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특출난

로또방 사장이 번호를 외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특출난
작품등록일 :
2023.07.19 19:22
최근연재일 :
2023.08.18 09:40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128,752
추천수 :
2,830
글자수 :
189,095

작성
23.08.15 18:00
조회
1,742
추천
62
글자
12쪽

Ep 7 - 길라잡이

DUMMY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2년 직후.

아산의 부동산 가격은 지속적인 상승을 시작했다. 물론 아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작년 한 해 전국의 땅값 상승률이 3.43%인데도 불구하고 아산은 8.73%가 올랐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도 신도시다.

더불어 참여정부가 내세웠던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 공약 때문이다.


‘부동산에 약세였던 충남 지방의 가파른 가격 상승.’


개중에서 가장 수혜를 받은 지역 중 한 곳이 바로 아산이었다.

고속철도 개통과 신도시 개발.

이 두 가지가 겹쳤는데 값이 안 오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심지어 일주일 전에 개통한 KTX역이 신도시 개발 지구에 포함된 형태.’


배방장재지구는 아산신도시 1단계 지역으로, 작년 연말부터 시작해 2010년 말에나 끝나는 신도시 사업이다.

2007년에는 디스플레이 사업체가 자리한 탕정면도 2단계 지역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그러니 아산의 땅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다행히도.

백유진이 매입한 신화리와 역리라면 얘기가 달랐다.


‘쓸모없는 땅.’


그걸 증명하듯 이미 2개월 전부터 걸린 아산시의 투기과열지구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었다.

시청 공무원들의 표정에 ‘어째서’라는 단어가 빤히 보이는 것도 그래서였다.

물론 그들의 표정이나 반응을 즐기고자 찾아온 건 아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입술을 뗐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슨 부탁 말씀이십니까?”

“신화리와 역리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있습니다. 다만, 아산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도움이요?”

“네. 그러니까······.”


잠시 눈치를 살피며 뱉은 백유진의 말은, 부탁과 거리가 멀었다. 정확히는 요구에 가까웠다.


“아산종합운동장. 저희 쪽에 지어주십쇼.”

“······.”

“······.”


잠깐 흐르는 정적.

이후 기획경제국장은 뇌를 거치지 않은 제 속마음을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이 새끼 미친놈인가······?”


시장님께 이 사안을 도대체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도통 해답을 찾지 못하는 곽재균 국장이었다.


* * *


아산시 영인면.

백유진이 집중적으로 매입한 지역은 당연히도 영인면 역리와 신화리였다.


‘로또방을 기준으로 남과 북.’


대부분이 공장 부지이며, 그나마 북쪽 신화리에는 주거단지와 초등학교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크기가 넓을 리 없었다.

초등학교 전체 학급의 인원수가 두 자릿수이니 구태여 다른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그렇기에 이곳의 땅값은 저렴할 수밖에 없었다.

김철민이 호들갑을 떨며 우리 가게로 달려온 이유도 연관이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 얘기 들었어? 명 씨 이번에 땅 팔았대!”

“명 씨 아주머니요?”

“그래, 그 명진숙 씨가 땅을 팔았다네.”


명진숙은 근방에서 유명한 지주였다.


‘장수상가 사람들 제외하면 그다지 친분이 없는 철민 아저씨도 아는 정도니까.’


언젠가는 신화리의 땅값이 오를 거라며, 꽤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명진숙이 땅을 팔았으니 김철민한테는 속보였다.


“나한테도 연락하겠지?”


그가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강호준이 궁금하다며 물었다.


“아저씨는 왜요?”


김철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자신만만한 투로 대답했다.


“저번에 나도 땅 사뒀거든. 아! 고맙다, 유진아.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사장님한테는 또 뭐가 고맙고요?”

“저번에 그 닥터무비스인가 무비닥터스인가. 거기서 사기당할 뻔한 돈으로 구매한 거거든.”


백유진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중 하나다.

따로 얘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신화리와 역리의 토지를 알아보며 그가 200평 남짓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유진은 그의 땅을 구매할 생각이 없었다.


‘구매할 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지.’


저번 투자 사기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도저히 투자와는 거리가 먼 김철민이다. 백유진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쪽 땅인데요?”


혹여 동명이인인가 싶어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김철민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와우리 가는 길목 쪽.”


도대체 왜 하필 거길 사냐고.

백유진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딱히 토지에 관심이 없는 강호준마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거기가 팔려요? 그쪽 다 폐공장 부지잖아요. 그나마 남아 있는 공장이랑 주거지는 신화초등학교 북쪽이랑 동쪽인데······.”


김철민이 구매한 토지는 서쪽이다. 강호준의 말처럼 폐공장이 즐비한 곳.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김철민이 어깨를 으쓱였다.


“야. 지금 신화리에 소문 쫙 퍼졌어. 어떤 기업이 투자 시작해서, 아주 신화리, 역리, 와우리 다 싸잡아서 발전시킨다고.”


그 어떤 기업의 당사자.

백유진은 후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지금 그의 지갑 사정이 좋다지만, 와우리까지 구매하는 건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토지 구매야 쉽지.’


애초에 싸니까 문제 될 거 없다.

하지만 그 위에 건물을 짓는 일.

심지어 각 섹터를 나눠 차별화를 두고 발전시키려는 게 현재 백유진의 계획인데, 그걸 다 이루기에는 한푼 한푼이 아까웠던 탓이다.


‘이게 뭐 단기적으로 끝낼 수 있는 투자도 아니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계획.

아무리 백유진이라도 쉽사리 돈을 쓰기에는 무리인 감이 있었다.

물론 김철민을 위해서라면 값을 더 주고라도 구매해 주고 싶지만, 최근 박정과 했던 통화를 떠올리며 급히 마음을 접었다.


- 제발! 제발 좀 그만! 무슨 마트 왔습니까? 남들 과자 고를 때 왜 유진 씨는 땅이랑 건물을 고르냐고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쩔 수 없지만, 한 번만 더 자산의 2할 이상을 마음대로 쓰면 당장 재무 업무는 손 놓겠다고 엄포했던 박정이다.

뭐, 말은 그렇게 해도 부동산 관련 업무를 위해 곧장 아산으로 내려와 대리인으로 직접 토지를 매입하기도 했다.


‘철민 아저씨가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르는 것도 그래서고.’


백유진은 자신의 명의로 새롭게 법인을 설립했다.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된 이번 법인에는 당연히도 사내이사가 필요했고, 그 인물은 여의도 황금부동산에서 채용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내게 미안하다며 정장을 선물했던 황금부동산의 대표를 통해 이 자리를 맡아줄 인물과 연을 맺었다.


‘운이 좋았지.’


대한민국의 부동산 호황기.

물론 2004년에 들어서며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이 업계는 십수 년간 전망이 밝은 상태였다.

백유진이 미래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 부동산 관계자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아산 중심으로 부동산 사업을 진행할 능력자를 구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가뜩이나 신화리랑 역리 주변인데 더 그랬지.’


하지만 황금부동산을 통해 이력이 괜찮은 인물을 소개받았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이토록 빠른 기간에 토지와 건물을 매입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제 허물 건 허물어야지.’


하지만 아직 계획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지역 발전을 위해 조금 더 완벽한 형태를 구축해야 했기 때문에 황급히 처리하기보단 완벽히 처리하는 게 나을 터.

백유진은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 전문가들과 함께 계획을 수렴하기로 했다.

아직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했던 장장수는 뒤늦게 가게에 들어서며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뭐야, 이놈아. 니가 여기 왜 있는 겨?”

“주인이 자기 가게에 있겠다는데 또 뭐가 문제에요.”

“아니, 아니. 오늘 월요일이잖어.”

“당분간 여기서 지낼 겁니다.”

“문디자슥. 서울 가게는 벌써 말아먹은 겨?”


가슴 후벼 파는 말을 하면서 너무나 밝게 웃는 장장수였다.

백유진은 피식 미소 짓고 고개를 저었다.


“거기는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가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퍽이나 잘 나가겠다.”

“진짜 잘 나가는데.”

“허. 거기 이름이 뭔디? 가게 이름도 제대로 안 알려 주는 녀석이 무슨.”


장수푸드라고 어떻게 말해주겠냐고.

백유진은 목 끝까지 올라왔던 속마음을 간신히 삼켰다. 알려주는 건 솔직히 별다른 문제가 안 되지만, 장수푸드의 규모를 생각하면 장 노인이 놀라 자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본금 35억에 직원만 125명.’


고작 몇 개월 사이.

장수푸드의 몸집은 제법 커진 상태다. 정확히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서울경기 취약층까지 돌보기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지.’


물론 사회적 활동을 위해서만 몸집을 키운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장수푸드의 급식이 건강을 생각하는 유기농 식자재를 사용한다는 게 여의도에 퍼져 거래처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여의도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S 그룹의 구내식당까지 진출했다.

이러니 커질 수밖에 없던 거다.

그런데 이 사실을 노친네한테 밝힌다?


‘안 되지. 절대 안 되고말고.’


오지랖 하면 장장수다.

괜히 말했다가 잘 나가는 사업 내팽개치고 왜 아산에 있냐며 혼이 날지도 모를 일.

백유진은 이곳에서의 업무가 얼추 끝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감추기로 다짐했다.

다행히도 장장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알겠다며 휙 돌아섰다.


“벌써 가요?”

“오늘 약속 있다 이놈아.”

“약속이요? 아저씨가 뭔 약속······ 뭐야. 그러고 보니 옷차림 오늘 그거 뭔데?”


등산복 대신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에 의아했다.


“아니. 가족 제사 지낼 때도 등산복 입고 있던 사람이 무슨 정장이야?”


내가 장 노인의 정장 차림을 몇 번이나 봤었지?

지난 세월을 다 합쳐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그러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장장수는 등산 스틱 대신 제 손을 허공에 휘젓고는 사라졌다.

끝내 대답 없이 사라진 걸 보면 구태여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됐다. 뭐 특별한 일이면 이미 말해줬겠지.’


아무리 가족이어도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법.


‘그래도 정장 오랜만인데. 나중에 상가 사람들이랑 다 같이 사진관이나 들러야지.’


가벼운 생각을 끝으로 부동산 계획과 관련된 통화를 나누고자 밖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백유진이 장장수에 관하여 완벽히 잊었을 때.

장장수는 ‘아산시’ 배지를 달고 있는 한 남성과 독대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그려.”


장장수의 인사에 상대 중년 남성.

아산시장 송상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 장장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오랜만이지. 어디 박혀서 나오질 않는데 어떻게 보겠어.”


송상길은 장장수의 몇 없는 친우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서울 태생인 장장수와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지만, 아산으로 내려오며 연이 닿아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던 두 사람이다.

분명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는 흐르지 않았다.

장장수는 그의 말에 도리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놈아. 내가 어디 박혀서 못 만나는 겨? 니놈아가 쓸데없이 시장 노릇 하니까 그런 거지.”

“쓸데없는 건 서울 사람이 되지도 않는 사투리 쓰는 거고.”

“크, 크흠!”


뼈를 때리는 송상길의 발언에 장장수는 헛기침과 함께 말을 돌렸다.


“됐고! 갑자기 무슨 일인 겨?”

“그냥 얼굴이나 보자고 부른 거지. 당선됐을 때 본 게 마지막이니까······ 벌써 2년 전이다.”

“시간 참 빠르네.”


지방선거가 벌써 2년 전이라니.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장장수는 눈빛을 바꾼 채 송상길을 바라봤다.


“얼굴만 보자고 부른 건 아닐 터인디. 대체 무슨 일인 겨?”


서로 허물없는 사이였기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누구보다 송상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장장수는 이번 만남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송상길이 너는 못 속이겠다며 너스레를 떨고는 말을 이었다.


“자네 백유진이라고 알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로또방 사장이 번호를 외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1 23.08.21 395 0 -
공지 연재시간 공지 < 오전 9시 40분 > 23.07.27 3,547 0 -
32 Ep 8 -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3 23.08.18 1,380 52 12쪽
31 Ep 8 -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1 23.08.17 1,622 55 13쪽
30 Ep 7 - 길라잡이(完) +2 23.08.16 1,796 62 13쪽
» Ep 7 - 길라잡이 +3 23.08.15 1,743 62 12쪽
28 Ep 7 - 길라잡이 +3 23.08.14 2,036 67 12쪽
27 Ep 7 - 길라잡이 +1 23.08.13 2,232 67 12쪽
26 Ep 7 - 길라잡이 +1 23.08.12 2,467 57 13쪽
25 Ep 6 - 그날을 위해(完) +3 23.08.11 2,622 75 13쪽
24 Ep 6 - 그날을 위해 +4 23.08.10 2,750 73 14쪽
23 Ep 6 - 그날을 위해 +2 23.08.09 3,015 74 13쪽
22 Ep 6 - 그날을 위해 +2 23.08.08 3,243 75 12쪽
21 Ep 6 - 그날을 위해 +3 23.08.07 3,480 83 14쪽
20 Ep 5 - back to back(完) +4 23.08.06 3,766 76 12쪽
19 Ep 5 - back to back +2 23.08.05 3,637 82 14쪽
18 Ep 5 - back to back +3 23.08.04 3,881 84 14쪽
17 Ep 5 - back to back +3 23.08.03 4,098 77 14쪽
16 Ep 4 - 거기가 어딘데?(完) +2 23.08.02 4,200 84 12쪽
15 Ep 4 - 거기가 어딘데? +5 23.08.01 4,290 96 12쪽
14 Ep 4 - 거기가 어딘데? +2 23.07.31 4,362 96 13쪽
13 Ep 4 - 거기가 어딘데? +4 23.07.30 4,558 97 15쪽
12 Ep 4 - 거기가 어딘데? +3 23.07.29 4,807 103 13쪽
11 Ep 3 - 위대하고 찬란한(完) +4 23.07.28 4,933 106 13쪽
10 Ep 3 - 위대하고 찬란한 +3 23.07.27 4,951 108 15쪽
9 Ep 3 - 위대하고 찬란한 +3 23.07.27 4,987 104 14쪽
8 Ep 2 - 불쏘시개(完) +3 23.07.26 5,131 106 13쪽
7 Ep 2 - 불쏘시개 +2 23.07.25 5,148 107 12쪽
6 Ep 2 - 불쏘시개 +3 23.07.24 5,250 109 15쪽
5 Ep 2 - 불쏘시개 +4 23.07.23 5,533 106 13쪽
4 Ep 2 - 불쏘시개 +6 23.07.22 6,115 103 12쪽
3 Ep 1 - 잊지 못할 번호(完) +7 23.07.21 6,439 122 14쪽
2 Ep 1 - 잊지 못할 번호 +8 23.07.20 6,621 133 14쪽
1 Ep 1 - 잊지 못할 번호 +3 23.07.20 7,620 12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