛이 쏟아진다.

동시에 저 멀리서는 알록달록한 성이 보인다.


“나랑 산범이 잘 찍어줘. 부탁할게.”

“맡겨주십시오.”


그러다 도플갱어의 양아버지가 화면에 나왔다.

산범과 손을 맞잡은 채로 말이다.

이마저도 불안했는지, 손목에는 종이 팔찌로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


“아빠, 저게 뭐예요?”


도플갱어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캠코더라는 거야.”

“캠코더요? 그게 뭔데요?”


알 리가 없었다.

무언가를 경험할 시간도, 여건도 안 됐던 어린 시절이니.


“음,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어준다고 하면 편할까?”

“움직이는 그림이요? TV?”

“그래, 맞아. 지금 찍어두면 나중에 TV로 볼 수 있어.”

“와! 그럼 뭐가 좋아요?”


다만, TV는 알고 있었다.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말에, 브라운관을 떠올릴 직관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신기하다는 듯한 목소리는 마냥 영특하게만 들렸다.

하지만 양아버지는 그저 씁쓸한 표정만 짓는다.


“원할 때마다 볼 수 있어. 원할 때마다 추억하고 떠올릴 수 있어. 원할 때마다.”

“그래요?”

“응. 아빠가 후회돼서 그래. 미리 많이 찍어뒀으면 목소리라도 기억했을 텐데. 그랬다면···.”


양어머니는 앓아누웠었지.

그렇기에 한 명은 깨어있어야 했다.

괜찮아야 했고 경제활동도 이어나가야 했다.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데도 내색하지 못했다.


그래서였겠지.

덮어두기만 한 상처에는 고름이 생겨났다.

뒤틀리고 뒤틀려서, 가장 끔찍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도플갱어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요구할 정도로 말이다.


“가자. 오늘은 다 같이 놀자.”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다.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놀이공원 속 풍경이 작은 눈망울에 반사되었다.

이와 동시에 동공이 한가득 눈동자를 채웠다.


“와아아!”


빛바랜 화면 속에서 아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낡은 원색이 동화처럼 펼쳐졌다.

수많은 사람이 주변을 스쳐 지나갔고, 환상적인 음악이 귓가에 울렸다.


“진짜 멋져요, 아빠! 저 이런 거 처음이에요!” “그래?”

“엄마한테도 꼭 보여주고 싶어요!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라.

그게 누구일지는 뻔했다.


“···그래, 엄마도 왔으면 좋을 텐데.”

“같이 오면 안 될까요? 언제 볼 수 있어요?”


동시에 양아버지가 말하는 이와는 다를 터였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언젠가는.”

“정말요?”

“그래, 언젠가는 엄마도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네? 지금도 절 기다릴 텐데···.”

“그래, 그럴 거야. 모든 게 다 잘 풀릴 거야.”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건 어딘가 깨지고 무너질 듯한 얼굴이었다.


작가의말

'자식이 있는 부모는 무너질 수 없다.'

이 말이 있는 이유는, 무너진 경우에 시선이 안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침한 시궁창에 관심을 가지기 꺼려지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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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118화. 만찬 24.06.19 4 0 12쪽
117 117화. 독재자와 테러리스트 24.06.15 5 0 13쪽
116 116화. 세 명 24.06.13 6 0 12쪽
115 115화. 화해? 24.06.10 8 0 12쪽
114 114화. 천청해 24.06.06 6 0 13쪽
113 113화. 재림예수 24.06.04 6 0 11쪽
112 112화. 반증 24.06.01 5 0 12쪽
111 111화. 선악은 항상 정방향으로 향하는가 24.05.30 5 0 13쪽
110 110화. 배신 24.05.27 6 0 12쪽
109 109화. 관계의 재시작 24.05.23 5 0 12쪽
108 108화. 돈 뿌리기 24.05.21 5 0 12쪽
107 107화. 김송과 24.05.18 7 0 12쪽
106 106화. 하늘 24.05.16 7 0 12쪽
105 105화. 시위 24.05.14 6 0 12쪽
104 104화. 하늘 24.05.10 6 0 12쪽
103 103화. 상식 24.05.08 5 0 13쪽
102 102화. 보호 받지 못한 아이 24.05.03 5 0 12쪽
101 101화. 귀인의 정체 24.04.30 9 0 13쪽
100 100화. 균열 24.04.29 14 0 12쪽
99 99화. 레몬 사탕 24.04.26 8 0 12쪽
98 98화. 또 다른 존재 24.04.25 8 0 12쪽
» 97화. 행운 24.04.23 10 0 12쪽
96 96화. 최후의 눈치 게임 24.04.22 8 0 12쪽
95 95화. 안 들려요 24.04.19 8 0 12쪽
94 94화. 가위바위보 24.04.18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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