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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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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
작품등록일 :
2018.06.19 19:07
최근연재일 :
2018.11.20 01:5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80
추천수 :
0
글자수 :
39,395

작성
18.06.20 08:15
조회
62
추천
0
글자
6쪽

판매왕4

DUMMY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죠. 늘. 요즘 세상이 그렇기도 하죠. 누군갈 쉽게 믿어선 안 되는 세상이니까요.”


여자가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오래 마주치고 있기가 힘들 정도다.


“...”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공짜는 더더욱 없다. 이 여자가 무슨 꿍꿍이 속인지 몰라도 그렇게 쉽게 판매왕이 될 수 있다면 분명히 뭔가 대가가 따라야 할 것이다.


여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흰 개를 한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어쩔 수 없군요. 믿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우리를 위해 일을 해주겠어요. 모두 없었던 일로 하죠.”


여자가 앨범을 탁, 소리 나게 닫았다. 갑자기 쌩하고 찬바람이 일기라도 한 듯이 등줄기에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미소가 사라진 여자의 표정은 싸늘하고 아무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아서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저절로 굴러 들어온 운, 오늘의 방패막이, 계약이 날아가는구나. 또 다시 환청처럼 들리는 소장의 목소리. ‘너 오늘 계약서 안 들고 올 거면 들어올 생각도 하지마. 퇴근할 생각도 마.’


“제 존재나 오늘 있었던 대화는 모두 비밀로 해주겠어요? 전 불필요한 관심이나 소문은 필요치 않아요. 기억하세요. 전 당신보다 훨씬 인맥이 넓어요.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요. 전 당신이 현명하다고 믿어요.”


왠지 저 여자의 말은 무시하기가 어렵다. 저 카리스마. 저 고요하면서도 강한 설득력. 배우고 싶다. 적어도 세일즈맨들을 상대하려면 저 정도는 돼야겠지. 그냥 믿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당신은 판매왕이 될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카리스마 여왕 옆에서 걱정 없이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로타리 클럽의 회장 아버지를 둔 신입처럼 든든한 부모가 없다면 이런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가,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 덩쿨을 발로 차버리는 건 아닐까 조급해지기까지 한다.


여자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지 조용하다. 너 안 가고 뭐하니? 무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생각할 시간은 주지 않는 겁니까? 일생일대의 선택이라면 그 정도는...”


“글쎄요. 그렇게 결단력이 없는 사람, 소심한 사람은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아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지금 이 자리 자체가 우리에게는 일종의 면접이죠. 자 카달로그를 볼까요? 차 한 대는 계약해드릴게요.”


왠지 자존심이 구겨지는 기분이다. 이럴 땐 아니 됐습니다. 그냥 가죠. 비밀은 지킬 겁니다. 이렇게 소리치는 게 더 멋있는데.... 계약서는 소중하다. 나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며 물었다.


“판매왕이 될 사람을 왜 이런 식으로 선택하는 거죠?”


여자가 보던 카달로그에서 눈을 뗐다. 여자의 서늘한 눈동자는 고요하기만 하다.


“글쎄요. 뭐 어떤 식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그럼? 이룰 거 다 이루고 편할 대로 편한 사람은 절박함이 없어요. 절박함이 없다는 건 우리 같은 이들한텐 마이너스죠. 아마도 당신의 절박함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날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절박하지 않은 상태라면 당신이 지금 이 시간에 공원에 있었을까요? 절박함이 없다면 당신은 아마 제가 이상한 제안을 늘어놓았을 때 벌써 여길 떠났겠죠. 제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맞아요. 절박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여자는 다시 한 말을 이어갔다.


“우선 제 말을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만이 판매왕이 될 수 있는데 그게 사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이상한 줄 알면서 이상한 제안을 하는 여자와 이상한 줄 알면서도 끝까지 듣고 앉아 있는 남자. 그 이야기의 끝에 판매왕이라는 보상이 있다는 말인가?


여자는 카달로그에서 날렵하게 생긴 차종 하나를 가리켰다. 최근에 출시한 중형급 인기 차종이다. 디자인이 잘 빠졌다는 평을 받으니 여자의 눈에 띄었으리라.


“이걸로 할게요. 차는 언제쯤 나오나요?”


“색상이나 옵션에 따라 생산 기간이 달라서 정확히 말씀드리긴 어렵네요. 인기 차종은 주문이 많으면 조금 지연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최대한 빨리 맞춰드리겠습니다.”


“빨리 받는 게 좋은데 난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라.”


“네 그다지 늦진 않을 겁니다. 옵션은 어떻게....”


“옵션이야 풀옵션이죠. 색깔은 음, 흰색이 좋겠죠? 우리 미미한테도 잘 어울릴 거고.”


여자가 거실 한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흰 개를 바라보았다. 여우처럼 생긴 흰 개는 마치 일이 어떻게 돌아가나 구경하는 관객처럼 묘한 자세로 꼼짝도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계약금은, 지금 있는 게 수표뿐인데 괜찮나요? 이것뿐이네.”


100만원 짜리 수표다. 계약금으로 100만원을 내놓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아니 지갑에 100만원짜리 수표를 넣고 다니는 사람은 난 처음 본다.


“나머지 잔금은 차 나올 때 드리면 되죠? 현금 계약으로 할게요.”


“네? 현, 현금이요? 짧지만 무이자 할부도 있는데요.”


말을 해놓고 보니 왠지 고객이 무시당한 느낌을 받았을까 싶어 아차 싶다.


“그런 건 귀찮군요.”


여자는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대충 카달로그에서 찍어서 차를 선택하고 질문도 없이 결정해버리면서 수천 만원을 현금으로 지불하겠다니 영업 일 시작하고 이런 쉬운 계약은 처음이다. 아무리 돈이 좀 있는 사람이라도 조금이라도 현금은 제 주머니에 더 가지고 있으려 하는 법인데, 대체 어떤 여자인지. 이런 인맥을 놓친다는 건 정말 인생 최대의 실수가 될지 모른다 생각하니 진땀이 나는 기분이다. 판매왕을 만든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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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왕4 18.06.20 63 0 6쪽
5 판매왕3 18.06.20 62 0 9쪽
4 판매왕2 18.06.20 56 0 7쪽
3 판매왕1 18.06.20 82 0 8쪽
2 선물 18.06.19 111 0 13쪽
1 소설팔이 소녀 18.06.19 184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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