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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08 23:16
연재수 :
1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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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5
추천수 :
127
글자수 :
1,46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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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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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40화 던전

DUMMY

40화 <던전>



“으아악! 떨어진다! 떨어져-!”

“자일리! 캣니스여!”


순식간에 튼튼해 보였던 지반이 내려앉았다.

몸이 균형을 잃고 휘청댔다.

곧 부유감이 전신을 지배하였다.


“윽! 캣니스여!”


떨어지는 와중에 브레드가 자일리를 낚아챘다.

그는 곧바로 캣니스에게도 손을 뻗었다.


“크윽! 바위가!”


그러나 무너지는 잔해물이 그들 사이로 떨어졌다.

한 끗 차이로 캣니스를 놓쳤다.

이후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추락하는 헤이즈의 불빛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크윽! 캣니스여! 부디 무사하···”


끝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브레드는 캣니스를 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저 아래서 갈라지는 벽을 느끼며 몸이 부딪치지 않게 주의했다.


-퍽


“뭣?!”


갑작스레 묵직한 충격이 그의 등을 가격했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매달려 있던 형체가 멀리 떨어졌다.

그와 상반되게 캣니스와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브레드는 캣니스를 붙잡고 또다시 뒤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일리여!”


그러나 이제는 자일리와의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조금 전까지 닿아있던 손이 다시 닿을 수 없었다.

어느새 저 밑에 있던 벽이 앞을 가로막고. 공중을 방황하던 헤이즈의 불빛이 돌연 사라졌다.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그들은 자일리와 헤어지고 말았다.

브레드는 캣니스를 꼭 끌어안고 끝을 모를 바닥을 향해 추락하였다.


“자일리 님···.”


캣니스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마지막 순간에 본 자일리는 안도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쿨럭, 쿨럭.”


희박한 공기와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흙먼지들.

브레드는 돌 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상당한 무게감이 짓눌렀지만, 그의 근육은 어렵지 않게 일을 해냈다.


“캣니스여. 괜찮은가?”


-쿵


몸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치우자. 주위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이 어둠뿐이라 보이지 않지만, 상당한 수의 잔해물이 주위에 널브러져 있을 터였다.


“브레드 님··· 괜찮으신가요······?”


다행히 그의 품 안에 안겨있던 캣니스도 몸을 일으켰다.

떨어질 때의 모든 충격을 브레드가 받았기에 작은 생채기만 느껴졌다.


“무사하네. 하지만 우리는 상당히 깊은 곳까지 떨어진 모양이군.”


브레드는 심각한 목소리를 하며 어깨를 털었다.

긴 시간을 공중에 떠 있었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바람에 어느 지점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주위에 위험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적지에서 흔히 보는 고블린이나 다른 생물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읏-차!”


브레드가 돌무더기를 짚고 올라가 꼭대기에 올라섰다.

당연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는 어둠만이 전부였다.

던전에서는 작은 약점도 큰 위험이 될 수 있기에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었다.


-부스럭


“조심해서 발을 디디게. 사방이 돌덩이이니.”


뒤에서 돌무더기를 오르는 캣니스에게 조언했다.

그녀가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는, 손을 뻗어서 제 위치로 끌어당겼다.


“자일리 님과는 헤어진 걸까요?”

“도중에 길이 나누어졌다네. 운이 좋다면 지하수 같은데 빠져서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를 구하기는커녕, 현재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없고 길도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캣니스는 각오를 하고 두 손을 모았다.

브레드는 그녀가 자일리에 대해 기도한다고 생각했다.


“홀리 라이트.”


황금빛 신성력이 불을 밝혔다. 어둠밖에 없던 세상에 빛이 들어왔다.

작은 빛의 구체가 공중에 떠올라서 그녀의 어깨 위에 자리했다.

브레드는 놀란 표정을 급히 갈무리하였다.


“고맙네. 덕분에 앞을 볼 수 있게 되었군.”

“뭘요. 브레드 님의 도움과 비교하면 별거 아닌걸요.”


그들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잔해더미를 밟았다.

미끄러지듯 비탈길을 내려가고, 마지막에 주저앉은 캣니스가 배시시 웃었다.


“브레드 님, 잠깐만 등을 보여주시겠어요?”


당혹스러운 부탁일 만도 한데. 브레드는 선뜻 옷을 벗어서 근육질 등을 보였다.

성난 근육이 가득한 등에는 온갖 색의 멍이 피어있었다.


“부탁하겠네.”


캣니스는 양손을 모았다.

여신께 기도하며 그의 피부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황금빛 알갱이가 사방에서 솟아나고 멍 안에 스며들며 치유의 힘을 발휘하였다.

잠시 앓는 소리가 들리고 빛 알갱이가 사라졌다.


“훌륭하군. 신전에서도 이보다 완벽히 못 할 걸세.”


브레드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고 몸을 비틀었다.

기적을 발휘한 성직자는 조용히 미소를 띠었다.


“과찬이에요.”


캣니스가 겸손하게 말하자, 브레드는 더욱 힘이 실린 목소리로 되돌려줬다.


“아니, 진심일세. 그동안 묵은 통증까지 싹 사라졌군. 이 정도 힘이라면 신전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자네가 모험가를 자처한 게 의문이군.”


캣니스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브레드도 이 이상 파고들지 않고 일어섰다.

두 사람은 몸을 털고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단순히 지반이 약해져서 무너진 건 아닌 거 같군. 주위가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어.”


자연적으로 토굴이 생긴 게 아닌 원래부터 비어있었을 공간.

바닥과 벽에도 대리석이 있는 모습으로 보아, 유적지는 복층의 구조로 되어 있던 모양이다.


“브레드 님 말대로 처음부터 지하가 존재했던 거 같아요. 이런 곳에서 연금술의 정수인 골렘이 함부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쿠르르릉


말을 끝맺기도 전에 돌무더기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리고 표정을 굳혔다.


“이제는 편히 돌아갈 수도 없겠네요.”


어둠 너머로 거대한 형체가 움직였다.

그 수는 단순한 셈으로 계산할 물량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당장 해야 할 일부터 하도록 하지. 자일리를 찾아내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일을 말일세.”


캣니스는 빛의 구를 더욱 환하게 키웠다.

브레드는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몸을 풀었다.

윗옷을 바닥에 던져두고 앞으로 움직여 살기를 뿜어냈다.


“자, 오게나 골렘의 군세여. 나 브레드 머슬릿이 전력으로 상대해 줄 테니.”


그의 근육이 성난 황소처럼 부풀었다.

골렘에 뒤처지지 않을 태산 같은 남성의 등이 지켜야 할 사람을 지켜 섰다.



*****



“쿨럭. 컥···!”


비릿한 향기가 목에서 올라왔다.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이는, 자일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전신에 엄습하는 고통을 느끼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힘겹게 팔에 힘을 주었다.


“아파···.”


팔이 떨리고 무릎이 떨렸다. 일어서는 것조차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았다.


-털썩


끝내 일어서는 데 실패하였다. 자리에 힘없이 엎드린 채로, 몽롱한 정신으로 눈꺼풀 너머를 바라봤다.

그의 주위는 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공기만이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이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서 공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허용하지 않은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마밍!


그때 머릿속에 소리가 울렸다.

이곳에 와서 처음 듣는 소리. 신기하지만 경계심이 드는 소리. 반갑지 않은 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뭐야···. 내 꼴을 비웃으러 왔냐?”

“마밍!”


소리의 주인은, 자신을 처참한 꼴로 만든 원흉이었다.

바닥이 무너지기 전에 봤던 작은 돌덩이 형태의 골렘이었다.

놈이 주위를 알짱거렸다.

다행히 그 큰 놈은 보이지 않았다.


“마밍!”

“시끄러워···. 죽일 거면 빨리 죽이라고······.”

“마밍! 마밍!”

“하찮은 골렘 주제에. 인간님이랑 대화라도 할 줄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밍.”

“에잇···. 아무것도 안 할 거면 절로 좀 꺼져. 곁에서 쫑알쫑알 시끄럽네···!”


손을 뻗어서 작은 돌덩이를 손에 쥐었다. 그것을 시끄러운 골렘에게 던지려 했다.

툭.

힘없이 손가락이 벌어지며 돌덩이가 떨어졌다.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아. 제기랄.”


갈비뼈를 누르며 심호흡했다.

저 높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로 기뻐해야겠지만, 이 이상 방치되면 죽는 것만도 못할 터였다.


“젠장. 날 놀릴 거면 제대로 하란 말이야···. 어디서 빛이라도 가져와야 내 얼굴을 볼 거 아니야······.”


골렘의 행동을 가소로운 듯이 말했지만. 그는 내심 초조하였다.

자일리는 어려서부터 어둠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둠은 항상 좋지 못한 기억을 되살렸다.

기억은 공포를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가-


“하악! 젠장. 젠장! 젠장-!”


자일리는 몸을 미친 듯이 떨었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에 눈물이 또 복받쳤다.


“마밍!”


또다시 그놈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 덕분에 공포가 조금 덜해졌다.


-마밍!


이번에는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마밍!


소리가 더 멀어졌다.


“뭐, 뭐야? 너 어디 가?”


-마밍!


소리가 이제는 희미해졌다.

자일리는 멀어지는 소리에 진심으로 당황했다.


“잠깐··· 어디 가! 어디 가냐고!”


-마밍!


“아니야! 가지 마! 내 모습을 보고 비웃어야 할 거 아니야?! 당장 돌아와!”


그가 처절한 심정으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거 같은. 정신적인 압박감에 숨통이 조이는 거 같았다.


“잘못했어! 아까 말한 거 취소할게. 농담이니까 돌아와. 돌아와 줘···!”


-마밍!


“제발··· 돌아와 달라고······!”


이제 골렘 특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일리는 스스로 어깨를 감쌌다. 가쁜 숨을 연신 몰아쉬며, 스스로 위로하듯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괜찮아. 난 괜찮아. 괜찮으니까······. 제발 나를 혼자 두지 말아주세요···.”


눈앞에 있지도 않은 대상에게 애원하였다. 환영처럼 아른거리는 악몽에게 매달렸다.

사실 그는 골렘이 제 말을 듣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골렘이 술사도 아닌 자의 목소리를 이해할 리 없었다.

제 감정에 공감할 리 없으며 여기 온 것도 단순히 침입자의 배제 때문일 것이다.


“또 엄마라는 놈을 데리고 오는 걸지도 모르지.”


이 생각까지 미치자 쓴웃음이 났다.

이 던전에 따라오지 말 걸 하는. 깊은 후회에 빠졌다.


“허억······. 캣니스라는 애는 괜찮은 거겠지?”


그가 첫눈에 반한 여자아이.

그리고 목숨까지 바친 여자아이.

물론 자신이 더 어리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 있어서 제 사랑은 지켜야 할 존재였다.


-저보다 어린아이에게 어린 취급 받는 거 기분이 좋지 못해요.


물론 당사자는 질색했지만···. 15년 인생 중 첫사랑이니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자일리는 떨어질 때 자신을 부르던 눈동자가 떠오르자 입꼬리를 올라갔다.


“이 정도면. 그놈보다 내가 더 도움이 되었다는 걸 알아주려나?”


내색하지 않았던 열등감이 또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리 친한 동료라도, 목숨을 구해준 은인보다 소중할까.


“쿨럭.”


하지만 결국 살아남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애초에 자신뿐 아니라 그들이 무사할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물론 브레드가 대단한 모험가라는 걸 믿고 있지만···.


“하긴 내 처지에 걱정하기는 누굴 걱정해.”


자일리는 한껏 입꼬리를 비틀고 코웃음 쳤다.

현실에 수긍하며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그는 닫힌 눈꺼풀 너머로, 빛이 아른거리는 환영을 보았다.


‘옛날에 보았던 동화 속 아이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런 빛이라면··· 마지막 남은 성냥을 태우는 것도 이해가 갔다.

빛은 포근하며 따뜻하였다.


‘편안해.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어.’


남은 의식이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어렸을 적 납치됐던 이후로 처음 드는 편안한 잠이었다.


-대단해요! 자일리 님.

-자일리, 그대는 정말로 대단하군.


꿈속에서의 그는 캣니스와 가더 그리고 브레드를 비롯한 모든 모험가에게 인정받았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받고. 가문의 첫째 형도 자신을 다시 봐주었다.

아카데미의 사람들도 친구가 되어달라며 간청하기 일쑤였는데···.

행복한 꿈은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대로 꿈과 함께 영원히 깨고 싶지 않았다.


“마밍!”

“커헉!”


그러나 외부의 충격으로 단번에 꿈에서 깨어났다.

복부에서 느껴진 끔찍한 고통에 몸서리쳤다.

온몸을 밟힌 지네 마냥 몸을 움츠리고 데굴데굴 굴렀다.


“커억. 컥. 이게 대체 무슨···.”


마른기침을 뱉으며 게슴츠레 눈을 뜬 그때였다.


“마밍!”

“어?”


꿈이라고 여겼던 환한 빛에 두 눈을 찡그렸다.

순간 처음 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지만.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밍!”


자신을 때린 것은 작은 돌덩이 골렘이었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굴던 그 골렘 말이다.

골렘의 손에는 아주 익숙한 물건이 들려있었다.


“헤이즈···.”


용케 마력 불 헤이즈는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랜턴의 마력 기관은 망가졌지만, 골렘의 마력 회로와 연결되어 빛을 내는듯하였다.


“그건···.”


이윽고 시선은 골렘의 오른손에 다다랐다.

입구에서부터 그들이 챙겨왔던 보따리가 있었다.


“마밍!”

“아야!”


골렘은 다짜고짜 보따리를 들이밀었다.


“어이 잠깐만. 아야, 살살 좀 다뤄달라고!”


골렘은 자일리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억지로 보따리를 안겨주고 안에 있던 물건을 꺼내 보였다.


“마밍!”


“이건 회복 포션···?”


골렘이 보따리 안에서 꺼내는 건 회복 포션이었다.

모험가의 필수 아이템. 연금술의 밥줄이라고 불러도 좋을 바로 그것.

골절상에는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지만. 인대가 늘어나고 찢어진 상처 정도는 쉽게 치료한다.

자일리는 곧바로 물약의 마개를 열었다.

꿀꺽꿀꺽, 단번에 들이켰다.


“푸하-”


세상을 보는 시야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감각이 없던 다리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였다.

제법 고급 물약을 쓴 건지, 부러진 뼈도 어느 정도 복구되었다.


“살았다···.”


죽을 줄 알았는데 무사히 살아남았다.

자일리는 급한 불을 끈 것에 안심하였다.


“하아, 좀 살 거 같네. 그보다 너,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마밍!”


작은 은인이 짧은 팔을 높이 들었다.

말이나 표정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행동으로 보고 유추했을 때 기뻐하는 듯싶었다.


“신기하네. 진짜 내 말을 알아듣잖아? 어린 영애들이 갖고 노는 놀이 인형과 비슷한 건가? 아니, 그보다 더 똑똑한 거 같은데?”

“마밍!”


골렘은 자랑스러운 듯 허리에 돌멩이를 붙이고, 몽땅한 발꿈치를 까치발처럼 세웠다.

자일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하는 골렘.’


세상에 나오면 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자일리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 너를 만들었을까?”


물약 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조심조심. 골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칠까칠해 보이던 머리는 생각보다 반질반질한 느낌이 났다.

덕분에,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하고. 한편으로는 그가 어렸을 적에 키웠던 강아지가 기억나서 씁쓸한 기분도 들었지만···.

우선은 이 거대한 유적에서 이 작은 골렘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너는 혹시 고대의 유물이니?”


고대의 유물.

역사가 증명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미지의 시대.

고대의 수많은 연금술사가 이곳에서 골렘 제작에 몰두했다면. 이런 생물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마밍!”

“그래, 그렇구나.”


뭐 하나 확실한 건 없지만. 자일리는 그렇게 납득하고 남은 상처에 물약을 들이부었다.


“마밍!”

“그래, 좀 괜찮아졌어. 정말 고맙다 야.”


골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골렘이 손을 마주 잡는데.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영락없는 거친 흙의 것이었다.


“마밍!”

“그래그래. 좋아? 그런데 말이야, 출구가 어디 있는지 알아?”

“마밍?”

“밖으로 나가는 곳 말이야. 태양이 환하게 내리쬐는 곳.”

“마밍!”


골렘이 맡겨달라는 듯 돌멩이를 가슴 앞에 댔다. 그러고는 아장아장 짧은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마밍!”

“따라오라고? 좋았어. 넌 정말 천재 골렘이구나 마밍.”

“마밍?”

“그래. 네 이름은 오늘부터 마밍으로 하자. 이 천재 마법사 자일리가 붙인 이름이라고.”


자일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장 골렘을 따라가려다가 자리에 멈춰 서서, 돌무더기를 빤히 바라봤다.


“마밍?”

“잠깐만 기다려봐 마밍.”


그나마 평평하게 세워진 돌덩이 앞에서 마법을 영창 했다.

손가락 끝에서 붉은 불꽃이 나왔다.

불이 붙은 손가락을 돌덩이에 갖다 대고는. 의도하는 대로 움직였다.


“자 다 됐어. 출구를 향해 출발하자고!”

“마밍!”


자일리는 그렇게 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던 장소를 벗어났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이한 인연과 닿았다.

자일리는 골렘을 길잡이 삼아서 끝없는 어둠 너머로 향했다.

조금 전에 그가 마법을 사용한 돌덩이 앞에 흙이 떨어졌다.


-투둑


[난 멀쩡해. 입구에서 보자.]


바위에는 그가 남기고 간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그들이 살아있고, 자신을 찾지 않을까 해서 남긴 단서.

물론 그들이 빛을 만들어낼 거란 생각 못하고 저지른 일이지만. 모두 살아남아서 밖으로 나갈 거라는 작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작가의 TMI: 고대의 유물이란. 인간의 기록 이전인, 신화 시대를 추측하는 시대에 생긴 유물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건축 같은 전문 기술 문명은 낮았다고 보지만, 마법에 한해서는 더욱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연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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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58화 옛 인연 23.04.12 55 1 21쪽
68 57화 옛 인연 23.04.05 60 0 20쪽
67 56화 베르 23.04.01 54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5 0 22쪽
65 54화 길드 23.03.25 60 0 16쪽
64 53화 길드 23.03.11 58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59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8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0 0 11쪽
60 외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23.02.26 6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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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8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7 6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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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44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4 5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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