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악어
“아니 부장님, 그걸 거기다가 넣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예?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 문서를 옮겨 놓는다는 게 그만 깜빡했습니다.”
“긴 말 필요 없고 옮겨 놓으세요.“
오너의 아들은 20대 후반으로 이제 처음 직장 생활을 그의 아버지, 창업주가 만들어 놓은 회사에서 내게 싫은 소리를 또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이 정도면 그냥 알아듣고 조용히 물러 나주시는 것도 미덕이에요. 미덕! 미더덕이 아니고 미덕!”
40대 초반의 나는 위기의 부장이다. 오너에게 충성해서 부장까지는 꽤 빨리 진급을 했지만 이 중견 그룹에서 새 혈통이 지휘봉을 잡기 시작한 이후로 고생문이 훤하게 열려 있었다.
땀을 비가 오듯 흘리면서 문서를 치우는 동안, 나를 돕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내 팀원들이다. 30대 노처녀인 이 과장과 20대 김 대리.. 이 두 친구들이 고마웠다.
“고맙네”
“뭘요 부장님, 그거 이리 주세요. 제가 나머지 알아서 치울게요.”
이 과장이 말했다.
나는 이혼을 한지 일 년 정도 지났다. 아이도 없이 헤어졌는데 사실 결정적인 계기는 강아지 장난감이었다. 강아지 모양의 장난감이 아니라 강아지가 갖고 노는 장난감이다. 워낙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부였지만 아이까지 없다 보니, 아내가 산 강아지는 아내에게는 자식과 같은 존재였다.
나는 애당초부터 강아지를 사람처럼 몰입해서 키우는 아내가 못마땅하였고 늘 대면 대면하게 강아지를 대하였다. 이 강아지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하나가 없어진 것이 시작이었다. 사무실에서 새로 온 대표의 과제를 수행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던 나는 아내의 신경질적인 문자에 화가 나고 있었다.
[당신. 강아지 장난감 치운 거 아니에요?]
[내가 왜? 나 안 치웠어요]
[당신 말고 그걸 치울 사람이 누구 있다고. 거짓말 말고 빨리 가져와요.]
[난 아니야. 내가 왜 그걸?]
강아지 장난감이 없어져서 큰 난리가 났었다.
집에 들어와서 옷을 벗고 가방을 내려 놓고 정리를 하였다.
그제서야 나는 내 서류 가방 속에 그 장난감이 떨어져 들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어? 여기 있는데?”
아내는 내 말에 격분을 하였다.
사실 그 장난감은 빨래대 위에서 말리고 있었고 내 서류 가방 사이로 우연히 떨어진 것이었다. 내 잘못도 아니었다.
내 해명에도 악을 쓰면 대들어 대는 아내와 나는 그날 상황을 파악은 하였지만 우리 사이의 깊은 골을 메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혼 서류를 준비하여 우리는 결국 남남이 되었다.
더 이상 의심하고 화를 내고 참고 그런 것들이 임계점을 지났다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다시 생각을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서류를 정리해주고 돌아서는 이 과장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달라 붙은 치마에 날씬한 허리. 성숙한 가슴.
나도 모르게 욕정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정신 차려, 박 부장!’
나는 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일년이 넘은 동안 나는 혼자 독수공방을 하면서 회사에서는 젊은 사장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이 회사를 다니게 된 것은 대기업에서 호기 좋게 뛰쳐나와 아무 데나 가서 다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과장 시절에서 시작되었다.
생각과 달리 여기 저기서 보기 좋게 면접 탈락을 하던 그 때에 손을 내밀어준 장 회장님. 그 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아무 불평도 없이 나는 계속 그의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했었다. 그 분도 나에게 여러가지 미션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주고, 특별히 많은 연봉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그렇게 회사를 이끌던 그 회장님이 치매에 걸려 판단 능력을 잃어 버리게 되자. 사모는 얼른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아들은 그냥 말 그대로 패밀리일뿐 회사의 사업인 의료기기 사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 회사는 중견 기업으로 사업인 의료기기에 대해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많은 회사였는데 그 아들은 애초에 의료 사업 따위에 관심이 없었고 외아들로 귀하게 자랐으며 그냥 여느 부잣집의 버르장머리 없는 도련님이었다.
나는 영업을 담당하는 팀장으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곧 새로운 대표에 의해 새 팀장을 모시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혼을 한 것도 사실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박 부장,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재무 담당 전무였다.
“예 전무님.”
전무는 이사 진급에 누락된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회장님이 떠나셨으니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전무는 담배를 깊게 들이 내쉬면서 말했다.
“전무님은 더 계셔야지요. 그래야 회사가 바르게 ... “
전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무언가 예감을 한 것이실까 전무님은 그 주를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경질이 되었다.
대표의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나 역시 하루 하루가 가시 방석인 상황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 인근에 있는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저수지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그 주변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오리들도 살고 있고 큰 잉어들도 있어서 철새들도 종종 날아드는 곳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막막하기도 했다. 여기 이 회사에 계속 버티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에는 내가 해 온 분야가 너무 좁은 분야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회사로 복귀하고 자리에 앉자 마자 득달같이 전화벨이 울렸다.
그 대표의 인터폰 콜이었다.
“네, 사장님”
나는 다이어리와 펜을 들고 들어섰다.
대표는 골프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거기 자리에 좀 앉으세요. 잠시만요.”
대표는 한참을 퍼팅 연습을 더 했다. 아마 한 이십 분을 더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잠시만..”
대표는 대표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나왔다.
“아.. 부장님. 미안합니다. 제가 내일 라운딩이 있어서요.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하거든요.”
“예.”
“흠.. 보자. “
대표는 파일 철을 하나 들쳐 보고 말을 이어갔다.
“부장님이 입사가 2007년이니까 이제 16년? 16년 되신 거네요 그죠?”
“예 맞습니다.”
“어떻게 저희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진급도 좀 어려우셨고. 그렇지요?”
“아 아닙니다.”
“뭐.. 제가 말을 돌려서 하지 잘 못해서요. 그냥 말씀드릴게요.”
나는 역시 짐작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제가 여기 회사를 다시 멤버를 좀 바꾸고 세우려다 보니까. 부장님과 같은 분들이 후배들을 위해서 좀 용단을 내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
“.....”
“그래서 퇴직금에다가 적절히 서운하시지 않게 드리는 것으로 하였으면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캬아.. 역시 부장님은 시원시원하시다니깐. 자 그럼...”
대표가 내민 손을 맡잡아 악수를 하면서 그의 눈을 쳐다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그의 눈. 악어의 눈빛, 경멸하는 듯한 그러나 속으로 그 경멸감을 억지로 누르고 나이 차이에 대한 예우를 억지로 하는 그런 눈빛...
그렇게 나는 내가 몸을 담았던 회사를 그날부터 그만두게 되었다.
이런 기분이 더러운 날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 불러내었다.
“기운내라.. “
친구가 술잔을 채워 주었다.
“뭐 나는 그래도 창업멤버 정도 된다고 그래도 사장이 불러서 이야기한 거고..”
“그래. 맞어. 치사한 방법 쓰는 회사는 가관인 경우 많더라.”
그 친구가 전한 것들은 나이가 좀 든 차부장급을 나이가 어린 팀장 밑에 배치하고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침 팀 회의할 때 참여시키지만 아무런 일 지시를 주지 않는다. 다른 팀원들에게만 주고 왕따를 시키는 셈이다. 아무런 일을 안주니 하루 종일 할 일이 없다. 거기서 더 버티면 아침 팀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들끼리 회의하고 자기들끼리 밥도 먹으니 혼자 외톨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거기서 더 버티어내면 지방 공장으로 보낸다. 전공이나 경력과 아무 관련이 없는 곳에 보낸다. 그야말로 기계 기름밥만 수십년 먹은 기술자들 틈으로 보낸다. 거기서 또 몇달을 버티면 그제서야 이 핑계 저 핑계를 붙여 권고사직을 하는 회사도 있다고 했다.
미국은 사람을 말로 해고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 유연성’이 높다고 말한다. 쉽게 자르고 쉽게 뽑을 수 있으니 일꾼으로서 값어치가 없으면 빠르게 도태된다.
친구와 마신 술에 취하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취하지도 않았다.
‘아.. 잠을 자려고 부러 술을 마신 건데..’
잠이 못들면 새벽 내내 분한 감정을 누르고 이 채널 저 채널을 돌리면서 시간을 때워야했었다.
꿈 속에서 악어가 한 마리 나타났다. 지하 보도를 지나 내가 집으로 가야 하는데
그 악어 한마리가 지하 보도 건너편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눈빛이 낯이 익다.
피해서 가기에는 악어가 제법 덩치가 크다. 나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마침 긴 쇠 파이프가 하나 버려져 있다. 그래 일단 저것이라도..
나는 한 손에 그 파이프를 꽉 쥐고 그 건너편의 빛나는 악어의 눈을 노려보면서 걸어 들어 갔다.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곳곳에 작은 웅덩이들이 있다.
‘스악...’
악어가 경고를 하듯 큰 소리를 냈다.
5m, 4m, 3m ...
악어가 내게 달려든다. 나는 마치 스페인의 투사처럼 살짝 그 공격을 피해 쇠 파이프로 그의 등을 내리 찍었다. 기회는 단 한번이다.
‘카아악...’
다행히 한 번에 악어의 몸을 관통한 파이프는 그대로 땅에 박혀 몸부림치는 악어의 몸 속에 남아 있었다.
꿈에서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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