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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38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05 14:32
조회
851
추천
20
글자
11쪽

12화. 초록색 교복.

DUMMY

“여보세요.”

“저... 거기 보컬... 레슨...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네. 보컬 레슨 합니다.”


분홍은 원룸 방에서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다가 레슨 문의 전화에 벌떡 일어나 앉는다.


“노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가도 돼요?”

“네, 괜찮습니다. 기초부터 알려드려요.”


수업문의를 여러 번 받아본 경험에 의하면, 무언가를 처음 배우려는 사람들은, 처음인 것에 대해서 두려워한다. 처음이니깐 선생한테 배우는 것임에도, 마치 강사에게 학생을 선발할 권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저어하고 두려워한다.


“한 달에 얼마예요?”


보통 수업료가 얼만지 묻는 경우는 정말 배울 뜻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마디 하고나서 목소리가 굉장히 작아지는 것이 소심한 학생인 것 같다.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더욱 쪼들리는 요즘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소심한 목소리를 들으니 일 주일정도 혼자 고민하다 결국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만나서 상담해 줄까요?”

"아, 네? 정말요? 아, 가, 감사합니다."


말을 하고 분홍은 자기 자신에게 놀란다. 사실 분홍은 상담을 요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화로 충분히 상담을 해주었는데, 그럼 이제 한 번 만나서 상담을 할 수 있냐고 물어오면, 그럼 이제까지 통화한 건 상담이 아니었느냐고 따지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름난 가수가 아닌 분홍의 입장에서 한 번 만나보자는 학생의 이야기는 강사인 분홍의 실력을 한 번 보자는 말이나 다름 없다.


분홍의 노래 실력은 학생들을 감탄하게 만들 정도는 된다. 그래서 일단 그녀의 노래를 들려주면 거의 백프로 수업으로 이어지긴 한다. 그래도 한 번 보고 결정하겠다는 태도에 분홍은 강사로서 자존심이 상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홍이 먼저 학생을 만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인생의 코너에 몰려서 성격마저도 변해가고 있다.


“어디로 가면... 돼요?”

“아... 삼국대역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봐요.”

“커피숍이요?”

“... 네. 유앤미 라고 역에서 나오자마자 골목으로 우회전 하면 까페가 바로 보여요.”


‘그래. 잘 한 거야. 사람들은 일을 따기 위해 면접도 보러 가잖아, 적어도 나는 면접을 보러 가는 건 아니니깐, 가볍게 받아들이자. 까페에서 만나서 어린 학생 커피 사주는 건데, 뭐. 나도 노래 시작할 때 고민 많았으니, 그때를 생각해서 상담정도는 친절하게 해주는 거야.’


유앤미는 3층 건물 중 1, 2층을 모두 쓰는 커피숍이다.


'명남동에서 1층과 2층을 모두 임대하려면 대체 월세가 얼마일까?' 생각하면서 분홍은 안으로 들어선다.


초록색 바탕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분홍을 먼저 알아본다. 물론 교복차림이라 분홍도 학생을 쉽게 찾는다.


[저, 분홍색 옷 입고 가고 있어요.] 라고 분홍이 문자를 보내놓은 탓에 먼저 알아본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더니, 고 1정도로 더 어려보인다. 테이블에 앉은 분홍은 하얀색 스카프를 풀어 옆자리에 내려놓는다.


“......”

“......”


처음 들어올 땐 몰랐는데, 고등학생의 옆에는 원기둥 형태의 보온 도시락이 놓여 있다. 보온 도시락 뒤에는 낡아진 종이백이 놓여 있는데 실내화 또는 체육복이 들어있겠거니 짐작을 한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의 외모에 어떤 일정한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개성이 별로 없는 평범한 여고생의 모습이다. 하나 특이한 점은 단발보다 좀더 긴 머리를 대충 묶고 하루종일 매만지질 않아 묶여 있는 머리칼보다 빠져나온 머리칼이 더 많다는 점이다. 거의다 고무줄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더 있다. 아침에는 빠져나온 머리칼을 붙잡아 꼽아주었을 검은색 철제 딱핀이 원래 자리를 이탈해서 학생의 귀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고등학생 땐 다 저렇지.’


분홍은 생각한다. 체육복 바지를 교복 치마 속에 속고쟁이처럼 입질 않나, 여름엔 덥다고 세수할 때 쓰는 고무 헤어밴드로 머리를 다 밀어넘기질 않나. 그러고는 평상 위에 앉은 아주머니들처럼 한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공부를 했다. 고등학생 분홍도 그녀의 친구들도.


“저... 제가 지금 벌써 고 2라 지금 시작해도 실용음악과에 갈 수 있을까요? 친구들은 늦었대요.”


그렇게 따지면 분홍도 늦었다. 이제 곧 서른이다. 학생이 신세한탄을 할 때 강사가 같이 신세한탄을 하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십대와 이십대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시간이란 같은 얼굴을 하고 두 사람 앞에 도착해 있는 법이다. 선생이란 이유로 예전에 만난 시간의 얼굴을 이야기를 하면,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강사로서 분홍의 생각이다.


분홍은 노래를 잘 하려면 1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2년이 필요하다. 아니, 3년이 필요하다. 아니, 어쩌면 10년도 부족하다.


“6개월이면 잘 하게 돼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만약에 1년이라고 했다가 학생이 좌절하게 되면, 기껏 자기의 꿈을 찾아 첫 걸음을 뗀 아이를 좌절시키는 것밖엔 안 돼. 이렇게 가볍게 말해서 우선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


“아, 정말요?”

“네.”

“저는... 노래 부를 때가 정말 좋아요. 그리고 제가 수학여행에 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애들이 저보고 제가 그렇게 목소리가 좋을 줄 몰랐대요. 제가 말할 때는 소리가 좀 낮거든요. 근데 노래를 부를 때는 좀 예뻐요."


학생은 자기 목소리를 자기가 예쁘다고 말한 데 대해 깜짝 놀란 것도 같았고 부끄러운 것도 같았다. 분홍은 그런 고등학생이 귀엽게 느껴졌다.


"말할 때 목소리도 예쁜데요?"

"아, 정말요? 제 목소리에 반했다는 애도 있고... 노래를 하면 고민도 없어지고요. 근데 지금 벌써 고2라서 너무 늦은 것 같아요.”

“늦지 않았어요.”


학생의 눈에 희망의 불꽃이 이글, 올라온다.


정말 늦지 않았다. 분홍도 이 학생처럼 딱 이 무렵 노래를 시작했다. 아니, 노래는 어렸을 때 '나비야 나비야'를 부를 때부터 했다. 다만, 선생님한테 배운 게 그때가 처음인 것이다. 이름난 곳은 아니지만 지방대 실용음악과에 붙었다. 만약에 대학 이름을 욕심내지만 않는다면 고 2는 늦은 나이가 아니다. 겨울 방학도 남아있고 여름방학도 남아있다. 두 번의 방학을 끼고 일 년의 기간이면 승산이 있다. 그리고 노래는 단지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 오늘부터 배우면 안 돼요?”

“오늘? ......”


안 될 것도 없다. 이제 분홍에겐 언제든 가서 쓸 수 있는 (정확히 말해 방이 비어 있으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연습실이 마련되었다. 오늘은 분홍 자신의 개인연습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


“근데 레슨비는......?”

“집에 가서 엄마한테 부치라고 하면 돼요.”


초록색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과 분홍은 수업을 시작한다.


“자, 아랫배에 힘을 주고 따라해 봐.”

“네.”

“도 미 솔 도 미 솔 도 솔 미 도 솔 미 도”

“도 미 솔 도 미 솔 도 솔 미 도 솔 미 도”


노래를 몇 번 부르더니 너무 행복한지 학생의 눈동자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분홍이 잠시 물을 마시러 나갔다 들어오니, 학생이 연습실 벽의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만지며 뒤로 잡아 묶고 있었다. 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검은색 똑딱핀으로 머리칼이 흘러나오지 않게 잘 잡아매어 마무리를 한다. 분홍이 오자, 수줍은듯 다시 피아노 앞 원위치에 선다.


연습실은 그런 힘이 있다. 연습실의 조명은 그런 힘이 있다. 노래하는 사람이 자신을 가꾸게 만들어준다,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다.


머리를 단정히 한 학생은 커피숍에서는 개성이 없어 보였지만, 이제 눈도 초롱초롱하고 입매무새가 선명해지면서, 자신만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보니 예쁘다.


“내게 돌아와- 잡고 싶은 기억 속으로-- 내게 남겨진 너의 사랑이---”


분홍은 건물 밖까지는 학생을 배웅한다.


“오늘 수고했어. 문자로 계좌번호 남겨놓을 테니, 부쳐줘. 잘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그렇게 좋니?"

"네! 지인짜!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제가 너무 주책이죠... 헤헤......"

"하하. 아니야. 쌤도 처음 배울 때 그랬어."


분홍은 처음으로 사랑하는 노래와 함께 첫 발을 내딛으며 들뜬 여고생을 보면서 행복해진다.


“아참! 규원아. 우리 시간을 정해야지. 다음주에도 오늘처럼 목요일에 올래?”

“아, 네. 보충수업이 있긴 한데... 끝나고 오면 돼요. 네, 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니, 안녕히 계세요.”


규원이는 총총총 뒷모습에도 행복함을 달고 사라졌다. 밤 시간이지만 전철역 가는 길은 사람도 많은 편이고 커피숍도 하나씩 있으니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분홍은 다시 연습실 방으로 돌아와 뒷정리를 했다.


집에 가면 바로 레슨비를 부친다던 규원이는 다음 날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저녁이 되자 혹시 돈을 부쳤는데 문자를 안 하는 건가 싶어, 분홍은 잠바를 걸쳐입고 나가 집앞 편의점에서 잔액 조회를 해본다. 하지만 인출기 화면에 매우 익숙한 숫자가 뜨는 걸 보니, 수업료는 들어오지 않았다.


[규원아. 수업료가 안 들어왔네. 엄마한테 말씀은 드렸니?^^]


아무 연락이 없다.


“이제 잘 거야?”


송은 묻는다.


“아니, 오늘 쫌 짜증나는 일이 있어.”


원룸에서 옆으로 누워 귀 위에다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분홍이 말한다.


“뭔데?”

“아니, 어제 말한 고딩, 수업을 해달래서 해줬는데, 수업료도 안 부치고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

“바빠서 까먹었나 보지. 조금만 더 기다려봐. 고등학생이 예전 고등학생하고는 또 달라요. 에휴. 요즘은 애들이 어른들보다 바빠서 더 더 정신이 없어.”


역시 송은 긍정적이다. 때로는 신심 좋은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 같은 말투가 나올 때도 있다. 목소리가 딱 '교회 오빠', '성당 오빠'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내일은 주말이니까 안 바쁠 테고 부친다고 했으니 부치겠지.’


분홍은 빨리 수업료가 들어오길 바라는 조급함도 있지만, 이제 연습실도 안정적으로 생겼고, 학생들도 다시 하나둘 모인다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있다.


“송. 나 너무 졸려. 잘래.”

“응. 분홍. 자자. 사랑해.”

“응. 나도.”


분홍은 잠에 빠진다.


- 월세 서바이벌 로맨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분홍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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