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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자신감이 부족한 나는 자신과 만났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10.04 23:42
최근연재일 :
2015.02.13 23:02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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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96
추천수 :
151
글자수 :
340,423

작성
14.12.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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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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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7쪽

09화. 나의 하람이는 그러지 않아!

DUMMY

“있잖아.”

“…….”

평화로운 저녁. 평소와 같은 일상이다. 평소라고 한다면 뭐가 평소인지 알 수 없지만─ 대강 표현을 하자면 이런 광경이겠지.

운동을 하고(자발적으론 아니고, 자신이와 함께 강제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는 나. 혼자 있었다면 컴퓨터를 하던 TV를 보던 했겠지만 둘 다 점거당해서. 컴퓨터는 여리에게, TV는 자신이에게.

여리는 늘 컴퓨터 삼매경, 눈이 빠져라 인터넷을 하고 있다. 게임도 안 하고, 순수하게 인터넷만으로 어떻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나 싶다. 아무래도 남자인 나와는 종족(?)과 풍습(?)이 다른 여자애니까 가능한가보다 싶다. 자신이는 깔깔대며 TV를 본다. 개그프로를 보고 자주 배 터지도록 웃는 건 자신이의 유쾌한 모습이다. TV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나로써는 곤욕이다. 어릴 때엔 TV 좋아했는데, 지금은 별로. 컴퓨터 하는 게 더 낫거든.

이런 평화로운 저녁에, 두 사람은 즐겁고 한 사람은 심심한 이런 상황 속에 나지막이 여리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면 된 거지.’ 하고 생각하다 여리를 쳐다봤다. ‘있잖아’ 라고 말을 꺼냈는데 그 대상이 나인지 자신이인지 알 수 없다.

“……있잖아.”

“누구 부르는겨, 나? 자신이?”

“응? 나 불렀어?”

대답이 없자 다시금 나지막이 말하는 여리. 목소리가 더 줄어들었다. 뭔가 기가 죽은 것 같은 느낌. 한 번에 대답하지 않는다고 풀죽은 건가. 그럼 애초에 누굴 부르는 지를 확실히 지목을 해야지. 하다못해 부르는 애를 쳐다보는 성의라도 보여야 상대가 대답을 하지.

자신이는 TV 삼매경에 빠졌다 꿈에서 깨어난 듯 허둥대며 나와 여리를 본다. 얘는 대체 TV에 얼마까지 몰입을 하기에 이런 모습일까. TV 소리를 헤드셋 끼고 청취하는 것도 아니고, 가상세계에 들어가 4D로 실감하는 것도 아닌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를 쳐다보다 다시 여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잉여인간아.”

“……?”

“……쓰레기야.”

“?”

“병신아.”

“어이!! 나 부르는 거 아니지?!”

여리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TV 가까이 있는 자신이는 잘 안 들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 처음 ‘잉여인간’은 잠시 침묵했다. 자신이도 지금 모습은 완연한 잉여인간이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쓰레기’, ‘병X’이란 말에 절로 몸이 움찔거려 소리를 지르게 된다. 여리는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작게 웃는다.

요즘 들어 점점 이렇게 나를 놀려먹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여리다. 늘 무감각하게 휴대폰이나 보고 컴퓨터나 하고 그런 애였는데. 뭐, 나쁜 건 아닌지라 너그러이 넘기곤 한다. 진심이 아니라 장난이니까. 적어도 그런 모습이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여리의 모습이 대견하니까.

“……미안?”

“전혀 안 미안해 보이거든. 왜 시비야, 심심해?”

“아니. 물어볼 거 있어.”

“물어볼 거?”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쿡쿡 웃던 여리는 웃음을 그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전혀 미안해보이지 않고 오히려 화내는 내가 희안하다는 눈빛이라 오히려 기분이 악화된다. 여리는 더 나를 놀리지 않고 본론부터 말한다. 물어볼 게 있다면 정중하게 물어보는 게 사람된 예의…… 됐다, 뭘 그리 시시콜콜 따지겠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리에게 다가간다.

“‘구골링’이 뭐야?”

“음─?”

여리의 질문에 시선이 멈칫, 귀엽게 눈을 말똥말똥 뜬 여리의 얼굴을 멍하니 보게 된다. 순수한 아이가 갑작스럽게 ‘섹X가 뭐야?’ 하고 물어본 것만큼 충격은 아니지만, 미약한 정도로 당황스럽다. 딱히 위험하거나 애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껄끄러운, 인터넷 전용 용어이다보니까.

“그건 왜? 뭐하다 그런 게 나와?”

“이거.”

여리는 당당하게 화면을 가리킨다. 잠시 눈을 진정하고 화면을 쳐다본다.

한 인터넷 게시판. 카페 같다. 무슨 게시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밑에 댓글란으로 가 있다. 거기에, ‘여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의 댓글이 보인다. ‘뭐래 병X이 알지도 못하면서 깝 ㄴㄴ’ 라고 써 있다. 그 밑에, 다른 사람의 댓글이 있다. ‘너 시X 구골링해서 털어버림 너야말로 깝 ㄴㄴ’

“완연하게 어그로를 끌고 있구만!! 인터넷 사이트라도 좀 예의를 지키라고!!”

“그치만, 얘 아무것도 모르는데 깝치고 있다구.”

“어떻게 알아! 그냥 눈팅만 해, 인터넷이면 좀!”

위로 올려 전반적인 글의 행색을 보니 완연하게 여리의 잘못이다. 멀쩡한 유머글에 상식을 세우고 달려드는 꼴이 전형적인 어그로꾼의 모양새다. 다만 여리는 관심을 받고 싶어 어그로를 끄는 건 아니고, 진심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댓글을 단 모양이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의 진노를 살 테고, 저런 격한 어휘가 나올 수밖에. 애도 아니고, 인터넷 예절을 강의하듯 가르칠 수도 없고. 뒷머리를 긁으며 여리를 내려다본다. 여리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듯 심통이 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됐고 구골링이 뭔데 나를 털겠다는 거야.”

“일단은 사과해, 이 사람들 화났잖아.”

“쳇, 내가 왜.”

“아 상관없잖아, 어차피 인터넷 사람들인데! 평생토록 만나본 적도 얘기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한테 왜 이렇게 열을 올리는데~ 그냥 사과 해!”

“칫…….”

어떻게든 사과를 피하려는 여리에게 소리쳤다. 이런 때엔 또 괜한 자존심이 발동하나보다. 나도 이전까지면 그랬겠지만─애초에 나는 인터넷에서도 철저하게 소외자다. 그냥 눈팅만 할 뿐이지─미지랑 놀고, 자신이와 지내면서 어느 정도 성격이 유해진 모양이다. 이런 경우엔 사과하고 얼른 눈팅 모드로 돌아가는 게 현명하지.

여리는 툴툴대며 빠른 타자속도로 글을 쓴다. ‘도저히 납득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논쟁 같지도 않은 논쟁은 그만두렵니다. 편하게 생각없이 올리는 유머글, 다른 사람에겐 불쾌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하셨는지?’

‘탁!’

“이건 사과가 아니라 더 분쟁을 하겠다는 거잖아. 지워.”

“아! 왜, 왜에! 정중하게 사과하는데 뭐가 잘못됐어!”

여자애를 때려본 건 평생토록 처음인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손바닥이 절로 갔다. 세게 때린 건 아니고, 가볍게. 여리는 억울한 표정으로 맞은 뒷머리를 감싸며 말한다. 억울한 표정을 보니 살짝 미안해지기도 하는데. 이런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인터넷 안에서 그녀는 한 명의 어엿한 전사다. 그것도, 정신승리와 탱커를 겸하는 쓰러지지 않는 용사. 강제로 인터넷에서 떨어뜨려야겠다. 여리를 자리에서 끌어내고 내가 앉았다. 여리는 저항하지만 별 소용은 없다.

“잘 들어, 가끔 인터넷에서 ‘신상 털리는’ 사람들 있잖아.”

“응. 뭣도 모르고 깝치다가 털리는 애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가만히 설명하고자 임의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여리의 아이디를 로그아웃했다. 여리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바닥에 앉는다. 헛기침을 하고 목을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한다.

“‘구골링’이란 건 그 신상털이에 사용될 수 있는 무서운 행위야. 알겠어?”

“신상 터는거. 싫은데. 그게 뭔데 그래. 알려줘.”

“그러니까…….”

여리는 흥미가 생겼는지 계속 물어본다. 말수도 별로 없고 나에게 관심도 없는 평소 모습과는 상반된 태도. 매일 열정적으로 하는 인터넷이니 관심이 생길만도 하려나. 입술을 살짝 깨물고 고민했다. 사실 나도 말로만 들은거니까 잘 모르는데.

“예를 들자면. 보통 사람들이 아이디 같은 걸 한 번 만들면 그걸 다른 사이트, 다른 곳에서도 그 아이디로 만들어 써. 그걸 구골에 쳐서 검색해서 그 녀석의 인터넷 행적들을 낱낱이 보는 거지.”

“……네이비나 다움에는 안 되는거야?”

“거기는, 국내 사이트이기도 하고. 나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검색이 잘 안 된다고 들었는데.”

여리는 묵묵히 나를 올려다보며 질문한다.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확실히, 나도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으니까. 네이비나 다움이나 구골이나, 똑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데 굳이 구골만 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고.

“자, 예를 들어볼게. 나 같은 경우는 아이디가 대부분 ‘lkm6268’거든. 이걸로 쳐 보면…….”

“무슨 의미야?”

“lkm은 이기민 이니셜.”

“6268은?”

“집 전화번호.”

“참 유치하네.”

“어릴 땐 다 그렇잖아. 봐. 검색됐다.”

여리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유치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부정할 수는 없지, 저 아이디 초등학교 때 지었던 아이디인데. 검색하니 무언가 좌라락 뜨긴 한다.


─일본을 죽입시다 일본은 나의 원수 대한민국은 착한데 일본이 쳐들어왔습니다 반만년 찬란한 역사와 강토가 짓밟혔습니다 개새X, X발놈, JAPAN OUT!!

─랄까…… 조센은 미개해서 니뽄을 따라갈 수가 없죠. 아니메라던가, 드라마라던가, 뭐든 조센이 제대로 하는 게 있던가요?(웃음)


“너 이중인격이야?”

“잠까아아안! 이, 이거 분명히 지웠었는데?!! 아아아아!!”

몇 년 전 귀중한 자료가 얼마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잘도 나온다. 분명 흑역사로 규정하고 지웠던 글 같은데…… 앞글은 중학교 1학년 때, 국사 시간에 국사 선생님의 열변을 듣고 국수주의자가 돼 한 말, 뒷글은 중학교 2학년 때 오덕 친구의 교화(?)로 일본 문화에 흠뻑 빠져 순식간에 친일파가 돼 지껄인 말. 한창 사춘기에 여물지 않은 머리인지라 생각이 확확 바뀐다. 1년 만에 민족투사에서 친일파로 변절하다니. 뭐, 실제 세계에서도 그런 경우가 왕왕 있었다지만.

여리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부끄러워 순식간에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다. 모니터를 가리며 발광하다 얼른 인터넷을 껐다. 구골…… 이 무서운 녀석! 우리에겐 잊혀질 권리가 있다고! 맘대로 자살도 못 하겠다, 이런 흑역사들 때문에. 자신이는 그런 나를 보고 깔깔 웃는다.

“헤에. 그럼 구골링 해서 나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신상을 털겠다, 그런 거야?”

“응, 그렇지. 이런 흑역사 같은 거 뒤져서 인신공격하고, 잘만 더 조사하면 과거 자료가 아니라 최근 자료까지 얻어서, 그 사람 집 주소, 부모님 성함, 학교 이름, 회사 이름 등등등~ 하여튼 안 좋은 거야. 알겠어?”

“응. 어차피 나 기록 같은 것도 없으니까 안 털려.”

“아니 그런 마인드가 아니라, 애초에 분쟁을 일으키지 말라니까!”

여리는 이제 이해한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상부터 틀려먹었다. 위험성을 설명해줘도 굳이 어그로 끄는 것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마인드. 하긴, 또 생각해보면 여리랑 자신이는 갑자기 나타난 애들이니까, 그동안의 기록 같은 게 전혀 없을 테니까…… 복잡한 건 잘 모르겠다만.

「은하람」

“그건 왜 치는데.”

“그냥, 심심해서.”

자리를 비켜주자 여리는 바로 구골에 하람이 이름은 친다. 약간의 당황스러움. 알려주자마자 바로 남의 신상을 털어보려는 게냐. 거기다, 왜 하필 하람이인데. 내 질문에 여리는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별로 안 나와. 내가 아는 애가 아니라 이상한 애들만 나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잠깐 나와봐.”

당연하다. 단순히 이름만 쳤다고 나온다면 대한민국 전국민 신상이 활짝 열린 문인 거겠지. 최소한의 키워드는 따내야 신상을 털고 자시고 할 게 아닌가. 다시금 비켜보라고 하니 여리는 순순히 자리에서 나온다. 확실히 흥미가 있나보다. 평소엔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결코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는데.

뭔가 마음이 찔리긴 한다. 하람이 신상을 터는 거잖아, 이러면. 그래서 여리에게서 컴퓨터를 뺏은 것이다. 적당히 찾는 척 하다가 ‘잘 안 나오네. 내가 해도 안 되나봐. 하람이는 인터넷 잘 안 하나보네.’ 하고 대충 핑계대려 하는 속셈이다. 일단은…….

“어. 그래, 이런 아이디 같은거를 키워드로 해서 찾아보면 훨씬 낫지.”

“응.”

「은하람」을 키워드로 했을 때 나오는 아이디가 몇 개 있다. 그 중 ‘haraming1318’이라는 아이디를 다시 검색해봤다. 뭐, 이렇게 단순히 검색했다고 그게 우리 학교의, 나와 여리가 아는 하람이일 확률은 극히 낮다. 전국에 ‘은하람’이라는 애가 몇 명이나 있겠어. ‘은’씨도 좀 특이한 성이고, ‘하람’이란 이름도 드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이름도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인구가 5000만명이나 되니까. 다시는 대한민국을 무시하지 마라.

“……어?”

“맞아?”

“글세…… 모르겠는데.”

제일 위에 뜬 블로그를 들어갔다. 네이비 블로그. 여자애 특유의 분홍빛 느낌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블로그다. 눈 내리는 것 같은 이펙트에, 잔잔한 음악까지. 나는 가끔 블로그를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은 하지만 이렇게 세세하게 꾸미기가 너무 귀찮고 어려워 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여자애들이 좀 대단하긴 하지.

프로필 사진은 고양이 사진이다. 여자애들은 여러 부류가 있지만 크게 두 개로 나뉘지. 자기 셀카 사진을 프로필로 하는 애, 고양이나 개, 아기(?) 같은 본인이 아닌 귀여운 사진을 프로필로 두는 애. 이 블로그는 후자인지라 정체를 단박에 알아 차리기 힘들게 됐다. 사진 밑의 닉네임은 ‘하라밍♪’. 이것도, ‘하람’이란 이름이면 누구나 지을 수 있는 별명이니까 단서가 되기는 힘들다. 그럼 어디, 글 같은 걸 살펴볼까.

“음…… 맞나 아니나 모르겠네. 좀…… 글 수준이라던가 그런 거 보면 여대생 정도인 것 같은데.”

“글 수준이 있어? 어떻게 알아?”

“뭐, ‘느낌’이란 게 있잖아. 꾸며놓은 정도나, 글 올릴 때의 말투나. 댓글에 댓글 달 때의 공손함 같은 걸 보면 확실히.”

내 스스로 인터넷을 겪으며 정해놓은 기준에 따르면 이 정도 블로그는 여대생 정도면 딱 적당한 것 같다. 우선은 고등학생이면 이런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기가 힘들다. 여유라는 게 상당히 부족하니까. 대학생이라 추정하는 결정적 계기는 카테고리 중 『여행♪』이라는 카테고리. 고등학생한테 여행갈 시간이 어디 있어! 평소엔 야자, 주말에도 보충, 방학 때도 보충!!

“컨셉종자년이네. 죽어도 얼굴은 안 보여 주는. 흥.”

“야, 무슨 말을…… 인터넷의 폐해라니까, 그런 말.”

블로그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피는데 여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한 마디 한다. 점점 독설이 느는 것 같은 여리. 나한테 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한테까지 이러면 안 되는데. 뭐, 애초에 다른 사람들 앞에선 한없이 수줍은 소녀가 되는 여리니까 상관없으려나.

여리의 말대로, 블로그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봐도 ‘하라밍♪’의 사진 같은 건 찾을 수가 없다. 모든 글들이 전체 공개인지라 이웃 신청을 하지 않아도 열람할 수 있는 건 좋긴 한데. 댓글이나 방명록에도, ‘하라밍님 얼굴 보고 싶어요 ㅠㅠ’ 같은 글들이 성화이다. 그런 댓글마다 ‘하라밍♪’은 ‘저 못 생겼어요…… ㅋㅋㅋ 안 돼요! 눈 썪어요! ㅋㅋ’ 하고 공손한 답변을 하고 있다. 갈수록 미궁이구먼.

“이거 봐 봐.”

“그래.”

『여행♪』 카테고리에서 제일 최근자 글을 눌렀다. 동영상과 함께 스크롤이 꽤 내려가는 글. 말이 여행이지, 어디 놀러 가서 먹을 것 먹은 경험담 같은 글인 것 같다. 사진과 글이 빼곡한 게 어지간히 정성을 들인 글이다. 댓글도 100개가 넘어간다. 이 정도면 파워블로거 아니야? 여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

“하, 목소리까지 안 내는 거? 진짜 컨셉종자년.”

“야아. 좀 봐라.”

여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적개심을 내보이며 말한다. 적당히 제재하며 말했다. 이건 그런걸까, 과묵하고 남 험담을 전혀 하지 않는 우리 아버지가,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거리로 나가기만 하면 순식간에 욕쟁이가 되는, 그런 것.

『먹어볼게요! 히힛.』

“아.”

“아.”

음식을 한참 정성스럽게 찍던 카메라. 문득 흔들리며 화면이 바뀐다.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여자애의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은 절묘하게 입가에서 잘린다. 보이는 건 상에 올려진 음식과 여자애의 상반신, 턱과 입가까지 보이는 얼굴. 아, 감질맛 난다.

여자애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돈가스를 썰어 맛있게 먹는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궁금하다. 귀여운 옷과 가는 팔, 아름다운 턱선을 보면 분명 예쁠 것 같은데. 게다가 목소리가 상당히 야무지고 상큼한 느낌이다. 어떤 일이던 척척 잘 할 것 같은, 누나 같으면서 귀여운 목소리. ……잠깐만?

뇌리에 저장된 목소리 정보로는 이런 목소리는 분명히…… ‘아’ 하고 멍청하게 소리를 냈다. 여리 또한 비슷한 타이밍에 그런 소리를 낸다. 흠칫 놀라 여리와 눈이 마주친다.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차마 둘 다 생각을 내뱉지는 못 한다. 왠지, 단순한 구골링 하나에 엄청난 걸 찾아낸 것 같다. ‘하라밍♪’의 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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