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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08 23:16
연재수 :
1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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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6
추천수 :
127
글자수 :
1,467,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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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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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2화 던전

DUMMY

42화 <던전>



“브레드 님.”


캣니스는 휙 고개를 돌렸다.

신성력이 닿지 않은 어둠 너머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그래. 나도 봤네, 캣니스여.”


브레드도 그녀와 같은 방향을 보았다.

그들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지능 있는 골렘. 인식을 저하하는 미궁. 그다음에 느껴지는 저 불길한 기운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지하로 떨어지고 수많은 골렘과 대치하였다.

이후에 한참을 실종자를 찾아서 돌아다녔지만 자일리의 모습은 찾지 못했다.

그나마 여러 바위에 적힌 자일리의 생존 소식을 얻었다.

그 단서에 힘입어서 발걸음을 빨리 해 지상까지 올라왔지만···.

지하에서 만났던 몇몇 골렘의 기이한 웃음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브레드 님. 자일리 님은 무사히 위층까지 올라온 거 같아요.”


골렘, 함정, 특수한 마법이 걸린 미궁을 빠져나와서, 처음 떨어진 복도에 남겨진 자일리의 흔적을 발견했다.

지금껏 봐 온 거와 똑같이 바위에는 ‘입구에서 보자.’라는 문장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글귀에 마냥 안심할 수 없었다.

바위 앞에서 글을 읽던 동안에, 어둠 너머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바로 세웠다.


“가보죠···. 어쩌면 자일리 님과 관련된 일일지도 몰라요.”


브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낭떠러지 앞에 있던 발걸음을 돌렸다.


“이 기운. 마기와 굉장히 흡사하군.”


그들은 흉흉한 기운의 근원지를 향해 달렸다.

불길 같은 빛을 향해 가까이 갈수록 험악한 기운은 점점 더 커다래졌다.


“마족···이라도 있는 걸까요?”


마기란, 마족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마력.

그것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각종 병과 오염에 시달린다.


“아무래도 저 화염의 근원지와 같은 곳인 듯하군.”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붉은 화염이 던전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서 마기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네만···.”


브레드는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그대가, 위험에 처할 일은 없도록 하겠네.”


캣니스는 조용히 달렸다.

왼손에 신성력의 구체를 만들었다가 주먹을 쥐어 꺼트렸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캣니스의 신성력은 무생물인 골렘 앞에서 무력했다.

하지만 상대가 마족이라면 그녀의 힘은 약하지 않았다.

브레드가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지켰기에 신성력의 비축량은 충분하였다.

상대가 사천왕이라도 어느 정도는-


“불 속에 무언가 보이는군. 저건 돌덩이···. 아니, 골렘인가?”


불길이 코앞까지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브레드는 불길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가까이 다가가 봐야···.”


1분 정도는 체내의 마나로 생존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실제로 불타는 정글이나 얼음물 속에서도 몇 번이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금 이 판단에는 문제가 있었다.

조금씩 쌓이던 초조함이 모험가의 판단을 흐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브레드 님! 떨어지세요!”


먼저 위험을 직감한 캣니스가 외쳤다.

뒤늦게 손을 집어넣은 브레드도 이상함을 감지하였다.


“크읏!”


황급히 불길 속에서 손을 빼내었다.

불길 안에 들어간 팔 전체가 갉아 먹힌 것처럼 뜯어져 있었다.

이건 불에 덴 상처가 아니었다.

정체 모를 무언가에 의해 상처를 입은 거다.


“이건 대체···.”


그들은 기이한 현상을 마주하고 숨을 죽였다.

불길은 대체 무얼 매개체로 연소시키는 건지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아무래도 평범한 불은 아닌 거 같아요.”


캣니스는 돌덩이 하나를 주워서 던졌다.

불길 속에 떨어진 돌덩이는 금방 재가 되었다.


“순식간에 모래가 되었어요.”

“심상치 않은 불이군.”

“자칫 잘못 접근하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어요.”


브레드는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매직로프를 따라서 걸어온 또 하나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아무래도 자일리가 안에 있나 보군.”


발자국의 방향은 불길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단순한 결론에 다다르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결국 그를 구하든. 밖으로 나가든. 길은 이곳 하나뿐이라는 것인데···.”


브레드는 바닥에 있는 매직로프를 잡아당겼다.

던전 안쪽까지 이어진 기다란 로프가 순식간에 끌려왔다.


“흐읍! 숙이게 캣니스여!”


수백 미터나 되는 밧줄을 아무렇지 않게 휘둘렀다.

마도구라면 불길 안쪽에서도 멀쩡하리라 생각하고 밧줄을 뻗었다.


“안되네요.”


하지만 그 기대는 순식간에 져버렸다.

불길 안에 들어가자마자 수백 미터의 밧줄이 형체를 잃어버리고 증발했다.

표현하기를. 잿더미의 수준이 아니라 증발이다.

마력이 깃든 물건이 일 초도 버티지 못하고 형체를 감추었다.


“으음-!”


쉽게 있을 수 없는 일에 탄식이 나왔다.

손에 남은 매직로프는 본래의 길이에 못 미칠 정도로 짧아졌다.

마력을 주입한다 해도 제 기능을 할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조금 위험하지만 새로운 출구를 만드는 수밖에···”

“소용없을 거예요.”

“어째서지?”


벽에 구멍을 뚫으려던 브레드가 의아하여 물었다.

이에 캣니스는 불길 속의 기둥을 가리켰다.

돌덩이조차 재가 되는데. 저 기둥은 멀쩡히 지붕을 떠받들고 있었다


“단순히 보존 마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이런 강한 마력에도 전혀 상하지 않았어요.”

“으음-!”


브레드는 더 크게 탄식했다.

옆에 있는 기둥에 손을 댔다가 아연실색하여 거두었다.


“하나 이렇게 되면 방도가···”


첫 번째 계획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하였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수색했다.

천천히 주변을 하나하나 살피며 탈출할 수단을 찾던 그때였다.


“아. 아아아아악-!”


불길 안에서 소름 돋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들은 비명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일리. 살아있었는가···?”


브레드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 같아서는 제 몸 하나 상하여 불길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제 몸만 상하여 끝날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이 원통하군,”


발을 들이면 먼지가 된다.

불길 안으로 들어가봤자 별 도움이 못 될 터였다.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신경 쓰지 않았던 스킬의 부재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이를 어찌하면···’


초조한 마음으로 생각에 빠진 그때였다.

생각에 빠져서 주위를 신경 쓰지 못하였는데. 순식간에 가녀린 팔이 불길을 향해 움직였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브레드가 캣니스의 팔을 붙잡았다.

그 잠깐 고민했다고 반응이 늦어버렸다.

그가 잡아 뺀 캣니스의 손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녀의 반응에 울화가 치밀었다.


“자네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눈으로 봐놓고도···!”

“이거 마력 불이네요.”


그런데 캣니스가 예상치 못한 말을 내놓았다.

브레드는 순간 당황했다.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에, 또다시 불길 속으로 손가락이 들어갔다.


“불 자체는 헤이즈가 풀려난 거뿐이에요. 피부에 그을린 자극만 남고 화상을 입지 않은 게 증거죠.”


브레드가 또다시 돌발행동에 당황하여 손을 잡아끌었다.

그래도 캣니스의 말을 들은 뒤라, 신중하게 손가락 끝을 살폈다.

정말로 캣니스의 손에는 검은 가루 같은 게 묻어있을 뿐. 피부가 상하지 않았다.

양초보다 온도가 낮은 마력불-헤이즈의 특이한 성질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상황은 더욱 기이한 현상이 된 것이다.


“내 손끝과 매직로프가 상한 것을 보지 않았는가?”


정말로 이 불이 헤이즈라면. 돌멩이와 매직로프가 증발한 현상은 대체 무슨 현상인 걸까.


“그건 아마도···. 다른 힘이 존재하는 거 같아요. 헤이즈의 불길이 너무 강해서 외관으로는 볼 수 없는 거예요.”


캣니스는 하나의 견해를 내놓고. 불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 같아서는 주의를 기울이고 싶지만···.”

“아아아아악-!”


불길 속에서 목청을 찢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캣니스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이 이상 있다가는 정말 큰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캣니스여!”


말을 하던 캣니스는 순식간에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브레드는 그런 기척을 읽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함께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조금만 견디게 지금 밖으로 빼낼 터이니···!”


캣니스를 품에 안고 곧바로 땅을 박차려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시야가 검은색으로 변하여 일순 몸이 굳었다.

잠깐의 틈은 컸다.

형용하기 힘든 고통이 전신에 엄습했다.

조금 전의 돌멩이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문드러졌다.

브레드는 고통을 참아내며 판단했다.

확실한 시야가 없는 이상, 어중간한 발걸음보다는 한계까지 발돋움하는 게 좋으리라.

그렇기에 캣니스를 품에 안고 뒤쪽으로 껑충 뛰려 했는데.


“브레드 님. 부디 이 비밀을 지켜주시길 바랄게요.”


훅. 순식간에 어둠이 물러갔다.

근육을 찌르던 통증이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시야를 잃었던 두 눈이 뜨였다.


“이건 대체···.”


브레드는 다시 뜨인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답답하던 마력 대신에 황금빛 알갱이가 몸 주위를 감싸 안고 있었다.

제 몸을 살피면서는 더욱 놀랐다.

조금 전의 고통을 표현하듯 검게 썩어버린 피부들.

그런 피부가 본래의 형태를 되찾아 갔다.

뼈까지 드러났던 손에 근육이 붙고 새살이 돋는다. 머리카락과 피부 그리고 걸친 옷까지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후에는 마치 다른 공간에 온 것처럼 두 번 다시 상하지 않았다.

이 놀라운 기적에 마른침을 삼켰다.


“캣니스여. 자네는 대체···.”


단단한 돌덩이도. 마력이 깃든 물건도 불길 속에서 먼지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무패 등급인 모험가가 이런 힘을 보이는 걸까.


“브레드 님, 저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어요.”


캣니스는 당황한 그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말하는 와중에도 불길 너머에 무언가 있음을 짐작하였다.

검은 마나와 이것이 발생하는 근원지.

그들은 공기 방울 형태인 신성력의 도움을 받으며. 차분한 움직임으로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누군가는 저를 여신님의 선물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수도원의 총명한 아이라고도 불렀죠. 천사의 축복을 받은 아이, 성녀의 자질을 가진 아이, 세상에 빛을 밝힐 분··· 같은 주제에 안 맞는 이름도요.”


근원지를 향해 갈수록 검은 마나의 농도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언제부턴가는 더 많은 사람이 아는 이름도 생겨났어요. 셀레브리디 교단의 집행자, 여신의 열한 번째의 창, 기적을 부르는 성녀의 재림, 용사의 네 번째 동료.”

“캣니스여, 혹시 자네는···.”

“하지만 전부 죽었어요. 그 많던 여자아이는 마왕성에서 죽은 거예요.”


검은 마력이 극한까지 응축된 공간에 도달하였다.

브레드는 황금빛 신성력이 주위에 있음에도, 이곳에 있는 것이 꺼림칙하다고 느꼈다.

그것은 알이었다.

단단한 알처럼 생긴 새까만 구체가 그곳에 있었다.


‘아아··· 아아아악!’


머릿속으로 비명이 흘러들어왔다.

브레드는 괴로운 음성에 미간을 찌푸렸다.


“알 안에 있는 건 자일리인가?”


인족이라면 꺼려질 수밖에 없는 마력이었다.

이 검은 마나를 이루는 모든 힘이 자일리를 감싼 구체로부터 시작되었다.


“끔찍한 비명이로군. 이건 마기에 물들고 있는 건가?”


강한 마기는 사람의 본질을 바꾸어 버린다.

태생의 선함을 버리고 악함으로 물들인다.

브레드는 이러한 현상을 잘 알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마족화였다.


“아무래도 지금 끝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마나를 운용하여 건틀릿 형태로 만들었다.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사람으로서 끝을 내려고 했다.

그러나 캣니스는 허락 대신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힘은 타락과는 달라요.”


타락.

성직자들이 마족화를 부르는 단어.


“마족화와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느껴지지 않나요? 이 힘은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고 있어요. 만약 이것이 타락이라면, 마기는 이 구체안에 머물러 있어야 해요.”


확실히 브레드의 안목으로도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했다.


“마족화가 거의 끝난 단계라면 이럴 수 있다고 들었네. 지금 끝내주지 않으면 더욱 위험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아니요. 괜찮을 거예요. 타락이 아니라는 다른 증거도 있어요.”


마기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선점하는 신성력이 밀려나는 게 아니라 갉아 먹힌다.

당장 신성력을 방출하기를 멈추면 황금빛 막은 형체도 유지하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이 힘은 마기와 흡사하지만, 전혀 다른 별개의 힘.’


믿기 힘들지만 당장은 그렇게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브레드도 이번 의견에는 어느 정도 수긍하였다.


“하지만 캣니스여, 이것이 마기와 다르다면 어째서 자일리가 검은 구체 속에서 괴로워하는 거지?”

“그건 아마도···”


‘아아아악!’


브레드는 두 귀를 막았다.

곧 무의미한 행동임을 깨닫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비명은 직접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가 느끼는 고통을 강제로 공감하게 되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불쾌한 감정이 솟아났다.

적어도 좋은 감정이 생겨날 소리는 아니었다.


“괴롭네요.”

“동의한다네. 이 소리는 정말···”

“그리고 애처롭고요.”


브레드는 그녀를 돌아봤다.

조금 전의 목소리에서 어떻게 선한 감정을 떠올릴 수 있는지 신기했다.

어느새 캣니스는 검은 구체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살이 타는 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소매가 조금씩 짧아졌다.


“저는 이 비명을 알아요. 괴롭고, 힘들고, 애처롭고, 처량하죠. 듣는 이들에게서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캣니스는 나지막이 말했다.

언젠가 그녀는 이 비명을 지른 적이 있었다.

마왕성에서 버려졌을 때, 제 쓸모가 여기까지였음을 깨달았을 때. 괴로움 때문에, 배신감 때문에, 삭히지 못한 슬픔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외면해선 안 돼요. 지금 이 안에 있는 이 사람은···”


‘나를 혼자 두지 말아줘.’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요.”


캣니스의 손에서 빛이 뿜어졌다.

빛은 순식간에 자일리의 몸을 감싼 어둠을 몰아냈다.


“이건 리저렉션···?”


어느새 황금빛 막이 검은 마나를 전부 몰아냈다.

브레드는 감탄의 말을 반복하며 입을 벌렸다.


‘죽어가는 자도 살린다는 전설 속의 기적을···!’


셀레브리디 교단의 역사에 남은 수백 명의 성직자가 이뤄냈다는 치유의 기적.

더 이상 감탄의 말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브레드는 입을 벌린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의 사제가 보여준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적이다.

주위를 에워쌌던 검은 마나가 서서히 사라졌다. 대신에 자리한 건 따뜻한 기운이었다.


“자일리 님. 수고하셨어요.”


환한 빛만이 던전에 남았다.

그 많던 검은 마나를 신성력이 압도하였다.

브레드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보여준 캣니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곤히 잠든 자일리의 눈물을 손수 닦아주었다.

브레드도 정신을 차리고 갈색 로브를 벗어서 자일리의 몸에 덮어주었다.


“캣니스여. 자네는 정말로 용사···”

“쉿.”


브레드의 감탄을. 콧잔등에 손가락을 올리는 것으로 나무랐다.

캣니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캣니스 센츄어리.”


한마디였지만. 브레드는 그녀가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제 이름은 그걸로 충분해요.”


대답과 함께 지친 듯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삶에 지친 은퇴한 모험가 같았다.

평범하게 자란 열일곱 살의 소녀가 보일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브레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부탁을, 그녀가 보인 기적을 기억해 두었다.


“자일리여. 나도 자네도 정말로 운이 좋았군.”


굵은 팔뚝이 자일리를 안아 들었다.

분명 힘든 일을 당했을 소년에게 나름의 경의를 표했다.


-다른 성직자는 안 됩니다. 반드시 캣니스 씨를 데리고 가세요.


이즈음에서 브레드는 생각했다.

만약 부길드장의 조언을 무시하고 던전에 들어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친 몸으로 수많은 골렘을 해치울 수 있었을까?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금 등급 모험가답게 판단은 빨랐다.

캣니스의 도움 없이는 던전을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부길드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으음. 혹시 클레인도···.’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대체 누가 나무패 모험가를 첫 탐사 인원으로 미개척 던전에 데리고 가게 하겠는가.

모험가 길드의 부길드장에 의해 위대한 용사를 두고 속았다는 기분에 혀를 내둘렀다.


“캣니스여. 자네는 정말 훌륭한 모험가일세.”


브레드가 본심 그대로 칭찬하니 캣니스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조금 전의 쓸쓸한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기뻐하는 미소였다.


“삼십···. 그 마력을 다룬 게 자일리라면, 혼자서 서른 대의 골렘을 상대한 거로군.”


주변에 검게 그을린 바위들을 보았다.

브레드는 흥, 콧김을 내뿜고 입구를 막은 바위를 무너뜨렸다.

어린 모험가들에게 도움받은 일을 기억하며. 단련에 더욱 힘써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자, 가세. 더 이상 늦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그의 농담에 캣니스는 웃었다.

이후에 그들은 아무런 위험 없이 던전 밖으로 빠져나왔다.

해가 저물었지만 환한 달빛이 하산 길을 밝혔다.

이제는 집이 되어버린 모험가 길드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그들을 반겼다.


“고생했어요, 두 분.”


클레인과 길드 접수원의 마중. 버려졌던 가더의 서글픈 하소연.


“그런데 고생한 건 두 분만이 아닌 거 같네요···.”


눈매를 좁히는 클레인의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멋쩍게 웃었다.

다행히 의뢰를 마친 모험가에 대한 배려인지. 이날 밤은 별 설명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



-우어어어어어!


방문자가 떠나간 유적지.

유적지의 입구에는 수많은 돌덩이가 산을 이뤘다.

돌무더기 사이에 섞인 붉은 마력석은 그것의 원형을 알리기라도 하듯 붉은빛으로 깜빡였다.


“경고. 경고. 예상치 못한 오류로 동결상태에 들어갑니다.”


유적지의 심층에 있는 숨겨진 공간.

방문자가 들리지 못한 그곳에서 수많은 골렘이 빛을 꺼트렸다.


“개체 A-prototype 경로 이탈. 마력 경로를 추적합니다.”


방문자들은 몰랐다.

던전 깊은 곳의 한 공간에서 잠들어있던 거대한 마력석이 푸른 빛을 내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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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56화 베르 23.04.01 54 0 13쪽
66 55화 길드 23.03.29 55 0 22쪽
65 54화 길드 23.03.25 61 0 16쪽
64 53화 길드 23.03.11 58 0 12쪽
63 52화 길드 23.03.08 59 0 12쪽
62 51화 길드 23.03.01 58 0 13쪽
61 50화 길드 23.02.26 71 0 11쪽
60 외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23.02.26 65 0 10쪽
59 49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21 73 0 17쪽
58 48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7 63 0 13쪽
57 47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3 68 0 14쪽
56 46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0 50 0 13쪽
55 45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8 56 0 14쪽
54 44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4 54 0 11쪽
53 43화 던전 23.02.01 5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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