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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마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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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3.05.20 05:10
최근연재일 :
2023.05.27 17:15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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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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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05

작성
23.05.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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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위선자(2)

DUMMY

‘저건?’


금방 도착한 현장에서 반겨주는 건 웅크린 여자와 그런 여자를 습격하는 무언가였다.


고민할 틈이 없었다.

바로 운전대에서 손을 떼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자에게 회색빛의 보호막이 생겼고, 재차 달려들던 습격범은 공격이 막히자 거리를 벌렸다.

그 틈에 바이크를 몰아 양측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이어이. 기껏 보내줬더니 딴 사람을 덮친 거냐?”


습격범의 정체는 놀랍게도 아까 보내준 페리고 레빗이었다.

틀림없다.

아까 그 페리고 레빗이다.

아까 마력을 봤던 터라 확실하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내뺀 녀석의 분이 풀리기 전에 근처에 누군가가 있었고, 때마침 덮치는 현장에 녀석을 보내준 자신이 맞닥뜨릴 줄은······.


“허참. 너도 징하다?”

《이봐, 괜찮나?》


어이는 없지만 다친 사람이 먼저다.

털을 잔뜩 세운 페리고 레빗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여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습격당한 여성은 많이 놀랐는지 동그랗게 뜬 하늘색의 눈동자엔 공포가 어렸다.

나이는 이제 성인이 된 듯한 귀여운 외모였는데, 잘 보니 여성의 품에는 50cm쯤의 하얀 앵무새가 있었다.

다만 다쳤는지 축 처진 채로 힘겹게 고개만 움직여 이쪽을 쳐다봤다.


‘분명 파가이오라는 마수였던가······? 근데 이상하네. 상성이 나쁘다 하더라도 마수인데 겨우 토끼한테 2:1로 졌다고?’


이해가 안 되지만 우선 치료가 먼저다.

아르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건······?”

“[중급치유]야. 아마 전부 나았을 듯싶은데, 아픈 덴 없어?”

“아, 예.”


놀란 듯 여성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몸 여기저기를 만져봤다.

그 과정에서 찢긴 하얀 로브 사이로 맨살이 드러났다.


추행이란 소릴 들을 수 없다.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응응. 난 신사니까 말이야. 근데 꽤 피가 많이 묻었네. 마음 같아서는 [정화]로 깨끗하게 해주고 싶지만······ 그만둬야겠지?’


온갖 더러움을 배제하는 [정화]는 그 사용자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원하는 곳이 많아 자칫 더럽게 귀찮아질 수 있다며, 드물게 세스가 정색까지 하며 남발하지 말라고 충고했었다.

원치도 않는 일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다.


찝찝하겠지만 치료해준 걸로 만족하길 바라며, 아르는 또 다른 부상자의 안부를 물었다.


“앵무새 친구, 너도 괜찮아?”

《응. 괜찮아. 치료해줘서 고마워.》


꽤 청순한 목소리다.

아픈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심 제대로 치료됐나 염려스러웠는데―― 옷!’


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싶었더니 앵무새가 날아와 어깨에 안착했다.

놀랐지만 아르는 조심스럽게 앵무새의 턱을 쓸어줬다.


“아르에스라고 해. 아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난, 미셸.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할게. 도와줘서 고마워, 아르에스.》

“뭘.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이 일에 아예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


뜨끔한 심경을 감추면서 아르는 아직 가지 않고 경계하는 페리고 레빗을 봤다.


“근데 어쩌다가······. 일방적으로 질 상대는 아니잖아?”

《그게······.》


쉽게 말문을 떼지 못하는 미셸.

뭔가 사정이 있나 보다.


‘이야기는 찬찬히 들으면 그만이니까, 그전에 우선······.’


아르는 눈빛을 날카롭게 했다.


“이봐, 토끼 친구. 아직 화가 안 풀렸나 본 데, 내가 봐줄 수 있는 건 한 번뿐이야. 줄행랑치면 놓아주겠지만, 다시 덤벼들면 얄짤 없어.”


차갑게 경고했음에도 녀석의 화는 도통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결국 돌진해 온다.

공격법이라고는 그저 날카로운 이빨로 무는 게 전부임에도, 상대와의 역량 차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 성격이 본능을 이긴 전형적인 케이스다.

원래 저렇게 태어난 것이니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선택이 좀 아쉽긴 하다.


‘뭐,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 하다못해 편안히 보내줄게.’


마음을 다진 아르는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맞댔는데――


“아, 안 돼요!”


방금 구해준 여성이 양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아르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죽이면 안 돼요! 말로―― 대화로 풀 수 있을 거예요!”

“하아?”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

누구랑?


그 순간 아르의 뇌리가 번뜩였다.


‘그렇게······ 된 거였나.’


까득.

아르는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난다.

욕이라도 내뱉고 싶다.

하지만 당장 이 여자를 상대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찮다.

페리고 레빗은 지금도 시시각각 달려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여자도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곧 있으면 자신이 덮쳐진다는 걸 알면서도 비킬 생각을 안 한다.

벌벌 떨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칫.”


혀를 찬 아르는 빠르게 팽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기다렸다는 듯 팽은 곧장 사라졌고, 이내 가죽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참격이 울렸다.


뒤늦게 이변을 알아차린 여자가 돌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털썩.


팽의 발톱에서 사출된 마력의 칼날에 의해 깔끔하게 4등분이 난 페리고 레빗의 사체가 들판에 맥없이 떨어졌다.


“미안, 팽.”

《됐다. 그보단······.》


새하얀 털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돌아온 팽은 곁눈질로 넋이 나간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미셸이 곁으로 가 괜찮냐고 묻지만, 아무 대꾸도 없이 멍하니 토막 난 사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열불이 터져 저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참을 셈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에게 괜한 감정을 소모할 마음 따윈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분명 그랬는데······.


“어째서! 어째서!”


울분에 찬 외침과 함께 여자가 원망 어린 시선으로 본다.


아르로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도와줬더니 되레 뭐라 하는 꼴이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백번 양보하더라도 저딴 시선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지만 여자 쪽에서는 아니었나 보다.


“어째서! 대화로······. 대화로 풀 수도 있었는데! 굳이 살해하지 않아도 됐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여자는 마치 광란에 빠진 듯 왜 죽였냐고 따지고 들었다.

옆에서 미셸이 말려도 봤지만,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원망의 말을 내뱉기 바빴다.


‘이게 무슨 경우람.’


한숨을 내쉰 아르는 그냥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말이 통할 상태도 아닌 거 같고, 상대해봐야 힘만 뺄 느낌이다.


“팽, 가자.”

《그래. 알았――》

“――어떻게 그리 비정할 수 있죠?! 저들도 살아있는 하나의 인격체인데!”


바이크의 핸들을 돌리던 아르의 몸이 멈칫했다.


‘아아. 왜 그냥 가려는 날 붙드는 거야.’


작게 탄식한 아르는 바이크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갔다.

천천히 걷는 그 발걸음은 가벼워 마치 산책하러 나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주저앉은 채 오열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몹시도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아르에스. 샬롯은 지금 혼란스러워서 그런 거야. 나쁜 뜻이 있어서 네게 악담을 한 게 아니야! 응?》


이쪽의 분위기를 알아차린 미셸은 황급히 앞을 가로막았다.

그 간절함은 샬롯이란 여자에게 미셸이 얼마나 애정을 품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지게 했다.


‘그러하건만······.’


자칫 표정으로 감정이 드러날 뻔한 것을 참고 아르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하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냥 대화하려는 것뿐이야. 약속할게, 미셸.”


그렇다.

아무 위협도 가하지 않고 그저 대화만을 나누려는 것이다.

저 마음씨 좋은 미셸을 위해서라도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뿐이었다.


“금방 끝나.”


아르는 미셸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고는 몸을 숙였다.


제지는 없었다······.


사실은 미셸도 아는 것이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저 샬롯이란 여자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필시 오늘의 이 일로 인해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표정을 굳힌 아르는 정면으로 샬롯을 쳐다봤다.

본인의 피로 얼룩진 금발 너머로 비치는 샬롯의 글썽거리는 눈은 원한으로 가득했다.

원수라도 보는 듯이.


아르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못된 짓이라도 한 줄 알겠네. 이봐요, 난 댁을 구했을 뿐이야. 은인이라고 으스댈 마음은 없지만, 좀 태도가 너무한 거 아니야?”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됐잖아요.”

“하······. 기껏 가는 길 돌아와서 구해줬더니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야? 당신,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 줄 알고 있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살해하는 게 정답은 아니에요! 서로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으면――”

“――그래서 다치지 않고 잘 끝났어? 당신의 꼬락서니를 봐.”


여기저기 물리고 할퀴어져 찢어진 로브.

안쪽으로 보이는 옷마저도 멀쩡하진 못해 피로 얼룩지고 헤져있다.

어처구니없게 본인들보다 한참이나 약한 토끼 따위에게 당해서······.


“당신, 내가 안 왔으면 그대로 죽었을 거야. 물론, 죽든 말든 나로서는 어찌 돼도 상관없어.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면. 하지만 거기에 다른 사람을―― 미셸을 끌어들이지 마. 인격체다 뭐다 하면서 위선 떨지 말라고.”

“미셸에겐 미안해요. 그렇지만 위선이 아니에요! 저는 진심으로 마수와 마물 모두를 위하고 있어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오호, 그러셔? 근데 왜 그런 사람이 미셸의 말을 못 들으실까?”

“······.”


마침내 한시도 나불거림을 멈추지 않던 샬롯의 입이 멈췄다.

원망만이 가득했던 눈에도 처음으로 다른 감정이 깃들었다.


그것을 보며 아르는 한껏 비웃음을 담아 입꼬리를 올렸다.


“어라라~ 이상하네? 저들도 인격체라면서 오만 진상 다 떨던 사람이 어째서 바로 곁에 있는 친구의 말은 못 알아들으실까~? 진짜 너무하지 않아? 네 위선에 말려들어 죽을 뻔했음에도 감싸주는 착한 아인데.”

“위선이 아니야······.”

“뭔 소리래? 나는 착한 사람이다, 같은 보여주기식의 만족감 따위나 얻으려 위선을 떤 게 아니야? 근데 왜 못 들어?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무슨 연유로 미셸의 말을 듣지 못하냐고?!”

《······아르, 그만해라.》


오래된 인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며, 팽은 이만하고 가자며 말린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딴 건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말로만 위선을 떠는 부류가 아니다.

가만히 놔두면 분명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지금 팽이 뭐라고 했는지는 들었어? 아니. 들었을 리가 없지. 너는 마수와 마물들보다 상위의 존재인 양 내려다볼 뿐이니까. 인격체라는 것도 그래.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보다 아래로 본다는 거잖아. 제 잘난 맛에 취해서 말이야.”

“아니야······. 난 그러지 않았어······.”

“네가 그래봤자 현실이 그런 걸 어쩌냐. 부정하려거든 미셸의 말이나 들을 수 있게 된 다음에 해.”


차마 반박하진 못하겠는지 샬롯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눈물을 흘렸다.


흐느껴 우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 몸을 일으켰다.

여자를 괴롭히는 취미 따윈 없다.

괜스레 찝찝하기만 하니 얼른 돌아가기나 하자.


그렇게 몸을 돌리는데, 날개를 퍼덕이며 미셸이 다가왔다.


《저기, 미안해······.》

“아냐. 미셸이 미안할 게 어디 있어. 내가 멋대로 화났을 뿐이야.”

《으응······.》

“진짜 신경 쓰지 마. 그보다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샬롯이 기운을 차리면 돌아갈게. 아르에스랑······ 팽이라고 했지? 둘은 먼저 가도록 해.》

“그래······?”


길게 말을 끌며 아르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은 샬롯을 봤다.

그녀는 아직도 어깨를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저게 과연 금방 진정될까?

정말 진지하게 말해서, 내일까지 저러고 있을 것 같다.


‘뭐, 가만히 놔두더라도 위험한 녀석이 없으니 괜찮겠지만······.’


하지만 아무도 없는 건 아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척이 느껴진다.

마력으로 가늠하면 둘에게 어려운 상대는 아닐 것이라 판단된다.


그런데 방금 막 페리고 레빗에게 털린 전적이 있다.

샬롯이라는 위선자 때문에.


‘분명 저 멍청한 여자가 말려대는 통에 미셸은 변변찮은 반격도 못 하고 맞기만 했겠지.’


한 번이 있는데, 두 번이라고 없을까.

만약 다시 습격당했을 때 이번에는 제대로 퇴치한다는 확신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의심스럽다는 눈빛이었던 아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야, 타. 데려다줄게.”


절대 본의는 아니다.

기껏 살려줬는데 죽어버리면 꿈자리가 흉흉해서이다.


그렇게 진짜 어거지로 마음을 써줬건만······.


“야! 그만 쳐 울고 타기나 하라고!”

“······.”


도대체 뭘 잘했다고 질질 짜기만 하는 걸까.

정작 울고 싶은 건 미셸 쪽일 텐데······.


인내심의 한계다.


관자놀이에 실핏줄이 올라온 아르는 뚜벅뚜벅 걸어가 샬롯의 목덜미 옷깃을 잡았다.


뚜둑――


바로 놨다.

하얀 로브를 비롯하여, 옷 상태는 좋게 쳐줘도 넝마.

잡고 들어 올리려니 바로 비명을 지른다.


여자를 알몸으로 만들어 성추행범으로 감옥에 가고 싶진 않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하지?’


“하아······. 어떡하긴 뭘 어떡해. 하나밖에 없지.”


대차게 한숨을 쉰 아르는 마음을 정했다.


갑자기 옷깃을 잡아 놀랐는지 샬롯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어떠한 상태이든 간에 봐주는 건 이미 끝났다.

순식간에 접근한 아르는 샬롯의 어깨를 잡아 뒤로 눕히고, 이때 들려 올라간 무릎 사이에 잽싸게 한쪽 팔을 끼워넣었다.


그리고는 번쩍――


“이거 놔! 놓으라고!”


일명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진 샬롯이 저항한다.

그렇지만 이미 예상했던바, 발버둥 친다 한들 뿌리칠 리도 없으니 개의치 않고 걸어가 바이크에 올라탔다.


‘으음. 여기까진 좋았지만, 자세가 좀 그런걸? 핸들도 못 잡고.’


아르는 한동안 고민에 빠져들었는데, 문득 계속해서 저항하는 샬롯을 보고 있자니 좋은 묘안이 떠올랐다.


“네게 선택지를 줄게.”


그렇다. 묘안은 바로 떠넘기기.

샬롯 스스로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답은 하나뿐인 외길이지만.’


그렇지만 일단 본인이 선택한 것이다.

아마 지금보다는 저항이 덜 하리라.

하다못해 운전 중에 날뛰지만 않으면 그걸로 만족이다.


그러한 감정을 숨긴 채 아르는 딱딱하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줄 선택지는 2개. 하나는 이대로 계속 땡깡 부린다. 만약 이걸 선택하면 난 이대로 출발해서 카탈루크 시내를 한 바퀴 돌 거야. 나에게 안긴 너의 이 꼴사나운 모습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거지.”

“뭘 멋대로――!”

“――다른 하나의 선택지는 얌전히 내 뒤에 탄다. 이때의 메리트는 편한 탑승감과 몸을 가릴 담요가 제공된다는 거야. 더불어 신속하게 집 앞까지 배송해준다는 서비스도 딸려 오지.”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

“――참고로 미선택 시에는 자동으로 첫 번째를 선택하는 걸로 간주할 거야.”

“웃기지 마! 내려줘! 내려달라고!”


선택지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버둥거림이 심해졌다.


‘근데 어쩌라고.’


자비의 시간은 이미 지났다.

점차 발버둥이 심해지고, 얼굴에 펀치를 날리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가볍게 피하면서 카운트를 셌다.


“십. 구. 팔――”

“――내려주라고!”

“칠. 육. 오――”

“――귀가 먹었어?! 이거 놓으라고!”

“사. 삼. 이······. 음. 마지막 경고인데,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걸 명심해둬.”

“······.”


물론 농담이다.

넝마의 여자를 데리고 시내를 활보했다가 감옥 갈 일 있나?

그냥 겁만 줄 뿐이다.


하지만 이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샬롯은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일”이라는 소리에 맞춰,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 뒤에 탈게.”


작다 못해,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정확히 캐치해낸 아르는 순순히 그녀를 내려놨다.


“자자. 빨리빨리 타. 늦었다고.”

“누가 좋아서 타는 줄 알아?!”

“나라고 좋아서 태워주는 줄 아나. 넌 그냥 미셸의 덤이야. 네가 안 가면 미셸도 남을 거 아냐. 설마 또 위험에 빠뜨리려는 건 아니겠지?”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미안한 얼굴로 곁에서 날아다니는 미셸을 보더니 샬롯은 군말 없이 뒷자리에 올라탔다.

1인승이라 살짝 좁긴 했지만, 여자이고, 아르도 체구가 크진 않았던 터라 어떻게든 탈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 전에 구매해놨던 담요를 [수납]에서 꺼내주고, 바이크의 시동을 걸었다.


“출발할 거니까, 허리 꽉 잡아.”

“이, 이렇게?”

“뒤통수 깨지고 싶은 거야? 헬멧도 없는 주제에? 딱 붙어서, 반대편 손목을 잡아서 매달리란 말이야.”


미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는 건 진짜였는지, 샬롯은 고분고분 바짝 밀착하여 허리에 손을 둘렀다.

확실히 이 정도라면 떨어지진 않을 것 같다.


“미셸은 어쩔래?”

《나는 날아서 쫓아갈게.》

“알았어. 만약 힘들면 말해.”


확인을 마치고 바로 출발했다.


현재 위치는 카탈루크의 서쪽.

거기서 수도 쪽으로 가는 길목에서 벗어난 산림이었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걸어왔을 샬롯이 있는 것이니만큼 대략 6km쯤일 것이다.


그만한 거리는 순식간이었다.

나무와 암석들을 피해 가며 쾌적하게 4분쯤 나아가니 금세 서쪽 관문이 보인다.


국경 관문이 있는 동쪽과는 달리 이곳은 한 명, 한 명 검문하지 않는다.

거동이 수상한 자만 불시에 할 뿐이었다.

이미 며칠이나 바이크를 타며 들락거렸던 아르는 아무런 제지 없이 그대로 진입했다.


“여, 여기서 내려줘.”

“앙? 집까지 가줄 수 있는데?”

“돼, 됐어.”

“그래?”


도시 안이라면 딱히 위험하진 않겠지.

게다가 오늘 처음 만나는 타인에게 거주지가 알려지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아르로서도 편했던지라 순순히 바이크를 세워줬다.


그랬는데······


“쯧쯧.”


어째서 지나가던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지를 모르겠다.

그전까지는 뭔가 흐뭇하게 보고 있었는데······.


“저, 저기, 고, 고마워.”

“어? 아아. 그래. 조심해서 가라. 앞으로 개뻘짓은 하지 말고. 다음에는 봐도 안 구해줄 거야.”

“이익!”


발끈하여 뭐라고 쏘아붙일 듯싶었는데, 샬롯은 굳은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뒤도 안 보고 갔다.


《미안해, 아르에스.》

“뭘 자꾸 사과해. 미셸은 그냥 떳떳이 있어.”

《으응. 오늘은 정말 여러모로 고마웠어. 이 은혜는 언젠가 갚을게.》

“은혜라니 됐어. 언제 또 만날 줄 알고. 됐으니까 앞으로는 무모한 짓 못 하게 잘 감독해줘. 조심히 들어가고.”

《아르에스도.》


살랑 손을 흔든 아르는 다시 시동을 걸고 천천히 시내를 나아갔다.


미셸은 의리있게 끝까지 남아 배웅해줬는데, 건물에 가려 시선이 느껴지지 않게 되자 그때야 아르는 피곤한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차분히 따라와 준 팽에게 사과했다.


“담요는 다시 사다가 줄게.”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는 밥이다. 제법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러네······. 으음. 그러면 기왕 이렇게 된 거, 해독초는 내일 납품하고 오늘은 그냥 맘 편히 쉴까?”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납품에 기일은 없잖나?》

“상시 의뢰였으니 말이야.”


고민은 짧았다.

오늘은 정신적으로 지쳤다.

그냥 마음껏 놀자.

마침 가보고 싶은 점포가 있었다.


‘분명 멜리다 상회랬나? 전국에 점포를 뒀다는 초대형 상회라고.’


현재 머무는 여관 주인이 촌놈 보는 듯한 시선과 함께 말해주기로는, 없는 물건 빼고는 다 있다고 한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이래저래 뭔가를 많이 파는 모양이다.


‘뭐, 보면 알겠지. 이 마을에도 있다니까. 한번 가봐야겠다.’


“일단 밥부터 먹고.”


작가의말

약속한 연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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