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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43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18 02:27
조회
740
추천
16
글자
7쪽

24화. 해볼게요.

DUMMY

“송, 너 진짜 고시원에서 살 꺼야? 방도 좁은데?”

“난 요즘 재밌어.”

“뭐가 재밌는데?”


송은 뜨거운 아메리카노 커피를 수루릅- 소리를 내면서 한 모금 마신다. 분홍은 커피잔을 양손으로 감은 채로 송의 얼굴을 계속 쳐다본다. 하얀색 머그잔을 내려놓은 송은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로 대답한다.


“이런 기회가 생긴다는 것도 신기하고... 내가 집에서 독립할 수 있는 기회거든.”

“독립을 꼭 고시원으로 해야 돼? 그것도 연습실 장사까지 하면서?”

“어차피 나는 컴퓨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작업실이 필요하잖아. 부모님 귀농하셔서 서울 집은 굉장히 작어. 쪼그만 집에서 형이 텔레비전도 크게 틀어놓고... 퇴근하면 집에서는 일이 거의 안 돼. 형한테 그럴 때마다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것도 껄끄럽고. 형이 내 말 들을 사람도 아니고... 이 나이에 형제끼리 싸울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할 공간이 항상 필요했어. 고시원을 얻는다고 하면 부모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겠지. 자연스럽게 독립을 하는 거잖어! 그리고 중요한 건, 내가 고시원에 살면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잖아. 나도 강북에 살래!”


송은 신이 나서 다소 상기된 얼굴이다. 분홍 못지 않게 고민을 많이 해서 힘들어보이지만 그래도 대체로 기분좋게 들뜬 표정이다. 예전에도 분홍더러 보라색 슬리퍼 아주머니 말대로 고시원에 들어가서 살라고 권하던 송, 이제는 자기가 나서서 분홍을 꼬시는 슬리퍼 아주머니와 호흡을 척척 맞추고 있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손수 만든 오무라이스까지 맛나게 먹는 송이 예쁜 모양이었다. 그때 말 없이 미소만 띄고 송을 바라보던 아주머니의 얼굴, 분홍은 아주머니를 오래 봐오면서도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마침 그녀의 아들하고 송의 나이가 같다보니, 순간 오무라이스를 자식에게 먹이는 것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분홍은 의심했다.


"근데, 송, 진짜 아줌마가 방을 두 개 줄까?"

"그럼. 나한테 계속 들어오라고 하던데?"

"그건 송 너한테만 방을 준다는 거 아닐까? 그때 꽁지머리 남자한테도 방을 하나만 줬잖아."

"간단해. 방을 한 개만 준다고 하면, 분홍 네가 들어가. 내가 지금처럼 맨날 보러 올게."

"네가 연습실 장사를 다 한다며..."

"음......"


송이 대답을 못 하자, 분홍은 다시 근심이 생긴다.


“분홍, 네가 결정해. 나는 네 결정에 따를게.” 라고 말하는 송의 얼굴엔 “연습실 우리가 맡자.”라고 씌여 있다.


“네가 말한 지출 제로... 쫌 땡긴다, 솔직히.”


분홍은 처음으로 고시원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한다.


"그치?"


송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밥값이랑 월세 아끼고, 연습실 사용료도 안 낼 수만 있다면, 그 돈을 다 번다고 생각하고, 그 댓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괜찮을 것도 같았다. 송이 말한 ‘지출 제로’는 분홍에게 달콤한 주문처럼 들린다.


“지출 제로우~로우~로우~!”


“정말? 그럼 이모한테 문자 보내드리자.”

“벌써? 내일 보내자...... 하긴... 우리가 예스냐 노냐 알려드려야 연이 엄마도 어떻게 결정을 하겠지.”

“연이 엄마?”


분홍이 슬리퍼 아주머니를 ‘연이 엄마’라고 부르자 송은 재밌다는 듯이 크크크 웃는다. 분홍은 송 앞에서 아주머니를 부를 때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어색하고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도 어색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키우는 누런 개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누런 개의 이름을 따서 ‘연이 엄마’가 되었다.


분홍은 문자를 적기 시작한다.


[언니, 제가 연습실 한번 맡아볼,]


“아악. 이게 잘 하는 건지 모르겠어!”


분홍은 문자를 쓰다말고 까페 테이블 위에 철퍼덕 엎드린다.


“하하하. 분홍. 걱정은 말고. 내가 있잖아. 너의 영원한 보디가드!”


분홍은 손바닥으로 얼굴에 마른 세수를 하고나서 “그래, 보내자, 보내.” 하며 마저 문자 메시지를 적는다.


[,게요. 시경 씨랑 같이 해볼게요.]


“아니, 분홍. 그러지 말고, 내가 부르는대로 써봐.”

“응?”

“시경 씨가 컨설팅 회사에 다녔고, 홈페이지도 잘 만들고 하니까, 연습실에 누는 안 끼칠 거예요. 라고 적어봐.”

“아니, 우리가 그렇게까지 낮춰야 돼?”

“어른한테는 이렇게 자신을 낮추는 법이야. 그렇게 해야 이쁨 받어.”

“휴... 하이튼 넌... 알았어.”


분홍은 송이 부르는 멘트를 다 받아적는다.


“으악. 보낼까 말까, 송. 우리, 지금 이게 잘 하는 걸까? 어떡하,”


송은 갑자기 손을 재빨리 뻗더니, 분홍이 적어놓은 메시지의 전송 버튼을 자기가 눌러버린다.


“아아악! 송시경!”


분홍은 소리를 지른 뒤에 다시 테이블 위에 엎어지듯 엎드린다. 분홍의 얼굴은 빨개졌고 송은 크게 웃는다. 까페에 다른 사람들이 두어 테이블 있기에 분홍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몇 초가 지났을까, 문자 메시지 수신음이 울린다.


[고마워요~^^]


“어머나. 연이 엄마가 이모티콘이라니! 되게 좋은가 보다.”


분홍은 얼떨떨하다. 몇 번 아주머니와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분홍은 그녀와 거리를 조금 두면서 문자를 적었고, 그녀또한 기본적으로 분홍에게 반말을 했고 한 번은 분홍의 이름을 염분홍이라고 틀리게 적기도 했었다.


‘아, 정말 나이 서른에 고시원 생활이라니. 내가 지금 학생도 아니고... 거기다 연습실 장사까지. 정말 내가 잘 하는 걸까?’


그러면서도 분홍은 자신의 원룸에 있는 살림살이를 떠올린다. 큰 맘 먹고 장만한 원목 책상과 중고로 구입했지만 혼자 사는 자신에게 딱 맞는 싸이즈의 냉장고, 그리고 친구들이 돈을 모아 생일 선물로 사주었던 옷서랍, 등등의 살림살이를 떠올린다. 아쉽기도 하고 어떻게 한담, 걱정도 된다.


고시원. 고시원의 역할과 의미를 따지자면 고시원에는 고요함이 있어야 하지만, 대다수의 고시원에 고요함 같은 건 없다. 방음이 부실해서 옆 방 소리는 소리대로 모두 들리고 입실생들끼리 서로에게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고요함 대신, 좁음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시원에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음을 사람들은 잘 안다.


그녀는 또, 이삿짐 아저씨가 “아가씨는 무슨 학문하는 사람이예요?”라고 불만을 섞어 농담하였을 만큼, 남부럽지 않게 많은 자신의 책들을 떠올린다.


‘으아. 오늘부터 짐을 싸야겠네.’


분홍의 마음은 벌써 검은색 건물로 향하는 듯 하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분홍이_창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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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반값 요금. +1 15.11.08 793 24 13쪽
7 7화. 첫 유혹. +1 15.11.07 1,104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2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1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2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2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7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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