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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님의 서재입니다.

무녀의 남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어라하
작품등록일 :
2016.05.20 15:35
최근연재일 :
2016.07.08 18: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197
추천수 :
2
글자수 :
89,179

작성
16.05.2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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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5쪽

무녀의 남자 3

DUMMY

9장




두 영가






혜경이 아버님 차로 도착한 혜경의 집은 평범한 이층 짜리 단독주택으로 늦은 밤임에도 아무도 잠들지 못한 채 창이 모두 환하게 불이 켜진 상태다. 혜경의 어머니와 혜경의 오빠가 두 사람을 맞아준다.



혜경은 집안에 들어가자 마자 제사상이 차려진 안방부터 들른다. 정성껏 차려진 제사상이 혜경의 가족들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제사상 주변을 둘러 보지만 나쁜 요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잘 차려진 제삿상에는 정성껏 차려진 음식들과 모사기, 강신잔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상 뒤로 신위와 할머니의 영정이 잘 모셔져 있다.




그런데 이상 한 것이 할머니 영정이, 유주가 어제저녁 본 그 할머니가 아니다. 어제 저녁 그 할머니 영가는 쪽진 머리에 키가 작고 마른 편인 날카로운 인상의 할머니였는데, 영정의 할머니는 체격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단발의 파마 머리를 한 푸근한 인상의 퉁퉁한 모습이다.



이 분이 혜경이 할머님 맞나요?



그럼요.




유주는 갑자기 혼란이 왔다. 그럼 어제 그 혜경이에게 붙어 있던 깡마르고 쪽진머리를 한 할머니 영가는 누구란 말이지? 전혀 상관없는 떠돌이 영가가 혜경이네 집에 붙었다는 건가? 그때 갑자기 오싹한 한기를 느낀 유주는 강력한 영기가 느껴지는 방을 가리킨다.




저 방은?




혜경이 방 입니다.




어릴 적 부터 귀신을 볼 수 있는 신안을 가졌다고 해도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결코 익숙해 지지 않는다. 머리가 부서지거나 팔다리 하나를 덜렁거리는.. 끔찍한 모습으로 유주앞에 나타나 유주가 자신을 본다는 것을 알면 유주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계속 유주를 따라다니곤 해서 유주는 보더라도 그들 영가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애써 무시하며 지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직접 그들을 대면해야하고 혹시라도 인간을 괴롭히는 악한 영가라면 자칫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유주는 안다. 더구나 신내림도 받지 않은 상태라 어떤 영의 보호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혜경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




저 혼자 들어가 봐도 될까요?




방 문 앞에 서니 영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져 유주의 온몸은 얼어붙을 듯한 으스스한 한기에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을 느낀다. 엄청난 요기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 이상이다. 유주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천천히 문을 열자 불이 까진 어두운 방안에 희뿌연 요기를 흘리는 영가 두 개가 보인다.



혜경이 아버님이 고개를 끄덕이는것을 마지막으로 확인 한 후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서 문을 닫는다. 불은 켜지 않고 그대로 방안을 천천히 돌아 보자 침대 구석에 검은 형태의 영가 둘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유주는 다시 한번 길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다지고 영가들 앞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영가는 할머니 두분으로 한 분은 분명 제사상 영정에서 본 혜경의 할머니고 다른 한 명은, 어제 저녁 혜경에게 붙어서 괴롭히던 그 쪽진머리를 한 깡마른 할머니 영가다.




'대체 왜 둘이 같이 있는 거지?'




쪽진 머리를 한 깡마른 할머니 영가가 혜경의 할머니 영가의 머리채를 쥐고 마치 죽일 듯이 웅크리고 있는 혜경이 할머니 영가를 다그치고 있다.




그러다 유주가 마치 자신들을 보고 똑바로 다가오는것을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영가들이 점점 유주의 행동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영가들 앞에 선 유주가 영가들과 눈을 마주치며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묻는다.




혜경이를 다치게 한 분이 두분 중 어느 분이죠?




그 말이 끝나자 마자 갑자기 쪽진 머리의 깡마른 할머니 영가의 모습이 악령의 모습으로 사납게 변하면서 더욱 강력한 영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온몸에 소름이 돋지만 유주는 그자리에 그대로 서서 주먹을 꽉 쥐고 전혀 두렵지 않은 양 그 영가를 똑바로 노려본다.




네 년,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구나. 아까도 날 본 것 같더니만.




두 분이 왜 이 집 사람들을 괴롭히는지 알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 내가 한게 아니야.




혜경의 할머니 영가는 불쑥 자신의 짓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도 연신 깡마른 다른 할머니 영가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마치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쪽진머리의 깡마른 할머니 영가의 기에 눌려 마치 야단 맞는 아이처럼 기가 죽어 있다.



그렇다면 할머니께서 하신거로군요.




이게 다 저년이 약속을 안지켜서 벌어진 일이니 원망하려거든 저년을 원망해야지!




형님~ 그런게 아니예요~ 제가 약속을 어긴게 아니라고요.




아니긴! 내가 생전에 니년에게 그렇게 끔찍히 잘해줬건만, 넌 나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네년 혼자만 뜨신 제삿밥 얻어 먹을 줄 알았더냐!




저는 분명히 두번, 세번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그런 되먹지도 않은 거짓말이 통하리라 생각해!!




쪽진 머리 할머니 영가의 분노가 강력한 영기를 발동시켜 집 전체를 정전되자 거실의 가족들이 놀라 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 이어 모든 창의 창틀이 태풍이나 지진난 것처럼 무섭게 흔들리고 거실등은 당장 떨어질것처럼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집안은 알 수없는 냉기로 가득차 유주는 물론 혜경이 가족들 모두 시베리아 벌판에 있는 것처럼 오싹한 추위를 느끼고 있다.




이런 강력한 영기는 여태까지 유주가 겪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 틈에 갑자기 유주의 눈에서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동시에 거실에서는 혜경이 아버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방문을 열고 거실로 뛰쳐나간 유주의 눈에는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의 손아귀에 목이 졸려 그대로 들어 올려져 창문밖으로 던져 질 듯 깨진 창문을 가까스로 손으로 부여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혜경의 아버지의 바둥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밀리면 창밖으로 떨어질 지경이다.




그만 두세요 할머니!




바로 그때 혜경이 할머니 영가가 몸을 날려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의 손에서 혜경이 아버지를 떼어내고 두사람 사이를 갈라 놓으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졸렸던 목이 풀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혜경이 아버지는 연신 콜록이며 가뿐 숨을 몰아 쉰다.




네년이 감히!!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의 분노가 쓰러져 있는 혜경이 할머니 영가에게로 향하자 유주가 두 할머니 영가 사이를 가로 막는다.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는 둘 사이에 끼여든 유주의 목덜미를 한손으로 붙잡아 천정까지 들어올리고, 목이 졸린 유주는 숨이 막혀 두 발을 버둥거리며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의 손을 뿌리치려 해보지만 도저히 벗어 날 수가 없다.




그렇게 몇분여를 공중에 매달려 있던 유주는 칵~칵~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온몸이 축 늘어지고 만다.




내 이 집안의 대를 모두 끊어 놓고 말테니~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가 시체처럼 축 늘어진 유주를 벽에 내팽겨치고, 다시 혜경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혜경이 아버지를 잡아 채려는 순간 쓰러져 있던 유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에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는 종잇장처럼 튕겨나가 벽에 내동댕이 쳐진다. 정신을 잃은 유주가 무의식인 상태로 몸을 일으키며 굵직한 남자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감히 잡귀 따위가 내 몸에 해꼬지를 하려 하느냐!!




쓰러져 죽은 줄 알았던 유주가 정신을 잃은채로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데, 유주의 모습 뒤로 철갑의 두꺼운 갑옷과 큰칼을 차고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장군신의 그림자가 드리워 진다. 정신을 잃은 유주를 지키는 몸주, 장군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장군신의 그림자만으로도 두 할머니 영가는 부들부들 떨며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장군신을 감히 쳐다 보지도 못한채로 엎드려 두손을 빌기에 바쁘다.




장군님.. 자.. 잘 못 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하소서! 장군신님의 몸이신걸 알지 못했 나이다!




장군신이 정체를 드러낸 자체 만으로도 두 할머니 영가는 차마 장군신과 눈도 마주치지도 못하고 두손을 허공으로 휘저으며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이상 저항할 의지를 상실하고 유주의 발 아래 엎드려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곧이어 정신이 돌아온 유주가 쿨럭쿨럭 거리며 막혔던 숨을 다시 내쉬자 장군신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져 간다. 유주는 자신의 발아래 엎드린 두 할머니 영가의 앞에 조용히 앉으며 두 영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준다.




용서하십시요~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큰 장군님을 모시는 몸주라는 것을..




겁먹지 마시고 들어 주세요. 전 그냥 듣고 싶어요. 왜 할머니가 혜경이네 사람들을 괴롭히시는지..




유주의 따뜻한 목소리에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는 겨우 고개를 들어 유주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울컥 눈물을 터트리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혜경이 할머니 영가를 쏘아 본다.




제가 저 년을 친자매처럼.. 내 먹을거마저 저년에게 먹이면서 얼마나... 살아 생전 내 살붙이처럼 아껴 주었건만..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가 감정이 복받쳐 더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죄지은 사람처럼 구석에 있던 혜경이 할머니 영가가 쪽진머리 할머니 영가의 말을 이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군님, 형님은 아무 잘못이 없답니다~ 이 사태는 몽땅 다 지가, 이 못난년의 잘못입니다.




대체 두분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거죠? 그리고 왜 저 영가는 이집 사람들을 괴롭히는거고요?




저는 이 형님의 큰 은혜를 입어 이집에 시집와 생전 제 복이 아닌 복까지 넘치게 누리며 살았습죠. 시집와서 12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던 형님이 8남매에 찢어지게 가난해 배곯기 일상이던 저를 거두어 주시고.. 얄궂게도 저는 이 집에 들어와 두달도 안돼서 큰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지요..




여자로써 그 마음이 어떨런지 다 알겄지만서두 싫은 내색 한번 안하시고 산모는 몸이 차면 안된다고 제 손에는 찬물 한번 안묻히게 한겨울에도 따순 물을 끓여 제 방에 넣어 주시기 까지 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셨지요.




그러고도 모자라 형님은 아이들이 크자 아이들의 엄마인 저를 남편 호적에 올려 주고자 스스로 이혼도장을 찍고 절로 들어가시기 까지 했죠. 그 큰 은혜를 아무리 못배운 저라도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요.




가지 마시라고, 지금처럼 그냥 같이 평생 이렇게 살면 된다고, 치맛자락 붙잡고 애원하는 저의 손을 뿌리치시면서, 딱 하나만 당신 욕심이라면서 간곡한 당부와 부탁을 하셨었죠. 그거 하나면 당신은 더이상 여한이 없으시다고.




박복한 년이라 팔자에 자식이 없어, 죽고나면 제삿날 제삿밥 한술이나마 얻어 먹을 수 있겠냐구. 늘 그 한가지가 걱정이라고 제게 당부 하셨죠. 당신 죽고나면 제삿날에 찬물에 만 밥 공기라도 좋으니 얻어 먹게 해줄 수 있느냐고.. 그거 하나만 약속해달라고 하셨죠.




절대 잊지 않고, 아이들에게 형님 제사를 모시라고 이르겠노라 수십번 그렇게 다짐하고 약속을 드렸는데.... 제가 약속을.. 못 지켰어요.. 그건...




혜경이 할머니는 더이상 말을 잊지 못한다.




왜.. 제사를 모셔준다는 약속을 못지키신거죠?




영가의 모습이나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유주가 영가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혜경이 아버지가 갑자기 털썩 바닥에 주저 앉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어머니 당부를 지키지 않은 거다..




..아버님?




어머니는 평소에 항상 큰어머님 얘기를 하셨지.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고마운 분이라고.. 그러니 만약 그분이 돌아가시면 꼭 그분의 제사도 같이 모셔야 한다고.. 어려서 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었는데.. 흐흑흑..




혜경이 아버님이 어린아이처럼 굵은 눈물을 쏟아내며 펑펑 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져 유주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다.




흐흑.. 어린 마음에.. 첩의 자식이라는 소릴 들으며 자란것도 싫었고, 큰어머님이 본처이고 우리 어머니가 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싫었단다.. 정말 그때는 그게 끔찍하게 싫었지.. 나는 그런 큰어머니 제사까지 지내라는 어머니가 도무지 이해 안되기도 했고.. 어머니의 그런 당부가 스스로 첩이라는것을 인정하는 삶이 되는것 같아 반발심에 일부러 큰어머니 제사를 모시지 않았던거지..




그럼 그분의 제사는 언제신거죠?




그게.. 두분의 제삿날이 같단다..




같은 날 돌아가신거라고요?




워낙 사이가 좋았던 두 할머니는 본처 할머니가 절로 들어가신 후에도 혜경이 할머니가 자주 절로 찾아가 만나곤 하셨는데, 그날은 혜경이 할머니가 시집 올 때 직접 혜경이 할머니의 한복을 직접 지어주신 본처 할머니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드릴 선물로 새 한복을 지어 그날 같이 드실 점심도시락까지 싸가지고 절로 찾아 가셨는데




절 근처 경치좋은 강가로 가서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선물로 가져온 한복을 펼쳐 보이는 순간 바람이 불어 한복 저고리가 강으로 날아 가버리자 혜경이 할머니가 먼저 급하게 한복을 찾으러 물에 들어갔다 빠지자 본처 할머니까지 혜경이 할머니를 구하러 들어갔는데, 결국 두분 모두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흐흐흑.. 나 같은 불효자가 또 있을까? 수일을 잠수부까지 동원해 강하류를 뒤졌지만 어머니 시신도 못찾아 결국 헛묘를 쓰고 이렇게 제사를 모셔오다 보니, 아무리 정성껏 제사를 모셔도 어머니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것 때문에 우리는 집에 우환이 계속 되는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럼 오늘이 두분 할머니의 제삿날이군요..




혜경이 아버지가 자신의 못난 행동을 후회하고 더우기 두분 할머니의 우애를 확인하고나자 혜경이 할머니의 유품 속에서 본처 할머니의 사진을 찾아 혜경이 할머니 사진 옆에 나란히 영정사진으로 신위로 세우고 함께 제사를 모시기로 한다.




혜경이 아버지와 혜경이 남동생이 나란히 두분 신위에 절을 드리고 두 할머니 영가가 제삿상앞에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유주에게 자신들의 사연을 가족들에게 알려주어 고맙다는 말과 마지막으로 유주에게 한가지 부탁을 더 들어달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시신을 찾아 거두어 달라는 것으로, 혜경이 아버지가 몇일동안 수색해도 못찾았던 것인데, 두영가 할머니가 정확하게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위치는 두분이 돌아가신 그 지역에서 별로 멀지않은 반대편 강변이었다. 다음날 혜경이 아버지가 급히 수배한 잠수부를 동원해 두분의 시신을 찾았는데,




2년 전 시신이라는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두 할머니의 시신은 온전한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고, 본처 할머니의 손이 혜경이 할머니의 손을 꼭 잡은 돌아가신 그때 그모습 그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분 할머니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고마우이..




곱게 때를 입힌 자신의 묘를 바라보는 본처할머니 영가가 혜경이 할머니 영가의 손을 꼭 쥐며 다시금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가족들 뒷편에 서 있던 유주에게도 감사의 표시로 손을 흔들어 준다. 두분 할머니의 시신은 양지바른 선산 할아버지 산소옆에 나란히 모셔지고 혜경이를 포함해 모든 가족들이 앞으로도 계속 두분 할머니의 제사를 같이 모시기로 하면서 두 할머니 영가는 이제 평온한 안식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이 순간에도 유주만은 온전히 행복할 수 없었다. 항상 숨겨왔던 자신의 이 저주받은 운명 때문에 사랑했던 사람 곁을 떠나야만 했기에.. 어쩌면 그 사람을 죽게 만들수도 있는 저주받은 운명, 그 때문에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10장




악연






제법 굵은 초여름 비가 제법 굵게 내리고 있는 날이다. 일찍 반팔로 갈아 입은 사람들은 제법 추워진 날씨에 몸을 잔뜩 움추리고 서둘러 귀가길을 재촉하는 늦은 밤이다. 종종 다니는 단골 술집에서 혼자 술 한잔 기울이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온 한결은 오피스텔 문 앞에서 흠뻑 젖은 채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소율을 보고도 전혀 미동도,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지나쳐 간다. 소율 역시 그런 한결을 붙잡는 다거나 눈길조차 마주 치지 못하고 있.




다만 카드 키를 지갑에서 꺼내 문을 여는 동안에도 소율은 콜록 거리며 연신 기침을 하고 있다. 한결은 못들은 것처럼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무심하게 문까지 쾅 하고 닫아 버린다.




'분명 무작정 아무런 준비도 없이 비를 맞으며 이곳으로 왔으리라.'




그녀는 어려서부터 늘 그런 식이었다. 솔직하고 무모하도록 한가지에 매몰되는 성격. 이대로 둔다면 아마 저기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소율은 절대 스스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들어간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한결의 오피스텔 문이 열리고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한결이 소율 앞에 선다.




너 바보야? 아니면 죽고 싶은 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멀쩡한 호텔 놔두고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건데?




혼자 있는 거 싫어..




아후~ 돌아 버리겠네!




이제 나 혼자 두지마..




모든걸 포기한 듯 체념한 한결은 먼저 소율의 짐 가방을 들고 소율의 손목을 잡아 집안으로 이끈다. 한결이 받아 주리라 기대하지 못했던 소율은 한결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며 그의 손에 이끌려 오피스텔 안으로 따라 들어온다.




원룸 형태지만 침실과 작업실이 분리되어 제법 넓어 보이는 한결의 오피스텔은 미닫이 문을 경계로 한쪽은 침실, 그리고 거실쪽은 벽면 전체가 창으로 암막 커튼이 내려진 창을 등지고 음악작업을 위한 책상이 놓여있고 책상위에는 컴퓨터와 키보드, 그리고 이거저것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그리고 책상 우측으로는 대형 텔레비전과 출입구 뒤편 공간으로는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작은 부엌이 있는 모던하고 심플한 가구들로 별다른 치장은 없었지만 실용적으로 꾸며져 있다.



비 그치면 호텔로 데려다 줄게.




욕실 문을 열어주고 커다란 샤워 타올 까지 안겨 비에 젖어 부들부들 떨고있는 소율을 서둘러 욕실로 들여 보내주고 소율의 가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찾아 욕실안으로 밀어 넣어주고 나서야 한결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것을 이내 후회하기 시작한다.




먼저 따듯한 물로 샤워 먼저 해.




침대는 소율에게 내주고 한결은 소파에 배개와 모포 한 장으로 자신의 잠자리를 마련한다. 욕실에서 타올로 몸을 감싸고 나온 소율의 어깨와 팔뚝 곳곳에 상처와 멍 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한결은 굳이 묻지 않는다. 더 이상 그녀의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소율은 순순히 한결이 내준 옷으로 갈아 입고 침대로 들어가 눕는다.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에야 겨우 잠든 한결은 알 수 없는 섬뜩한 느낌에 잠이 깬다. 하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눈도 떠지지 않고 몸도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맘대로 움직여 지지도 않는다. 기억이 돌아온 후 한동안 끔찍하게 시달리던 가위눌림이 다시 시작 된 것일까.




간신히 눈을 떠 보지만 지금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조차 힘들다. 어둠 속에 소율의 하얀 나신이 달빛에 드러나 보인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로 한결의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마치 갓난아이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그의 성기를 입에 넣고 펠라치오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을 그만두게 해야 하는데, 뿌리치고 싶은데 몸은 가위에 눌린 듯 움직일 수 없는데다 신음소리 조차 나오지 않는다.




더욱 대담하게 소율은 자신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한결의 허벅지에 문지르며 손으로 한결의 티셔츠를 밀어 올려 한결의 몸과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 시킨다. 딱딱하게 도드라진 소율의 유두가 연달아 튕겨지며 한결의 허벅지 위로 미끄러진다.




당장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한결의 딱딱해진 성기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급기야 모든 정액을 소율의 얼굴을 향해 쿨럭쿨럭 쏟아내 버리고 만다. 소율의 머리카락이며 입과 코 전부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임에도 소율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고 오히려 기쁜 표정이다.



순간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온통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한결이 번쩍 눈을 뜬다. 그와 동시에 전기밥솥이 뜨거운 김을 내뿜는 소리가 한결의 귀청을 요란스럽게 때린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자 소율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식탁에는 이미 찌게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지금 한결은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굿모닝~ 오빠! 아침식사 준비 거의 다 됐어. 얼른 씻고 와. 식으면 맛 없잖아~




마치 여기서 계속 살아 온 것 마냥 태연스레 아침식사까지 준비하고 있는 소율의 모습을 보니, 한결은 더이상 말로는 그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한결은 일어나 대충 아무 옷이나 걸치고는 손으로 머리만 대충 빗어 넘기고 휴대폰과 옷걸이에서 겉옷 하나를 챙겨 소율이 차린 식사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대로 바로 오피스텔 문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에 소율에게 다짐을 한다.




호텔로 돌아가든, 고향집으로 돌아가든.. 니 맘대로 해. 하지만 니가 여기에 있는 한 난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말을 끝으로 냉정하게 문을 닫고 한결은 오피스텔을 나가 버리고, 남겨진 소율은 마치 그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듯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촛점조차 없는 눈으로 한결이 나간 문을 바라보고 서 있다. 국은 끓어 넘치고 밥이 다 지어졌다고 밥을 뒤저어 달라는 전기밥솥의 메시지만 계속 공허하게 방안의 정적을 깨우고 있다.








11장




뜻밖의 의뢰






아직 영업을 시작하기 전의 코요테 어글리 대기실, 유주가 오늘 공연을 위한 공연의상으로 갈아 입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에리카라면 대뜸 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게 들어왔을텐데, 누구지 하고 대기실 문을 열어주자 길을 잘못찾은 손님인가 제법 큰키의 양복차림의 남자가 멀뚱하게 서 있다.




죄송하지만, 여긴 관계자외 출입금지 인데요.




안녕 하십니까. 에리카씨에게 공연 전에 유주씨를 잠시 볼 수 있게 양해를 구했는데 미리 말씀을 안드린거 같군요.




그러고 보니 그 남자 뒤로 멀찌감치 에리카가 유주에게 찡긋 윙크를 하며 아는체를 하며 지나간다. 유주는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약간 발끈하는 표정을 에리카에게 지어 보이며 불만의 표시를 하지만 남자에겐 구태여 내색하지 않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빈의자를 권해 앉도록 한다. 남자는 모범생 같은 태도로 명함을 유주에게 내민다.




UBS 방송 강수찬 피디 입니다. 절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그동안 여러번 유주씨 공연을 보러 왔었습니다. 실례인줄 알지만 이렇게 불쑥 찾아온 이유가, 사실은 지금 제가 이번에 드라마를 들어갈 예정인데 그 드라마에 쓰일 OST 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해서 괜찮으시다면 주제가를 불러 주셨으면 해서 섭외를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전 방송이나 티비 출연은 생각이 일절 없어서요.. 에리카씨가 아마 얘기 안하셨나봐요. 전 그냥 이런 무대에서 노래 하는게 좋아요.




네, 그 부분은.. 이미 에리카씨에게서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 방송에 나가는것을 싫어하신다고요. 근데 드라마 OST 는 녹음실에서 녹음하니까 방송에는 목소리만 나가는거고, 원하시면 얼굴이나 이름도 알려지지 않게 가명으로 하실 수 있게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구태여 왜 그렇게 번거롭게..? 노래 잘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으실텐데..




유주가 전혀 관심조차 없어 보이자 강PD 는 대뜸 유주에게 이어폰을 끼워주며 아예 들고있는 MP3 플레이어까지 유주의 손에 쥐어준다.




한번만 들어 봐 주세요. 그리고 몇일 더 생각해 보고 결정 하셔도 됩니다. 들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유주씨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드라마 기획단계부터 다른 가수는 생각도 안해보고 꼭 유주씨로 생각하고 있어서요.




방송이나 미디어에는 나갈 일은 절대 없으리라 생각했던 유주의 마음이 곡을 직접 들어 보면서 조금은 흔들린다.. 아직 편곡도 안된 피아노 반주로만 되어 있는 곡인데도 독특한 멜로디가 유주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강PD도 그런 유주의 미묘한 심경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절대 방송이나 미디어 출연을 안할거라고 에리카에게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곡을 들으면 가수라면 누구라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 강PD 의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이 곡 작곡가도 신인 작곡가인데 이왕이면 노래 할 가수도 기존 가수 말고 신선한 목소리의 신인 가수로 하고 싶어서요. 마침 작곡가 생각도 저와 같고요. 당장 결정 하지 않으셔도 되니 충분히 들어 보시고 또, 충분히 생각해 보신다음 결정 되시면 드린 명함의 제 전화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아..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생각은 해 볼게요.




그럼, 꼭 부탁 드리겠습니다




강PD는 90도로 허리를 굽혀서 몇번이나 더 정중하게 거듭 부탁을 하고서야 돌아갔다.




강PD가 떠난 후 10여분 동안 유주는 마치 홀린것처럼 그 자리에서 그 곡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 유주에게 한소리 들을거라 각오했던 에리카는 유주가 조용하자, 슬그머니 죄 지은 아이처럼 유주의 눈치를 살피며 대기실로 들어온다.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강PD가 유주를 만나도록 다리를 놓았지만 괜시리 유주가 싫어하는 일을 한건 아닐까 싶어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PD 님 가셨어?




아! 에리카씨, 네, 가셨어요.




그거.. 하기로 한거야?




아직은.. 모르겠어요. 곡은 좋은데.. 해도 되나.. 자신도 없고.. 목소리만이라지만 방송으로 나간다는게 썩 내키지도 않고.. 그래도 하도 정중하게 부탁을 하시니 대뜸 거절하기 어려워서 일단 생각은 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 충분히 생각해봐. 그거 알지? 내가 촉이 정말 좋잖아. 이건 정말 좋은 기회야~ 남들은 이런건 오히려 서로 할려고 난리인 찬스라고!




분명 에리카의 말이 맞긴 하지만, 과연 해도 되는건지 유주는 쉽사리 판단이 서지 않는다.








12장




라흐마니노프 카페






유명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만을 작곡했는데 특히 그 중에 2번과 3번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사랑 받는 작품이다. 특히 1악장 도입부의 강렬한 피아노 터치가 인상적인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제일 낮은 화성 f음을 중복적으로 연타하면서 종소리를 연상하게 만들어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칭이 붙은 곡이 되었다.




이 2번 협주곡을 들어보면 누구라도 단번에 러시아적인 분위기의 장중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에 매료 당하게 만들고 마는데, 강렬한 터치와 장중한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는 1악장에 이어 풍부한 선율의 서정적이고 애수에 가득 찬 2악장, 그리고 엄청난 스케일로 모두를 압도하는 클라이막스 3악장까지.. 1번 피아노협주곡의 실패로 한때 우울증에 빠졌던 라흐마니노프를 구해준 명곡중의 명곡이다.




테이블이 너댓 개 밖에 안 되는 라흐마니노프 카페라고 불리는 이 조그만 카페는 한결이 특히 좋아하는 곳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마시고 싶다거나 근처에 약속이 있게 되면 늘 이 곳을 약속장소로 정해서 유명 체인 커피전문점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은근 불만스러워 하곤 했다.




주변에 여대와 전문대학이 모여 있는 대학촌이긴 하지만 대학정문에서 대로변으로 나가는 쪽이 아닌 오히려 반대로 거슬러 올라와야 하는 비탈진 곳에 위치한 때문에 유동인구도 그다지 많지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잘 띄는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결이 이 카페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우연히 이 앞을 지나치다가 카페 안에서 들리는 익숙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율에 이끌려서 였다.




이곳 주인장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리고 구렛나룻까지 이어진 흰 수염이 매력적인 푸근한 인상을 가진 50대 아저씨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매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애국가 틀 듯이 2시간 동안 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틀어 주었고 작은 카페치고 꽤 좋은 음향시설 때문에 한결이처럼 이곳을 단골 아지트로 삼은 학생들도 있고,




단골들 사이에서 라흐마니노프 타임이라 부르는 이 시간에 맞춰 일부러 카페에 들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선 나름 숨겨진 명소로 통하는 장소기도 했다.




지금 카페 안에 손님은 한결 혼자 뿐으로 강PD와 약속은 30분도 더 남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너무 일찍 도착해 버린것이다. 한결이 주문한 커피를 내리는 향긋한 커피내음이 카페 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사장님, 피아노 좀 만져봐도 되요?



아~ 그럼요.




어릴 적 부터 목사인 아버지의 개척교회 찬송가 반주를 위해 배우기 시작한 한결의 피아노 실력은 제법 수준급 이다. 인테리어처럼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낡고 오래된 피아노 앞에 앉아 생각나는 데로 이 곡 저 곡 연주하기 시작하자 주인 할아버지가 커피를 피아노까지 가져다 준다.




이 곡은 글루미썬데이.. 군요. 이 곡에 매료된 사람은 반드시 자살하고 만다고 하는 그 곡 맞죠? 당시에는 이 곡을 듣고 자살한 사람만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하던데, 그래서 한동안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죠.






2차대전으로 그 시대가 워낙 우울했었으니까요.




그때 강PD가 카페 문을 밀고 들어오다 한결을 보고 반색한다.




제가 늦은건가요?




아닙니다~ 제가 좀 일렀어요.




우와~ 근데 한결씨 여기 두바퀴나 빙빙 돌았어요. 완전 구석 이잖아요.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 커피로 해장하는 습관이 있어서요. 여기 커피맛이 끝내주거든요. 강PD님도 마음에 드실거예요.




피디들은 죄다 믹스커피에 길들여져 있어서요 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두사람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강PD 가 가져온 노트북에 한결이 곡을 담아온 usb 를 꼽아 이어폰으로 한결이 작곡한 곡을 들어본다.




이 곡은 매회 끝장면에 넣었으면 하는데 편곡을 좀 경쾌하게 만들면 좋을거 같아요.




음.. 그렇게 해볼게요.




그러면 남주인공 테마만 남는거죠? 근데 그거 아시죠? 허종호가 메인테마 자기네 가수가 부르게 하겠다고 하는데




....




작곡가 랍시고 유일하게 곡 하나 히트한거 그거 한결씨 곡이라는거 이 업계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자기 곡이라고 뻥치고 그거 미끼로 곡 준다고 가수지망생 여자애들 끼고 다니는거 눈꼴 사나워서.. 뻔뻔한 자식 같으니..




그래도 저 처음 서울 올라와서 갈데 없을 때 신세 진 형인데, 그때 은혜 갚은 셈 치고 있어요.




참! 메인테마 부를 가수는 적당한 사람이 있긴 한데, 본인이 방송쪽 일을 하는것을 꺼리고 있어서 지금 설득 중이니 결정되면 미팅 잡아서 다시 연락 드릴게요.




강PD 는 다음주 부터는 제작이 들어가야 해서 바쁘다면서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후루룩 마시고는 한결에게 술 좀 줄이라는 잔소리까지 하고는 곧바로 일어났다. 한결은 조금 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셈으로 자기 커피를 들고 구석자리로 옮겨 앉는다. 이제 서서히 어스름이 내려와 거리는 점점 어두워져 가기 시작한다.








13장




뫼비우스의 띠






유주는 하루종일 핸드폰을 들었나 놓았다 하면서 불안증에 걸린 사람처럼 안절부절이었다. 강PD 명함을 앞에 두고 1시간째 노려 보고만 있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에리카씨가 유주 핸드폰을 뺏어 직접 번호를 눌러 유주에게 내민다. 그제서야 겨우 마음의 결정을 한듯 신호가 가는 전화기를 조심스레 받아드는 유주는 다시한번 심호흡을 길게 해 본다. 전화기 너머로 뜻밖이라는 듯한 강PD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주씨?




네, 정유주 입니다. 그 곡, 아직 기회가 있다면 제가 꼭 부르고 싶습니다.




사실 그 후 강PD 가 주고간 곡을 하루에도 백번은 더 들었으리라. 들으면 들을 수록 이 곡만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꼭 불러보고 싶다, 내 곡이다. 라는 마음이 너무 커져 버린 탓이다.




정말입니까!~




강PD 환호성이 전화기 밖으로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유주의 결정을 환영해 주었고 혹시라도 유주의 마음이 바뀔까 녹음스케줄과 내일 작곡가와의 미팅까지 잡겠다며 시간까지 정해 버린다. 얼마만큼 강PD가 유주의 결정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까지 좋아해 주는 강PD 를 보니 유주는 미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 자신이 더욱 미안해 지고 만다.




정말 잘 됐습니다. 오늘 내일 사이로 연락 없었으면 진짜 포기할 뻔 했어요~ 괜찮다면 내일 3시에 작곡가와 약속을 잡아 둘테니 아예 미팅까지 하시죠.




여러가지로 고민은 됐었지만 결정해 버리고 나니 유주의 마음도 한결 홀가분하다. 딱 한번만, '더도 덜도 말고 이거만 하는거야.' 라고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네, 그럼 내일 뵐게요.








14장




동반 자살






커피숍 안에 사람들이 하나 둘 차기 시작하면서 라흐마노프 피아노협주곡 2장도 어느새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다. 그 때 한결의 핸드폰이 울린다. 강PD 인가 했는데, 받아보니 오피스텔 관리실이다.




네, 이한결 입니다. ...네? 우리집에 불이 났다고요? 네! 네.. 저 혹시 다친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한결은 급히 택시를 잡아 타고 오피스텔로 돌아간다. 오피스텔 관리실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옆방에서 놀라 관리실에 연락을 해서 비치된 소화기로 불길을 잡아 소방차까지 부르진 않았다고 한다.




오피스텔에 들어서니 주방쪽 벽과 식탁과 씽크대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타다만 식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주방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가스렌지도 반쯤은 불에 타서 당시의 상황이 어느정도 급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한결은 잔뜩 화가난 표정으로 침대 한구석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소율을 향해 다그치듯 묻는다.




이거 니가 한 짓이니?




아니야... 잠깐 밖에 편의점에 다녀 왔는데, 사람들이 불을 끄고 있었어..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그럼 내가 일부러 불을 지르기라도 했다는거야?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너 짐 어딨어? 지금 당장 챙겨서 떠나!




한결이 소율이 가져온 캐리어를 찾아 베란다는 뒤지던 한결은 방 구석에 옷가지 틈으로 보이는 휘발유통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반쯤 남은 휘발유통을 들어 보이며 소율이를 윽박지른다.




이래도 아니라고!




돌아보려는 순간 무엇인가 둔탁한 둔기에 맞아 한결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진다. 한결의 뒤로 한결을 내려다 보는 소율의 손에는 야구방망이가 들려져 있다. 쓰러진 한결을 내려다 보면서 방망이를 쥔 소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그러게.. 나한테 그러지 말지 그랬어..... 나도 아프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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