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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이대로는 신작 라노베를 쓸 수 없어!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5.03.22 23:13
최근연재일 :
2015.11.16 22: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9,165
추천수 :
116
글자수 :
124,877

작성
15.10.2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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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02화 - 4

DUMMY

“흐흐흐흐흥─”

“뭔데.”

“난토나쿠! 키미와 이제 와타시타치노 나카마다카라!”

“……뭐라는거야.”

“같은 배를 탄 동료라는 뜻 데스요! 흐흥!”

“아…… 진짜 싫은데 그거.”



쉬는 시간. 괜히 내 주위를 얼쩡거리며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내는 다히. 가만히 말을 거니 녀석은 깔깔대며 알 수 없는 일본말을 지껄인다. 친히 스스로 번역까지 해 주는 다히. 이런 녀석과 한 배를 탄 동료라니. 정말 싫은데. 이런 녀석과 동류(同流)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미안하니까 나도 도와줄게. 괜히 공범된 것 같으니까.”

“전혀. 안 도와줘도 돼. 지영이 너까지 이 지옥으로 같이 끌고 들어오긴 싫으니까.”



옆자리 지영이가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확실히, 지영이의 공이 크긴 하지. 지영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다히가 다리를 걸었을 테고, 그럼 그렇게 적나라한 사진이 찍히는 일도 없었겠지. 그런 걸 고려해서 지영이는 나를 배려해 하는 말 같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거지 같아도 유일한 친구를 같이 끌어들일 순 없는 노릇이지.



“아, 하긴! 준모는 한나 덕분에 좋은 거 했으니까! 히힛!”

“……그 얘기는 꺼내지 말자고 했잖아.”

“아 그치만! 히힣. 그 때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 네 표정이 생생하니까. 되게 그랬다구. 어미의 품에 폭 안겨 평안해하는 새끼 같은 느낌? 아핳! 준모 그런 표정 처음 봐.”

“……하아.”



지영이는 잔뜩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순식간에 썩어버리는 내 표정. 내 마음도 한 순간 썩어버려 악마가 자라난다. 제발, 그 얘기만은 꺼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런 식으로 약점 잡혀서 무슨 말을 해도 그 쪽 방향으로 가는 게 제일 싫은데.


물론 지영이가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다. 순수하게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거워할 뿐인 지영이니까. 남이 괴로워하는 걸 즐거워하는 거, 그게 사디즘 아닌가. 악의가 없다지만.



“아↗핳↗하하! 바로 이 사진을 말하는 것인가요?!”

“으하하핫! 너무 잘 찍었어, 사진을!”

“……지운다.”

“핳! 지워봤자라니까데스요! 이미 오레노 샤신와 안젠나 토코로니! 그보다, 멋대로 남의 스마호 가져가지 말라에요!”

“하아.”



암행어사가 당당하게 마패를 꺼내 보이듯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보이는 다히. 지영이는 깔깔 까르르 좋아라 웃는다. 사진을 보는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간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 사진. 지영이의 말대로 모성 본능으로 돌아간 듯한 안정적인 내 표정. 눈을 감고 촉감을 만끽하고 있는 표정. 얼른 다히의 휴대폰을 뺏어 사진을 삭제한다. 그래봐야 공염불인 것은 잘 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잖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데.”

“그건, 한나쨩한테 직접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데쓰!”

“이제는 무작정 데스구나.”

“시끄럽다데스에요!”



심드렁하게 물으니 어떻게든 일본어로 대답하는 다히. 녀석의 일본어도 참 웃긴게,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가 모르는 단어는 그냥 한국말로 말한다. 당황했을 경우에도 일본어는 안 하고 한국어로 말하고. 결국엔 ‘컨셉’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내 지적에 다히는 잔뜩 짜증스럽게 국적불문의 어구를 외친다.



“「조언자」 왔습니다.”

“……큿.”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한다고 한 것을 안 한다고 어물적 넘어가진 않는다. 다히의 성화에 자리에서 일어나 한나 자리 앞으로 간다. 내 말에 흠칫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한나. 가슴을 슬쩍 팔로 가리며 몸을 움츠리는 한나. 이보세요,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무슨 짓 할 것처럼 그런 몸동작 취하면. 한 짓이 있는지라 떳떳하게 말을 할 수도 없다.



”저기요. 조언자 열심히 하라고 해 놓고 막상 한다니까 이렇게 찬밥대우입니까.”

“……시끄러! 변태자식아!”

“막말로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 네가 들이댄 거잖아.”

“뭐, 뭐라고?!”



한나의 말에 나는 딱히 지지 않고 맞선다. 가만히 따져볼 건 따져볼 일이다. 내가 일부러 한나의 가슴에 뛰어들어 얼굴을 파묻었는가. 그건 아니다. 막말로 한나가 들이댄(?) 게 잘못이지. 좁쌀영감처럼 일일이 따지고 싶지는 않아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토라져선 변태 취급 하면 나도 딱히 좋은 시선으로 한나를 볼 수는 없다. 한나는 억울한 눈을 하곤 잔뜩 빨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됐어! 어쨌든 넌 이제부터 내 노예니까!”

“명백하게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조언자」는 명분 뿐이고 사실은 노예야.”

“흥! 네가 큰 소리 칠 입장은 못 될텐데?! 우시쨩이 찍은 사진, 나도 가지고 있으니까!”

“큭…….”



당당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한나. 빨개진 얼굴인 채로 애써 괜찮은 척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담담하게 말하던 나는 이어지는 한나의 말에 참담한 표정이 된다. 다히가 찍은 그 사진. 이미 한나에게까지 공유가 돼 있구나. 그 사진은 마치 낙인처럼, 나의 행동을 제약하게 된다. 입 다물고 따를 수밖에 없다. 아킬레스건.



“차, 창피해도 어쨌든 너를 이용할 확실한 증거니까! 네가 네 입으로 그랬잖아? 명백히 강제성이 있고, 증거가 남아야 너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알았습니다. 무얼 하면 될까요. 「조언자」로서 제 첫 번째 임무는?”

“……그! 그러니까, 조언자는, 그.”

“생각하지 않았구나. 딱히.”

“시, 시끄러!”



잔뜩 부끄러워하면서도 당당한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한나. 허리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니 가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힐끔 곁눈질로만 본다. 대놓고 봤다간 또 변태라고 몰아세울테니.


느긋하게 물으니 한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더욱 몰아세운다. 한나는 빨개진 얼굴로 대답한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조언자」라는 타이틀은 대체 무얼 하는 건지 짐작조차 안 가니까.



“그러니까, 너는 나를 무얼 시키려고 했는데. 네 소설 읽고, 그걸 빌미로 뭘 시키려고 했는데.”

“아! 기억났어. 그러니까, 음. 내 글이 어떤지 평가 내려줬으면 좋겠어.”

“그게 끝?”

“아아니!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내가 글 쓰면, 네가 읽고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어디 부분이 안 좋고 어디 부분은 좋고. 냉정하고 명확하게! 그러니까 너로 정한거야. 너라면 그런 거 잘 할 것 같으니까.”

“뭐, 가차 없이 말하는 건 잘 하지.”



애써 이런 걸 내가 이르집어 줘야 하다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 한나는 퍼뜩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묘하게 어린아이 같은 말투에 한나가 귀엽게 느껴진다. 한나를 내려다보며 대답한다.



“그러면, 네가 쓰는 글 보고 비평해주면 그걸로 끝?”

“아니, 그걸로 끝이 아니야! 「조언자」니까, 최근 라노베 동향이나 모에요소 같은 것들을 파악해서 나한테 조언해 줘야 해!”

“무슨 소리야. 하나도 못 알아 듣겠는데. 전문용어로 말하지 말고 한국어로 말 해.”



그렇게만 한다면 일이 너무 간단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한나의 그 말도 안 되는 글을 읽어야 하는 건 괴롭겠지만, 얼마 양이 안 되니까. 한나가 아무리 빨리 쓴다 해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한나는 전혀 못 알아들을 말을 한다.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그러니까! 내가 추천해주는 라노베 읽고 그 흐름대로 조언을 해 줘야 한다구! 네 꼰대같은 발상대로 조언해주면 라노베가 아니게 되잖아!”

“그럼, 설마 나보고 네 것 말고 그 라이트 노벨 같은 걸 읽으라는 거야?”

“어. 그래야 라노베 보는 눈이 생기지.”

“절~대 싫은데.”

“거절은 거절할게. 아니면 뭐, 이 사진이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거야?”

“크흑…….”



한나의 말에 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라이트노벨을 읽어본 건 중학교 때 처음. 조금 오타쿠 기질이 있는 친구의 추천에 의해. 내 생에 몇 안되는 큰 실수 중 하나. 눈을 버렸었다. 내 대답에 한나는 싱긋 웃으며 휴대폰을 들어 보인다. 굳이 한나가 사진을 보여주지 않아도, 나는 알아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나에게 선택의 권한은 없었구나.



“이따 점심시간에, 읽을 만한 라노베 줄 테니까. 그때까지 기대하고 있으라구♪

헤헷.”

“……하아. 그래. 우선은 해 보자.”



한나의 말에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써는 어떻게 거절할 방법이 없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한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너 때문이기도 하지.”

“헤에, 준모답지 않게 남 탓? 실망인데.”

“네가 도와줘서 그런 거잖아.”

“에헷.”



쉬는 시간은 이미 다 끝났다. 내가 한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지 지영이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짜증스럽게 되돌려주니 지영이는 여전히 즐거워보이는 표정으로 웃는다. 귀엽지만 않았어도, 후우.




--




“너 왜 혼자 밥 먹으러 가? 친구 없어? 지영이랑 안 친해?”

“원래 사람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야.”

“흥! 허세부리지 마라데스요! 오마에와 히토리쟈 나이! 나카마가 이룬다요!”

“잘 말했어, 우시쨩. 우린 전부 동료니까.”

“우시 쨩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본래 점심은 그렇게 먹어왔다. 지영이랑 같이 먹는다고 해도, 나는 혼자 터벅터벅 급식실로 가고 지영이는 친구들과 같이 와서 내 앞자리에 앉는 것. 암묵의 룰 같은 것이었지.


하지만 그 전통은 두 명의 깡패들에 의해 깨져버렸다. 혼자 휘적휘적 걸어가는 내 양 옆에 붙어 재잘재잘 떠드는 녀석들. 시끄럽다. 다히 말은 알아듣지도 못 하겠고, 한나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촌 여동생 같아서 짜증나고. 잠자코 대답하지 않고 걸으니 둘이서 다툰다. ‘우시 쨩’이라는 별명, 어지간히 싫어하는구나. 자주 애용해야겠군.



“아! 나 빼고 셋이 오붓하게 먹고 있어?! 너무하잖아!”

“이제 이 녀석은 내 「조언자」니까. 너만의 것이 아니라구, 이·지·영!”

“에에, 내, 내가 언제 준모가 내 거랬어!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럼 아무 주인도 없던 공령에 깃발을 먼저 꽂은 건 나니까! 이제 이 녀석은 내 조언자임을 선포합니다!”

“……나는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야.”

“흐흥!”



각각 내 앞과 옆자리에 자리를 잡은 한나와 다히.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 지옥이 따로 없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김치와 함께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정겨운 지영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엔 지영이가 와도 심드렁했지만 오늘만큼은 천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반갑다. 이 지옥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어.


지영이의 말에 한나는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 말에 지영이는 상당히 부끄러워하며 귀엽게 대답한다. 한나는 ‘아하핫!’ 하고 웃으며 말을 잇는다. 어지간하면 이 녀석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내 자유를 침해하는 말을 들으니 참을 수가 없다. 어떻게 되든 내 자유를 침해받아선 안 되니까.



“밥 다 먹고, 나한테 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지, 「조언자」로서의 삶에? 흐흥!”

“하아. 예. 알겠습니다, 마님.”

“우와아─ 마님은 뭐야 마님은! 하지마 그거! 이상해!”

“헤헿! 노비로서의 마음가짐에 눈을 뜬 것일까요? 헨타이야츠!”

“어려운 단어는 모르는구나, 우시짱.”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오마에니 우시쨩이라 불리긴 싫으니까!”



한나는 들을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 ‘흐흥♪’ 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한다. 김치를 우적우적 힘주어 씹으며 대답한다. 머슴이 된 기분. 한나는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것 같은 이상한 감정표현을 하며 말한다. 이것도 하나 캐치. 싫어한다면 계속 써 줘야지. 벗어날 수 없다면 최대한 이 녀석들 심경이라도 긁어 놔야 내 속이 풀릴 것 같으니까. 다히는 간단하게 ‘우시 짱’이라는 별명으로 제압. 숟가락을 흔들며 발악하는 다히. 귀엽네.





“자, 이거 읽어!”

“……하아.”

“한숨 그만 쉬고! 현실을 받아들여! 너는, 이걸, 읽어야 해! 아↗하하핫!”

“그래. 읽는다.”



점심을 다 먹고 남는 시간. 평소라면 느긋하게 내 할 일을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내 시간을 온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투자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한숨쉬며 한나에게 책을 몇 권 받았다. 굳은 다짐을 하고 돌처럼 굳은 표정으로 한나에게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에에─ 오타쿠 같애─ 준모 오타쿠야?”

“…….”

“아하하, 장난장난! 왜 정색하구 그래! 너 그런 거 아닌 건 내가 제일 잘 알지! 히힝.”



가만히 책을 들고 자리에 앉으니 지영이는 깔깔 웃으며 말한다. 잔뜩 치켜세운 눈썹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며 그녀를 지그시 쳐다본다. 살짝 내 눈치를 보며 손바닥으로 내 팔을 툭 치며 대답하는 지영이. 그래도 지영이는 정도를 아는 여자애니까. 내가 기분 나빠하면 적당히 장난을 그만두곤 하니까. 표정을 풀고 책더미의 제일 위의 책을 본다.


우선 표지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분명 소설책인데 만화책 같은 표지. 거기다 제목도 쓸데없이 길고. 여자애는 교복을 입고 있는데도 왠지 야한 것 같고. 남자애는 기가 죽어 보이는 얼굴. 아무런 감상도 없이 책을 펴고 읽는다.



“…….”

“나도 읽어봐도 돼?”

“어.”



입을 다물고 책을 읽고 있으려니 지영이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굳이 말하지 않고 가져다 읽어도 될 텐데. 눈을 떼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잠자코 계속 읽는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학교 때 봤던 것과 달라진 것은 없구나, 이 라이트노벨이란 건. 어째서인지 책이 다르고 작가가 다르고 시기가 다를 텐데, 기본적인 구조는 어째서 똑같은 것일까. 자칭 평범한 남자애가, 어떤 우연한 계기이던간에 예쁜 여자애를 만나고, 그리고 벌어지는 이런저런 사건들. 그냥 간단하게, 그 여자애한테 고백하고 사귀면 끝나는 거 아닌가? 왜 그런 짓거리들을.



“하아.”

“재미있는데? 왜?”

“답이 없어서.”

“흐응. 이건 재미있어, 이거 봐봐. 그거 줘 봐. 뭐가 노답이라는 건지.”



겨우, 힘들게 한 권을 읽고 한숨을 푹 쉰다. 기본적으로 쉬운 단어와 쉬운 문장들의 나열인지라 한 권을 읽는데 힘도 들이지 않고 시간도 얼마 안 걸렸다. 내가 다 읽는동안 지영이도 다 읽었는지 방긋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재미있다고?! 이게! 취향도 독특하지. 분명 짧지 않은 시간동안 글을 읽었지만 어떤 것도 내 마음에 남지 않았다. 공허한 단어와 문장들의 나열들일 뿐. 지영이는 손을 뻗어 책을 주고 내가 읽던 것을 가져간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펴본다. 지영이가 재미있다고 하니까, 그나마 낫겠지.



“똑같이 재미없잖아! 이딴 게 뭐가!”

“재미있는데, 이것도?”

“아아. 그냥 조언자 네가 해라.”

“싫어! 한나가 정한 건 너잖아?”

“……아아.”



여전히 똑같은 이야기. 캐릭터와 배경, 계기만 바뀌고 기본적인 구조는 같다. 죽을 것 같다. 이런 걸 두 권이나 순식간에 읽다니, 정말 토할 것 같다. 지영이는 이번에도 방긋 웃으며 재미있다고 한다. 지영이, 생긴 것과 다르게 이런 게 취향이구나. 애초에 취향하고 생긴 것하고는 관계가 없긴 하다만.


어지간하면 짜증을 안 내는 나지만 이번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짜증을 담아 지영이에게 말한다. 지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책상에 엎드린다. 틀렸어, 이제. 내 멘탈은 버틸 수가 없어. 이런 걸 계속해야 한다면 난, 난…….




“어땠어?”

“아주 거지같았어.”

“뭐야아! 처음부터 그러면 어떡해!”

“나는 ‘라이트노벨’이란 장르에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싶지만. 확실히, 너무 거지같으니까. 정말 작위적으로 나오는 장면이라던가, 이유를 모를 인물들의 행동이나, 특히 왜 그렇게 가슴이나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고.”

“……가슴은 너부터가 집착하잖아.”

“아니 그건…… 하아.”



오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한나가 나에게 다가와 묻는다. 가만히 심드렁한 평을 내린다. 대뜸 짜증을 내는 한나. 눈을 들어 한나를 올려다보며 간단한 평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싫다. 는 것을 어필하지만 한나는 자신이 듣고 싶은 부분만 들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팔로 가리며 뒷걸음질치며 말한다. 언제까지 그거 울궈먹을 생각이냐. 아마 평생 동안 그러겠지. 그래야 나를 더 이용해먹을 수 있을 테니까. 더 대답할 수 없이 한숨만 나온다.



“어쨌든 오늘 안에 그거 다 읽어봐! 그래야 기초가 쌓일 테니까, 라노베에!”

“궁금한 게 있는데.”

“엉?”



한나의 절망적인 말에 꾸욱 참고 말을 꺼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한나.



“라이트노벨에 대한 감각이라던가, 그런 걸 키우고 싶다면 그냥 네가 이 소설들을 읽고 감각을 키우면 되는 거 아니야. 왜 굳이 나한테.”

“……흠, 솔직하게 말하면 나, 별로 인기 있지 않으니까. 열심히 써서 인터넷에도 올려보고 공모전에도 내보고 그랬지만, 전혀. 내가 해서는 한계가 있나, 하는 마음에 너를 발견했으니까. 네가, 도와주면 왠지 될 것 같아.”

“……아무 이유도 없이?”

“응, 감이야.”

“하아.”



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감이라고 하니 더는 이을 말이 없지만. 왜 하필 그게 나였을까요. 굳이 내가 한나 공책을 훔쳐봐서가 아니라, 그 전부터 스토킹하던 때부터 이미 나로 낙점돼 있었다는 얘기잖아. 한나는 ‘흐흥♪’ 하는 추임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다시금 좌절하는 자세로 책상에 엎드린다. 더는, 읽을 수 없어.









─나는 라이트노벨이 싫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립적인 자세였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싫다’ 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읽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조언도 해 주어야 한다. 싫어하는데 그걸 읽고 좋은 점을 잡아낼 수 있는건가? 전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뭐, 「조언자」, 하기로 했으니까. 하기로 한 건 제대로 해야겠지. 팔자에도 없는 이딴 글을 읽느라 오늘도 나는 시간을 낭비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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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0 크리오
    작성일
    15.10.29 23:20
    No. 1

    ㅋㅋ 직감 때문에
    구르는구나
    준모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1.01 21:18
    No. 2

    도리어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그보다 저 상황에서는 어떻게 답이 없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캬르룽
    작성일
    15.10.30 02:56
    No. 3

    주인공 한숨이 너무 많아서 신경쓰입니다. 이 부분은 줄이시는게 좋을거 같아요. 저같아도 한숨나오는 입장이긴 하겠만 지나치게 많은거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1.01 21:18
    No. 4

    넵,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쓰면서 제가 한숨이 나와서...... 후우...... 아 줄여야죠. 하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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