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아침이었는데……

“후후. 드디어. 드디어 이날이 왔어! 이 아르에스의 시대가!”
눈을 뜨자마자 쾌감에 외친 아르에스는 곧장 일어나 끼익하는 창문을 열었다.
좋은 날씨다······.
정말 좋다. 이리 쾌청해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좋은 날씨다.
“마치 내 출발을 축복해주는 듯하네.”
쿠후후······.
음침하게 웃은 아르에스는 기분도 좋게 방을 나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룰루랄라 기분 좋게 계단을 타고 거실로 나왔는데, 예상을 깨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훤칠한 신장과 긴 흑발이 인상적인 남성으로, 그는 부엌에서 검은 눈동자만을 돌려 쳐다봤다.
“일찍 일어났구나.”
“날이 날이니까. 아빠야말로 일찍 일어났네?”
“난 원래 이 시간쯤에 일어난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남성―― 아빠.
설마하니 맨날 이렇게 일찍 일어난단 말인가?
오늘 처음 알았다.
아르에스가 제법 놀라고 있자니 아빠가 말한다.
“얼른 씻고 와라. 곧 식사 준비가 다 된다.”
그렇다.
이른 아침부터 부엌 있었던 이유는 요리.
딱히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식사의 준비는 대부분 아빠가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지는 몰랐지만······.
그럼, 엄마는 무얼 하는가?
그냥 잔다.
놀랍지만 순도 100%의 사실로, 그 사람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잠만 자다가 남편이 차려준 밥을 먹는다.
가~끔.
정말 가~끔 가다가, 아예 요리는 못하는 건지 의심될 때쯤에 한 번씩 아침밥을 차려주는 게 전부다.
그 외에는 아르에스보다도 늦게 일어날 때가 허다하다.
‘뭐, 불만은 따로 없지만.’
오히려 이대로 아빠가 계속 차려주길 원한다.
아빠에 요리는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으니까.
그에 비해······ 엄마는 형편없다.
막,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했다. 맛도 그렇고.
특히 왠지 아저씨가 차린 느낌을 받을 정도로 외견이 별로였다.
‘뭔가 반대로 됐지?’
지금도 쿨쿨 자고 있을 엄마를 떠올린 아르에스는 혀를 차고 욕실로 향했다.
“어차피 일찍 일어났겠다, 오랜만에 물로 씻어볼까?”
평소라면 생활마법 중 하나인 [청결]로 단숨에 끝낸다.
그렇지만 오늘은 새 시작이지 않은가?
새 시작을 하는 기분으로 부정도 털어낼 겸 제대로 씻어보자.
욕실은 화장실과 같이 있는 일체형으로, 아르에스는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빈 욕조에 두 번째 생활마법, [식수생성]을 써 물을 채워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생활마법인 [불씨]를 욕조 중앙에 발현했다.
물속에서 꺼지지 않는 마법의 불을 잠시 보고 있으니 이내 모락모락 김이 난다.
지금이다.
아르에스는 잽싸게 옷을 벗고, 대충 머리 위에서부터 물을 뿌리고는 그대로 욕조에 다이빙했다.
“으허······. 좋구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나의 앞날 또한 이처럼 흐리지 않고 맑게 개리라.
아르에스는 진심으로 그리여겼다.
그렇게 한동안 목욕을 즐기고 나와 [청결]을 썼다.
주르륵.
물기와 함께 밤새 생겼을 땀과 이물질들이 단숨에 발을 타고 내려가, 그대로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뽀송뽀송하니 기분 째지네.”
그야말로 산뜻한 새 출발을 알리는 시작이다.
“모처럼이니 머리도 힘 좀 줘볼까?!”
기왕이면 풀 셋팅하는 게 좋겠지.
그리 판단한 아르에스는 세면대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고놈 참 잘생겼네.”
오뚝한 코에 회색빛의 눈동자도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회색빛의 머리카락도 하늘하늘 비단처럼 쏟아져 내린다.
암만 봐도 미남의 요소들로 가득하다.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평가 받아도 분명 상위권을 차지하리라.
“그래봐야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맥 빠진 소리와 함께 순순히 인정할 만큼 아빠는 잘생겼다.
마을 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고귀한 귀공자 같다나?
물론 아르에스가 볼 때는 그냥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아저씨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다른 아저씨들보다 곱다는 느낌은 있으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억셌던 옆집 아줌마조차도 아빠 앞에선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딱히 예의상 한 말은 아닌 걸로 보이지?’
“그냥 나보다 쬐~끔 잘생긴 정도 같은데······. 정말 모르겠네. 아빠라서 그런가?”
중얼거리면서 아르에스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체크해 본다.
완벽하다.
제대로 멋지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여기까지다.
흡족한 자신의 모습에 생각을 접고, 구비되어 있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거실로 돌아오니 맛있는 냄새가 풍겨온다.
“아침부터 풍성하다? 어쩐 일이야, 아빠?”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너도 날이 날이라고 한 주제에.”
“오?! 내 생일이라고 실력 발휘 좀 한 거야?”
“아르에스. 괜한 소리는 그만하고, 다들 불러오기나 하거라.”
“에이~ 또 쌀쌀맞은 소리나 하고. 부끄러운 거야?”
“······.”
찌릿, 째려보는 아빠.
한파마저 몰아치듯 눈빛이 싸늘하다.
“아, 알았어. 다, 다녀올게.”
후다다닥.
아르에스는 거실을 가로질러 부모님들의 방과 반대편에 있는 안방으로 달렸다.
절대 쫀 건 아니다.
‘그래. 그냥 할아버지들을 깨워야 해서 갈 뿐이라고? 난 착하니까. ――아니, 그보다 저게 아들에게 향할 눈빛이야?!’
어째서 저런 사람에게 귀공자 같은 수식어가 붙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무뚝뚝한 아저씨라면 또 모를까.
투덜대면서 아르에스는 안방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밥, 다 됐어요.”
“그러니?”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건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한 젊은 여성.
금발에 붉은 눈인 이 여성이 바로 아르에스의 할머니다.
다시 봐도 젊다.
아르에스랑 비교해봐도 한 10살쯤 많아 보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는 어림잡아도 90세 이상은 차이 난다.
어쩌면 100살 이상일지도······.
그러나 딱히 할머니가 특별한 건 아니다.
마을의 할머니들보다 좀 더 탱글탱글한 느낌이지만, 대부분 다 이런 느낌이다.
‘늙는 건 160세쯤부터라고 했나? 근데, 그런 거치고는 증조할아버지도 꽤 젊지?’
진지하게 사람은 언제쯤 늙는 건가 고민하고 있으니, 할머니 너머로 한 남성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오. 잘 잤니, 아르에스야?”
쾌활하게 묻는 이 남성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할머니만큼 젊지는 않았다.
갈색의 머리카락 안으로 보이는 미간엔 살짝 주름이 잡혀있었고, 내려다보는 갈색 눈동자 주변으로도 슬슬 주름의 형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얼른 씻고 식사하세요.”
“오오. 그러마. 리아는 일어났니?”
여기서 말하는 리아 라는 건 애칭으로, 풀 네임은 이스피리아.
바로, 아르에스의 엄마를 말하는 것이다.
늘어지게 하품하며 묻는 할아버지의 말에 아르에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대로예요. 아직도 자고 있어요.”
“잠이 많은 건 여전하구나······.”
“평생 안 고쳐질걸요?”
“할머니가 깨우러 갈까?”
“아뇨. 제가 갈게요. 할머니는 천천히 준비하세요. 필리카도 제가 깨울게요.”
아르에스는 고생한다는 할아버지와 부탁한다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우선은 필리카다.
동선상 그게 번거롭지 않다.
필리카의 방은 길게 일자로 있는 복도를 두고, 아르에스의 방과는 반대편에 있었다.
‘노크 꼭 해!’란, 사춘기가 세게 온 듯한 문패가 보인다.
안타까운 녀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아르에스는 문을 두들겼다.
“어이, 필리카. 밥, 다 됐어. 얼른 일어나.”
······.
잠잠하다.
아직 안 일어났나 싶어 다시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그때, 문틈으로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씨······. 나 좀 자게 놔둬.”
“나야 상관없는데, 얼른 안 내려오면 할머니가 올걸?”
이 말은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욕설이 들린다 싶더니 이내 방문을 열고 필리카가 나왔다.
“잘 자고 있는데 짜증 나게. 네가 눈치껏 알아서 둘러대란 말이야.”
“그게 되겠냐? 너한테는 엄마일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할머니라고?”
재차 짜증 난다며 부스스한 금발을 긁적이는 필리카.
누가 성격 더럽지 않다고 할까 봐 적색의 눈동자를 희번덕거린다.
여러모로 나와 다르다.
성격만 다르다는 게 아니다.
전반적인 모든 게 나와는 차이가 있었다.
아르에스는 자신과 필리카가 다른 점들을 짚어보았다.
대표적으로는 외형.
아르에스는 전제적으로 회색 계열이지만, 필리카는 금발에 적안이다.
게다가 부모의 이름을 조합하여 자식의 이름을 짓는 이곳 전통으로는 필리카란 이름은 우리 부모님들에게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럼 필리카의 부모는 누구인가?
어째서 같이 살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너무나 당연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딸이니까.
즉, 필리카는 엄마의 여동생이었다.
아르에스에게는 이모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리카는 아르에스보다 2살이 어렸다.
뭐, 집안에 특별한 사정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그저 금실 좋은 할아버지들이 늦깎이로 필리카를 낳은 게 전부다.
아르에스의 엄마와는 대략 30년의 터울 정도인가 그럴 거다.
족보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그러나 이 집안은 원래 그런 걸 따지지 않았고, 아르에스와 필리카는 남매처럼 자랐다.
마을 자체도 다 가족 같은 느낌인지라, 평범하게 함께 딴 집 아이들과 어울려 놀거나 했다.
“그땐 오빠라면서 졸졸 쫓아다녔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뭘 쫑알대고 있는 거야? 기분 나쁘게. 그만 닥치고 좀 꺼져. 나 씻으러 가게.”
“어허. 말본새 보소. 할머니에게 이른다?”
“야!”
“어이쿠!”
대충 놀려준 아르에스는 서슬 퍼런 필리카의 눈을 피해 1층으로 내려왔다.
다음은 엄마 차례다.
“근데 내가 왜 엄마를······ 보통 반대 아니야?”
한숨을 쉬며 부모님들이 지내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숨소리.
정말 잘 잔다.
누군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내일까지 자지 않으려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아빠는 멀쩡히 생겼으면서 어쩌다가 엄마랑 결혼하게 된 걸까? 물론 그 덕에 내가 있는 거지만······, 둘이 결혼까지 가게 된 배경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네.”
철이 든 이후로 계속 들었던 의문이다.
아빠는 엄마의 어떤 점이 좋아서 결혼한 걸까?
만약 자신이었다면 엄마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딱히 엄마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아들들처럼 나름 좋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이러한 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딜 어떻게 봐도 아빠가 아까우므로······.
생각을 해 보라.
뭐든지 잘하는 아빠와 잠만 자는 엄마.
둘 중 누가 아깝겠는가?
이러하듯 답은 너무나도 뻔하였다.
혹시 약점이라도 잡힌 게 아닌지······.
그런 의심을 하며 아르에스는 쿨쿨, 꿈이라는 환상의 나라에서 영원히 못 빠져나올 것 같은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이, 엄마! 일어나, 밥 먹어.”
“······.”
역시나 강적.
한 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가 깨우면 한 번에 일어나면서 왜 나한테만 이러냐?”
뭐, 별수 있나.
오늘은 좋은 날이니 내가 참아야지.
‘이 짓도 오늘부로 끝이니까.’
마음을 넓게 먹은 아르에스는 다시 엄마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씨름을 반복한 끝에――
부르르르.
머리까지 뒤집어쓴 이불 안에서 엄마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잠잠해졌다.
“자지 마!!”
“으헛?!”
괴상한 소리를 낸 엄마가 마침내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풀석.
아니다······.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이불만 걷는 것에 그쳤다.
도로 눕더니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인내심의 한계다.
더는 참을 수 없어 엄마를 마구 흔들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라고!!”
“오, 오 분만······.”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내가 깨우는 시간만 벌써 10분이 넘었으니까 그냥 일어나!”
또다시 시작된 씨름.
엄마가 진짜로 일어나는 건 그로부터 딱 5분이 지난 뒤였다······.
“아우~ 엄마는 좀 더 상냥히 깨워줬으면 하는데.”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키고는 눈가를 비비는 은발의 소녀.
콱 쥐어박고만 싶어지는, 12살쯤으로 보이는 이 꼬맹이야말로, 아르에스의 엄마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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