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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변
작품등록일 :
2018.02.2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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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84

작성
19.09.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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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밀크티 이야기 -3- : 단기선교팀 맞이 하루 전날

DUMMY

[대만 밀크티 이야기 -3-]

-단기선교팀 맞이 하루 전날-


글은 계속 쓸수록 쓰는 게 더 망설여진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달라지는 생각들. 분명 같은 장면 속 그 날인데. 관점이 달라지니 마치 다른 나날들을 겪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 나는 그 날의 일들을 다 소화하지 못한다.


참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지듯. 내 몸으로 겪은 하나님의 사려깊으신 배려와 섬김. 증인된 자로서. 다 표현하지 못 하더라도. 내가 받은 은혜와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 보려고 했다. 근데 그게 가능할 리 만무했다.


이젠 그냥.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마음으로 살련다.



은혜로왔던 예배가 마치고 광고가 나온다. 한국 단기 선교팀의 각자 기도제목과 사진이 하나씩 올라온다. 이번엔 특이하게도 뉴페이스가 하나 있다. 양성욱. 29살이다.


드디어 대만단기선교팀에 젊은 피가 수혈되는 순간이다. 워낙 이 녀석 얼굴이 예쁘장하게 생겨서. 통역하시는 전도사님이 깜짝 놀라신다.



광고 끝내고 선교팀 맞이 대청소가 시작된다. 장양 형님이 주방 환풍기에 낀 기름때를 보며. 작년에 미혜집사님이 이거 닦으라고 했다면서 같이 닦자는 거다. 나는 중국어는 모르지만 눈치로 알아들었고 식겁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못 알아듣는 척하고 다른 청소를 했다.


형님... 형님은 지금 라운드 티셔츠 편하게 입고 있지만 나는 대만 온다고 큰 마음 먹고 옷 사왔는데. 이 옷도 오늘 아침 처음 입었단 말야. 인간적으로 좀 봐줘.. 이건 형님이 반칙한 거야..장양 형님은 끝내 자기 속을 모르는 '척'한 내가 내심 섭섭했던 것 같다.



청소가 끝나고 매화 자매는 풍선들을 불어제낀다. 어린이 성경학교 준비하는가 보다. 좋다. 새 옷에 기름때는 못 묻혀도. 땀 좀 흘리는 거 '메이꽌씨', '메이셔', '메이션마'다. 앉은 자리에서 나는 최소 50개 정도의 풍선을 만들었다. 기구를 이용해서 그런지 입 대신 손이 아려온다.


어느새 풍선으로 꽃모양을 만들고 여기 저기 붙이니 제법 산틋한 느낌이 나온다.



매화 자매는 작년에 보고 올해 보니 두번째 본다. 작년에는 극단적으로 소심해 보였던 그녀인데. 왠지 전에 비하면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보여서 좋다. 말씀 시간에도 정성을 다해서 뭔가를 적는 모습도 참 흥미롭다.


장양 형님도 자식이 둘이고. 또 막내가 딸내미라서 그런가. 처음에 봤던 것처럼 거친 남자의 얼굴은 많이 없어졌다.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다른 사람 대하는 모습이... 참 독특하다.


신우 자매 역시 풍기는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긴 치마에서 짧은 치마로. 하얀 화장톤에서 그냥 탄 얼굴 그대로. 뭔가 눈빛을 보니 최근에 거친 환경속에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띈 건 그녀 손목 안에 십자가 문양이었다. 처음에는 볼펜으로 낙서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님 문신을 한 건가도 싶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한 명 한 명 뭔가 달라졌다는 게 나는 흥미롭다.



어린이 성경학교 맞이 준비는 끝났다. 조금 이따가 저녁 나가서 먹기로 했고. 나는 숙소 돌아가서 샤워하고 다시 온다고 했다. 숙소 가는 길에 쇼핑백을 급하게 산다.


(난 아직도 작년에 내가 준비한 선물들을 미진 선교사님이 노란 비닐봉다리에 싸서 교인 분들께 줘서 보냈던 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잠을 못 잔다.)


숙소 도착하자마자 씻고 옷 갈아 입고 얼른 준비한 선물들을 어떻게 배분할지 고민한다. 아가씨들은 과일향 크림이랑 립밤 /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꽃향 크림 / 낭만이 필요한 부부한테는 양초 오일 방향제.. 여기서 뭘 더 바라니. 이정도면 쌈박해. 이제 그만해도 돼.


혹시나 오일 방향제 사용법을 모를까봐 신우 자매에게 부탁해서 중국어로 번역한 종이까지 넣어놨다. 좋아! 작년에 노란 비닐 봉다리는 이걸로 퉁치자. 바리바리 싸들고 숙소를 나온다.


늦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미진 선교사님이 전화한지도 모르고 빠른 걸음으로 교회로 향한다. 교회 근처에 가니 사람들이 이미 밖을 나오고 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장소를 옮긴다. 교회 식구들이랑 근처 맛집으로 온 것 같다. 사람은 12명인데 25가지 종류가 나온다. 이 날 저녁 식사가 리호우 전도사님네 시어머니 생일파티인 줄 몰랐다. 같이 따라오신 시어머니 동생분도 같이 오셨네? 아.. 이런 건 좀... 미리 얘기 해주면 안 되나?... 다행히도 이번에 들고 온 게 지금 모인 사람 수랑 딱 맞다.


페이창 형님의 형수님 엘리스 집사님이 자꾸 나를 챙기신다. 집사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는다. 덕분에 배가 터질 것 같다. 생각해보니 엘리스 집사님은 작년이나 지금이나 사진 찍는 게 본인의 사명으로 여기시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좀 모였다 하면 바로 카메라들고 모습을 나타내신다. 나는 그런 집사님의 열심에 호기심이 든다.


하지만 작년에 느낄 때 왠지 가슴에 상처가 있는 사람 같았다.


집사님이 (내 느낌에) 가끔 억눌린 감정들이 욱하고 올라올 때가 있는데. 남편되시는 지혜로운 페이창 형님은 그 때 마다 자리를 지키며 티내지 않고 중간 역할을 잘 해오셨던 것 같다. 변함없는 남편의 지긋한 응원 덕분인가. 지금은 집사님도 마음이 전보다는 많이 누그러지신 것 같다.


왠지 이건 내 생각인데. 지금처럼 자기가 기뻐서 열심으로 믿음의 공동체를 섬기는 모습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근데.. 동시에 불안해 보인다. 사랑은 잘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받는 것도 중요한 거니깐.


집사님 역시 사람이니깐 주위로부터 다시 사랑과 섬김을 채움 받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이 집사님의 섬김을 잘 받아주고 또 집사님 에너지가 바닥날 때 재충전하는 시간들도 때맞춰서 같이 해줬으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의 마지막 관찰 대상. 오늘 생일의 주인공 리호우 전도사님의 시어머니.가 아닌 바로 옆에 앉아계신 여동생 분이시다.


웃고는 있지만 진짜 웃는 게 아니다. 밝은 표정을 지어보여도 속에는 뭐가 그리 마음 닫고 저리 살까. 자기들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체 무턱대고 선물 보따리 들고 온 나에게는 고마움을 표시해도 식사 교제 내내 나는 저 분의 얼굴 근육과 눈빛을 유심히 쳐다본다.


내 시선에. 저 분의 진심이 가장 잘 드러난 순간은 언니가 먹다 남은 생일케이크를 다시 포장할 때. 그 제서야 뭔가 다른 표정을 본 것 같다. 포장끈을 가지고 헤매는 언니를 거드는 순간. 난 저 표정에 관심이 가고 끌린다.


두 자매를 나란히 보고 있자니 참 닮았다. 근데 언니랑 여동생 모두 얼굴에 그간의 세월들이 고스란히 결로 새겨져 있다. 저 가슴에 저리 큰 자물쇠들을 품고 어째 살았을까.


언니가 동생보다는 표정이 한결 부드럽다. 아마 언니가 인생에서 많이 덜어낸 만큼 동생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쥐고 있는 게 더 많지 않을까.


리호우 전도사님네 시어머님의 생일 잔치상. 그렇게 저녁 식사는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내게는 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기적인데. 난 그런 측면에서는 복이 참 많은 것 같다.


근데 이렇게 다 헤어지고 나서..

그 놈의 '양가감정'이 드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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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대만 밀크티 이야기 -6- : 가족이라는 이름 19.10.05 23 0 3쪽
38 대만 밀크티 이야기 -5- : 꼬꼬마 아인이 19.10.05 12 0 6쪽
37 대만 밀크티 이야기 -4- : 뉴페이스의 등장 19.10.05 12 0 4쪽
» 대만 밀크티 이야기 -3- : 단기선교팀 맞이 하루 전날 19.09.19 14 0 8쪽
35 대만 밀크티 이야기 -2- : 성막의 의미와 사랑 19.09.19 13 0 6쪽
34 대만 밀크티 이야기 -1- : 직장 동료가 나를 보내서 여기 왔소 19.09.19 13 0 12쪽
33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10- : 마무리 19.09.19 14 0 13쪽
32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8- : 조금만 뒤에서 보기 19.09.19 18 0 7쪽
31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7- : 막내 이순찬 19.09.19 35 0 4쪽
30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6- : 아테네 시내 관광 이야기 19.09.19 153 0 8쪽
29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5- : 작은 배려 19.09.19 20 0 6쪽
28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4- : 카타콤 하룻밤 체험 19.09.19 16 0 8쪽
27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3- : 그녀와 수호기사단 19.09.19 15 0 4쪽
26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2- : 벽에 그린 낙서 19.09.19 17 0 7쪽
25 돌아온 양갈비 In Greece -1- : 프롤로그 19.09.19 28 0 4쪽
24 안녕, 양갈비! -8- : 마지막 편 19.08.22 13 0 6쪽
23 안녕, 양갈비! -7- : 레바논 백향목 향기 19.08.22 18 0 9쪽
22 안녕, 양갈비! -6- : 빈곤한 사역 19.07.25 19 0 18쪽
21 안녕, 양갈비! -5- : 잊혀진 자의 신음소리 19.07.25 14 0 6쪽
20 안녕, 양갈비! -4- : 무제 19.07.25 22 0 4쪽
19 안녕, 양갈비! -3- : 사역 첫날 19.07.25 12 0 4쪽
18 안녕, 양갈비! -2- : 당신의 위장은 안녕하십니까? 19.07.25 18 0 3쪽
17 안녕, 양갈비! -1- : 첫만남 19.02.02 36 0 2쪽
16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7-: 정탐꾼 이야기 19.01.05 40 0 5쪽
15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6-: 갑작스런 조우 19.01.05 39 1 7쪽
14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5-: 사랑의 집. 헤븐이네 19.01.05 53 1 9쪽
13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4-: 예수님의 친구된 자 19.01.05 45 1 7쪽
12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3-: 블랙 앤 화이트 19.01.05 39 1 7쪽
11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2-: 내 마음에 로스팅 19.01.05 34 1 7쪽
10 이집트왕자 독일여행기 -1- : 여행의 사유 19.01.05 44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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