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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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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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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4.1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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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30. 과거過去

DUMMY

“얘기해 보거라.”

노파와 젊은 여인은 장원의 정자에 마주 앉아 있었다. 노파는 온화한 인상이었는데, 젊은 시절 대단한 미모였음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는 얼굴이었고, 곱게 늙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얼굴이기도 했다. 노파 앞에 앉은 젊은 여인은 화용월태花容月態,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는 말이 결코 넘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서늘한 분위기의 기품있는 자태는 가히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를 다툴만했다. 주은백이 장안에서 만난 서설란이었다.

온화한 얼굴의 노파가 애정이 담긴 얼굴로 앞에 앉은 젊은 여인, 서설란에게 말했다.

“북천의 대제자인 차시천이 죽었습니다.”

“그 놈이냐?”

“그렇습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구나.”

서설란의 보고에 온화한 얼굴의 노파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동천의 후예는 찾았느냐?”

묵빛 강기를 사용하는 젊은 고수가 나타났다는 정보는 입수했습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묵빛 강기를 보았다더냐?”

노파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설란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분명 묵빛 강기를 사용하는 젊은 고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동천東天 그분의 전인傳人이 분명할 것이다. 그분이 살아 계셨구나. 정말 다행이다. 서천과 동천이 모두 전인을 두었어. 허허”

노파의 눈에 회한의 빛이 감돌고 헛헛하게 웃는 웃음이 메말랐다. 다행이라는 마음과 아쉬움이 교차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특이 동향動向은 없느냐?”

노파가 다시 묻는다.

“마교의 소교주가 두 번째 강호행에 나섰습니다. 여동생, 불측은비 서은후와 동행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삼마존 대신 사령주가 소교주를 호위하고 있습니다. 저번과 거의 같은 경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마 북경을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아이도 북경을 향하고 있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하지만 북경 부근에서 차시천과 격전이 있은 후의 동향은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소식이 올라오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교의 소교주라? 그들이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아야 할 텐데.”

“경솔한 인물은 아닌 듯합니다.”

“다행이구나. 계속 살펴보도록 하거라.”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동창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내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보고입니다만 무슨 문제인지 아직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서설란의 보고에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되묻는다.

“무림맹은 어떠하냐?”

“정주에서 북천회에게 혼이 난 후 표면적으론 잠잠합니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마 전력 보강에 주력하는 것 같습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중추역량들을 무림맹으로 파견하라고 계속 압박하고 있으며 은거한 전대의 고수들을 찾아 다니고 있다 합니다. 이 작업은 총군사인 제갈청이 주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북천회는?”

무림맹이 정주에서 퇴각한 뒤로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북천 그자가 대제자가 죽었다는 것을 안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인데?”

노파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묻는다.

“아직 대제자의 죽음을 모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너무 반응이 없습니다.”

“가만 있을 자들이 아니다. 예의 주시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서설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보고報告는 끝이 났지만 노파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네 느낌은 어떠했느냐? 그 아이 말이다.”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타고난 냉정함이 아니라 의도적인 차가움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무엇에도 얽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사부인 서천西天의 영향일 것이다. 서천은 북천의 농간에 빠졌다는 죄책감이 강했을 것이다. 죄책감이 자책으로 이어졌고, 자책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으로 나아갔겠지. 그래야 다시는 농간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래야 다시는 자책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그는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고립인데도 말이다. 모두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서천은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너무 여리지.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알았다면 그때 그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쯧쯧. 아마 제자 놈이 사부를 그대로 닮은 모양이구나.”

서천에 대한 얘기를 하는 노파의 눈에 깊은 회한이 서렸고 안타까운 심정이 종내 혀를 차를 소리로 나타났다.

서설란은 동서남북간의 일에 대해 사부인 남천南天에게 들었지만 지금 사부의 깊은 회한에는 조금 다른 감정이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리 말렸거늘···”

노파, 남천이 지긋이 눈을 감았다. 옛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난 답답하네.”

“무에 그리 답답한가?”

북천의 얘기에 동천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심양瀋陽 부근의 이름없는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정자亭子에 네 명의 중년인이 모여있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 이들이 정자를 지은 것인지 원래부터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운치 있는 정자였다.

“저 새들도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우린 이게 뭔가 말일세.”

북천의 목소리가 좀 더 높아졌다. 불평이 담긴 목소리다.

“우리가 뭐 어떻단 말인가? 가고 싶은데 가면 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면 되는데?”

이번에는 서천이 북천에게 되묻는다.

“내 말이 그 뜻이 아님을 자네도 알지 않나? 하찮은 무공을 가지고도 강호를 종횡하는데 그들이 보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무공을 가지고도 세상에 나서보지 못하니 그러는 것 아닌가?”

북천의 불만이 이것이었다. 세상에 나서고 싶은 마음.

“세상에 나서면 뭐할 거예요?”

남천이 다시 되묻는다.

“특별히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네. 하지만 함부로 세상에 나서지 말라는 유훈이 답답한 것일세.”

북천의 목소리도 약간 힘이 빠졌다. 그도 세상에 나서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가지 말라니 답답했던 것이다.

네 사람의 사부는 각각 달랐다. 하지만 똑 같은 유훈遺訓이 하나 있었다.


<큰 변고가 있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일신一身의 무공을 보이지 말고, 세상에 나서지도 마라.>


“자네도 자네 사부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지 않았나? 그것은 우리 무공의 창시조創始祖께서 남기신 유훈일세.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도 그 유훈을 어긴 분은 한 분도 없었네. 그러니 자네도 딴 생각 품지 말게. 우리끼리 이리 어울리면서 사는 것도 좋지 않나? 세상에 나서 뭍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본들 무엇이 좋겠는가? 오히려 그것이 구속일걸세.”

동천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득한다. 창시조의 유훈을 내세웠으니 그 말 앞에서 북천인들 어찌 딴 생각을 품겠는가?

동천의 얘기에 북천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하지만 남천은 북천의 눈빛에서 그가 창시조의 유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남천이 눈을 떴다. 그때 분명히 말렸어야 한다는 후회를 수없이 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서설란도 사부가 잠깐 지난 일을 회상했음을 알았다.

“저도 네 분께서 모종의 일로 다투셨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왜 다투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서설란이 감히 사부에게 사부의 과거에 대해 묻는다. 주은백을 만난 이후 사부들간의 관계를 알아야 주은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만나 보지 않았지만 동천의 후예를 만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너도 알아야겠지. 휴~”

남천이 서설란의 물음에 긴 한숨을 내쉬곤 다시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북천이 우리를 배신했다. 그리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세상에 적극 나서고 있지. 그가 세상에 자신의 야망을 펼친다면 그것은 우리의 창시조께서 말씀하신 큰 변고에 해당될 것이다.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지. 그건 막아야 한다.”

사부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말을 끊었다. 서설란도 여기까지는 대략 알고 있는 얘기였다.

“북천이 야망을 품은 배경에는 그가 우리 중 무공이 가장 강했다는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중 제일이라는 것은 천하제일을 의미했기 때문에 북천은 속으로 야망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지. 하지만 북천이라고 대놓고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 모두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비록 그의 무공이 하늘에 닿아 있으나 비슷한 수준의 동천이 있었고 서천과 나도 그와 필적했기 때문이다. 기실 우리간의 차이는 한두 치 정도의 차이였다. 더욱이 동천의 무공은 위낙 현묘玄妙해 동천도 아직 미완성 상태였다. 창시조創始祖 이후 동천의 맥을 이은 선조先祖 어느 누구도 그 무공을 완성한 사람은 없었지. 만일 동천의 무공이 완성된다면 북천을 포함해 세상 어느 것도 그 앞을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얘기가 우리 사이에 전해 내려왔었다.”

얘기가 길었기에 남천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차를 한 모금 들면서 숨을 돌렸다.

“혹시 사랑을 해 본적이 있느냐?”

차를 한 모금 하던 남천이 뜬금없이 서설란에게 물었다. 서설란은 당황했다. 사부가 모를 리 없는질문을 던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사부와 함께 지낸 서설란이었기 때문이다.

서설란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가운데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사부가 호호거리며 웃곤 말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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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153. 후퇴後退 +3 17.05.31 2,620 47 10쪽
153 152. 적대강狄大江의 단서 +3 17.05.28 2,711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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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142. 버섯구름 +5 17.05.09 2,588 51 10쪽
142 141. 화약火藥 +5 17.05.06 2,595 4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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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139. 오의붕경五衣朋競 +4 17.05.02 2,581 4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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