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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핏줄이 마법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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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R
작품등록일 :
2024.07.14 23:40
최근연재일 :
2024.07.24 07:45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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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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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글자수 :
56,756

작성
24.07.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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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혼혈아.

DUMMY

001.


마법의 시대.

백 년간의 기나긴 전쟁은 끝이 났고 세상엔 전에 없던 평화가 도래했다.

무너진 폐허들은 빠르게 재건되었고, 사람들은 잃어버린 지난 백 년의 시간을 보상받길 원하는 듯 별거 아닌 일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여기가 어디라고 와!”

“······빵 한 덩이라도 얻을 수 없을까요?”

“축성 받은 신성한 빵을 감히 누구 아가리에······!”


옷차림은 남루했고 머리는 산발이었지만, 소년의 외모는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는 사람을 홀릴 것만 같았다.

이상하리만큼 기품이 넘치는 소년이었지만 시민들의 얼굴엔 미소 대신 경멸과 증오가 자리를 잡았다.


“쯧쯧, 악마의 자식을 벤 애미나 더러운 악마 잡종인 아들이나······ 물이라도 마시면서 연명하는 걸 고맙게 여기진 못할망정 빵을 훔치다니! 한스! 두 번 다시 성안에 못 오게 혼쭐을 내 줘요!”

“대주교님 아녔으면 너희 모자는 진작 불에 타 죽었어! 알아?!”


퍽-!

퍽-!


“으, 으윽!”

“이 독한 놈이! 그 빵 얼른 내놓지 못 해!”


자신보다 몇 배나 큰 어른들의 매질을 견디며 소년이 소중하게 품고 있는 건 메마른 빵 두 조각이었다.


“그래, 우리가 지치는 게 먼저일지, 네가 죽는 게 먼저일지 한번 해 보자!”


소년을 흠씬 두들겨 패던 패거리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자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커다란 몽둥이를 손에 들었을 때, 한 사람이 군중들 사이로 나타났다.


“그만하세요, 그만!”

“대, 대주교님!”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다 큰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이러시다니요!”

“······하지만 이 아이는 악마와 인간의 잡종 아닙니까? 대주교님이 말씀하신 게 있어서 최대한 신경 안 쓰고 살아왔지만, 축성받은 빵에 손대는 건 저희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 아이와 이 아이의 어미도 전쟁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형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얼른 물러나십시오!”

“······퉷.”


남자가 걸쭉한 침을 한 번 뱉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잠잠해지자 소년이 꼭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대주교님······.”


깔끔하게 넘긴 백발, 그보다 더 하얀 사제복과 인자한 웃음까지. 솔몬교의 대주교님이었다. 


“멀린, 내가 혼자서는 성안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조, 죄송해요. 엄마가 아픈데 먹을 게 없어서 성안까지 들어왔어요.”


고개를 푹 떨군 멀린의 눈에 흙먼지 범벅이 된 빵조각이 들어왔다. 그 위로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서러움, 안도감이 섞인 복잡한 눈물이었다.


“나에게 말을 하지 그랬느냐, 성 밖으로 포교를 나가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대주교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기도 하고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거 같다는 생각에······ 죄송해요.”

“괜찮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대주교의 손이 멀린의 몸에 닿자 군중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대주교님이 악마의 몸에 손을 대다니.”

“루시퍼가 죽기 전에 분명히 말했다지, 악마가 빚어낸 인간이 악마들의 세상을 이룩할 것이라고······.”

“대주교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야, 다른 성들은 악마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인 놈들은 다 불에 태워 죽였다던데.”


대주교의 손길이 이마의 상처에 닿자 멀린이 움찔거렸다. 아픔 때문은 아니었다. 이 정도 상처야 별거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귓가에 들리는 말들이 더욱더 아팠다.

멀린의 마음을 아는지, 대주교는 멀린을 등 뒤에 숨기고는 입을 열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언제까지 루시퍼의 말에 휘둘릴 생각이십니까!”

“······하지만, 대주교님! 루시퍼의 예언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저희 성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성밖에는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저희 성에서 죽는 사람은 이제 없어야 합니다.”

“······.”

“가자, 멀린.”


터벅터벅, 성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대주교와 멀린.

피골이 상접한 몸, 남루한 옷차림.

멀린의 눈은 여전히 보랏빛으로 불타고 있었고, 그의 손엔 말라비틀어진 빵 두 조각이 쥐여져 있었다.


***


- 너희들이 내 목을 벤다고 이 전쟁이 끝날 거 같으냐? 나의 심복이 빚어낸 아이가 우리의 세상을 이룩할 것이다.


백 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었던 루시퍼와의 전투.

다섯 부족의 연합군이 루시퍼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을 때, 대악마 루시퍼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이다.


'루시퍼의 심복이 빚어낸 아이가 악마의 세상을 이룩할 것이다.‘


예언을 가장한 루시퍼의 저주는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전쟁의 아픔을 뼈저리게 겪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전쟁 기간 내, 수많은 여성들이 악마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고, 그 슬픔의 굴레 끝엔 악마의 아이를 밴 여자들의 죽음과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불구덩이에 던져진 아이들이 있었다.

멀린은 다행히도 대주교의 온화한 성품 덕에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음이 곧 인간다운 삶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아아, 아아-! 인큐버스 님! 다시 한번 저에게 황홀경을 보여 주세요! 아아-!”

“엄마, 빵 갖고 왔어요. 조금이라도 드셔 보세요. 대주교님이 축복을 내려 주신 빵이에요.”

“아아-! 인큐버스 님! 언제 저를 보러 오시나요!”

“엄마······.”


시체의 산 아래, 나무 하나를 세우고 천을 뒤집어씌운 게 모자의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그곳에서 멀린의 엄마는 인큐버스가 준 쾌락에 절여진 채, 그의 이름만을 부르짖고 있었다.


“저번에 준 포도주는 먹여 봤느냐?”

“예.”

“별다른 차도는 없던 모양이구나.”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주교의 한숨이 깊어졌다.


“축성받은 포도주도 듣질 않다니, 인큐버스 같은 하급 몽마의 마나 정도는 충분히 정화가 될 터인데······ 아마 마음도 몸도 많이 약해진 탓일 게다.”


대주교의 손이 약하디약한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을 붙잡고 '아아, 인큐버스 님'이라고 외치는 여인의 모습은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눈을 꼭 감은 멀린이 기도를 올리듯 양손을 맞잡고는 입을 열었다.


“저와 엄마가 살아 있는 게 옳은 일일까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악마가 빚어낸 아이가 세상을 멸망시킨다······ 라고 하잖아요. 저 같은 괴물은 역시 없어지는 게······.”

“멀린!”


언제나 온화했던 대주교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악마의 말에 현혹될 필요 없다, 멀린.”

“하지만, 루시퍼의 예언은 언제나 이뤄진다고······.”

“악마들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악함을 건드릴 뿐이야. 그것에 휘둘리는 꼴이 악마들이 제일 바라는 게 아니겠느냐.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때다.”


멀린이 감았던 눈을 떴다. 엄마는 여전히 대주교님의 손을 잡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 순간, 예배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댕-! 댕-! 댕-!


예배 시간이 아니면 들릴 리가 없는 소리였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악마들의 습격 때······.


“대주교님, 설마······.”


눈을 마주친 멀린과 대주교가 급히 텐트를 벗어났다. 


“악마다-! 악마의 공습이다!”


불길한 예감은 어찌 틀린 적이 없는 걸까, 한낮의 태양을 집어삼킨 듯한 엄청난 군단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군주를 잃어버린 놈들이 어떻게······! 멀린, 숨어 있거라!”

“대주교님, 저도 따라갈게요-! 제가 가진 힘이라면······.”

“멀린! 네 마나를 본 주민들이 널 가만둘 거 같으냐? 잠자코 어머니를 지키고 있거라!”

“하지만 저도 도움이······.”


멀린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멀리 사라져가는 대주교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멀린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이곳도 끔찍하긴 바깥과 매한가지였다.


“아아, 아들-! 그분이 오신 거지? 그렇지? 그분의 마나가 느껴져! 느껴진다고!”

“······엄마, 이제 그만하세요.”

“아들, 가서 네 아버지를 뵙자. 너를 보면 무척이나 좋아할 거야! 아아-!”


교태 넘치는 소리를 내는 엄마의 모습에 얼굴을 감싸 쥔 멀린이 천천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쉬고 계세요. 제가 아버지를 뵙고 올게요.”


손가락 사이로 비친 멀린의 눈은 타오르다 못해 세상을 숯덩이로 만들 것만 같았다.

여전히 인큐버스를 부르짖고 있는 어머니를 뒤로한 채 텐트를 나선 멀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죽이든, 내가 죽든 해야겠어요.”


***


하급 인큐버스는 아이를 만들 수 없으므로 남의 정자를 취해야만 한다. 그 정자를 이용해 인간 여성과 관계를 맺었을 때, 캠비온이 태어난다. 캠비온의 능력은 비범하며 독특하다.


-솔몬의 레메게톤, 제 1장 게티아 


***


“으아악-!”

“남문, 남문이 뚫렸어!”

“사제님, 얼른 창에 축성을······!”


성안은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재건한 건물들도 한순간에 다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멀린은 지옥도를 바라보며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마나 구체를 만들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한 감각. 피는 들끓었으며, 꽉 다문 어금니 사이론 고통과 환희가 섞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약간의 시간 끝에 보라색의 마나 구체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악마의 피를 잇는 자만이 가진다는 보랏빛의 마나.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마나의 형상화'를 멀린은 태어날 때부터 할 수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천재 마법사였을까? 아니면 악마의 핏줄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일까?

판단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딱 하나 확실한 게 있었다. 이 능력으로 악마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


'네 마나를 본 주민들은 널 어떻게든 죽이려 들 것이다. 절대, 절대 사람들 앞에서 마나를 내뿜지 말거라.‘


대주교의 말에 따라 사람들 앞에서 마나를 형상화한 적도, 마법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마나의 양은 차고 넘쳤다.

손안에 있던 작은 마나 구체는 어느새 멀린의 몸을 뒤덮는 갑옷이 되고 날카로운 곡괭이가 되었다.

검술을 배운 적 없는 멀린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였다.

나무뿌리라도 캐 먹기 위해 언제나 곡괭이질을 해야 했으니까. 

그의 곡괭이가 가장 먼저 꿰뚫은 건 사마귀의 모습을 한 하급 악마 앙퓌즈였다.


푸욱-!


“끼이, 끼이이엑-!!”


괴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앙퓌즈, 그 밑에 깔려 있던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멍한 눈빛으로 멀린을 쳐다보았다.

몇시간 전, 빵을 받으러 온 멀린을 죽이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남자였다. 


“멀린이냐······?”

“······예.”

“하하, 하하하······ 그 마나 색깔을 보아하니 진짜 악마의 자식이 맞았구나······.”


멀린은 곡괭이를 들고 있는 자신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복수라는 감정일까, 아니면 악마의 마나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악함을 건드리는 것일까.


“전 악마의 자식이 맞아요. 하지만 당신들처럼 악마가 원하는 대로 놀아나 주진 않아요.”

“······날 살려 주는 게냐?”


곡괭이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남자의 머리통 옆을 찍었다.


쾅-!


“흐, 흐으윽······.”


죽음의 공포 앞에서 온몸을 떠는 남자의 얼굴 위로 멀린이 입을 열었다.


“인큐버스를 본 적이 있으세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떨리는 손으로 남자가 가리킨 곳은,


“남문이군요.”

“그, 그래······.”


“우리에게 쌓인 많은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풀어봐요.”


곡괭이를 빼든 멀린이 빠르게 걸었다. 그의 입에선 한마디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악마들은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악함을 건드릴 뿐이고, 그것에 휘둘리는 꼴이 악마들이 제일 바라는 것이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마나를 사용함과 동시에 끓어오르는 지독한 살의.

악마의 마나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대주교가 해 준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멀린이었지만, 그의 흰자위는 까맣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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