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도(再出道) - 다시 길을 나서다. (3)
주은화가 떠난 그날 저녁, 오랜만에 모인 연무오위 백 명이 수경관 앞의 연못 주변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염공께서 외유를 나가시는데, 수행할 사람의 지원을 받겠다.”
백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올라오는 백 개의 손. 아니, 어떤 이들은 두 손을 번쩍 들었으니, 사실상 백 스물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예상했다는 듯이 백유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렇지. 일단 사람이 많으면 눈에 띄니까, 우리 외에 다섯만 더 뽑겠다.”
“위장님들은 다 나가십니까?”
“우리가 다 나가면 니들이 따라 나서겠냐? 나랑, 상아만 나간다.”
“안 됩니다!”
피식 웃으며 꺼내는 백유의 말에, 어디선가 큰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일어났다. 청수였다.
“저희 위장님도 데려 가십쇼! 아니면 절 데려가시든지!”
“응?”
청수의 말에 백유가 고개를 돌려 청모를 향했다.
“쟤, 왜 저러냐?”
“아, 저 자식이! 저게 요즘 날 맨날 갈구더니, 이젠 아주 쫓아내려고 하네?”
“갈구긴 뭘 갈굽니까?! 주점 열겠다고 큰소리치더니, 돈은 홀랑 술 퍼먹는데 쓰고, 우리보고 술 담그랬지요? 그래서 고생해서 담갔더니, 그건 또 어느새 훔쳐 먹었답니까? 오늘 창고 들어갔더니, 밀봉은 죄 뜯겨나가고 술 냄새는 진동해, 술통은 여기저기 바닥나·······. 아, 쫌 사람답게 삽시다, 예?”
청모의 말 바로 뒤로 따라붙은 청수의 항변에 백유가 다시 청모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내가 준 돈 어쨌냐?”
“어쩌긴? 주점 냈잖아? 못 봤어?”
“술은?”
“아, 오도 않는 손님 기다리다가 술이 썩을까봐······.”
“이 쌍놈이!”
백유가 활대로 청모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정말로 술에 절었는지 피하지도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청모. 그리고 그런 청모를 노려보며, 백유가 말을 이었다.
“너 이 새끼, 너도 같이 간다. 청수 놈 데려가면 네놈이 얼마나 난장을 필지, 짐작도 안 된다.”
“아, 그럼 저희 위장님도······.”
“닥쳐!”
적사가 일어서며 꺼내는 말에 백유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짧게 대꾸했다.
“니들이 갈 사람을 어찌 뽑을지는 상관 안 하겠는데, 적주 놈이랑 적사, 적흉은 제외다. 알겠냐?”
“야, 새꺄! 내가 뭘 어쨌다고?”
“어쨌는지는 몰라도, 어쩔지는 아니까 안 된다고! 알겠으면 아가리 닥치고 있어!”
청모로 인한 분노가 적주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자,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백유의 뒤틀린 심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적주가 평소대로 마상도를 잡아갔으나, 뒤이어진 흑자의 말에 손을 놓고 말았다.
“너 따라가서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사고 치면, 상아가 가만 안 둘 거다. 오랜만의 나들이잖냐. 게다가 사람도 무척이나 적은······.”
“끄응······.”
그리고 그런 적주를 잠시 노려본 백유가 고개를 돌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갈 사람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추려내. 인원은 네 명이다!”
청모가 끼어들었으니, 한 명이 줄어 네 명이 됐다. 그리고 저마다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얘들아, 우리가 살다보면 말야, 알아서 빠져주는 미덕이 필요한 때라는 게 있잖아?”
평소엔 낄 때, 안 낄 때 분간 없이 끼어들어 이리저리 소문내길 즐기는 흑연의 말에 흑승이 받아쳤다.
“부위장님? 아시겠지만, 이런 일은 무척이나 고됩니다요. 나가시는 분들이 염공이랑 위장님들 아니십니까? 거기에 수발들 생각을 하셔야지요. 평소에 그런 일 안 해보신 부위장님 보다야, 제가 좀 더······.”
“흑위조는 전원 남는다.”
흑자가 끼어들어 한 마디 남겼고, 반론은 없었다.
“알지? 우리가 못 가면 니들도 못 가는 거야.”
적사가 으르렁 거리며 눈을 번뜩이자, 모두가 침묵하는 와중에, 적위조의 막내로 상아와 같은 나이인 적호(赤號)가 손을 들었다.
“저······, 못 가는 건 알겠는데요, 지금 들어가서 밥 먹어도 되나요?”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찾아대는 적호의 통통한 얼굴을 보며, 적사가 독기가 빠진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가라······, 가서 맛나게 먹어라.”
그 말에 신이 난 얼굴로 일어서 수경관 옆의 식당으로 달려 들어가는 적호. 그리고 그런 그를 노려보며, 적사가 다시 입을 뗐다.
“근데, 저거······. 저거, 누가 뽑았어?”
“그때 부위장이 뽑은 거 아니었수? 울음소리 우렁찬 게 쓸 만하다고.”
적흉의 말에, 잠시 과거를 회상한 적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아직 신혼여행도 못 간 거, 알고들 있지?”
이 년 전, 염무의 앞에서 상아와 백신은 정식으로 혼례를 올렸다. 처음에는 하백촌의 일이 정리되고 바로 혼례를 올리려 했으나, 하백촌의 중립파와 목융 일행을 생각해 그들이 하백촌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조용히 연무오위와 윤추가 데려온 이들만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그리고 수경관에서 조금 떨어진 별채에 신혼집을 만들었으니, 이곳이 처음 수경장에 들어 백신이 점찍어 두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던 곳이었다.
“언니! 둘이서 옥공예 배운다고 나가선, 동정호에 놀러갔다 온 거, 다 알거든요?”
상요의 말에 상매가 나서서 허리에 손을 얹고 눈에 쌍심지를 켰다.
“시끄러 이것아! 너도 백비랑······,”
“아, 언니! 가요, 가! 다녀오시라고요!”
“그럼 나 간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더니 말을 맺는 사이로 상고가 끼어들었다.
“왜 언니들끼리 맘대로 정해요? 안돼요!”
“그러게. 지들만 남자있나?”
그리고 뒤이어 끼어드는 상요와 동갑내기 상주.
“어머? 그건 또 무슨 소리?”
“응? 아, 아니야. 지들만 남자있다고 재는 게 눈꼴시잖니.”
“에이, 그게 아니었는데? 솔직히 말해 봐요, 누구? 설마······, 정말로 청수아저씨는 아니죠?”
과거에 들리던 소문이 생각나 상고가 묻자, 상주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왜 청수가 아저씨야! 백신이랑도 동갑이구만!”
“어머, 어머, 다들 들으셨어요? 아우, 망측해! 우리 몰래 호박씨 까셨어, 어머어~.”
“이년이!”
“저어~기, 상요 간단다. 알지? 부부는 한 몸.”
옆에서 떠드는 상위조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신의 말에, 백비가 끼어들었다.
“그럼 제가 가면 상매도 따라 올까요?”
“왜, 너도 가게?”
“저희야 직위우선 아닙니까? 보아하니, 청위조는 청위장님 나가시니 아무도 안 나갈 거고, 적위조는 위장님이 아무도 나가지 말라고 하신 거나 다름없고, 흑위조는 좀 전에 흑위장님이 막으셨잖아요? 그럼 저희랑 상위존데, 부위장님 나가시면 다음 순위는 저지요!”
“그래서 가고 싶다고? 근데, 너 얼마 전에 상매랑 동굴탐험했다며?”
“······어찌 아셨습니까?”
“몰랐냐? 흑위조 애들이 입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어요. 흑승이한테 자랑스레 떠들었다며? 그럼 흑위조가 다 아는 거고, 수경장 전체에 알려지는 거야 하루면 족하지.”
“니들도 들었냐?”
백비가 주위를 돌아보며 묻자, 일제히 숙여지는 고개들.
“됐다. 너도 가자. 생각해보니 우리 말고 갈 애들이 없긴 하다.”
“그렇죠?”
백비가 잠시 침울했던 표정을 펴며 기쁘게 웃었다.
이렇게 염무의 외유일행이 구성됐고, 다음 날 아침, 그 여덟 명이 조용히 수경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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