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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마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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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3.05.20 05:10
최근연재일 :
2023.05.27 17:15
연재수 :
9 회
조회수 :
388
추천수 :
3
글자수 :
51,705

작성
23.05.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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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신분증

DUMMY

아르와 팽은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뒷자리에 섰다.

바로 앞의 남자는 기척에 뒤를 돌아봤는데, 곧장 팽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랬다.


작은 소동이었지만 그 탓에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도 뒤를 돌아보았고, 마찬가지로 팽을 보고는 저마다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팽이 얌전히 앉아 있으니, 이내 신기하다는 듯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음.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려나?’


이러나저러나 제법 호의적이다.

딱히 꺼린다는 느낌은 아니다.


이거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아르는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줄이 빠지고, 잠시 후 차례가 왔다.

아르는 조금 긴장하면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어흑?! 뭐, 뭐야. 마수?”


역시나.

별 의욕 없이 검문하러 다가왔던 병사는 뒤늦게 팽을 발견하고는 뒷걸음질 쳤다.


“제 친구예요. 위험하지 않아요.”

“친구? 아하~ 조련사였어?”

“그, 그런 거죠?”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원활히 통과하기 위해 아르는 일단 그렇다며 맞장구쳤다.


“알았으니까 신분증이나 줘.”

“신분증이요?”

“그래. 모험가증이라도 괜찮아.”


‘어떡한다?’


아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냐?

없어서.


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지금 처음 들었다.

만약 들고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하다.


‘그, 그냥 검사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어째서 엄마는 이런 걸 안 알려준 거야?!’


백방 까먹었을 엄마를 원망하면서 팽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내 말도 못 듣는데, 나에게 신분증이 발급될 턱이 있다고 보이나?》


한심하다는 듯 보는 팽.

도움의 손길은 끊겼다.

아니,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었다.


막다른 길이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여행의 첫 단추부터 꼬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지만, 머뭇거릴 순 없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 부닥칠지도 모르는 일, 경험이라 생각하고 대충 임기응변으로 헤쳐 나가자.


마음을 정한 아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신분증이 없는데요.”

“없다고? 잃어버린 거야?”

“아뇨. 제 마을은 워낙 산골짜기에 있는지라······. 신분증을 발급받는 곳 자체가 없었어요.”

“뭔 소리야? 그런 데가 있어?”

“놀랍지만, 네.”


왠지 촌놈 같아 부끄럽다.

맞긴 해도······.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이내 사라졌다.

병사가 의심스럽게 보는 것이었다.


“수상한데? 마수를 데리고 있는데 신분증이 없다는 소리나 하고.”

“아, 아뇨. 진짜예요. 제 고향엔 신분증 같은 게 없었다니까요?”

“자세한 건 심문 때나 말해라. 일단 구금하겠다.”

“제 말을 좀――”

“――무슨 일이냐?”


소란을 일어나자 지원 병력들이 왔다.

대표로 말을 건 사람은 지위가 높았는지, 앞의 병사는 즉시 경례하더니 보고를 했다.

방금까진 없었던 군기가 들어서는.


“신분증이 없다고 합니다.”

“재발급하면 될 일이지 않나?”

“그것이······ 신분증 자체를 아예 발급받지 않았답니다.”

“음?”


확실히 의아한 이야기였는지 남자는 매서운 눈초리를 아르에게 향했다.


“자네는 어디에서 왔지?”

“저요? 저는 저기~ 마국령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왔어요. 촌락 같은 동네라.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것도 여기 와서야 알았어요.”

“······닮았군.”

“네?”


뭘 닮았다고 하는 것인지, 남자는 아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혼잣말일세. 그보다 잠시 동행해줄 수 있겠나? 사정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어차피 신분증도 발급받아야 하고 말일세.”


남자는 대답도 안 듣고 앞장서서 나아갔다.

모였던 병사들도 각자 하던 업무로 복귀했다.


아르는 멀어지는 남자를 멍하니 봤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혹시 몰라 팽에게도 조용히 의견을 물었는데, 딱히 적의는 없다며, 편한 대로 하라고 했다.


‘여기서 도망치면 수배자가 되겠지?’


여행의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그럴 수는 없다.

아르는 얌전히 남자의 뒤를 따랐다.


남자가 향한 곳은 근처에 있던 위병소였다.

거기서 몇 개의 문을 열고 지나쳐 안쪽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앉게.”


이곳은 상대에게 익숙한―― 적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순순히 따르기엔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


방심은 곧 죽음이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렇다.

한순간의 틈이 치명적으로 이어진다.


그런 세스의 가르침을 떠올린 아르는 침착하게 감각을 넓혔다.


‘함정은······ 없나?’


위병소답게 방범용의 마법들이 여럿 있었으나, 딱히 위해를 가할 함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꼼꼼히 술식을 읽어 확인했으니 확실할 거다.


“확인은 다 했나?”

“에?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내 직업일세. 눈치가 없었으면 이곳 일은 하지 못한다네.”

“과연······.”


탐지하는 것 자체는 분명 알아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눈치만으로 알아차리다니.

이게 경험인가 싶어 솔직히 놀라웠다.


하나 배웠다며, 아르는 테이블 넘어 남자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신분증을 발급해 줄 자는 불러놨네. 그자가 올 때까지 괜찮다면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네만?”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아르는 알겠다고 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나 하지. 난 이곳, 국경 관문을 담당하는 위병소장일세.”

“저는 아르에스라고 해요. 저기~ 좀 먼 곳에 있는 외딴 마을에서 왔어요. 진짜 촌구석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곳이에요.”

“긴장하지 말게. 심문이라는 건 단순히 형식상에 불과하니.”

“어······, 그래도 돼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못된 짓을 꾸미는 놈들은 보이네. 적어도 자네처럼 허술하게 굴진 않겠지.”

“그렇군요.”


납득하고 있자니 위병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마을이라는데, 지명이 뭔가?”

“어, 나트알이라고 해요.”


처음 들어봤는지 그는 모르는 곳이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거짓말이나 꾸며낸 말이라고 의심하진 않았다.

그는 그저 본인이 모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그쳤다.


이후로는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정말 형식상이었는지, 어쩌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정도만 간략하게 물어보기만 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여행이라······. 보기보단 대범한 사내군. 젊음이 부럽기도 하구먼. 하지만 부모님들도 대단하군. 허락하기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텐데.”

“뭐어······. 꽤나 속 썩였겠죠.”

“그럼에도 허락해준 게 아닌가? 좋은 부모님이야. 괜찮다면······ 혹시 성함을 들어도 되겠나?”


팔불출이기는 하나 부모님이 자랑스러웠던 아르는 선뜻 이름을 말해줬다.

그리고 찬크에르와 이스피리아라는 이름을 듣자 위병소장의 눈이 커졌다.


“역시나!”

“어라? 저희 부모님을 아세요?”

“아······. 치, 친한 사이라는 건 아니네. 그······ 자네의 부모님들은 여러모로 눈에 띄잖나? 그래서 몇 차례 검문하다가 안면을 텄지.”


확실히 그의 직업을 생각해보면 안 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190cm나 되는 장신의 남자가 훨씬 작은, 가슴팍에도 안 오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와 부부라고 하면 누구라도 검문할 테니······.

열이면 열, 범죄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바로 얼굴을 굳히고 진지하게 검문하는 병사들이 바로 그려질 정도였다.


어쩌면 관문을 지나갈 때마다 검문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알려지고, 위병소장의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직접 심문했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안면을 튼 게 아닐까······.


“참 신기한 인연이네요. 마을을 나오자마자 부모님과 아는 분도 만나고. 근데 제 얼굴이 그렇게 닮았나요? 저는 잘 모르겠던데.”

“닮긴 닮았네. 처음에는 머리카락의 색이 달라서 긴가민가했지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자네랑 같은 회색 머리의 소년이 함께 있었던 게 떠오르더군.”

“아. 그거 제 형일 거예요.”


희한한 소릴 들었다는 듯 위병소장이 고개를 꼬았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던 아르는 설명을 보충했다.

23살의 터울이라고.


위병소장은 그러냐며 주억거렸다.

다만 뭔가 납득이 안 간달까, 기색이 제법 미묘했다.

그렇지만 30여년 전의 부모님들과 형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곧장 잊고 빠져들었다.


“마차요?”

“그래. 마차를 타고 왔었지. 무려―― 아. 드디어 온 모양이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있으니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 청년입니까?”

“그렇다네.”

“저, 이분은······?”

“모험가 연맹의 사람이네. 타국에서 온 자네에게는 이쪽의 신분증이 여러모로 편할 듯싶어서 그를 불렀지.”

“아아. 그렇군요.”


오늘 신분증의 존재를 알게 된 아르로서는 뭐가 좋은지, 어떠한 신분증을 받아야 메리트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위병소장과 대화를 나눠본바, 됨됨이가 좋은, 믿을 만한 사람 같다.

그의 판단을 따라도 문제는 없겠지.


간단하게 소개를 마치고, 연맹에서 파견 나온 남자는 테이블에 금속의 정사각형 판을 내려놨다.

금속판은 동그란 원과 길쭉한 작은 원이 음각으로 파여있었다.


“여기다가 손을 올려주시게.”


아르는 시키는 대로 동그란 원 쪽에 손을 올렸고, 남자도 그 옆에 길쭉한 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금속판이 마력을 뽑아내려 든다.


‘뭐야, 이거 마도구였어? 내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라면 꽤 비싸겠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신분증을 발급하는 마도구가 허술한 싸구려 일리가 없으니 말이다.

보안 때문이라도 훨씬 공을 들였을 것이다.


딱히 위험성은 없는 듯하다.

뽑아내려는 마력도 극히 소량인 듯하니 아르는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음. 확실히 모험가로 등록한 전적이 없군요.”


남자의 말엔 확신이 가득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뽑아간 마력으로 개인을 특정하는 기능이 있나 보네.’


마력은 사람마다 각각 그 특징이 조금씩 다르다.

이를 통해 개인을 특정해 낼 수 있고, 이 때문에 신분증에도 활용하는 모양이다.

물론 마력의 특징을 읽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예민한 감각이 필요했고, 그걸 해낸 저 금속판은 범상치 않은 마도구라는 걸 증명하는 것과도 같았다.

분명 엄청 비쌀 거다.


“그럼, 등록을 진행하겠습니다.”

“부탁하지.”

“부, 부탁합니다.”


확인을 마친 남자는 잠시 손을 떼라고 하더니 이름과 출신, 나이 등 신상정보를 물었다.

한 번 등록을 마치면 다시는 바꿀 수 없으니 솔직하게 알려달라고 했는데, 한편으로는 거짓으로 말하면 후에 불이익이 올 수 있다며 겁을 주기도 했다.


딱히 켕길 만한 건 없다.

불이익도 있다는데 거짓 없이 모두 사실대로 말해줬다.


“카니스 루프스인가······. 이쪽은 어쩔 거지? 종마수로 같이 등록할 텐가?”

“종마수?!”


종마수는 길들인 마수라는 소리.

놀라 외쳤던 아르는 순간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아니, 팽은 내 친구야. 종마수 같은 걸로 등록 안 해.”

《아르, 난 상관없다.》


아니. 이건 양보할 수 없다.

팽의 말을 무시하고 똑바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도 피하지 않고 묵묵히 시선을 마주했다.


신경전을 벌이는 듯한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가 이내 남자 쪽에서 먼저 고개를 돌렸다.


“알겠다. 따로 등록하도록 하지.”

“괜찮은 건가?”

“예. 사실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요즘에는 마수와 마물도 인격체라는 목소리가 커져서 말이죠. 조련사들도 최근엔 종마수를 각자 등록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물론 새로 등록하는 것이니만큼 랭크를 다시 올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요.”


그렇게 말한 잠시 후 남자는 다시 손을 올리라고 했다.


아직 화가 덜 풀렸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뿐.

일부러 시비를 걸려던 게 아니었던지라 아르는 지시에 따랐다.

쪼잔하게 굴지 않고.

남자도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손이 있던 위치에 노란 플레이트가 있는 목걸이를 올렸다.


이번에도 금속판에서 소량의 마력을 뽑아가고, 조금 기다리니 길쭉한 원의 음각으로 파인 부분에서 빛이 번쩍였다.


“다 됐네.”


남자가 노란 플레이트의 목걸이를 건네줬다.


“재발급엔 원금화 1닢이 드니 관리에 유의하게.”


‘켁! 비, 비싸!!’


어지간한 서민들의 일주일 치 생활비란 가격에 덜컥 겁이 난 아르는 재빨리 목에 걸어뒀다.

그러던 와중 남자가 팽에 대해서도 물어왔다.

아무래도 그는 팽의 말을 못 듣는 듯했는데, 대신해서 팽의 신상정보를 말해줬다.

나이는 친구라고 했던 터라 대충 비슷한 21살로 했다.

뭐, 크게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팽도 똑같이 앞발을 올려 신분증을 만들었다.

건네받은 목걸이는 아르가 직접 팽의 목에 걸어줬다.

최근에는 마수도 개인으로 등록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팽의 것은 줄이 제법 길어 여유롭게 걸 수 있었다.


일을 마친 남자는 금속판을 챙겼고, 나머지 자신이 하겠다는 위병소장의 말에 그는 알겠다며 사무실에서 나갔다.


“자. 신분증 발급은 끝났네. 둘 다 모험가가 된 걸 축하하지.”

“저 모험가가 된 거예요? 이렇게 쉽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네. 신분증에 딸려 온 덤 정도니까. 당연히 강제하는 것도 없고 말이야.”

“그런가요······. 근데 이게 어떻게 신분증이 되는 거예요?”

“말보다는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 플레이트에 마력을 주입해 보게.”


시키는 대로 아르는 목에 걸어 둔 플레이트에 마력을 주입해봤다.

그러자――

반짝.

플레이트의 위로 화면이 떠올랐다.


「이름 : 아르에스

계급 : 노랑

나이 : 16

출신지 : 나트알

발급 : 카탈루크 지부」


참고로 카탈루크 라는 건 국경 관문이 있는 이 도시를 말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지도와도 일치한 지명에 제대로 왔다며 살짝 안심했다.


“오오. 이것도 마도구였구나! 괜히 재발급이 비싼 게 아니었네?”


놀라는 반응이 재밌었는지 위병소장은 슬쩍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무안했던 아르는 목걸이에서 손을 뗐다.

마력이 끊기자 떠올랐던 화면은 사라졌다.

팽도 마찬가지.

그도 따라서 화면을 띄웠는데, 마력을 끊자 사라졌다.


“저기, 이거 혹시 본인만 쓸 수 있는 건가요?”

“그렇지. 플레이트는 자신의 마력 외에는 반응하지 않네.”

“아하~ 그래서 신분증으로 쓰이는구나······.”

“그런 거라네. 남의 손에 들어가 봐야 쓸 데도 없는 물건이지. 그래서 도난의 위험은 별로 없지만······, 간혹 노리는 놈들도 있긴 하니 간수 잘하게.”

“네.”

“더 궁금한 게 있나?”


좀 생각해봤으나 딱 떠오르는 건 없었다.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겠다고 대답하니, 그러냐면서 위병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냥 계셔도 되는데.”

“아니. 모처럼 아는 사람의 아들을 만난 게 아닌가? 겨우 문 앞까지도 못 가려고.”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 위병소장.

거기에 대고 뭐라 대꾸하긴 힘들었고, 아르는 함께 위병소 밖으로 나왔다.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신경 써 주시고.”

“됐네. 자네 어머님에게 신세를 진 게 있어서 갚았을 뿐이야.”

“그래요?”

“개인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네. 그보다 이제 어디로 갈 건가?”

“수도로 가보려고 해요.”

“혹시 베르다드 학원에 가려는 건가?”

“입학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어머니랑 형이 다녔었다니까 구경이나 해 보려고요.”

“그런가······. 아. 붙들어서 미안하네. 어서들 가게.”

“네. 배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가게. 부디 자네들의 여행길에 축복이 있길 빌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위병소장.

처음 보는 자신들에게, 그저 지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리도 챙겨 준 그에게는 아무리 감사를 전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지만 계속 꾸물거릴 순 없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담아 아르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자고로 작별은 깔끔할수록 좋다.

그게 언젠가 재회했을 때 어색하지 않다.


고개를 든 아르는 그러한 스승의 조언에 따라 돌아보지 않고 팽과 관문을 나아갔다.


아치형의 관문은 어둑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걸으니 이윽고 빛이 내리쬐고, 드넓은 관문 도시―― 카탈루크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이게 도시!’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대도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을 밖의 풍경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좋나?》

“응!”


깔끔하게 돌로 포장된 도로, 마을과는 다른 양식의 건물들, 벽 하나를 통째로 유리로 만든 가게의 화려함과 셀 수도 없이 무수히 많은 사람이 쭈욱 이어지는 광경 등등.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응, 만을 연신 토해내기만 할 뿐이었다.

촌놈처럼 보이는 모습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어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팽. 나, 여행을 떠나길 잘한 거 같아.”

《이제 첫걸음을 뗀 주제에 뭘 벌써 다 끝났다는 듯이 구는 거냐?》

“그렇지······. 앞으로는 더 엄청난 걸 보게 되겠지?”

《뭐, 그러겠지.》

“기대되네.”


아르는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말한 팽에게 대꾸하며 그를 내려봤다.


“어울려 줄 거지, 팽?”

《애초에 그럴 셈이었다. 뜻하지 않게 51살이나 회춘도 하게 됐고.》

“고마워.”


망설임도 없이 즉답하는 팽에 모습에 미소를 그린 아르는 멈췄던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힘찬 그 걸음은 얼마 못 가서 우뚝 멈췄다.


‘앙? 내가 뭘 들은 거였지?’


“팽, 지금 뭐라고?”

《따라간다고 했다. 한 번 어울린 거, 어디까지고 함께 가주지.》

“그건 고마운데, 그거 말고. 뒤에 더 있었잖아.”

《아~ 회춘했다고?》

“어. 그거.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다. 72살인 내가 21살이 되었는데, 그게 회춘이 아니면 뭔가?》

“치, 칠십?”

《그렇다만?》

“정말······? 농담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봐왔으면서, 이제 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아니······, 확실히 팽은 아장아장 걸어 다녔을 때부터 변한 게 없긴 했다.

그때도 지금만치 컸고, 성격도 사근사근하여 어른스러웠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6~7살쯤 많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리도 많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안 했었다.


‘이, 이게 종족 간의 차이인가? 그러고 보니······.’


문득 나트알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좀 잘생기지 않았냐는 질문에 어째서 다들 한결같이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답변이 돌아왔는지를······.


그렇다.

마수와 마물은 사람의 생김새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냄새나 형태 등으로 개인을 구분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사람이 늙은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쭉 같이 생활해 온 게 아니고선.


그 반대라고 다를 거 없다.

나트알에는 팽 말고도 카니스 루프스가 더 있으나 구분만 가능했다.

누가 더 연장자인지는 알 겨를이 없고, 다 똑같이 멋진 늑대였다.


《날이 진다. 멍청하니 있지 말고, 어서 일이나 구하러 가자. 스테이크를 잊은 건 아니겠지?》


일방적으로 말하고는 훌쩍 앞서가는 팽.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르는 생각했다.

앞으로 펼쳐질 이 여행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과연 자신은 형보다―― 부모님과도 비슷한 연배인 팽에게 편안히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여행의 동반자가 아니라, 감시자였던 거 아냐? 혹은 보호자였거나······.’


원망하진 않는다.

어쨌거나 마음을 써준 것이니.

그렇지만 조금은 세스가 얄밉다고 생각하며 아르는 터벅터벅, 힘없이 앞장서는 ‘형님’을 따라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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