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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님의 서재입니다.

무녀의 남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어라하
작품등록일 :
2016.05.20 15:35
최근연재일 :
2016.07.08 18: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199
추천수 :
2
글자수 :
89,179

작성
16.06.1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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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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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25쪽

무녀의 남자 5

DUMMY

유주는 엄마와 함께 빗속을 뚫고 성황나무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가 보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고 당나무는 이미 베어져 있는 상태였다. 유주의 엄마는 마치 가족이라도 잃은 것처럼 그자리에 주저 앉아 베어진 성황나무를 붙들고 울부 짖고 유주는 한결의 말을 믿고 자리를 비운 자신의 탓을 하며 엄마를 등뒤로 껴안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다.




그때 유주의 눈에 베어진 성황나무 옆에 선 낡은 흰색 한복 차림의 꾸부정한 허리를 한 노인과 눈이 마주친다. 그 노인은 허리 아래가 피투성이 인채로 마을 어귀를 이리저리 안타까운듯 바다보다가 슬픈 눈으로 유주와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마을 뒷산쪽으로 사라져 간다.




그 길로 교회사택으로 향한 유주는 늦은 밤임에도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다짜고짜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자 일하는 아주머니가 다급히 나와서 이 늦은 밤에 대체 무슨 일이냐며 황당해 하는데,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 한결이 뒤따라 나와서 자기에게 용무가 있어 온 거라고 말하고 아주머니와 가족들을 들여 보낸 후 유주에게 비가 오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유주는 비를 맞으면서도 그 자리에 서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선배가 무슨 짓을 한줄 아세요?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어.




선배가 한 일 때문에 마을에 앞으로 무슨일이 벌어지면, 그건 전부 선배 탓이라는 것만 알고 계세요.




그런 미신은 믿지 않아.




더 길게 얘기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것만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유주는 그 말만 남기고 돌아 나와 버리고 한결은 그런 유주의 뒷모습이 안보이게 된 후에도 하염없이 유주가 사라진 쪽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다음날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한 폭우가 되어 쏟아지자 근방의 학교는 모두 임시휴교 조치가 내려졌다. 이 마을 말고 다른 지역에도 비는 오고 있지만 유독 이 마을에 다른 지역의 몇배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 교장직권으로 임시휴교령과 더불어 오후를 지나면서는 마을 전체에 긴급 대피령 예보까지 떨어진 상태로 점점 심각해 졌다. 그건 마을 상류의 저수지가 범람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만약 저수지가 범람하면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되자 마을회관에는 군청의 공무원 몇명과 경찰, 그리고 마을의 어르신들이 모여 마을 사람들을 언제 대피 시킬지를 논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골 무녀를 찾아가 보자는 건가요?




군청 공무원이 마을 어르신들의 주장에 미심쩍어 하면서도, 사실 이 마을 사람이면 미신이라고 생각하든, 사실이라고 믿든간에 마을어귀 성황나무가 지난 수백년 천재지변으로 부터 이 마을을 지켜왔던 마을의 수호목으로 불려온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그 성황나무를 베어내자 마자 마을이 생긴 이래로 한번도 없었던 심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해 마을이 위기에 처하자 더더욱 미신이라던 그 이야기에 매달리게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는건 누구나 마찬가지였으리라.




결국 마을 어르신들 대표 세 분과 군청직원 한명 이렇게, 당골로 돌아가 버린 무녀를 만나기 위해 SUV 차량에 올라 당골로 향한다. 이미 범람을 시작한 개천과 저수지로 인해 차 바퀴는 절반 가까이나 물에 잠기고 있었다. 그렇게 세찬 빗줄기를 뚫고 평소라면 30분도 안걸릴 거리를 1시간30분도 넘게 걸려서 겨우 당골에 도착했지만 무녀는 대화는 커녕 대문을 단단히 걸고 아예 만나주지조차 하지 않는다.




무녀님! 제발 부탁이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요~ 이러다간 진짜 마을이 절단나게 생겼습니다.




돌아가시지요! 수백년 동안 이 마을을 지켜준 은덕도 모르고 그리 배은망덕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당나무 할아범이 노해서 이 마을을 없애 버리기로 작정 하셨으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소이다.




그래도 무녀님 밖에 이 문제를 해결할 분이 안계시니 마을사람들 모두 무녀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성황나무의 저주를 풀어줄 분은 무녀님 한분 뿐이시지 않습니까! 제발 마을을 살려 주십시요.




돌아 가세요~ 무슨말을 하셔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다간 마을이 전부 수몰되서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무녀님~!




당골 무녀의 집 앞에서 벌써 몇시간째 마을 어르신들이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다 맞으면서 단체로 당집 앞에 무릎까지 꿇고 무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도 마을은 물에 잠기기 시작해 마을 낮은 지역은 이미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 주민들의 대피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마침 교회 건물이 바로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교인들은 모래주머니를 쌓아 차오르는 물이 교회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보려 해보지만 여기서 물이 더 차오르면 교회에서 중요한 물건들을 꺼내 다른 곳으로 옮길것까지 논의를 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 중에도 미신이라고 믿던 수호목의 저주가 아닌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큰비는 이 마을이 생긴 이래로 처음이라는데




큰일이네,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하루만 더 비가 내리면 마을 전체가 물에 잡겨 버릴지도 몰라




마을 어르신들이 당골 무녀에게 찾아갔다는데, 문조차 안열어 주고 있다는데..




비옷을 입고 여러명의 남자들이 교회 입구에서 새어드는 물을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더 높이 쌓느라 고전 중인데 그중 한 남자가 당골 상황을 전하는 얘기를 듣자 점점 낯빛이 어두워 지고 있다. 그 남자는 지난 밤 당골과 성황나무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던 바로 그 사람 이었다.




그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마치 홀린것처럼 어디론가 혼자 걸어가는 그를 보고 사람들이 남자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돌아보지도 댓구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 버린다.




그는 어제 한결 때문에 중단하기는 했지만 다음날 실행할 작정으로 준비해 두었던 휘발유통을 자신의 집 창고에서 찾아 들고는 어느새 유주가 사는 옥탑방 아래 나타나 쏟아지는 빗속에서 결의에 찬 표정으로 다시한번 불켜진 옥탑방 창을 확인하고 결심을 한 듯 건물 외부에 난 계단을 통해 옥탑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늦은 밤임에도 유주의 옥탑방은 아직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남자는 옥탑방 문 앞에서 가지고 온 석유통을 옆에 내려 놓더니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땅에 처박고 울며 소리친다.




모든게 저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 소리에 놀라 문을 열어 본 유주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남자는 유주가 나오자 가지고 온 석유통을 들어 자신의 몸에 쏟아 붇기 시작한다.




지금 뭐 하시는거예요!?




제가 어제 교회에서 당집과 성황나무에 불을 질러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그 얘기를 듣던 한결이 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혼자 성황나무를 베어 버린 겁니다. 이 모든게 다 제 탓 입니다! 원하신다면 제 목숨이라도 내놓을테니, 제발 무녀님을 설득해서 이 비를 그치게 해 주십시요! 부탁 드립니다!




그제서야 유주는 한결이 어제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성황나무를 베는 것만이 너무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자칫 인명 피해까지 생길 수 있었던 마을의 대립을 끝내고 유주와 유주의 어머니도 다치지 않게 할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마을을 구해 주십시요! 부탁 드립니다. 제발 마을 사람들을 살려주십시요~




남자는 이마를 바닥에 찧으면서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빌고 있다. 짖찧은 이마에서 흐른 피가 비에 씻겨내리며 옥상 바닥은 피로 흥건하다. 남자의 이런 간절함은 이 세상에서 무녀를 설득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유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절박했다.




만약 누군가 이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다면, 그건 당골 무녀가 유일하기에.




한동안 남자와 유주 사이에 아무런 말도 없이 깊은 정적만이 깊게 흐르고 있었다.






당집에 먼저 도착해 있던 군청 직원과 마을 어르신들 뒤로 또다른 차 한대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차에서 내리는 유주를 보더니 마을 어르신들과 구청 직원도 반색해 마지 않는다. 유주는 사람들을 집에서 멀리 가 있으라고 당부하고 혼자 집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한시간 넘게 유주와 엄마의 긴 대화의 시간이 이어지고 나서, 드디어 문이 열리고 무녀인 유주의 엄마가 모습을 보이자 멀리 가 있던 마을 어르신들과 군청 직원들이 잰걸음으로 그 앞으로 달려온다.




내일 아침 일찍 당나무 앞에 진혼굿 준비를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무녀님,




그리고 오늘은 다들 들어 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모시러 오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무녀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몇번이나 하고는 돌아가자 유주는 초등학교 졸업 이 후 정말 오래간만에 당골집에서 엄마와 단둘이 밤늦게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당나무 앞에서는 진혼굿이 열리고 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징과 꽹과리 소리가 요란스럽게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지고 유주의 어머니인 무녀가 이미 한시간 넘게 진혼굿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폭우로 마을이 침수우려가 있다고 군청 트럭의 확성기를 통해 대피를 호소하고 있음에도 진혼굿 앞을 떠나지 않고 마을이 무사하기를 빌며 기원하기에 여념이 없다.




굿을 두시간 가까이 하고 있음에도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모르는데, 그동안 단 1분도 쉬지 않고 굿사위를 멈추지 않았던 무녀가 갑자기 굿을 멈추고 마치 동상처럼 몇분동안 그 자리에 선 채 아무런 행동도 없이 한동안 계속 그 자세로 땅만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무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굳은것처럼 굿을 멈추자 마을 사람들은 물론 박수와 연주자들도 당황하기 시작해 연주를 멈추고 주민들도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미 젖을대로 흠뻑 젖어 무거운 몸 이지만 빗줄기는 하염없이 계속 무녀의 온몸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지켜보던 유주도 걱정되어 엄마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무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연다.




..당나무 할아범이.. 이제 노여움을 거두고 산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희망의 표정으로 바뀌더니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리는데, 기적처럼 빗줄기도 점점 가늘어 지더니 불과 30분도 안되어 짙게 드리웠던 먹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사이로 가늘게 햇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몇일만에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나는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흥분해서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무녀가 온몸의 기를 다 사용한듯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자 유주와 마을 어르신들이 달려들어 무녀를 들쳐 엎고 근처 마을 이장네 집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환호하는건 아니었다. 교회 사람들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무슨일만 생기면 굿이나 미신따위에 기대려는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는건 여전했다.








20장




환희의 비밀






한결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유주는 그 뒤로 학교나 합창반에서 한결을 마주칠 일이 있어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치기 일쑤였다. 수호목 사건으로 무언가 서로간에 알 수 없는 벽 같은것이 있음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합창단 일로 계속 보기는 해도 한결도, 유주도 서로를 보는 것이 편한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즈음 한결을 따라 다니던 그 어린 영가가 이제는 유주 앞에 나타나기 시작 했다. 그 어린 영가는 마치 유주가 죽은 사람을 본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일부러 유주와 마주치려고 하는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유주는 철이 들면서 부터는 더이상 영가들을 봐도 아는체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 어린 영가는 금방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보통 안보이는 것처럼 하면 대부분의 영가들은 한두번 찾아오다 그만 두는데, 한결을 따라다니던 그 어린 영가는 유주 앞에 나타나는 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길어지고 있다는게 다른 점이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이제는 유주의 옥탑방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에도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 어린영가는 마치 한결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유주에게 무엇인가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한 간절한 눈빛으로 유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어린 영가가 급기야 유주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마침 편의점에는 손님도 없어 한가한 시간, 여지없이 오늘도 그 어린영가가 나타나 유주에게 말을 걸어 온다.




제가 보이는거죠?




......




여전히 안보이는척 하며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유주에게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그 어린 영가는 말을 계속 걸어온다.




아이들이.. 누나가 도와 줄 수 있을거라고 했어요.




아이들이라니? 유주는 퍼뜩 어린시절에 같이 놀던 무덤가 아이들이 떠오른다.




'설마, 그 아이들이?'




마치 유주의 생각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어린 영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맙소사~ 그럼 이 아이의 무덤도 당골 뒤 그 공동묘지 인건가?




유주의 마음이 심란해 진다.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인해 도저히 이 어린 영가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 딱 한번만이야.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들어볼게. 넌 누구고 왜 한결선배를 따라 다니고 있는지 얘기해 줄래?




환희는 그제서야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유주에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아이들에게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제가 환희예요. 한결이 형 동생이예요.




그래, 들은거 같아. 작년인가 죽은 어린 남동생이 있다고..




형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형하고 얘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꼭 제 얘길 전해야 해요. 안그럼 형도 위험해 져요. 그들이 형도 죽일거예요.




어린 영가의 말이 들으며 유주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하게 굳어져 간다.






합창단 연습이 끝나고 모두들 하교할 준비를 하러 자기 교실로 돌아가는데, 수호목 사건 이후 처음으로 유주가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냐고 먼저 말을 걸자 한결도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가방을 챙겨서 지난번 그 옥상에서 보기로 한다.




유주가 짐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 가자 한결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한결의 곁에는 그 어린 영가, 환희가 저 만치 떨어져서 한결을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주는 어떻게 얘기를 시작할지 몰라 망설이며 천천히 한결의 옆으로 가서 서자 한결이 먼저 입을 연다.




내 멋대로 당나무를 벤거 사과 할게. 내 행동 때문에 마을이 위험에 처한것도.. 이젠 알겠어.




아니예요. 그거 때문에 보자고 한게.




..아니라고?




유주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떤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자신의 얘기부터 시작 하기로 한다.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죽은 사람이 보여요. 어릴 적엔 그래서 무덤가에서 죽은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그리고 곧 죽을 사람도 알 수 있어요.. 아마도 하루이내, 아마도 몇시간 이내에 죽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만지거나 접촉하면 그 사람 몸 주변에 검고 어두운 그림자 같은게 보이는데, 그 사람은 반드시 하루 이내에 죽거나 했어요.




한결이 갸우뚱 하면서 이건뭐지? 라는 약간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거봐요~ 안믿을거면서!




좋아! 믿어볼게. 너는 무녀의 딸이니까 무.조.건. 일단 믿어 볼게. 계속 해봐.




유주는 길게 숨을 들이키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기!




유주가 한결의 옆 몇미터 빈 곳을 가리킨다. 한결이 보기엔 아무것도 없다.




저기에 어린 아이가 있어요. 계속, 처음 선배를 보았을 때부터 선배를 따라다니는 어린 남자아이 영가인데,


자기 이름이.. 환희 래요.




그 순간 한결의 표정이 일순간 움찔! 일그러지면서 누구나 눈치챌 정도로 심하게 동공까지 흔들린다.




환희로 장난치는건 너라도 용서 못해! 못들은걸로 할게.




더 이상 얘기를 들을 필요도 없다고 한결이 자기 가방을 챙겨 옥상 입구로 터벅터벅 걸어가 버린다.




환희가! 자기 핸드폰에 찍힌 영상을 꼭 봐 달래요.




그 말에 한결이 걸음을 멈추고 유주를 돌아보며 화를 낸다.




그 핸드폰을 니가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만, 그 핸드폰은 환희가 죽은 후에 우리도 열어 보려고 노력 했지만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도무지 열수가 없었어. 비번을 알 수 없어서 환희 생일, 부모님 결혼기념일, 심지어 교회 처음 시작한 날까지.. 우리들도 추측 할 수 있는 모든 숫자로 수백번 시도했지만 다 실패 했다구! 열수가 없었어.




유주가 잠시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간다.




비번은.. 한결씨가 환희와 놀이동산에 놀러 가기로 했던 날짜래요.




내가 환희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기로 한 날?




한결은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다. 그렇구나. 왜 그걸 몰랐지? 근데 이 아이는 대체 어떻게 환희와 단둘이 한 놀이공원 가기로 한 약속까지 아는거지? 너무 당황스럽고 머리는 혼란스럽지만 일단 당장 확인해야만 했다. 한결은 다짜고짜 유주의 가방까지 챙겨 유주 손목을 잡아 교회 사택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사택앞에 도착해서야 한결의 돌발행동에 놀란 유주가 집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지만 한결이 그런 유주를 안심 시킨다.




난 합창부 반주 때문에 오후예배 열외 시켜준거고 지금 식구들은 모두 교회에서 예배보고 있을 시간이야. 예배시간엔 일하는 아주머니도 교회에 가시니 지금 집엔 아무도 없으니 걱정마.




그게 더 위험한거 아닌가요?




날 못믿는다는거야?




하하~ 아니예요 장난이예요.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오니 사택 안은 오래된 집임에도 매우 정돈이 잘 되어 있고 일본풍인 겉모습과 달리 고풍스런 서양 엔틱가구들로 잘 꾸며져 있다. 한결을 따라 2층 한결이 방으로 올라가는데 왠지 유주의 가슴이 쿵닥 거린다. 마치 남자친구 방을 처음 방문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일체 하지 않는다.




한결이 옷장 맨 위에 올려두었던 환희의 유품 상자를 꺼내 침대에 내려 놓고 거기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켜고 유주가 말한 한결이 환희를 데리고 놀이공원을 가기로 했던 날인 0927을 비밀번호에 넣자 거짓말처럼 환희의 휴대폰이 열린다. 이게 비밀번호였다니, 한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주를 바라 본다.




믿을 수 없어..




안에 영상이 있을거라고 했어요.




한결이 휴대폰에서 영상을 찾아내 플레이를 누르자 놀랄만한 장면이 펼쳐진다. 영상속의 장면은 지난 몇달동안 병치레를 하고 있던 환희의 방이다. 아마도 휴대폰은 책상아래에 숨겨져 있는 상태로 촬영되어진 듯 하다. 병색이 완연히 침대에 누워있는 환희가 보이고 곧이어 방문이 열리고 새어머니가 쟁반에 죽으로 보이는 음식을 들고 들어온다.




새어머니는 간이 식탁을 침대 옆에 끌어다 놓더니 죽이 담긴 쟁반을 거칠게 내려 놓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한다. 환희가 콜록거리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 표정으로 담배 한대를 다 피우고는 꽁초를 죽에 넣어 끄기까지 한다.




평소 그렇게 착하고 인자한 새어머니의 모습만 보아온 한결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영상속 새어머니 모습이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두 손을 불끈 쥐고 계속 영상 속 장면에 집중한다.




새어머니는 상의 주머니에서 하얀가루가 담긴 봉투를 꺼내 환희가 먹을 죽에 너무 많다 싶을만큼 부어 넣는다. 그리곤 대충 수저로 휘적휘적 젖더니 저항하는 환희의 입을 억지로 벌려 강제로 먹이기 시작한다. 환희는 먹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지만 코까지 틀어 막으며 입에 죽을 쑤셔 넣으니 환희는 숨을 컥컥 거리며 억지로 삼키게 되고 만다.




환희가 핸드폰 카메라 쪽을 향해 시선을 맞추는데 죽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 얼굴은 차마 쳐다보기 애처로운 수준으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환희의 눈빛은 구조신호처럼 보인다. 결국 영상속 환희가 먹은 소금 죽을 토해내자 새어머니는 호들갑을 떨며 일부러 아이가 토했다며 큰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부른다. 새어머니가 나가자 환희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에서 화면은 끝난다.




설마 저거 소금인가요? 예전에 소금밥을 먹여 아이를 죽게 만든 계모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저런식으로 일주일에 서너번만 먹으면 몇달도 못가 나트륨 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




더이상 참지 못하고 한결이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으로 벽을 몇번이나 치면서 울음인지 외침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꾹꾹 눌러 참아내며 이마를 벽에 들이 박기까지 한다. 그 울부짖음은 마치 사냥꾼의 화살에 심장을 뚫린 야수의 고통어린 울부짖음 소리와 같다.




그랬구나.. 환희는 병으로 죽은게 아니라 살해 당한거였어. 그래서 이 영상을 남긴거고.




이건 명백한 학대인데 왜 말하지 않을걸까요?




내가 아는 환희 성격이라면 아마도... 혹시 이 일로 부모님이 이혼하게 될까봐.. 자기 때문에 친어머니도 돌아 가셨는데, 또 자기 때문에 새어머니와도 헤어지게 될까봐.. 그래서 숨긴걸꺼야.




화면이 끝나 더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휴대폰 화면을 뚫어질것처럼 바라보는 한결의 볼을 타고 분노의 눈물 한줄기가 흘러 내리자 고개를 돌리고 서둘러 손바닥으로 훔쳐낸다.




이거.. 목사님에게 알리실건가요?




한동안 말을 잊었던 한결이 드디어 마음의 정리가 된 듯 말문을 연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있고 분노에 가득차 있다.




아니, 지금 알리면 아버지 성격으론 분명 조용히 덮으시려고 할거야. 그렇게 만들 순 없지.




환희의 휴대폰을 챙겨 밖으로 나온 한결은 나중에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유주와 헤어지고 그길로 교회로 향한다. 유주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어린 눈으로 한결의 뒷모습을 배웅하는데 유주의 곁에 어느새 환희의 영가가 나타나 그런 한결의 뒷모습을 같이 바라보고 있다.




교회에 도착해 아직 예배가 진행중인것을 확인한 한결은 아무도 아는척 하지 않고 지하의 방송실로 바로 향한다. 방송실엔 남자직원 한명이 시청각 자료를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고 방송시설 외에도 교회 예배당을 포함해 입구나 세미나실등 본당과 수양관 곳곳의 전경을 보여주는 CCTV 도 함께 관리하고 있는 곳이다.




형, 목사님이 예배당으로 잠시 와 달라고 하세요.




지금? 무슨일 있어?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여긴 제가 지킬테니 다녀 오세요.




알았어. 그럼 부탁해.




조금 의아해 하면서도 한결이를 의심하지 않고 방송실 직원은 예배당으로 가고 방송실에 혼자 남은 한결이는 서둘러 휴대폰의 동영상을 usb에 옮겨 담은 후 방송용 컴퓨터에 환의의 영상이 담긴 usb 를 꽂고 영상 리스트 맨위로 그 영상을 불러온다. 이 채널은 지금 예배당의 대형티비로 영상을 송출하는 버튼으로, 그 버튼 위에서 잠시 망설이던 한결의 손가락은 결심한듯 방송 버튼을 누르고 예배당이 내려다 보이는 CCTV 화면 쪽을 지켜 보기 시작한다.




별안간 환희가 등장하는 영상으로 예배당이 뒤쪽부터 웅성우성 거리기 시작하자 연단에서 연설중이던 한결의 아버지인 목사님도 대형티비를 바라보는데, 이 상황에 가장 놀란건 무엇보다 소율과 소율의 어머니인 새어머니였다. 다른 사람의 눈도 의식하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억시로 환희에게 소금죽을 퍼먹이는 영상쪽으로 뛰어 나가며 예배당 사람들을 향해 읍소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한다.




이거 당장 꺼! 모함이야~ 이건 다 날 모함하기 위해 누군가 조작한거라고!! 합성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명백한 영상속 화면에 예배당 교인들 아무도 그런 새어머니의 항변에 호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피하며 마치 더러운 벌레를 보는듯한 소름 끼치는 표정을 짓는다. 소율은 그런 엄마와 영상을 보면서 아연실색해 앞좌석 등받이에 얼굴을 묻은채 이건 현실이 아닐거라고 이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을 뿐이다.




목사인 한결의 아버지는 어처구니 없는 이상황, 너무나 명백한 증거인 영상을 보면서 더는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 사모의 이런 추잡한 사실은 목사인 자신의 명예에도 치명적인 문제라 집이나 개인적으로 영상을 접했다면 조용히 덮거나 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전 교인 앞에서 공개되어 버린 이상 그런 미봉책으론 해결이 안된다는걸 안다.




영상 속 여자가 자기가 아니라고 항변하며 자기 발에 매달리는 새어머니를 아무말 없이 차갑게 쏘아보던 목사님은 냉정하게 새어머니가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연설을 중단한채 그대로 목사실로 들어가 버린다. 목사님이 자리를 뜨자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여자 교인, 혹은 분노에 차서 욕지거리를 하는 중년의 교인등으로 예배당안은 갑자기 시장바닥처럼 소란해 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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