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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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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
작품등록일 :
2018.06.19 19:07
최근연재일 :
2018.11.20 01:5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81
추천수 :
0
글자수 :
39,395

작성
18.06.20 08:05
조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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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8쪽

판매왕1

DUMMY

오늘도 소장은 쓸데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1시간이 넘게 아침회의를 끌어가고 있다. 귀에 들어오는 건 없고 진동으로 해놓은 안주머니 속 휴대폰은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슬쩍 돌아보니 둘러앉은 다른 영업사원들도 매한가지인지 얼굴들이 잔뜩 구겨진 채 참아내고 있는 게 뻔히 보인다.


대체 언제 끝낼 거냐고. 이러다간 회의만 하다가 오전 다 보내게 생겼다. 아, 이런다고 안 팔리는 차가 팔린다면 몇 시간이고 들어주겠다. 근데 수요가 없는데 어디다 공급을 한단 말인가. 이 비좁은 지역에서 벌써 몇 천대나 차를 팔아치운 영업사원들이 대단한 것이며 매달 매달 내려오는 목표치가 비정상적이고 가혹한 것이다. 어디서 번개라도 쏘아주고 천재지변 재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신규 수요가 그만큼 나올 수는 없다. 이게 쪼아댄다고 뭐가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소장도 알고 영업사원들도 다 안다. 그래도 아침 회의는 날이 갈수록 점점 길어지고만 있다.


안 팔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팔면 팔수록 월급이 두둑해진다는데 왜 안 팔고 있겠나. 팔 데가 없으니까 못 팔지.


별별 감언이설을 다 늘어놓고 온갖 친절 봉사를 해도 차 한 대 바꾸게 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지 오래다. 이 작은 소도시에 경쟁 자동차 회사만 3개, 거기다 중고차 매매상도 있다. 소속된 영업사원들은 또 얼마나 많으며 경쟁은 얼마나 치열한가.


또 고객들은 어떤가. 차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은 돈이 없고 부자들은 외제차를 선호하는데다 국산차를 살 의향이 있다 하더라도 까탈스럽기가 그지없으니.


신차 출시만 했다 하면 솔깃한 젊은이라도 차 할부가 아직 반도 안 끝난 걸 두고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바꿀 마음이 있어도 경제력이 안 따라주는데 거기다 더 강권하기도 뭣하다. 좀 무리해서 강권했다가 연체를 거듭하다 못해 신용불량자라도 돼버리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다. 그런 경우도 간혹 있으니 연차가 늘수록 조심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그만큼 마음의 갈등도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돈 좀 있다 싶은 영감들은 또 어찌나 깐깐하고 구두쇠들이 많은지 덜덜거리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고물차를 겨우 바꾸자고 마음먹었다 치더라도 이 늙은 너구리들은 여태껏 드나든 영업사원들을 두고 경쟁시키느라 두세명 불러 대서 누가 누가 더 서비스 많이 해주나 살펴보고 앉았고 돈 좀 있다 싶은 과부들은 왜 자꾸 여기를 가자, 저기를 가자 추파를 흘려대는지 차를 팔아야 하는 건지 몸을 팔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우리의 고충도 좀 알아달란 말이다.


이러한데도 신입사원은 또 꾸역꾸역 들어온다. 열심히 메모하고 있는 저 녀석은 이번에 들어온 신입. 로터리클럽 회장의 아들이란다. 하트가 몇 개나 달린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는 소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볼수록 배알이 꼬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지역 유지들의 모임, 그 모임의 실세, 그 파워가 미칠 영향은 안 봐도 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고정적으로 자동차 몇 대로 치환되는 건 시간 문제일 터. 저런 녀석이 왜 자동차나 팔겠다고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아버지 빽이 두둑하다면 좀 더 좋은 다른 회사나 들어갈 것이지.


“야, 안강한. 넌 무슨 딴 생각을 그렇게 해?


갑작스럽게 불린 내 이름에 화들짝 놀라 생각에서 벗어났다.


“네? 아니 다 듣고 있었습니다.”


“넌 무조건 오늘 한 대는 꼭 계약서 받아 와. 안 그러면 들어올 생각하지 말고 퇴근할 생각도 하지 마. 이번 달 봐라. 이거 이래가지고 너 월급이나 제대로 받아가겠어? 다들 마찬가지야. 지금 캠페인도 걸려 있는데 이럴 때 땡겨야지. 월급도 두둑하지. 캠페인 끝나고 나서 팔아봐야 다 헛 거라고. 응? 진짜, 전국 꼴찌가 말이 돼? 내가 지역부에 불려 가서 전국 꼴찌 대리점 소장이랍시고 소개 될 때 어떤 기분인지 알기나 하냔 말이야. 김차장 두 대만 더 하자, 정과장 두 대? 한 대? 그때 그 잠재 고객은 어떻게 됐어? 왜 여태 말이 없어? 제발 꼴찌만이라도 면하자 좀. 엉?”


“네.”


모두 한 목소리로 대답은 잘 한다. 이제 끝나가는구나.


“자, 나 오늘 목표치 계약서 못 받으면 퇴근 안 하고 기다린다. 다들 명심하라고.”


모두들 이제 살았다는 듯이 서둘러 소지품을 챙겨 사무실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나도 그 틈새에 서두르는 시늉을 하며 빠져나왔다.


차에서 밀린 통화를 했다. 그토록 바삐 울어대던 휴대폰에 찍힌 번호들은 다 차 계약과는 거리가 먼 것들. 차가 퍼졌는데 어떡하나, 보험이 어쩌구 저쩌구, 할부금이 왜 이렇게 많냐 처음 설명과 다른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자동차 한 대 팔아서 챙기는 수수료는 정말 적은 것처럼 생각된다. ‘차나 한 대 살까 하고’ 하는 말을 듣기를 기대하며 전화를 걸면 여지없이 이런 하소연들뿐이니. 하루 이틀도 아니건만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동안 판 자동차 대수만큼 누적되는 컴플레인들. 점점 전화기마저 두려울 지경이다.


사무실은 나와도 갈 데가 없다. 젠장. 잠재 고객도 없은 지 오래다. 돌아다녀본들 어제 안 산다고 한 사람이 오늘 갑자기 맘을 바꿀 리도 없고 로또 발표일도 며칠 남았으니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도 없을 테다. 내 차라도 바꿔야 하나 생각해 보지만 이것도 1년밖에 안 됐다.


나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래도 어디든 다니는 시늉은 해야지. 차를 출발시켰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명함도 뿌릴 만큼 뿌렸고 얼마 없는 친척들도 우려먹을 만큼 다 우려먹었고 친구들도 찾아다닐 만큼 다 찾아다녔다. 공업소에나 한번 가볼까? 중고매매차 시장에? 어느새 시내 거리를 두 바퀴 째 뱅뱅 돌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작은 도시다.


공원 앞에 차를 세웠다. 처음 영업사원이 됐을 땐 낮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던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나 두들기고 있는 건 자신에게 전혀 맞는 일이 아니란 걸 일찌감치 깨달았었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출퇴근 하고 겉보기엔 사무직인지 뭔지 모르는 자동차 영업직이야말로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중요했다. 한때 또래 이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던 미남자, 안강한이 아니던가. 옷발도 제법 받고 양복도 잘 어울린다. 모델까지는 아니라도 기본 이상은 되는 이 외모 덕을 좀 보기도 했었다. 좀 더 젊었을 적 얘기긴 하지만. 점점 아저씨 티가 나기 시작하니 그만큼 인기도 덜해지는 것 같아 요즘은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아줌마들의 노골적인 추파를 심심치 않게 받는 걸 보면 아직은 쓸만한 모양이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우쭐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젠 정말 성가시다. 그런 여자들은. 어떻게 마음 상하지 않게 잘 거절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차를 사게 만들어야 하나 그 중간지점을 찾아 고민하는 건 정말 머리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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