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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님의 서재입니다.

무녀의 남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어라하
작품등록일 :
2016.05.20 15:35
최근연재일 :
2016.07.08 18: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198
추천수 :
2
글자수 :
89,179

작성
16.07.08 09:13
조회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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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무녀의 남자 9

DUMMY

가벼운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길 모퉁이를 돌아서자 멀리 라흐마니노프 카페가 보인다. 그런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는 그 사람, 한결이 유주의 눈앞에서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포기하고 체념했던 그리운 사람.. 지난 9년간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사람.. 바로 그사람, 한결이 지금 유주의 눈앞에서 유주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유주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 할 수 밖에 없었다. 영원히 포기했던 사랑..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했던 일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만남을 꿈속에서는 몇백번이나 상상하고 또 몇백번이나 상상 했었나..




그랬던 그 사람이 바로 지금 유주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 아닐까. 몇번이나 몇번이나 다시 확인 해봐도 그건 한결이 분명했다. 유주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아가며 태연하게 서로 가던 길을 그냥 가야만 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 처럼,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야만 한다.




멀리서 다가오던 한결도 유주를 보았는지, 아니면 잊어 버린건지..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 지고 있는데도,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유주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 한결 역시 멀리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채 무심하게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어깨가 닿을 듯 가까이 다가 왔지만 그렇게 서로를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가야 할 운명을 가진 두사람은 아직도 서로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으로 부터 도망치려면 이렇게 스쳐 지나 가는게 맞다. 그게 옳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립더라도 잠시라도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 그리움에 못이겨 또다시 그의 손을 붙잡아 그를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으로 끌어 들일 수는 없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 그 어떤 댓가를 치르고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지나가라.. 전혀 모르는 사람인것 처럼..'




유주는 그렇게 기원했다. 그것만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그것만이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고 그게 한결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어깨가 닿을 듯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가려는가 싶던 순간, 한결의 손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유주의 손목을 잡아 챈다.




유주는 여전히 눈길을 주지 않고 마치 모르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는 것처럼 한결의 손을 뿌리치려고 애를 쓰지만 한결의 손은 그럴 수록 더욱 강하게 유주의 손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얼마간의 실랑이가 더 오가고 나서야 더이상 참지 못하고 유주의 눈에서 벌컥 뜨거운 눈물이 쏟아진다.




그냥.. 보내줘..


못 본걸로 해줘..




내가 널 찾은게 아니야.. 그냥 여기에 니가 있었던거야..


내 운명이 나를 여기로 보내 온거야.


널 사랑하는게 내 숙명이라면 이제는 피하지 않을래.


널 사랑하다 죽는게 내 운명이라면 그것도 피하지 않을래.


너 없이 백년, 천년을 산다해도 그건 사는게 아니야.


하루를 살더라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그럼? 나는?.. 난..


널 영원히 보지 못한다 해도, 다시 만날 수 없어도


그래도 이 세상에, 같은 하늘아래 네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랑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고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난..?


그것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난 어떡하라구?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우리만 생각하자.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


너 없이 천년을 산다해도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거와 무엇이 다를까


단 하루를 산다해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이제 다시는 너를 놓아주지 않을거야.




그렇게 소리없는 통곡과 눈물 속에 서로 마주보는 눈빛으로 이어지는 두사람의 소리없는 대화가 지속된다.




결국 유주를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강하게 부둥켜 안는 한결과 그 품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결의 가슴을 양손으로 마구 때리면서 몸부림 치며 거부하는 유주의 손에선 점점 힘이 빠지고 결국은 오로시 한결의 품에 안겨 우는 수 밖에 없게 된다.




'내가.. 당신을 살리려고 무슨 짓까지 했는데.. 이러면 안되잖아..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미안.. 미안해...'




한결도 미안하다는 말 외에 달리 아무말도 할 수 없었고 그녀를 안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놓치 못하는 한결과 그런 한결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유주는 빌어먹을 이 저주받은 운명에 엉엉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어 그모습은 차라리 처연하기까지 하다.






두사람이 유주의 집에서 다시 같이 살기 시작한지 한달 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유주의 집은 방 하나에 거실겸 부엌의 투베이 형태로 거실엔 작은 소파와 창에는 검은 암막커튼이 쳐 있고 미닫이 문이 있는 방안에는 작은창에 침대만 놓여 있다.




이 행복한 연인의 불안한 동거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항상 매일매일 오늘만 생각하며 살고 있었고 언젠가 닥쳐 올 그 날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것이 암묵적인 룰처럼 지켜지고 있었다. 유주는 한결과 다시 살게 되면서 더이상 태아령을 보지 않게 되었고 불면증도 사라졌다.




한결은 지난 주에 유주와 함께 드라마 ost 녹음을 끝내고 이제 마지막 후반 작업만 남겨두고 있었다. 유주는 코요테어글리는 당분간 쉬기로 하면서, 한결과 하는 드라마 ost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유주가 부른 드라마 ost 는 곧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조만간 유투브등 인터넷에 먼저 올려 사전 홍보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한결이 오늘 강PD 와 저녁식사를 겸한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9시가 넘어서 였다.




이랏샤이마세~




집안은 낮은 조명만 켜진채로 유주는 유카타를 입고 현관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한결이 들어오자 유주는 일본식의 큰절을 하면서 일본의 고급여관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은 종업원과 같은 태도로 한결을 맞이하고 있다.




뭐야.. 갑자기 코스프레라는건.. 당황스럽잖아.




한결이 어안이 벙벙해서 뜻밖의 유주의 극진한 환대에 적응하지 못해 쩔쩔매는 사이 유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결의 겉옷을 받아 거실 옷걸이에 걸어 두고 한결을 방안 침대로 안내한다. 극진한 VIP 손님 접대를 하듯 한결을 그대로 침대로 안내해 앉히고 유주가 방문을 닫는 사이 한결이 무심코 방안에 쳐진 커튼을 열려고 하자 유주가 부드럽게 한결의 손을 제지하며 커튼을 걷지 못하게 한다.




집안 커튼은 다 내려놓고.. 답답하지 않아?




나도 부끄러움을 아는 여자거든요. 그래서 지금 무지 쑥스럽거든요.. 그러니 지금은 내가 하는데로 가만히 있어줘요.




그.. 그럼 나야 좋지만..




두사람은 침대에 몸을 반쯤 누이면서 짙은 키스를 나눈다.




그래도 샤.. 샤워라도 하고 와야 하는거 아닐까






아니, 당신 땀냄새가 더 흥분되요. 그리고 나 지금 유카타 아래는 아무것도 안 입고 있어요..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 한결도 갑자기 달궈진 불덩이처럼 변해 거칠게 유주를 눕히고 그녀의 몸을 샅샅이 입술로 핥으면서 그녀의 어깨로 부터 서서히 유카타를 벗겨 내리자 봉긋한 유주의 가슴이 드러난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가는 와중에 거실 옷걸이에 걸어 둔 한결의 겉옷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미안! 강PD 일거야. 아까 곡 길이를 좀만 줄이자고 했었는데.. 방송국 들어가서 엔딩 길이에 맞춰보고 알려주기로 했거든.




스마트폰 소리에 당황한 유주를 안심시키면서 한결이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고 돌아오다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갸우뚱 거린다.




근데 지금 뭐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기.. 기분 탓일거야!




아니야. 분명히...




방안에 들어온 한결이 창가로 가서 내려진 커튼을 휙 제치자 창문틈은 모두 다 청테이프로 꼼꼼히 막혀있다. 그걸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심각해진 한결이 거실로 나가 거실 커튼을 걷자 거실창문 역시 모두 청테이프로 봉인되어 있고 가스밸브는 열려져 있고 씽크대의 가스렌지는 불꽃이 없이 쉬~ 소리를 내며 가스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한결은 화난 표정으로 즉시 가스밸브를 잠그고 거실창 청테이프를 과격하게 뜯어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방안으로 들어와 방안 창문의 청테이프도 다 제거하고 창을 크게 열어 환기를 시킨다.




한결이 그러고 있는 사이 유주는 얼굴이 잔뜩 굳어서 아뭇소리도 못하고 석고처럼 굳어 침대에 앉아 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한결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며 화를 삭히다가 조용히 입을 연다.




그래서.. 같이 죽는게 최선이야?




그럼 난 어떡해? 이제 당신 혼자 보내진 않을거야. 다신 헤어지지 않을거라구!




이렇게 하면 내가 좋아 할거 같아? 내가 원하는게 이런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이제 혼자는 싫어!




..너! 바보니?




뭐라고 해도 상관 없어!




유주의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이미 큰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그런 유주를 보자 한결도 조금 마음이 누구러진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유주의 입장이 되어보면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 저주받은 운명이 당신을 죽이게 되기 전에, 차라리 같이..




유주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한결이 입술로 유주의 입을 막는다. 두사람의 달콤하고 깊은 키스가 길게 이어진다. 천천히 입술을 떼면서 한결이 엄지손가락으로 유주의 볼에 맺힌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준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생각 하지마.




이렇게 다정하고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의 위로에도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유주의 눈물은 멈출줄을 모른다.






27장




유주의 시간






한결이 진지하게 전화를 받고 있다. 길게 듣다가 짧게 대답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유주의 표정은 짐짓 기대감이 가득하다. 한결이 전화를 끊고 유주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됐어?




오늘 보자구 하네. 계약하자고.




유주가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하는건 한결의 드라마 OST 를 듣고 대형 음반사에서 전속 계약을 제안해 왔기 때문이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서둘러 잠옷차림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유주를 보니 한결도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한결의 볼에 입맞춤을 하면서 배웅해 주는 것도 모자라 거실을 가로질러 거실 창문을 활짝 열고 인도에서 택시를 잡는 한결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주는 유주를 보면서 한결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행복한 신혼부부의 모습 그대로다.




그때 창문으로 한결을 내려다 보던 유주의 표정이 일순 굳어지며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밝게 웃고있는 한결의 뒤로 그림자와는 다른, 또다른 검은 그림자.. 바로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보이는 사람은 곧 죽게 된다.




그건 분명히 죽음의 그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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