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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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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파수꾼
작품등록일 :
2018.06.19 19:07
최근연재일 :
2018.11.20 01:5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783
추천수 :
0
글자수 :
39,395

작성
18.06.20 08:19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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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7쪽

판매왕5(완)

DUMMY

계약서는 완성되었다. 계약서에 적힌 내 이름을 보더니 여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당신 이름이 인생을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건가요? 안, 강한. 강한 남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이름 때문에 가끔 듣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또 기억에 잘 남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판매왕을 만드는 카리스마 여왕에게는 마음에 안 들만한 이름이겠지.


“그런가요? 근데 성이 그런 거라. 평상시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서요.”


강한 녀석아, 강한씨, 강한군. 그렇게 불릴 땐 내가 강한 것처럼 생각되었고 일병 안강한, 하고 외칠 땐 상병들을 웃길 수 있는 약한 쫄병 같아서 다행스러웠었다. 20대 때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했지만 30대가 넘고 보니 점점 안 강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사무실 소장은 꼬박꼬박 안강한, 안강한이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그 앞에만 서면 나약한 존재가 되는 기분이다. 패기 넘치는 신입 때 안강한입니다를 외치며 여기저기 다니며 새 고객을 만들 때가 잠깐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제는 그동안 판매한 고객들의 컴플레인이 계속 누적되고 그만큼 처리해 주고 연결해 줘야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난다. 차를 파는 시간보다 그런 일들을 처리하는데 더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한 인간들이 형성한 촘촘한 그물 속에 갇혀서 허덕이며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와 압박까지 더해져 가는 중이었다. 어떤 이는 컴플레인을 걸다 못해 떠나가고 악착같이 매달려 트집에 트집을 계속 더해가는 악질들도 생겨난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호감을 가졌던 고객들마저 변질시켜버린다. 그러다보니 인간들에 대한 혐오감마저 커져가고 있다.


판매왕은 아마도 그물 속이 아니라 그물 위를 디디는 존재일 거다. 아니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매의 눈으로 고객을 낚아채는 건지도 모른다. 더 많은 고객들의 컴플레인은 어쩌고? 하겠지만 그건 오히려 그들에겐 아무 문제도 아닐지 모른다. 애초에 그렇게 차 한 대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아닐 테니. 현금으로 차를 살 수 있는 존재들, 고장 나기도 전에 바로 바로 바꿔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 그런 컴플레인을 걸 새가 있을까? 그저 처음 맞닥뜨린 저 여인 하나로 여인이 소개해 줄 사람들까지 비슷하게 규정짓는 건 위험하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판매왕에겐 뭔가 비밀이 있을 게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 그 비밀을 지금 알게 될 찰나에 걷어차 버리는 것만 봐도 난 결코 판매왕이 될 수 없는 재목이 분명하다. 결단력 없고 소심한 사람에겐 딱 그만한 정도만이 주어지는 법인지도.


지금이라도 하겠다고 할까?


“안강한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시나요?”

“네?”


여자가 말끄러미 날 바라보고 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따라 실례를 많이 하네요. 이러지 않는데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뭐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어요.”


“아, 오늘은 이걸로 되셨습니다. 차가 확보되면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판기를 다시 한번 흘깃 바라보았다. 마치 그것이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을 숨기고 있는 요술 램프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문은 가까이 있는데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일생일대의 기회, 다시는 선택할 수 없는 미지의 보물.


“한번 구경해보실래요?”


“네? 아 그래도 될까요? 궁금하긴 하군요.”


나는 자판기 앞으로 걸어갔다. 특별한 음료를 파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서 봐도 그저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음료 자판기였다.


“지폐를 한번 투입해보세요.”

“네? 지폐를요?”


뭔가 다른 게 있는 건가? 그 여자의 제안이나 지금까지의 그 모든 이상한 일들 때문인지 왠지 지폐를 투입하면 뭔가 대단한 게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지폐를 넣으면 수십 장의 판매고객 명단이 주루룩 떨어지는 건 아닐까? 판매왕을 만들어주는 자판기가 어떤 것일까 호기심이 컸다.


나는 아까 주머니에 넣어둔 지폐를 꺼내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그때 내 손이 끼어버렸다. 뭐지? 안쪽에서 뭔가가 내 손을 강하게 잡아 끌고 있었다. 아니 빨아 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빼려고 할수록 점점 더 안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어, 어 이게, 이게, 왜.. ”


“당신은 참 아까운 인재에요. 정말 우리를 위해서 잘 해줄 것 같았는데 말이에요.”


“무슨 말씀이시죠? 이게 대체 뭔가요? 팔이 아악.”


“당신은 그다지 절박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봐요. 인정하긴 싫지만 제가 잘못 봤나 봐요. 우리는....”


여자가 ‘우리는’이라고 말하며 흰 개를 바라보았다. 흰 개가 고개를 끄덕인다. 여태까지 우리라고 지칭하던 게 특정 단체 사람이 아니라 저 흰 개와 자신이라는 건가? 팔이 좀 더 깊숙이 딸려 들어갔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저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이건 대체 뭐죠? 저한테 뭘 팔라고 하려던 거죠?”


“당신은 당신 주변의 경쟁자들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요. 컴플레인만 거는 악질 고객도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고요. 당신은 좀 더 수월하게 당신의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 자판기는 당신을 위해서 충분한 조력자가 돼 줄 준비가 돼 있었는데 참 안타깝네요.”


“으악, 제발 멈춰요. 멈춰. 씨발, 멈추란 말이야.”


나의 불안과 공포와는 전혀 딴판으로 여자와 흰 개는 너무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당신 눈은 너무 선해. 그게 내내 마음에 걸리긴 했어. 아마 당신이 판매왕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하더라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아마 도망치려 했을 테지. 당신 회사 선배라는 사람. 그 사람도 끝내 그런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했지. 그냥 누리기만 하면 될 것을. 동료들이 사라지는 걸 견디지 못한 거야. 바보처럼. 인간들은 참 이상하다니까. 먹지 못하면 먹히는 것을 왜 모르지?”


내 몸은 자판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머리까지 완전히 빨려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여자가 흰 개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 미미, 우리 또 공원에 가야겠다.”


작가의말

모사이트의 ‘식인자판기’를 다룬 소설들에 영향을 받아 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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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판매왕3 18.06.20 62 0 9쪽
4 판매왕2 18.06.20 56 0 7쪽
3 판매왕1 18.06.20 83 0 8쪽
2 선물 18.06.19 111 0 13쪽
1 소설팔이 소녀 18.06.19 184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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