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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27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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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
추천
18
글자
11쪽

23화. 송, 진심이야?

DUMMY

분홍은 원룸 바닥에 깐 이불 위에 엎드려서 자고 있다. 살짝 잠이 깬 분홍은 이불 아래로 손을 넣는다. 보일러 튼 방 바닥의 따듯함이 분홍의 손으로 전해져 온다. 뜨끈뜨끈하다. 몸이 늘어진다. 어제 들었던 놀라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시원 아주머니는 연습실을 사용하고 있는 분홍에게 연습실을 맡아 운영하라고 하였다. 자기는 장사는 못 한다면서 연습실 안으로 피해들어간 분홍을 쫓아들어와 연습실을 맡으라고 설득하고 아예 분홍이 있던 오케스트라 방의 방문을 닫아주질 않았다.


‘오늘은 연습에 가지 말까?’


분홍은 연습실에 가는 일이 부담스럽다. 지난밤 분홍을 집에 데려다 주면서 송이 했던 말은 아주머니의 말보다 더 놀랍다.


“띵동”


메시지가 울린다.


[오늘은 연습실에 몇 시에 갈 거야?^^]


송은 주말이라 분홍을 빨리 만나고 싶다. 분홍은 선뜻 답장을 하지 못한다.


[나 너무 졸려. 오늘은 좀 쉴까봐...ㅠㅠ]


분홍은 그렇게 검은색 건물과 캐시 뮤직을 피하려 한다.


[쉬는 건 내일 쉬는 게 낫지 않아? 내일은 아버지 병원도 가야 되고 연습할 시간이 별로 없잖아. 오늘 내가 같이 가 줄게. 조금만 연습해.♥]


송은 캐시 뮤직에 가고 싶은 모양이다. 어제 분홍이 넘어가지 않자 송에게까지 제안한 아주머니. 그런데 송은 그 제안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또 송은 분홍이 변덕을 부릴 껄 대비해서 미리 스케쥴을 정리해주곤 한다. 분홍은 오늘은 연습을 안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연습실에 가서 노래하고 싶다고 하거나, 송에게 아버지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가, 갑자기 오늘 말고 다음에 가자고 하는등 가끔씩 변덕을 부리곤 한다.


“분홍. 네가 음악하는 사람이라 감정에 충실한 건 알겠는데, 일정을 정해야 나도 그런 줄 알고 내 스케쥴을 잡지.”


변덕을 부리는 분홍에게 송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늘은 연습실에 가기가 싫다고 버티는 분홍을 찾아온 송은 분홍의 집앞에 있는 도로변 까페로 불러낸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 1층에 있는 이 까페는 출구쪽 전면이 유리여서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꼭 실내가 아닌 실외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커피숍이다. 봄이 오려는 듯 유리벽 너머로 비춰들어오는 햇살이 제법 푸근하다.


“생각해 봤어?”

“아무래도 장사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애.”

“장사는 내가 다 한 다니까.”

“진짜? 그게 될까? 그리고 너 회사는?”

“어차피 회사도 비젼이 없어서 그만둘 생각이었어. 그리고 괜히 너 걱정할까봐 말 안 한 것도 많은데, 좀 힘든 일이 많았어. 태경이 형 빽으로 들어왔다고 그러는지, 지난 번에는 내 방도 빼라고 하드라.”

“방을? 그 방 받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응...... 견제가 심해.”

“그거 너네 팀 앞으로 정해준 방이잖아. 그럼 넌 요즘 어디서 일해?”

“그냥 공동으로 쓰는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서 해. 사실 우리 팀은 본사로 들어올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송은 사촌형이 사장으로 있는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며 작은 팀을 이끌고 있는데, 컨설팅 단계라고는 하지만 반 년이 넘게 매출이 나지 않아 마음 고생을 했다. 단, 무한긍정을 발휘하는 송은 늘 곧 실적이 날 것이라고 열심히 해보겠다는 식이었다.


“책상은? 책상도 못 쓰게 해?”

“응. 단체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하래. 근데, 솔직히 내가 거기 끼는 건 좀 그렇잖아. 며칠 전부터 커피숍에서 일하고 이메일로 업무 보고 하고 그래.”

“근데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사촌형도 형이야. 형제끼리는 통하는 게 있고. 내가 조금만 더 버티면 태경이 형도 나 몰라라 하진 않아. 방을 내주던가, 사무실을 임대해 주든가 할 거야.”


송은 방까지 뺏겼으면서도 형제끼리 통하는 게 있다는 말을 한다. 분홍은 송은 참 속이 편하거나 아주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또 한번 한다. 하지만 그정도로 타박을 받았으면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분홍 너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그랬잖아.”

“연습실 장사가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야?”

“......”


아무래도 송은 연습실을 맡으라고 분홍을 설득하고자 오늘은 쉰다는 분홍을 깨워서 나오게 한 듯 하다.


분홍이 내는 원룸 월세는 사십오만원, 그리고 연습실 이용료는 삼십만원, 합치면 칠십오만원이다. 만약에 분홍이 고시원에서 살면서 연습실 운영을 한다면, 그 돈을 절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조건으로 장사를 하게 된다면, 노래 연습은 어떻게 할 것이며, 또 레슨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또 아버지 병원은 어떻게 가는가? 분홍은 아무래도 자신이 그 검은색 건물로 들어가 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송이 말한다.


“지출 제로. 그렇게 생각해봐.”


‘지출 제로...?’


송은 분홍과 처음 사귈 때 분홍에게 분홍이만의 연습실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분홍은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자신의 일은 자기가 책임을 지는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됐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사귄지 한참 지나고나서는 ‘왜 송이 연습실 이야기를 다시 안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분홍이 물었다.


“송, 너 예전에 나한테 연습실 만들어준다고 하지 않았어? 요샌 왜 아무말이 없어?”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나서 송은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분홍이 다시 묻자, “사실 너랑 데이트하느라 돈을 많이 써버렸어. 그때 네가 바로 말했으면 만들어줬을 텐데, 이젠 내가 별로 여유가 없어. 그리고 집에도 돈이 들어갈 일이 많았거든.”이라고 말했다.


분홍은 화가 났다.


‘남자들이란... 아예 말을 말지. 허풍을 쳐놓고 뒷수습을 안 한다니까.“


분홍은 서운했고 속으로 남자들을 뭉뚱그려 욕했다. 그리고 이내 잊어버렸다. 처음 연애를 하는 커플이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다. 돈이 없어서 연애를 못 한다는 말은 괜한 앓는 소리가 아니다. 분홍도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는 남자 친구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평소에 안 타던 택시도 타고, 평소에 안 먹던 비싼 음식도 먹고, 커피숍을 하루에 두 번도 가고,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도 꼭꼭 사먹고 하였다.


분홍은 자존심 때문에 남자한테 매번 얻어먹지는 않는다.


‘남자가 돈을 더 쓰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습실 마련할 정도의 돈을 썼다는 게 말이 돼?’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분홍은 송의 분홍에 대한 열의를 알기에, 그저 여자친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 남발한 남자의 공약이자 애교로 받아들이자 생각하며 봐주기로 했다. 사실, 연애 초기에 송이 연습실을 정말로 만들어줘도 분홍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송은 분홍처럼 집에서 독립해서 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월세집에 대한 감각이 무뎠다.


어느 날은 “송, 요즘은 이사 가려고 해도 월세가 너무 비싸.”라고 하자, “보증금 삼백에 월세 삼십짜리 방도 많지 않아?”라고 말해서 분홍을 깜짝놀라게 했던 송이다. 5 년 전에도 그런 집은 많지 않았다.


송이 자꾸 검은색 건물에 들어가서 살라고 권하는 건 분홍이에게 못해준 연습실 문제가 맘에 걸려서이기도 하리라. 분홍에게 내심 미안했던 송은 이참에 분홍에게 연습실도 만들어주고 자신도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했다.


저녁때쯤 캐시뮤직에 도착한 송과 분홍을 씨씨티비로 확인한 슬리퍼 아주머니는 바로 지하로 따라내려온다.


“올루와. 오무라이스 해줄게. 둘이 같이 와.”

“......?”


분홍은 깜짝 놀란다. 아주머니에게 송도 고시원 식당에서 밥을 이천원에 먹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처음엔 허락하더니 다른 고시원생들이 보고 따라할까 겁이 난다는 이유를 대며 갑자기 송에게는 출입금지령을 내렸었다. 분홍은 남자친구를 박대하는 것 같아 서운했지만, 연습실 손님은 분홍이지 송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결정에 수긍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머니가 먼저 송을 데리고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한다. 분홍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저 밥을 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불편해. 우리 나가서 먹자.”

“아줌마 정성인데 먹자.”

송은 또 분홍을 설득한다. 분홍은 송의 말을 못 들은 체를 하고 노래를 한다. 분홍은 노래를 한참이나 부른다. 분홍은 ‘처음인 것 같아. 내가 이 검은색 건물에 온 이후로 이렇게 우위에 선듯한 기분이 드는 건.’ 이라고 생각한다.


“다 불렀어? 배 안 고파?”


송은 분홍의 손을 잡고 6층으로 올라간다.


‘나 같으면 나를 출입금지 시켰던 사람 밥은 못 먹을텐데, 송은 참 속도 좋아...’ 분홍은 송을 따라 오르면서 생각한다.


두 사람이 식당에 올라와보니, 고시원 식당에서 보기 힘든 오무라이스가 식탁 위에 두 접시 올라와 있다.


“앉어. 먹어.”

“... 잘 먹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등 뒤로 말을 한다.


“내가 오무라이스 만들면 우리 애들이 아주 맛있다고 먹어.”


하지만 분홍의 입맛에는 그 오무라이스가 맛있지 않았다. 이미 많이 식어 있었고 또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노숙자가 검은색 건물에 들어와서 자고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분홍은 몇 번이나 들어서 알고 있는 스토리이나, 아주머니는 처음인 듯 이야기를 한다.


“아휴~~~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아이구 그냥... 여기 애들 계속 드나드는데 입구 문을 잠글 수도 없고, 내가 경찰한테 전화를 했지. 내가 여자 혼잔데 괜히 말했다가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떡해. 경찰이 와서 나가라고 했어. 그날. 얼마나 놀랬다고. 그런데 경찰이 책임을 지느냐, 그렇지 않아. 뭔 일 나면 다 여기 책임이라고 허지.”

“어휴. 무섭죠. 사모님은 정말 사람복이 있네요. 이모님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송은 아주머니를 ‘여자분’이라고 존대하면서 아주머니에게 이쁨받을 말을 한다.


‘송은 진짜 연습실에 관심이 있나보다.’


분홍은 새삼 놀란다. 남자 친구이고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남자 친구가 제 삼자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의 전혀 다른 모습도 보게 된다.


“제가 집이 강남이잖아요.”

“그지, 그지.”

“사실 강남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와서 분홍이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에 가면 정말 피곤해요. 제가 말씀을 안 드려서 그렇지, 이 고시원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예요.”


아주머니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분홍은 목구멍에서 오무라이스에 들어있는 감자와 햄이 튀어나올 것 같다. 분홍은 고개를 홱 돌려 송을 쳐다본다.


‘송... 네가 여기 산다구? 내가 아니라? 이 검은색 건물에? 송, 너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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