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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출난

로또방 사장이 번호를 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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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7.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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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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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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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 - 불쏘시개

DUMMY

IMF 직후.

대한민국에는 IT 붐이 일어났다.

경제가 휘청이던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신사업으로 선택한 게 바로 IT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닷컴버블이 터지기 전이었고, 미국 시장에서 IT가 승승장구했으니 당연했다.

IT 강국과 벤처기업, 벤처붐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도 그 시기부터다.


‘이때 생겨난 포털사이트가 너무 많아서 다 세기도 힘들지.’


끝까지 살아남는 건 극히 소수다. 그마저도 한두 기업이 독점하는 수준이고.

여하튼.

각 포털사이트에서는 고객을 끌어들이고자 갖은 방법을 활용했었다.

플래시 게임을 넣는다거나, 묻고 답하는 질문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이렇듯 수많은 시스템 사이에서 백유진이 죽기 직전까지 명맥을 유지한 건 동호회 시스템이었다.

인터넷상에서의 표기명은 카페.


『로또㉦ㅏRanⓖ ^_^♥』


“······.”


시대상이 여실히 드러나는 카페명을 바라보던 백유진은 그들과 동화돼 ‘부㉨ㅏ’란 별명으로 가입해 게시글을 확인하고 있었다.


[우리 로또사랑 가족분들! 오늘 다녀오셨나요?]

[아, 신화역이요?ㅋㅋ 당연히 다녀왔죠! 아침부터 사람 엄청 많더라고요.]

[대박! 저도 남편이랑 가서 사진도 찍고 왔어요! 다들 사진 남기셨죠?]


신화역.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서, 신화리와 역리를 직통으로 이어주는 도로에 있어 생겨난 별명이었다.

개업하자마자 역대 최고 금액의 1등 당첨자가 나와서 중의적인 의미로 지어졌단다.

분명 가게의 미래를 생각하면 좋은 반응이었지만, 백유진은 웃지 못했다.


“그냥 적당히 잘되라고, 적당히.”


오늘 아침까지 정말 기뻤다.

솔직히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뻤다.

20년간 쌓였던 체증이 싹 내려간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래서 고달팠다.


“젠장. 종이 뽑아주다 탈진 온 건 살다 살다 처음이네.”


유명한 가게 주인들 서비스가 왜 그 모양인지, 표정은 왜 또 그런지.

백유진은 오늘 제대로 깨달았다.

애초에 웃을 수가 없는 거다.

너무 바빠서 진짜 뒤질 정도로 힘든 사람이 어떻게 웃을 수 있으랴.


‘안 되겠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지.’


백유진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딱 봐도 바이럴이네.]

[행운은 무슨ㅋ 다음 주 봐라. 거기서 당첨자 나오나.]

[주인 싸가지 없음.]


악질 네티즌에 빙의한 백유진이 쉬지 않고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빠르게 답글이 올라온다.


[바이럴? 같잖은 영어 씨부리지 마세요. 여기서 바이러스 얘기가 왜 나옴.]

[마음이 그리 가난하신데 어째서 닉네임은 부자신가요? 참 슬프네요.]

[너희 부모님 싸가지는 생각해 봤고?]


현재 신화역의 입지가 가히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실드러들은 압살할 수준이다. 그제야 백유진은 포기했다.


“하아, 됐다. 잘되면 좋은 거지.”


백유진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포털에서 한 회사를 검색했다.

바로 H 엘리베이터다.


‘내가 아무리 수박 겉핥기로 주식을 배웠다지만······.’


고작 반년 사이에 20배 가까이 떡상한 레전드 사건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비전문가였기 때문에 자극적인 이 사건은 또렷이 기억했다.


‘시삼촌과 조카며느리의 경영권 분쟁.’


거기다 외국 거대 자본까지 끼어있다고 나중에 밝혀지는 사건이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조카며느리가 친정의 도움으로 극복하는 완벽한 스토리.


‘주말연속극 왜 보냐고.’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가 현실에 있는데.

현재까지는 잠잠하지만, 다음 달 말을 기점으로 H 엘리베이터의 분쟁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말인즉슨, 서로 치고받으며 주가가 미친 듯이 상승한다는 뜻이다.

아직 한 달의 여유가 남긴 했어도 시간이 부족했다.


‘당장 내일 시작해도 모자라.’


H 엘리베이터의 현 주가는 2,000원 남짓. 주식을 한 번에 매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 우선 직원부터 뽑자.

그래야 가게도 운영하고 주식도 하지.


* * *


작은 고시원.

스무 살의 강호준은 오늘.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짐을 정리했다.

공부를 못했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다만 그의 집안 환경상 입시에 전념할 수 없었을 뿐이지.


“진짜 돈, 돈, 돈.”


돈을 벌려고 공부하는 데 돈이 필요한 세상.

심지어 대학에 입학해도 학비며 생활비며 감당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만큼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돈 걱정 없이 부유하지도 않은 집안이다.

덜컥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다면, 믿고 받쳐줄 만한 환경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강호준은 입시를 포기했다.


‘차라리 돈을 벌자.’


고졸이라고 회사 못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강호준은 자신의 학업을 위해 가족들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 정도로 이기적이지 못했다. 이미 나름의 계획도 짜놓은 상태다.


‘그쪽이 7월에 공채가 뜨니까······.’


조촐한 짐을 싣고 고속버스에 올라탄 강호준은 붕 뜨는 3개월의 공백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앞 좌석에 박힌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산 신화리 로또 판매점 정규직원 모집』


“······?”


로또 판매점이면··· 로또방? 알바도 아니고 정규직원을 모집한다고?

이거야 뭐 그럴 수 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알바보다야 직원이 나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다.


『월 300만 원(세후)』


세전도 아니고 세후란다.


『근속 1년마다 연봉협상』

『연차 보장, 주말 및 공휴일 보장』


“······이거 사기잖아.”


강호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눈을 불태웠다.

하필 한국대 법대를 꿈꾸던 정의로운 강호준에게 걸린 셈이다. 그는 곧장 핸드폰을 잡았다.

뒤이어 남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누구세요!


남성은 사기꾼답게 시작부터 버럭 화를 냈다.


“저기요, 사기꾼 씨.”

- 아이, 씨! 바빠죽겠으니까 끊어 어린놈에 새끼야!


뚝.

저 한마디와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동시에 강호준의 이성도 끊겼다.


“이 개자식이 진짜.”


경찰에 신고할까 싶었지만, 잠시 고민하다 뒤로 밀었다.

어차피 자신의 고향인 아산시로 내려가던 중이다. 사기꾼이 도용하고 있는 피해자를 만나는 게 먼저였다.


‘나보다 이분이 신고하는 게 더 나을 거야.’


이내 몇 번이고 광고지를 확인하고 주소를 공책에 옮겨적으며 다짐했다.


“내가 판검사 꿈은 포기했어도 너 새끼만큼은 잡고 포기한다.”


* * *


백유진은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

이 정도로 바쁘길 바란 건 아닌데······.

몇 번이고 되뇌면서도 손님이 건네는 지폐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며 용지를 건넸다.

얼마나 바빴는지 2003년 최초로 로또방 브레이크 타임을 걸었다.

신박한 대처에 신경질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았건만.


“와아. 역시 잘되는 곳은 뭐가 달라도 달라.”

“이러니까 개업하자마자 1등 나오는 거 아니겠어?”

“맞아, 맞아.”

“혹시 모르니까 집 가면 참고하라고 카페에 올려야겠다.”


미치겠네, 진짜.

괜히 미운털 안 박히려고 너무 웃기만 했나?

백유진은 광대가 얼얼했다.

옆에 앉아 있던 장수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이놈 자슥아. 뭐 그리 힘들다고 울상인디? 바쁘면 좋은 거지.”

“바쁜 거야 좋죠. 근데 바쁜 일은 직원이 했으면 좋겠다니까요.”

“그러길래 구인신문 같은 곳에 홍보하라고 했잖어. 도대체 어따가 홍보했길래 장난 전화만 오는 겨?”


어디긴 어디야.

아산, 천안으로 들어오는 전국 버스에 다 박았지.

고작 하루 걸어두는데 천 단위가 깨졌다. 원래 한 달 기준으로 잡고 버스 1대당 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데, 급하게 잡다 보니 비용이 더 들어갔다.


‘근데 왜 이렇게 효과가 없냐고.’


여차하면 내일 하루는 장 노인한테 맡기고 서울 좀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딸랑─


휴식 시간이라고 안내문을 붙여놨음에도 누군가 가게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애였다.


“무슨 일이니?”


주변을 살피던 녀석이 흠칫 놀라며 백유진을 바라봤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장수에게 말했다.


“사장님 되시나요?”

“어잉? 나 아닌디.”

“예? 그럼 누가······.”


다시금 눈을 돌려 백유진을 바라본 남자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해요.”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오해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고 그러려니 넘겼다. 그런데 이어지는 뒷말은 그냥 넘기기가 힘들었다.


“사장님. 다른 게 아니라, 여기 지금 사기꾼들이 이용하는 거 같아요.”

“뭐? 어떤 개 같은 새끼들이······!”


순간 너무 놀라 욕을 박기 직전.


“사기꾼들이 버스 광고에 여기 직원 구한다고 구라치고 돈 뜯어내려는 거 같더라고요.”


녀석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백유진이 말이 없자 강호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장님! 진짜 심각하다니까요? 다른 버스에서 내리던 사람들도 다 그 얘기 했다니까요?”


그거 나야.


“진짜로요! 거짓말 같겠지만······!”


그거 나라고.


“잠깐만요! 제가 그 사기꾼 새끼한테 전화해서 당장 확인시켜 드릴게요!”


강호준은 말릴 틈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동시에 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린다.


삐리리리릭───!


“······.”

“······.”


······그거 나라니까.

적막만 흐르던 침묵을 깬 건 장장수였다.


“전화도 해본 거 보니께, 이 학생 면접 보러 왔나 보네. 알아서들 혀라. 내 산 타러 간다.”


툭툭, 등산스틱으로 바닥을 찌르며 그가 나갔다.

몇 초간의 침묵이 더 흐른 뒤에야 강호준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사장님을 사기꾼으로 몰려던 건 아니고··· 인쇄물이 출력에 오류가 있었나 봐요. 세후 300이면 외국계 대기업 수준인데······.”


당황하며 턱을 긁적이던 강호준의 말을 백유진이 끊었다.


“그래서? 그거 다 사실이면 할 거야?”

“······.”


잠시 고민하던 강호준이 대답했다.


“당연히 하죠. 이 조건을 보고 누가 안 해요.”

“오케이. 너 합격.”

“네?”

“얼른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라.”

“자, 잠시만요. 설마 이거 고도의 면접인가요?”


뭐래 이 미친놈아.


“바쁘니까 빨리 사인이나 해.”

“아니, 잠깐······.”


사인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런 생각으로 녀석을 잡아끄니, 당황하면서도 세세하게 계약서를 확인했다.

몇 분 동안 계약서를 훑던 녀석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진짜냐고.

계약서상 내용 정말 진짜냐고 묻는 듯한 모습에 챙겨놨던 돈뭉치를 녀석에게 건넸다.

빳빳한 1만 원권 300장 묶음.


“거기 적힌 거 봤지? 첫 달 월급은 세금이나 보험도 내가 부담하고 현금으로 준다. 지금 당장.”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아이고오오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강호준이라고 합니다!”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는 강호준의 모습이 꽤 만족스러웠다.

나는 곧장 강호준에게 기계 사용법이나 간단한 것들을 설명한 뒤 밖으로 나왔다.

콜택시를 부르려고 꺼내던 핸드폰은 도로 집어넣었다. 건물 주차장에 보이는 택시만 5대에 달했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가시는 분?”

“······.”

“······.”


귀찮다는 듯 시선을 회피하는 택시 기사들 사이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택시비로 30만 원 드립니다.”

“여기! 여기! 얼른 타!”

“우리 사장님이 저런 똥차 타야 하겠어? 이거 이번에 뽑은 그랜저야!”

“거기 젊은 친구! 그쪽은 택시도 아니잖아?!”


알바생도 그렇고, 택시도 그렇고.

역시 돈이 최고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누군가를 떠올리며 가장 가까운 차량에 탑승했다.

아직 오전 10시.

증권가의 전설을 만나러 가는 날이어서 그런가. 하늘은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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