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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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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최근연재일 :
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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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06.0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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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57. 궁즉통窮則通

DUMMY

“왜 그래?”

백의가 옆에 있던 흑의의 옆구리를 툭 치자 흑의가 백의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묻는다. 왜 옆구리를 쳤냐는 것이다. 하지만 백의는 흑의의 퉁명스러운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가만히 손으로 조그만 석실의 좌대를 가리킨다.

흑의가 고개를 돌려 좌대를 바라보다가 눈이 둥그레졌다. 놀란 것이다. 이제 놀라는 일은 없으리라 여겼는데 또 놀라고 있다.

묵진휘가 좌정한 채로 좌대에서 두 뼘 가량 떠있는 것이다.

흑의의 태도에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묵진휘를 바라본다.

내공이 상당한 사람은 공중부양을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처음 본다. 도움닫기를 이용해 높이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도 충분히 한다. 물론 높이의 차이는 다양하겠지만. 하지만 공중부양은 도움닫기를 이용한 높이 오르기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적의가 묵진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신들과 차원이 다름을 인정할 때 사용하는 몸짓이다.


“벌써 몇 번째야?”

“글쎄. 내가 열일곱 번째까진 세어봤는데 이제는 모르겠네. 올라가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 이젠 한번 올라가면 일다경 정도 있다 내려오니 그게 사람이야?”

“글쎄, 이끼도 거의 먹지 않으니 원. 배고프지? 우린 이끼나 먹으세.”

백의와 흑의는 이제 묵진휘의 공중부양을 보는 것 자체가 지겨운듯했다. 점점 묵진휘에게 쏠렸던 신경이 둔해지며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묵진휘는 온 신경을 집중해 그 힘을 느끼려 하고 있다. 묵운기墨雲氣를 사용해 창출한 자신의 공간에서 일정시간 공중부양 하는 것을 터득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지금 느끼고자 하는 것은 공중부양한 자신을 땅바닥으로 끌어 당기는 힘의 존재다.

누가 지금 묵진휘의 생각을 전해 들었다면 미친놈이란 소리를 할 것이다.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의문이 필요 없는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설명이 필요한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묵진휘는 그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드는 존재를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좌대로 내려온 묵진휘가 긴 숨을 뱉어냈다. 이번에도 그 힘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묵진휘가 온 신경을 집중하면 십여 장 밖에서 기어가는 개미의 움직임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힘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묵진휘가 이번에는 바로 허공으로 올라가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너무 쉬지 않고 공중부양을 위해 묵운기를 운용했기 때문에 조금 지친 것이다. 어쩌면 물리적 측면보다 정신적 측면에서 더 지쳤다고 봐야 했다. 문제는 눈 앞을 떠나지 않는데 답은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존재하는데 느낄 수 없다.’

잠시 쉬기로 마음먹고 묵진휘가 좌대에서 일어서기 위해 눈을 뜨는 순간 글씨가 쓰여있던 벽면이 보이면서 갑자기 단서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하는 것이다.


낙수유양의 落水猶養意


낙수는 물水 보다는 낙落을 중요하게 읽어야 한다. 낙을 통해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 힘이 바위를 뚫는다. 낙을 일으키는 힘, 그 힘이 근원의 힘이다. 자연의 힘이다. 묵진휘가 느끼고자 하는 힘이다. 그런데 그 힘은 뜻意을 기른다고 했다. 기른다는 것은 키운다는 것이다. 근원의 힘이 뜻을 키운다면 근원의 힘은 뜻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역逆으로, 뜻을 통해 근원의 힘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너무 감각을 통해 근원의 힘을 느끼려 했다.

스승의 말씀이 눈에 보이듯 귀에 들려왔다.

‘묵운신공은 의념意念을 기본으로 하는 무공이니라.’

한 순간, 머릿속이 훤히 밝아지는 것 같았다.

너무나 많이 들은 말에 단서가 있었다. 왜 그 말을 잊고 있었던가? 돌고 돌아 다시 스승님의 말씀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원점으로 돌아 온 것이 아니다. 지양止揚의 과정을 밟은 것이다.

의념, 그 자체로는 물物과 대비되어 부정되었지만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는 그것을 긍정하는 나선적 순환의 과정 속에서 다시 깨닫게 된 것이다.

좌대에서 일어서려던 묵진휘가 다시 좌대에 정좌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다듬어 뜻을 궁구하고자 함이었다.



“저기 누가 오는군.”

“노인 같은데? 마읍魔邑에서 누가 오기로 되어 있나?”

“오기로 한 사람은 없는데?”

“길을 잃은 노인넨가?”

“행색을 보아하니 길을 잃은 사람 같진 않은데?”

정문의 우측에 서서 경비를 서던 두 무인이 앞에서 걸어오는 노인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대화로 지루한 시간을 달랜다. 정문에는 좌우 측에 각 두 명씩의 경비 무인이 경비를 서고 있었고, 정문 몇 장 앞에는 드나드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는 조그만 초소가 있어 거기에도 두 명의 무인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정문 우측에서 경비를 서던 무인 하나가 노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초소 경비 무인 중 하나가 노인에게 뒤돌아가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 보인다.

“마교가 요즘 너무 물러진 모양이야. 아무나 마교 정문에 거리낌없이 다가오고 말이야. 예전 같았으면 목숨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 교주님께서 즉위하신 후부터 분위기가 바뀐 거잖아. 부드러워진 거지. 그래야 일반 백성에게 교敎가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젠 다 늙어빠진 노인네까지 구경 왔잖아?”

“심심하지 않아 좋···”

정문 경비 무인이 웃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려는 찰나 그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의 두 눈에 초소 무인 두 사람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땅으로 뚝 떨어지더니 머리 없는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

옆에 있던 동료도 같은 광경을 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삑~삑익~

삽시간에 벌어진 광경임에도 잘 훈련된 무인 하나가 정문 좌측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호각을 꺼내 길게 불자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정문 인근에 울려 퍼졌다. 곧 경비부대가 올 것이다.


“정문에 노인 하나가 나타나 소란이 피우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경비부대가 출동했습니다.”

“노인?”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은 없고 노인 한 명만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수하가 보고를 끝내고 집무실을 나갔다.

“마교 정문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놈이 다 있군 그래. 허허”

일정령주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일정령주와 신기령주는 갈군청의 집무실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교주가 없는 교에서는 그들 세 사람이 가장 높은 수뇌부였다. 부교주는 공석空席이었다.

“이런 소란이 언제 있었소?”

신기령주가 갈군청에게 묻는다.

“제 기억으로는 없습니다. 몇 차례 중원 무림과 전쟁은 있었지만 홀로 교의 정문으로 찾아와 소란을 부린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미친 놈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있겠소?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다면 미친 놈이겠지요.”

“허허허”

갈군청의 얘기에 두 영주는 웃었다. 사실 누가 이 소란을 심각하게 여기겠는가? 홀홀 단신 마교로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십 중 팔구, 아니 십이면 십 미친 놈일 테니까.

“교주께서는 언제쯤 돌아오시오?”

“제가 맘 편히 오래 구경하고 오시라 했습니다. 아마 단풍이 들어야 오실 것입니다.”

“이미 여름도 다 가고 있으니 그리 오래 계시는 것도 아니군.”

“한 이십 년 되셨지? 중원에 나가신 지?”

“그렇습니다. 자식들과는 처음 가는 여행이지요.”

“행복하시겠군.”

“그러시겠지. 이젠 조금 편히 지내실 때도 되었지. 소교주도 벌써 장성長成하셨잖은가?”

두 영주와 갈군청은 이내 정문의 소란을 잊어 버리고 교주 얘기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한담을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밖에서 급한 보고가 있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들어오라”

갈군청이 밖에 대고 소리치는데 목소리에 언짢은 기분이 배어 있었다. 한담을 방해 받아서다.

“정문이 돌파 당했다고 합니다.”

들어온 수하가 긴급한 듯 보고했다.

“정문이 왜?”

일정령주가 되물었다. 그새 노인이 정문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보고를 잊어 먹은 것이다.

“노인이 정문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수하가 다시 한번 보고했다. 같은 보고였지만 노인이라는 말이 붙자 세 사람은 그제야 사태를 제대로 인식했다.

“경비부대가 출동했다 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갈군청이 되묻는다.

“출동했습니다만 궤멸되었습니다.”

“뭐라? 누구에게, 몇 명이 출동했던가?”

갈군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경비부대 오십 여명이 출동했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단신으로 경비부대를 궤멸시키고 정문을 돌파했습니다. 지금 지주대地柱隊가 출동했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주대가 출동했단 얘기에 사태가 곧 진압될 것이라 믿었다. 마교 주력부대중의 하나가 지주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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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60. 동굴 수련 +4 17.06.16 2,604 43 10쪽
160 159. 긴장緊張 +3 17.06.13 2,490 44 10쪽
159 158. 경악驚愕 +3 17.06.11 2,437 46 9쪽
» 157. 궁즉통窮則通 +3 17.06.09 2,462 47 9쪽
157 156. 청해의 먹구름 +3 17.06.07 2,552 41 10쪽
156 155. 낙수落水 +3 17.06.04 2,461 48 10쪽
155 154. 불안不安 +3 17.06.02 2,403 47 10쪽
154 153. 후퇴後退 +3 17.05.31 2,616 47 10쪽
153 152. 적대강狄大江의 단서 +3 17.05.28 2,708 47 10쪽
152 151. 속수무책束手無策 +3 17.05.27 2,616 43 10쪽
151 150. 글씨 +3 17.05.25 2,646 48 11쪽
150 149. 열린 문 +3 17.05.22 2,509 45 10쪽
149 148. 사각 열쇠 +3 17.05.20 2,441 47 10쪽
148 147. 압박壓迫 +2 17.05.18 2,461 45 10쪽
147 146. 수색搜索 +3 17.05.16 2,448 47 10쪽
146 145. 백사일생百死一生 +3 17.05.13 2,689 49 10쪽
145 144. 무림맹과 마교 +3 17.05.11 2,603 47 10쪽
144 143. 소용돌이 +3 17.05.10 2,594 43 10쪽
143 142. 버섯구름 +5 17.05.09 2,586 51 10쪽
142 141. 화약火藥 +5 17.05.06 2,593 48 11쪽
141 140. 공동의 적敵 +3 17.05.04 2,621 49 10쪽
140 139. 오의붕경五衣朋競 +4 17.05.02 2,580 46 11쪽
139 138. 굴갱대호堀坑大虎 +3 17.04.30 2,634 49 10쪽
138 137. 재연再演 +2 17.04.28 2,592 48 10쪽
137 136. 공세攻勢 +2 17.04.26 2,700 50 9쪽
136 135. 진노震怒 +2 17.04.23 2,710 49 9쪽
135 134. 모순矛盾 +2 17.04.20 3,073 49 10쪽
134 133. 마교魔敎 +2 17.04.18 2,884 46 11쪽
133 132. 질문質問 +2 17.04.15 2,826 5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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