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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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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
작품등록일 :
2018.06.19 19:07
최근연재일 :
2018.11.20 01:5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85
추천수 :
0
글자수 :
39,395

작성
18.06.20 08:09
조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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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9쪽

판매왕3

DUMMY

나는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잠깐이라도 생각 할 시간을 벌고 싶었는데 커피맛이 또 기가 막히다. 오, 이건 무슨 커피지? 커피잔이 고급스러우면 맛도 다르게 느껴지는 건가? 고객들과 마주 앉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잔은 기본인 커피를 몇 년간 냉수처럼 들이켜 왔음에도 이런 커피 맛은 처음이다. 이 여자를 포함해서 모든 게 낯설고 특이한 느낌이 든다.


“물론 당신은 그냥 빨리 자동차에 관한 설명이나 해버리고 계약서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이 여자가 혹시 미친 여자인가? 생각해 보는 중일 테고요? 호호.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세일즈맨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을 진행시켜 가죠. 최대한 단도직입적으로 설명을 하든 세세하게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하든 그건 변함이 없더군요.”


“전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당신은 혹시 미국의 판매왕 조 지라드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아, 네. 들어본 적 있습니다.”


15년간 한대씩 팔아 1만 3,001대의 차를 팔아치워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사나이. <포브스>지에서 ‘세기의 슈퍼 세일즈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던가? 소장이 아침회의 때 가끔 예로 들면서 말해주는 그 사람이다. 세일즈계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한국의 조 지라드는 누굴까요?”

“세일즈 업계 전체요? 아니면 자동차 업계를...”

“뭐 누구든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떠오르는 세일즈맨이 있다면요. 아마 그게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 거예요. 전 거의 모든 판매왕들을 다 알고 있죠. 그들 모두 나를 만나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되었으니까요.”

“뭐라고요?”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이 여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망상증 환자? 혹시 커피에 독이나 수면제를 탄 건 아닐까? 갑자기 커피를 더 이상 마시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믿기 힘들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 하고 싶다, 포기하겠다만 결정하세요. 어떤 걸 선택하든 당신이 이 집을 나갈 땐 계약서 하나는 들려 있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 결정은 오늘 하루만을 결정짓는 게 아니라 당신 인생 전체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그런 결정이 된다는 것만 생각하세요. 어떤가요? 이 제안?”


믿기도 힘들지만 저 말이 사실이라 해도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렇다면 이 여자가 나한테 뭘 원하는 것일까? 그냥 물어보자.


“그럼 전 뭘 해드려야 하나요?”

여자는 요염하게 웃었다.

“그런 건 필요 없어요. 당신은 우리의 세일즈맨이 되는 거니까요,”

“네?”


옥장판, 이름도 요상한 약품들, 어디 먼 나라에서 수입해 왔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잔뜩 안기고 팔아 오라는 다단계 업체 고위 간부? 목이 탄다. 물이 마시고 싶지만 물을 달라고도 못하겠다. 넥타이를 약간 느슨하게 풀었다.


가끔 이렇게 고객에게 휘둘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도저히 말로도 설득이 안 되고 오히려 고객에게 설득당해서 뭔가 쓸데없는 물건을 사거나 보험을 든 적이 몇 번 있었던 거다. 누가 먼저 파느냐의 문제. 어떻게 상생하느냐의 문제. 그들 역시 잠재고객이고 또 다른 고객을 물어다줄 수도 있는 고객들이기에 함부로 할 수도 없는 그런 관계 속에서 결국 내가 손해 보고 후회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물론 당신은 그 회사를 계속 다녀도 됩니다. 아니 다니는 게 유리할 거예요. 판매왕은 거기서 될 테니까. 다만 저희 제품을 은밀히 판매해주는 거죠.”

“그건 회사 규정에 ...”

“그러니까 은밀히라고 하죠. 당신은 아마 만족하게 될 거예요. 저 제품은 누구나 탐을 내고 또 누구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죠.”


여자가 바라보고 있는 건 거실 한켠에 세워진 자판기였다. 뭐야, 지금 나더러 자판기를 팔라는 건가? 자동차 영업사원의 인맥을 자판기 파는데 활용하겠다는 건가? 흠... 은밀히 판다는 건 또 뭐지? 그게 투잡이 가능한 건가? 회사에 들키지 않고 가능할까?


“저 자판기에 대한 설명은 영업 비밀에 해당되기 때문에 당신이 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에나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뭔지 알지도 못하는 걸 덥석 하겠다고 하는 건...”

“그렇죠? 항상 이 부분이 어려워. 사람들의 의심을 녹이는 일은 말이죠.”


여자는 책장으로 가 뭔가 두터운 앨범 하나를 빼내 왔다. 그리고 그 앨범을 나에게 내밀었다.


“거기에 혹시 당신이 알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찾아볼래요?”


앨범을 넘겨본다. 증명사진 같은 것들을 크게 확대해서 넣어놓았다. 여자, 남자, 중년, 청년, 잘생기고 못생기고 무작위로 담아놓은 듯한 다양한 사진들. 모르는 얼굴들이 한참 지나가고 난 다음 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사람은...


“그 사람을 알아요?”

“저희 사무실의 전설적인 판매왕이었죠. 나갔다 하면 자동차 한 두 건은 계약해 오곤 했다죠.”


몇 년 전 내가 입사하고 얼마 안돼 곧바로 그만둔 선배였다. 이 지역의 전설적인 판매왕. 돈을 많이 벌어 어디 먼데 해외 이민을 간다고 했던가. 그가 마지막에 자신의 잠재 고객들을 나눠준다고 했을 때 남아 있는 직원들의 그 간절한 눈빛들을 잊지 못한다. 명단을 미리 넘겨받기 위해 알게 모르게 경쟁하던 그들. 그 당시에는 신입사원이었기에 나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올 리 없어 멀찌기 떨어져 구경만 했지만 그 광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사람이 당신과 일을 했다는 건가요?”


나는 여자에게 다시 확인했다.


“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와 일하죠. 그 사람은 지금도 해외에서 열심히 영업중이에요. 그의 꿈이 세계적인 판매왕이라고 하던가? 호호, 전 꿈이 큰 사람이 좋아요.”


또 다시 앨범을 넘겨본다. 낮이 익은 한 사람이 있다. TV에서 봤던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판매왕이다. 보험업계였던가?


“이 사람은...”


“그 사람은 너무나 유명해서 오히려 사람들이 믿질 않아요. 그냥 어디서 사진을 구해서 끼워 넣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그는 우리 초창기 맴버에요. 그는 정말 열성적이었죠. 지금은 은퇴했어요. 저는 솔직히 당신이 그 사람 뒤를 이을만한 재목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데 포기해버리는 건 참 안타까워요.”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여자의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믿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여전히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남자의 처음은 정말 초라했어요.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는 단칸방에서 겨우 죽지 않을 만큼 연명하는 정도였다고 해요. 날 만날 때 그도 역시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과자를 뿌려주고 있더군요. 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고 했었어요. 밑창이 벌어져 있던 구두가 아직도 눈에 선해요.”


잠깐만 저 사람은 은퇴를 했고 TV에서 본 것도 한참 전인데 초창기 멤버였다면 저 여자가 저 남자를 언제 만났다는 거지? 대체 몇 살 때부터 이 일을 했다는 건가? 나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자의 외모를 보며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여자인가 생각해보고 있었다.


“어머,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나요? 제가 거짓말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이 분과 오래전부터 아셨다기엔 너무 젊어 보이셔서.”

“호호, 그거 칭찬이죠? 제가 좀 많이 동안인 편이에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은 당신의 문제에만 집중해주세요. 당신은 지금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요.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요.”


그래 기회. 이걸 선택하고 나면 내가 맞이하게 될 최악은 뭘까? 항상 최악과 최선을 따져보는 게 내 버릇이다. 적어도 자동차 영업은 계속 할 수 있다고 했고 만약 투잡 뛰는 걸 회사에 들키게 된다고 해도 최악이라 봐야 퇴사겠지. 혹시 뭐 저 자판기 안에 이상한 마약류나 이상한 다른 물건들을 담아서 판매하는 수상한 집단은 아니겠지? TV에 나왔던 판매왕과 회사 선배의 얼굴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들이 했다면 나라고 못 할까? 하지만...


“뭔지 모르는 물건을 파는 게 찜찜하군요. 이런 식으로 헌팅 당하는 것도 좀 이상하고.”


무엇보다도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저런 흔한 자판기를 팔아서 어떻게 판매왕이 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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