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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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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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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58,507

작성
17.05.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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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49. 열린 문

DUMMY

“어서 맞춰 끼워 보세요.”

추란이 묵진휘를 재촉했다.

일곱 개의 쇳조각을 벽면의 사각 틀에 끼워보란 얘기다.

묵진휘가 천천히 한 조각의 쇳조각을 사각 틀에 놓자 쇳조각이 사각 틀에 착 달라 붙었다. 사각 틀이 자석이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묵진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손에 쇳조각을 들곤 사각 틀이 붙어 있는 벽을 바라보면서 묵진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한 홈 같은 것도 없는데 쇳조각을 벽에 붙어 있는 사각 틀에 어떻게 끼운단 말인가? 일곱 개의 쇳조각을 사각형으로 맞추어 동시에 사각 틀에 끼워야 하나? 등등의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묵진휘가 쥐고 있던 나머지 여섯 개의 쇳조각을 사각 틀에 끼운 후 마지막 한 조각을 끼우기 전에 길게 숨을 내뱉었다. 천하의 묵진휘도 마지막 한 조각을 손에 들곤 긴장이 되었던 것이다.

묵진휘가 긴 숨을 내뱉자 오의붕경도 덩달아 긴 한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은 묵진휘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표현을 하지 않아 그렇지 오의붕경은 지금 매우 지쳐 있었다. 우선 배가 고팠다. 지하동굴에 들어 온지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결과 심한 공복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도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갈증도 심했다. 잠지 자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은 무거운 공기마냥 오의붕경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마 혼자 이런 곳에 갇혔다면 이미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것이다.

긴 호흡 후 묵진휘가 드디어 마지막 남은 하나의 쇳조각을 사각 틀에 끼워 넣었다.


찰칵···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이 사각 틀에 끼워지면서 경쾌한 소리가 들려오자 오의붕경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말아 쥐었고 호흡을 정지했다.

고요한 찰나의 순간이 여삼추如三秋로 여겨진다.

문이 열릴 거란 희망과 열리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옥죄어오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덜컹~

여삼추와 같은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쇠문 근처에서 들려왔다.

“움직여···”

백의가 나직한 환호성을 질렀고 추란은 그제서야 숨을 쉬었다. 기실 찰칵 하는 소리와 덜컹 하는 소리 사이에는 불과 짧은 호흡 한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지만 추란은 오랫동안 숨을 쉬지 못했던 것처럼 여러 번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스르르륵···.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육중한 철문이 부드럽게 옆으로 열리기 시작하더니, 열리는 문틈으로 빛이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의붕경이 눈부심을 참지 못하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들어가 봅시다.”

아직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있는 오의붕경을 향해 묵진휘가 말했고, 묵진휘를 선두로 오의붕경이 뒤따르며 쇠문 안으로 들어갔다.

쇠문 안은 또 하나의 지하 동혈洞穴로, 원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측면에 출입구 같은 문이 하나 있었고, 애초 문짝이 없는지 활짝 열려 있었다.

원형의 동굴은 그런대로 밝았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벽면에 야광주가 여럿 박혀 있어 그런대로 밖의 어스름한 새벽녘 정도는 되었는데 오랫동안 햇빛을 전혀 보지 못한 오의붕경의 눈에는 충분히 눈이 시릴 만큼의 밝기였던 것이다.

“누군가 분명히 살았던 곳이군.”

백의사내의 말대로 석실 안은 분명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선연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흔적도 분명했다. 원형 석실 측면에 놓여 있는 돌로 만든 침대에는 먼지가 자욱했고 황동으로 만든 그릇도 몇 개 있었지만 역시 먼지가 켜켜이 앉아 얼마의 시간 동안 이렇게 있었던 것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습기가 많군요. 그리고 향긋한 향도 나구요.”

추란이 한마디하자 모두는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다. 배가 무척 고팠던 것이다.

“저곳에 샘물이 있소.”

묵진휘가 샘물 있는 쪽을 가리키자 모두가 그쪽을 바라봤다. 야광주 덕분에 눈으로 묵진휘가 가리킨 곳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백의 사내가 먼저 샘물 쪽으로 달려가 주저 앉더니 손으로 급히 샘물을 퍼 입에 여러 차례 넣는다.

“샘물이 맛있군.”

백의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샘물 쪽으로 달려가 물을 마셨다. 모두 허기졌고 갈증도 심했던 차라 양껏 물을 마셨다.

“이것도 먹을 만 하오”

묵진휘가 샘물 근처에서 이끼 한줌을 뜯어 먹으며 말한다.

“산에 있을 때 그곳에도 지하동굴이 몇 개 있었소. 이런 이끼가 자라는 곳도 있었는데 식용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이오. 배도 부를뿐더러 피를 맑게 해주는 효능도 있소. 모두 먹어 보시오.”

묵진휘의 말에 먼저 백의가 이끼를 뜯어 입에 넣더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아작아작 씹으며 맛있게 먹는다. 그 모습에 모두 이끼를 뜯어 입에 넣기 시작했다.

“이끼로부터 나는 향이었군요.”

추란도 코로 이끼의 냄새를 먼저 맡은 후 입에 넣으며 한마디 했다. 지하동굴의 이끼는 밖에서 볼 수 있는 일반 이끼와는 다르게 상당한 부피감이 있는 종류여서 웬만한 공복을 채울 수 있었다.

석실의 천장 어딘가로부터 벽면을 따라 흘러 내린 물이 바닥에 고여 샘물을 형성했고, 그 물도 조금씩 석실 구석의 어딘가로 흘러 사라졌다. 이끼는 석실 천장에서부터 물이 흘러내리는 벽면과 샘물 주위에 넓게 퍼져 있어 제법 오랜 기간 오의붕경과 묵진휘가 배를 채울 만 했다. 아마 비가 오면 석실 벽면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의 양이 넓고 많아지는 모양이었다. 벽면 가장자리의 이끼는 메말라 있었지만 아마 비가 오면 흘러 내리는 물의 면적이 넓어져 젖을 것이었다.



“그만하세. 이미 날도 기울었네.”

“더 이상 바위를 치우면 절벽이 다시 무너질 듯하네. 이제 그만하세.”

경표와 항백이 남궁이현을 말린다. 늦여름의 뜨거운 해가 서산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산 정상이기에 아직 마지막 햇살이 비취고 있었지만 산아래 마을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남궁이현은 이틀째 이곳에서 바위를 치웠다. 마치 바위 아래 묵진휘가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이틀 동안 남궁이현 일행이 치원 바위도 엄청난 양이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바위가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바위를 치울수록 절벽에서 다시 바위가 조금씩 굴러 내리기 시작했고 언제 절벽 전체가 다시 무너져 내릴 지 몰랐다.

“그만하게. 친구.”

항백과 경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위를 치우던 남궁이현의 어깨를 주은백이 뒤에서 가만히 잡자 남궁이현이 갑자기 바위에 털썩 주저 앉는다. 기실 그도 공연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바위를 헤치는 손길을 멈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주은백이 손짓으로 사람들에게 산을 내려가라 한다. 주은백의 손짓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린 두원과 항백, 경표가 유긍연과 함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 우리도 그만 내려가세.”

주은백이 바위에 주저앉아 있는 남궁이현의 손을 잡아 일으키려 하자 남궁이현이 고개를 돌려 주은백의 바라본다.

“나도 그 친구가 이 바위 밑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기에 바위를 치우고 있는 걸세. 이것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 않네. 후~”

남궁이현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으나 그 최선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답답한 심정을 주은백도 익히 알고 있었다.

세상에 허무적이던 스승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심정,

아버지를 잃고 세상의 격랑 속에 내던져진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그 심정,

주은백도 그런 심정들로 인해 그토록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답답한 심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애초 세상과 인연을 맺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자유의 본질이라고 여겨왔다.


바람...

어딘가에 메이지 않아 답답할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는 상태···


바람의 자유···


그것이 주은백이 생각하는 해답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위에 주저앉아 있는 남궁이현을 보며 주은백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삶의 큰 의미가 남궁이현의 등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은백이 다시 한번 손을 내민다. 적당한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남궁이현도 잠시 있더니 주은백이 내민 손을 잡고 바위에서 일어선다.

“고맙네.”

그리곤 주은백을 바라보며 한마디 한다.

“내가 무얼 했다고 고맙다고 하는가?”

“이렇게 곁에 있지 않나? 그래서 고마운 것이지. 자네는 묵진휘 그 친구처럼 친구 곁을 떠나면 안되네.”

남궁이현이 다시 그윽하고 깊은 눈길로 주은백을 응시하더니 다시 한마디를 잇는다.

“내려가세.”

그리곤 자신이 먼저 걸어가기 시작한다.

주은백은 남궁이현의 등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자유의 바람···

그래서 외로운 바람···

주은백은 우정에 대해,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것은 구속이다. 어딘가에 메이는 것이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그 속에 오히려 다양한 삶의 여정旅程이 있을 터이다.

갑자기 유혜연의 얼굴이 떠오른다.

밝고 귀엽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눈···

무한에선 없었던 눈빛이다. 자신으로 인해 생긴 눈빛임을 안다.

남궁이현의 슬픔을 보면서 주은백은 앞으로 유혜연이 자신으로 인해 슬퍼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다짐처럼 마음으로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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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7. 궁즉통窮則通 +3 17.06.09 2,462 4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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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4. 불안不安 +3 17.06.02 2,403 47 10쪽
154 153. 후퇴後退 +3 17.05.31 2,616 47 10쪽
153 152. 적대강狄大江의 단서 +3 17.05.28 2,708 47 10쪽
152 151. 속수무책束手無策 +3 17.05.27 2,616 43 10쪽
151 150. 글씨 +3 17.05.25 2,646 48 11쪽
» 149. 열린 문 +3 17.05.22 2,510 45 10쪽
149 148. 사각 열쇠 +3 17.05.20 2,441 47 10쪽
148 147. 압박壓迫 +2 17.05.18 2,461 45 10쪽
147 146. 수색搜索 +3 17.05.16 2,448 4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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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143. 소용돌이 +3 17.05.10 2,594 43 10쪽
143 142. 버섯구름 +5 17.05.09 2,586 5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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