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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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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
작품등록일 :
2018.06.19 19:07
최근연재일 :
2018.11.20 01:5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77
추천수 :
0
글자수 :
39,395

작성
18.06.20 08:07
조회
55
추천
0
글자
7쪽

판매왕2

DUMMY

커피나 한잔 마실까 하고 공원에 있는 자판기로 갔다. 커피와 담배. 직장인들의 낮 시간을 지탱시켜주는 가장 간단하고 소소한 스트레스 해소용 수단. 자판기 앞에서 주머니를 뒤져 지폐를 막 꺼내는데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네?”


돌아보니 한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중년여인이 서 있었다. 손에 감긴 긴 줄 끝에는 여우를 닮은 흰 개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 도시에 저런 미모를 가진 여인이 어디 살고 있었지? 그래도 꽤 돌아다니는 편인데 저 정도 미모의 여인이라면 소문이라도 한번 들어봤을 법한데 기억나지가 않는다.


“그 자판기 고장났어요. 좀 전에 제 돈도 삼켜버렸죠.”

“아 그래요?”


나는 자판기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아무런 표시도 없고 버튼의 불도 다 제대로 들어와 있어서 겉보기엔 멀쩡해 보인다.


“거기 번호로 전화했는데 전화는 받지도 않네요.”

“아 고맙습니다. 생돈 날릴 뻔 했네요.”


나는 지폐를 도로 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자동차를 파나요?”

“네?”


느닷없이 낯모르는 여인에게 정체를 들켜버린 기분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이 여자 뭐지?


“아까 지나오다가 차 안을 보게 됐어요. 카달로그들이 꽤 많길래.”

“아아, 네 맞습니다.”


차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카달로그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만한 양이다. 하지만 왠지 이 여자 사람을 긴장시키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런 미인을 가까이서 접한 게 처음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화사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얼굴. 햇빛은 한번도 쐰 적이 없는 것처럼 희디 흰 피부. 가냘프면서도 남심을 자극하는 굴곡진 몸매를 드러내면서도 스포티한 골프웨어 같기도 한 운동복과 털이 하얀 여우같은 개가 묘하게 어울려 고급진 느낌을 준다.


저런 여자들은 추파를 던지라고 해도 안 던진다. 추파를 던져주길 기다리는데 익숙해서일까? 아니다. 오히려 추파를 던지면 얼굴을 찌푸리며 멀어져 갈 거다. 도도함 그 자체가 매력이라는 걸 잘 아는 여자.


“저도 차를 바꿀까 했는데...”


여자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네?”


이게 웬 떡일까? 정말 하늘에서 입속으로 곧바로 떨어진 홍시가 이런 건가?


“아, 차를요?”


“네. 조만간 대리점으로 갈까 했었는데 이렇게도 만나지는군요.”

“아, 그럼 어디 카페라도 갈까요? 여기서 설명드리기엔 좀 그렇죠?”


나는 주변을 두리번대며 다급한 마음으로 말을 끝마쳤다.


“괜찮다면 저희 집이 가까워요.”

“집이요?”


이건 좀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는 아줌마들 수법이랑 비슷한데... 나는 다시 한번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 정도 미인이라면 .... 추파라고 해도 뭐 .... 침을 꿀꺽 삼켰다.


“낯선 남자를 집에 오라고 하니까 이상하죠?”


여자가 웃는다. 아, 저건 천사의 미소다. 왜 주책없이 심장이 벌떡벌떡 뛰는 것 같지?


“네? 아니 그게...”

“저희 집에 드나드는 영업사원들은 많답니다.”

“아, 네.”


구두쇠 영감들처럼 이 사람 저 사람 간보며 서비스 경쟁을 시키는 인간 유형인가?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지금은 차 한 대라도 계약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직 결정 난 게 아니라면 내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 뭐든 해볼 때까지는 해봐야 한다.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장의 성난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으으. 이건 아무래도 하늘이 준 기회가 분명하다.


“그럼 제 차로 갈까요?”

“아니 가까운 걸요. 바로 저기라.”


여자의 흰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빨간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 밖으로 넘쳐 흐르는 듯한 아담한 단독주택이 보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카달로그라도.”


나는 서둘러 차로 가서 이것저것 여러 종류의 카달로그가 담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집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지 여자가 현관에서 흰 개의 발을 물티슈로 닦아 내려놓자 다다다닥거리며 뛰어가는 발소리만 울렸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의외의 물건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집의 널찍한 거실 한켠에는 자판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인테리어라기엔 길에서 그냥 보게 되는 그런 평범한 것이고 냉장고 대용으로 놓고 쓴다기엔 요상한 것. 집 내부 인테리어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그 물체에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저기에 왜 저런 걸 놓아두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도도하고 아름다운 이 여자의 이미지와도 너무 안 어울린다. 저건 뭐랄까, 너무 인스턴트적이다.


여자가 여자의 이미지와 딱 맞는 고급스런 커피잔을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일단 카다로그를 가방에서 꺼내 놓으려고 했는데 여자의 말이 가로막았다.


“그보다 제 말을 먼저 들어주시겠어요?”

“네?”

“전 차를 구입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여럿 소개해드릴 수 있어요. 그보단 먼저 당신에게 어울리는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하려구요.”

“제안이요?”


이런 식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 역시 공짜는 없는 거지.


“당신은 혹시 이 일이 지겹지 않은가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냥 말 그대로 자동차를 파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거나 지금 직장에 싫증이 났다거나 뭐 모든 직장인들이 한번쯤 해보는 그런 마음을 지금 느끼고 있진 않냐고요.”

“그거야 뭐..”


그런 생각을 안 하는 직장인들이 누가 있을까? 어느 회사건 싫은 사람 한두명은 꼭 있고 나 싫다는 사람도 한 두명은 있다. 거기다 실적, 실적, 실적. 자나깨나 실적 타령인 상사가 노려보고 있고 누가 더 많이 팔고 덜 팔고가 신경 쓰이는 직원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해야 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즐겁다고 말 할 자 누구인가.


“그렇죠? 전 그래서 당신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한낮 공원에 나타난 양복 입은 남자들은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여자 뭐지? 무슨 심령술사라도 되나? 혹시 미친 여자가 아닐까? 거실 한켠에 놓여진 자판기를 바라보았다. 거실에 자판기를 놓는 여자라면...


“당신도 세일즈의 귀재가 될 수 있어요.”

“하하. 네 그거야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이 여자가 지금 날 갖고 노는 건가? 갈 곳 없어서 공원에서 시간이나 때우는 세일즈맨을 보고 자신의 무료한 시간을 때우고 싶은 건가?


“난 당신을 꼭 그렇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아 정말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지? 무슨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의 애첩이라도 되나? 아니면 무슨 거대 단체의 장? 뭔가 불법적인 일을 시키려는 수작인가? 갑자기 이 집에 따라온 게 최대 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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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매왕1 18.06.20 82 0 8쪽
2 선물 18.06.19 110 0 13쪽
1 소설팔이 소녀 18.06.19 183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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