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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58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05 13:50
조회
1,029
추천
21
글자
9쪽

11화. 컵밥과 조각케익.

DUMMY

30만원을 내고 연습실을 한 달씩 쓰게 된 분홍은 이제는 더 이상 이용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시계를 보면서 쫓기듯 노래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노래를 하는 시간 외에, 피아노 연습하는 시간, 인터넷 서핑하는 시간, 심지어 멍 때리는 시간까지,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곧 분홍이 연습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에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어떤 방을 쓸지 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에겐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연습할 권리가 있지만,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 어떤 방도 분홍의 방이 아니었던 것이다.


커피숍에 가면 모든 손님이 가장 앉고 싶어하는 방이 있듯 캐시 뮤직에도 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이 있었다. 그 방은 바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모짜르트 방’이었다. 슬리퍼 아주머니가 틈만 나면 욕을 하는 다른 여자 강사도 그 방을 가장 선호했다.


“너의 눈을 볼 때면, 잃어버렸던 사랑을 되찾은 나--- 곁에 머물겠다는-”

“여기, 손님 왔는데...”


다른 손님이 왔다며 아주머니가 문을 벌컥 여는 바람에 분홍의 노래는 중단되었다.


“네?”


분홍은 연습을 하다가 받은 방해에,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하면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다른 손님이 왔다는 말을 뒤늦게 이해하고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슬리퍼 아주머니는 그런 분홍의 얼굴을 처음 보는지라 눈이 커지면서 겁먹은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방은 없나요?”

“이 손님들이 꼭 이 방을 쓰고싶다구 허잖어. 그리고 좀 많이 왔어. 한 너댓 명이 되는데?”


분홍은 여러 사람이 왔다는 말에 방을 비워주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럼, 제가 다른 방으로 갈게요.”


분홍은 가방과 악보를 챙겼다.


“오늘따라 왜 방이 다 찼냐.”

“...... 네?”

"......"


분홍은 결국 방에서 쫓겨나서 소파에 앉았다. 월세를 내고 방을 쓰는데 방이 없다니... 분홍은 화가 나려고 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슬리퍼 아주머니가 말꼬리를 흐렸다며, 웬지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며, 미안한 줄 알면 되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손님 험담을 시작하는 슬리퍼 아주머니를 피해서 분홍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삼국 대학교 인근이면서도 삼국 대학교와는 대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이 검은색 건물. 저렴하면서도 입맛을 당기는 음식을 파는 분식집도 찾아보기 힘든 블록이다. 국물 떡볶이며, 저렴한 한식 뷔페며, 모두다 삼국 대학교 쪽 블록에 위치하고 있었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캐시뮤직이 있는 검은색 건물 주변은 순수한 주택가였다. 옷집 몇 개, 그리고, 커피숍 몇 개가 다였다. 전형적인 부자 동네였다. 2층집이 아닌 집은 찾아보기가 힘든.


그런데 얼마 전에 검은색 건물 앞에 웬일로 컵밥 집이 생겼다. 고시원 아주머니의 밥을 먹기 시작한 분홍이었지만, 연습하는 데 자신을 쫓아내버린 아주머니의 밥을 오늘만은 먹고 싶지가 않았다.


“얼마예요?”

“기본 싸이즈는 2천 8백원입니다.”


장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 특유의 업된 목소리가 경쾌하다.


“오징어 볶음 맛에 치즈 토핑이요.”


메뉴판을 유심히 보던 분홍은 말한다.


“치즈는 토핑에 6백원이 추가되는데 괜찮으세요?”

“네.”


치직치직 볶음밥이 링 모양의 오징어 두어 개와 함께 익어간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으리으리한 이층집이 도열한 동네에서 이렇게 냄새가 많이 나는 컵밥집을 오픈해서 장사를 하다니, 주민들의 항의로 장사를 오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에이... 다 알아서 하겠지. 오지랖이다, 오지랖이야...'


슬리퍼 아주머니는 지하 연습실에서 음식을 시켜먹었다는 남자 사장을 흉봤었다. 드럽다고 했다. 그런 지하 연습실로 들어가서 컵밥을 먹으면-그것도 오징어 향이 솔솔 나는-욕을 먹을 것 같다. 더군다나 아주머니가 만든 밥을 먹다보니, 다른 데서 밥을 사먹는 것은 마치 아주머니를 배신하는 행위 같아 더욱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분홍은 고민하다가 근처 놀이터로 향한다. 아직 해가 있는 시간이지만 날씨는 쌀쌀하다.


“송!”


분홍은 송에게 전화를 건다.


“응!”

“나 노래하다 방에서 쫓겨났어.”

“왜?”

“아줌마가 나더러 나가래. 여러 명 온 팀 쓰게 한다고.”

“......”

“다른 방도 다 찼어.”

“아~ 금요일도 주말은 주말인가 보다. 그 사람들 금방 갈거야.”

“아줌마 좀 짜증나. 내가 이러려고 돈을 삼십만원이나 낸 거 아닌데.”

“장사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몰리면 그럴 수 있어. 내가 빨리 갈게.”


전화를 끊은 분홍은 빨리 오겠다는 송이 고마우면서도 송이 원망스러운 맘도 든다. 처음에 분홍을 사귈 때 송은, 분홍만을 위한 연습실을 마련해 준다고 했었다. 처음엔 꼬시려고 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저렴한 지하를 얻어 예쁘게 꾸며준다며 꽤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진심이구나, 했다. 그러나 송은 돈을 잘 모으지 못하는 성격이다. 지난번에도 빨리 캐시 뮤직에서 월 단위로 등록하라고 부추기길래 분홍은 내심 송이 연습실비를 내주려고 하나, 기대도 하였다. 하지만, 송은 월 등록을 하여서 자유롭게 쓰게 되었다는 분홍의 말에도 축하한다고 했을뿐이다. 조금만 더 실력이 늘면 삼국대 여신이 될거라고 흥만 돋구었다.


컵밥을 먹고 연습실 근처를 이십분쯤 배회하다가 들어가니, 방이 하나 비었다. 오케스트라 방. 오케스트라 방에는 전자 피아노 건반이 하나 고장났다. ‘파’ 음을 내야 하는 건반이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소리가 나는데 지직- 하다가 노인이 기침하듯 파- 음을 낸다.


분홍은 연습을 이어간다. 송은 말한대로 평소보다 빨리 분홍에게 달려왔다. 쌀쌀한 날씨에 쫓겨나 컵밥을 먹고 있다는 분홍이 걱정되어 칼 퇴근을 하였다.


송의 손에는 조각 케익인듯한 노란색 상자와 테이크 아웃 커피가 두 잔 담긴 커피 캐리어가 들려있다. 상자를 열어보니 체리 시럽이 뿌려진 치즈케익과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색 초콜릿 케익, 그리고 갈색과 노란색이 번갈아 쌓인 티라미슈 케익이 담겨 있다. 송은 늘 먹을 것에는 돈을 잘 쓴다. 분홍은 머릿속으로 이게 다 얼마인지 계산해 본다. 약간 짜증이 난다. 그래도 이내 달콤한 케익에 따듯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니 분홍은 낮 동안의 각박해진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그때 그 노래 불러줘.”

“무슨 노래?”

“너의 눈을 볼 때면- 하는 거.”


노래가 끝나자 송의 눈에는 하트가 떠 있다. 분홍은 늘 자신의 노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송은 그런 그녀의 노래를 무조건 잘 불렀다고 하고, 최고의 가수라고 말해준다. 분홍은 그런 송을 잘 만났다고, 노래하는 사람에게 꼭 있어야 할 반쪽이라고 믿는다.


“분홍, 그런데 아버님 뵈러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요즘 계속 안 간 것 같은데.”

“휴. 가면 자꾸 화가 나. 간병인 말도 잘 안 듣는 것 같고. 엄마한테 신경질 부리는 거 보면 완전 화가 나.”

“에휴. 아버지들은 왜들 다 그러시냐.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모시고 살면 큰 힘이 돼 드릴 수 있을 거야, 내가 힘든 일은 다 할게. 너는 아버님 어머님이랑 과일이나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고 그렇게 살아.”

“우리? 누가 우리야? 내가 너랑 언제 결혼 해준대?”

“나랑 좀만 더 만나면 나를 거부할 수 없을걸?”


분홍은 어이 없는 표정으로 악보를 뒤적거린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 말한다.


“근데, 송, 결혼을 하려면 돈 관념이 있어야 돼.”


송의 얼굴이 빨개진다.


“내가 어떤 결혼을 앞둔 가수 부부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 두 사람은 처음 사귈 때는 데이트 비용으로 돈을 팍팍 쓰고 그랬는데, 이제는 데이트도 집에서만 하고, 돈을 다 모은대.”

“나도 모을 땐 잘 모아.”

“근데, 너, 월급 쓰는 속도 보면, 항상 열흘이면 다 없어져. 지난 번에도 월급 받은지 보름도 안 돼서 나한테 돈 빌려갔잖아.”


기껏 분홍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달콤한 케익을 사온 송을 타박하는 것 같아 분홍은 약간 죄책감이 들었지만, 먼저 결혼하면 분홍의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말하는 송에게 이 얘기를 꼭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은 볼이 조금 빨개지고 말이 없어졌다.


- 월세 서바이벌 로맨스 <싱글벙글 고시원>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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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감자조림. 15.11.29 758 20 12쪽
8 8화. 반값 요금. +1 15.11.08 794 24 13쪽
7 7화. 첫 유혹. +1 15.11.07 1,105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2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2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3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3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8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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