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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치치

내 일상


[내 일상] 창밖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습작)

밖에는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흐르는 빗물을 연신 닦아내는 와이퍼는 빠르게 움직였지만 여전히 앞을 보기 쉽지 않았다. 그는 때마침 흐르는 음악에 맞추어 핸들 위의 손을 두드리고 있었다. 빠른 드럼 비트 부분에서 어느새 그는 그것에 맞추어 핸들 위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음악을 이렇게 비가 쏟아 붓는 날, 제주도 바닷가 집 거실에서 들으면 얼마나 멋질까 잠시 상상하였다. 큰 통 유리로 된 거실 창 밖으로는 시원한 여름 비가 쏟아져 바다 위로 땅 위로 그리고 마당 위 자갈 위로 내려 다시 튀어 오른다. 마치 그 밴드의 드러머의 드럼 위의 물이 솟구 쳤다 떨어지는 모습을 슬로우 비디오로 촬영한 장면처럼 말이다.

 

1. A를 만나다

 

차는 이내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작은 골목길로 달리고 있었다.

. 미안하다. 도로가 좀 밀렸어.”

괜찮아.”

그를 맞이한 A는 조금 긴장된 얼굴로 부산 어묵 집에 앉아 있었다.

둘은 이제 수십년 지기였다. 한 담임 선생님 아래 한 반에서 만나 이제껏 친구로 지내왔다. 여러 일들이 있었으나 A는 변함없이 그를 지지해 주었고 때로는 위로자로 조언자로 훌륭하게 친구 역할을 해왔었다.

그래. 요샌 좀 사이가 좋아졌니?”

좋을 게 뭐 있어. 늘 그렇지 뭐.”

그래

저 여기 어묵탕 하나, 소주 한 병 주세요.”

술을 잘 못하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술을 먹고 싶어 했었다.

 

참 순한 친구로 재능도 있었으나 첫 번째 회사의 부도로 이리 저리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던 A의 삶은 그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 하였었다. 작은 회사를 몇 군데 전전하다가는 이윽고 맘이 맞는 두 사람을 더하여 조그만 공유 오피스를 빌리어 창업을 하였었다. 백수 시절에는 집에서 마누라 눈칫밥을 먹고 온갖 잔소리를 듣고 살았었는데 작지만 저들만의 공간이 생기자 마치 놀이터에 온 아이들처럼 그들은 좋아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12시가 넘겨 일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건 아마도 내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광팬인 친구는 해방된 공간에서 마음껏 덕질을 즐기고 살았다. 수염을 기르고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 마치 그 동네 스티브 잡스가 된 것 같았다. 이윽고 작은 교육용 전자 제품을 기획하여 개발하였는데 나름 좋은 아이디어였고 시장성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결과가 좋게 이어지지 못했었다.

 

그나저나 이야기는 좀 잘 되었어?”

. 뭐 너무 자존심 긁는 소리를 했지. 실수한 거는 안 것 같기는 한데...”

가만. . ? 이거 무슨 자국이야?”

그는 A의 손목에 난 상처를 보고 놀라 물었다.

A는 소매 속으로 손을 쓰윽 감추었다.

이윽고 그는 A가 극한에 달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저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고 친구를 그렇게 끝으로 몰고 간 현실이 더없이 밉고 괴로웠다.

 

그가 친구들을 만나기로 작정한 것은 본인의 목 속의 작디작은 물혹이 수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두고 나자 의사 말처럼 그가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던 삶을 조르고 황천길을 재촉할만큼 문제가 된 것을 알게 된 이후였다.

 

지금은 좀 애매한 사이즈지만요 다음번에 오셨을 때 더 크기나 모양이 잘못된 것이면 바로 수술하셔야 합니다.’

그는 의사에게 대답하지 않고 옅은 미소로 대신하였다. 그리고 수년 동안 그 병원을 가지 않았다. 수술하기도 겁이 났지만 초음파 장비 등의 비용을 상쇄시키고 감가상각이 다 되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환자로 만들어 수술을 시켜 투자비를 회수한다는 소문도 한 몫을 했다.

의사는 국립대 출신답게 영리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말로 그에게 말하였다. 마치 의사는 그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저도 구차하게 매달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라는 말을 더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랜 시간이 그 국립병원에 다시 갔을 때, 그 영리한 의사는 없어졌고 다시 그의 새까만 후배인 듯한 다른 의사가 모니터 화면을 자세히 보고는 침착하게 말하였다.

 

좀 늦으신 것 같지만..’

그는 의사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밖으로 나섰다.

 

몇몇 친구들과 친지들을 더 늦기 전에 만나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묵 가게에서 만난 친구와 거나 하게 먹고 난 후, 예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둘은 각기 흩어졌다.

 

2. K를 만나다.

 

안성의 한 작은 교회의 납골당에 오기 까지는 15년이 넘게 걸렸다. 장맛비는 그날도 무섭게 쏟아졌다. B 15년전 여기로 한 줌이 되어 갇혀 있었다. 수재였던 그는 지독히 내성적이었고 손가락을 끝없이 꺾어 소리를 내는 습관이 있었다. 맞벌이를 했던 그의 부모님은 할머니에게 그를 맡겼었고 수업시간에 필기하는 노트도 없고 이렇다 할 과외도 한 적이 없는 이 수재는 재수를 하여 국립대 의대에 합격하였고 그의 어머님처럼 훌륭한 의사가 되어 가고 있던 중이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 와서 오진으로 식물인간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친구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그는 몇 번 통화를 하여 간병인과 통화했었다. ‘.. 근데 사람을 알아보지를 못해요. 목소리는 알아듣는 것 같긴 해요.’ 간병인 아주머니와 통화는 그렇게 몇 번했지만 결국 멀지도 않은 그 병실에 한 번 들려 병문안 하는 일을 마치지 못하였다.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연락처를 어렵게 알아내어 통화하여 알아낸 것이 그의 납골당의 위치와 연락처였었다. 체리목으로 된 나무와 작은 유리 창 사이로 그는 45년된 K를 마주하고 말했다


‘K, 너무 미안하다. 이제야 왔어. 조금 더 우리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 네가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미술 과외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국민학교 2학년, 3학년이었겠지? 아쉽구나. 네가 내가 지금껏 연락하는 제일 오래된 친구들 중의 하나인데...’

 

납골당이 있는 친구의 안식처를 빠져 나왔을 때, 그를 맞이한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랬다.

 

네가 제일 적당해 보이긴 해. 근데 용기가 없어, 대롱거리는 나를 볼 사람들이 생각이 자꾸 나. 그게 화나고 겁이 나.’

 

몇 번을 돌이키었지만 산에 올라 산책을 나서 그 나무 둥치를 지날 때마다 끝 구석까지 몰려 그런 생각까지 하였던 날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리고 아파왔었다. 돌이킨 그의 인생이 너무 억울하게 느껴졌었다. 난 나름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이리 되었네.

 

평소에도 그는 태어나서 한 살 때부터 자란 동네에 종종 가곤 하였다. 지방이 고향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진짜 고향 같은 곳이 물리적 공간으로 존재하지만 그에게는 그 동네가 고향이라면 고향이었다. 그가 자란 집은 이미 다세대 주택으로 변해 있었지만 마당에 있던 크고 굵은 나무는 그대로 있었다. 그가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함께 가던 교회도 부흥하여 더 큰 교회가 되어 있었고 다니던 초등학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살던 집에서 북쪽으로 난 골목길을 주욱 걸어 오다보면 놀이터가 있는데 거긴 오래전 공기총 사격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왼편에는 마을 목욕탕이 있어 주말이면 아버지, 형 그리고 그 삼부자가 목욕을 하러 가곤 하였다. 거기서 더 오르면 극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극장에서 하는 영화들의 포스터가 벽과 전봇대에 붙곤 하였다. 아직 어린이라 영화관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장면을 상상하게 하던 공포 영화도 온 초등학생이 모두 다 보았을 것만 같은 로보트 태권브이영화도 그곳에서 보이곤 하였다. 그가 약10년을 그 동네에서 살았기에 그는 그 동네로 돌아가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만 같았다. 마음이 편해지고 따듯해지는 곳. 그에게는 그 곳이 고향이었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 여름 방학, 그는 느닷없이 전학을 하게 되었고 그와 단짝이었던 친구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심지어 연락처도 서로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O씨라는 성을 가진 친구가 그의 단짝이었는데 누나가 있고 개천 건너편 동네에 살았다는 거 그리고 참 착한 심성의 친구라는 것 말고는 다른 기억도 그를 찾을 방법도 알지 못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O씨 성을 가진 친구와 사귀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그래서 집으로 데려와 따듯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하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백원 지폐를 쥐어 주고 동네 중국집에서 자장면으로 저녁을 대신하라고 하였었다.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멀리 멀리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오랜만에 듣는 예전의 올드 넘버 음악들을 차에서 듣는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기도 하였다. 시내를 지나 남산을 돌아 강을 건너자 그가 아까 살던 고향에서 새로이 이사하여 정착한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강변에 줄지어 있는 아파트 촌이 그곳으로 그가 살기 수백년 전에도 조선의 유명한 책략가가 정자를 만들어 풍류를 즐겼다는 동네였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학교에서 새 삶을 살았었다.

 

3. G를 생각하다.

 

목이 아파왔지만 그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복도형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맹모삼천지교라 했는데 그가 살던 아파트는 백화점이 하나 있어 밥 먹듯이 그 백화점을 오르내리락 했었다. 처음에는 길도 변변하지 않았고 다니는 버스 노선도 몇 개 되지 않았으며 듬성듬성 이곳 저곳에 배밭이 남아 있던 동네에 그는 새로이 친구 G를 사귀었다. 네모난 아파트에 살던 그와 달리 주택에 살던 G는 위로 형과 누나가 무려 넷이나 더 있었는데 대부분 대학생이었던 막둥이 아들이 G의 친구였다. G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친구가 살던 집은 이미 까페로 변해 주택이었다는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그의 집에 놀러 가면 로드쇼, 스크린과 같은 일본에서 만든 영화 잡지들이 많이 있었고 외국 배우들의 큰 브로마이드로 벽이 장식되어 있기도 했었다. 조금 지나 G의 초대로 그의 아버지가 일하시는 시내 영화관에 함께 간 적도 있었다. 007 문레이커 영화를 보러가는 길이었는데 관객 표를 검표하는 여직원이 그 친구를 알아보고 Free Pass를 시켜주었었다. 재미나게 본 영화와 달리 이 친구와의 인연은 그 뒤로 이어가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연락이 끊겨 한참이 지나 대학에 가서야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연기자로 살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4. 마무리

 

지나고 보면 이사를 하는 통에 그는 친구를 많이 잃어 버렸다. 이 나라가 경제 성장을 하는 동안 그 현기증 나는 난리 통에 집값도 널뛰고 졸부들도 여기저기서 많이 나타났지만 그 와중에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다. 그는 종종 만약 어려서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았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곤 하였다. 비록 강남8학군의 뜨거운 교육열은 없을지라도 좋은 친구들 속에 자유롭게 살지 않았을까? 비싼 잡화가 가득한 백화점 옆에서 자라 눈높이가 저기 머리 꼭지 위에 있고 상류층의 문화에 일찌감치 노출되지는 못했을지언정 보다 순수하게 친구들을 사귀고 살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고향이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곳을 당당히 갖고 동네 유지로 행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워했다. 왠지 강남에서 버르장머리 없고 지나치게 속세적인 아이들로 자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는 다시 옅은 목의 통증을 느끼고 손으로 매만지기 시작했다. 차는 어느덧 다시 그의 보금자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시 빗방울이 거세지지 시작했다. 창밖에는 폭우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였다.

 


댓글 3

  • 001. Lv.18 이무치치

    23.09.26 22:47

    Led Zeppelin의 Babe I'm gonna leave you를 들으면서 쓴 글입니다.

  • 002. Lv.22 하윌라

    23.09.26 23:25

    잘 읽었습니다.
    저두 초등학교 때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간 적이 있었지요.
    제 뒷자리에 있던 남자아이가 노트를 찢어 전화번호를 줬었어요.
    사실, 매일 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던 아이였었는데 말이죠.

    어릴 때 그 남자아이 외에는 기억나는 아이가 없어요.
    전학 온 그 학교에 있던 친구들은 기억이 살짝 나구요.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 지는 모릅니다.

    사람이 나고 자라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이어지지 못한 인연들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했던 관계에 대한 아쉬움도 있구요.
    그래서 지금 현재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히, 친절히, 다정히, 마음을 나누어야 후회하지 않을 거란 생각도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늦은 밤이 되었네요.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수고로움이 내일의 찬란함으로 빛나시길 바라봅니다.

  • 003. Lv.18 이무치치

    23.09.27 07:00

    아 감사합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거는 관심이 컸다는 이야기인데요.. 그 나이 아이들은 애정 표현을 그렇게 짖궂은 언행으로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제 독자가 되어 주시고 응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작가님 말씀처럼 오늘에 충실히 살아 보겠습니다. 추앙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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