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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자신감이 부족한 나는 자신과 만났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10.04 23:42
최근연재일 :
2015.02.13 23:02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12,395
추천수 :
151
글자수 :
3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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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3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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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06화 - 2

DUMMY

“후읍. 갔다 올게.”

“잘 갔다와요, 여보! 설렁탕이 먹고 싶어요! 아이도 울고 있으니까!”

“드립 좀 작작쳐. 돈 쓰지 말고 그냥 있기나 해.”

드디어 대망의 첫 출근날.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한다. 자신이가 기합 잔뜩 들어간 기세로 깨워주고, 먹고 싶지 않았는데 아침밥까지 해서 먹인다. 심호흡을 하고 나가려 하니 되도 않는 부부 컨셉으로 장난을 거는 자신이. 별로 받아주고 싶지 않아서 뚱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그래도 여전히 활기찬 자신이. 그런 녀석을 뒤로 하고 문을 닫는다.

심장이 쿵쾅쿵쾅. 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 그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잘 할 수 있을까. 사실 두 번밖에 안 해봤는데, 돌발상황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예를 들면, 엄청 양아치처럼 보이는 무서운 고등학생 형이 와서 담배를 내놓으라고 한다던가. 술 취한 아저씨가 와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것이 굉장히 걱정된다.

‘딸랑.’

“어서오세요.”

“어, 저…….”

편의점에 들어가니 낮고 기운 없는 목소리가 나를 반겨준다. 나미 누나와 마찬가지로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점원. 나미 누나보단 2~3살 더 많아 보이는 인상이다. 피곤에 쩌든 표정으로 눈을 반쯤 뜨고 나를 응시한다. 말로만 들었는데 처음으로 보는 야간 근무하는 형이다. 피곤하겠지, 밤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12시간이나 깨어 있었으니. 밤 샌 거잖아. 그것도 매일매일. 아, 이 사람 같은 경우는 몇 달이나 했다니까 낮밤이 바뀌어서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예?”

“아, 그…… 저, 주말알바인데요…….”

“아, 오세요.”

“네, 네…….”

새삼 전혀 모르는 타인과 대화하는 나를 보며 부끄러운 자신을 깨닫게 된다.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구나. 아냐, 이건 긴장해서 그런 거야. 그럴 수 있어. 벌써부터 기죽지 말고! 음음. 잘 할 수 있다!

‘딸랑.’

“…….”

점원 형은 포스기 인수인계를 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주말이니까 별달리 할 건 없을 거에요. 수고하세요.’ 하고 나간다. 고개를 꾸벅 인사했지만 그 형은 보지 못하고 그냥 나간다. 아마 피곤하니까 얼른 집에 가 쉬고 싶은 생각이겠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적.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고요한 정적은 아니다. ‘우웅─’ 하고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 계산대 위의 포스기 소리. 편의점엔 나 혼자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생에 처음이라 상당히 생경한 기분이 든다.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지만 왠지 어색해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다.

“음…….”

심심하기도 하고, 무얼 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가만히 서 있는다. 제대로 일을 할 줄 모르는데 벌써부터 농땡이 부리고 놀 순 없잖아.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뭔가, 그냥 혼자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해서 뒤돌아 뒤쪽에 나란히 있는 담배들을 쳐다본다. 처음 보는 담배들. 그렇게 익숙하지가 않다, 나한테 담배란. 친구라고 할 만한 유일한 녀석인 정식이는 당연히 담배를 안 피우고, 정식이 친구들도 당연히 담배를 안 피운다. 아빠도 중년임에도 원래 담배를 안 피우셨고.

담배는 쓸데없이 종류도 많은 것 같다. 나는 그냥 다 같은 담배인줄 알았는데, 뭐가 이렇게 많아. 얇은 거, 두꺼운 거, 멋있는 거, 할아버지들이 피울 것 같은 거. 과장 좀 보태서 50종류 정도 있는 것 같다. 저번에 일 배울 때, ‘담배가 왜 이렇게 많아요?’ 하는 질문에 누나가 ‘우리 점포에 없는 것도 있어.’ 한 말로 유추해보면 얼추 70종류는 넘게 있지 않을까. 몸에 좋지도 않은 걸 이렇게 종류별로 만들어 피울만한 의미가 있을까.

‘딸랑.’

“어, 어서오세요!”

헛, 깜짝 놀랐다. 잘못한 것은 하나 없지만 괜히 화들짝 놀라 어깨를 들썩이며 얼른 뒤를 돌았다. 어색하지만 최대한 밝게 웃으며 손님을 맞았다. 새, 생에 첫 손님. 생에 첫 아르바이트. 두근두근, 시작인가요!

들어온 손님은 중년 아저씨. 50대 정도 돼 보이는, 피부가 까맣고 주름이 많은 보통의 아저씨. 휘적휘적 바로 이쪽으로 걸어온다.

“디 원 블루 두 갑.”

“……네?”

“디 원 블루. 두갑으루.”

“아, 네, 자, 잠깐…….”

아저씨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잘 못 알아듣고 되물으니 아저씨는 약간 짜증스럽게 대답한다. 당황해서 얼른 뒤돌아 담배를 찾는다. 디원…… 디원…… 어, 어느 담배지?! 너무 많은데……! 이건 아쎄 빨간거, 회색, 파란색, 초록색, 대나무, 금색, 은색, 검은색. 뭐야 왜 아쎄밖에 없어! 다른 담배는 다 어디간 거야!

“여기 있잖여, 여기.”

“아, 네, 네…… 5400원입니다.”

“여기.”

“네, 네…….”

긴장해서 그런가 담배는 전혀 보이지 않고 같은 종류의 담배만 보이는 것 같다. 허둥대며 전혀 찾지 못하니 아저씨는 어이없다는 듯 손으로 가리킨다. 막상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내 바로 앞의 칸.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얼굴이 다 빨개진다. 얼른 담배를 꺼내 건네려다 바코드를 찍고 값을 말했다. 아저씨는 카드를 건넨다. 포스기에 긁고 카드와 영수증을 드렸다. 쿨하게 담배를 들고 나가는 아저씨. 다시금 편의점은 정적으로 휩싸인다.

“하아.”

첫 손님은 무난하게 담배만 사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엄청나게 진땀을 뺐다. 굉장한 불안감. 담배 공포증이 생길 것 같다. 저 아저씨는 쿨하게 자기가 손으로 가리켜서 좋게 끝났지만 혹시라도 다혈질인 아저씨가 들어와서 ‘이거이 알바가 무슨 담배 하나도 못 골라! 엉?!’ 하고 화를 내면 어떡하지.

으으, 모르겠다. 자리에 털썩 앉는다. 지금은 딱히 할 게 없는 거잖아. 가만히 앉아서 휴대폰을 꺼냈다. 인터넷이라도 해야지.


「잘 하고 있어?」

「뭐…… 그럭저럭. 심심한데.」

「아하핫! 놀러갈까?」

「됐어, 오지마. 정신 사나워.」

생에 첫 아르바이트 시작한 지 1시간 남짓. 손님은 그 뒤로 세 명 정도 왔다. 별다를 것 없이 과자나 라면 같은 걸 사갔다. 그 외에는 무난하게 아무 일도 없다. 오히려 심심할 정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여유마저 생기는 것 같다. 인터넷을 보는데 자신이에게 문자가 온다. 피식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거부의 의사를 표한다. 겨우 안정된 상태인데 자신이가 여기 온다면, 어휴. 잔뜩 놀릴 게 뻔하잖아.

‘딸랑.’

“어서오세요!”

이제는 익숙하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미누나랑 똑같은 반응. 후훗, 나도 이제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지.

들어온 사람은 평범한 청년. 편한 차림으로 슬리퍼를 직직 끌고 어슬렁 들어온다. 라면 코너에서 컵라면을 고르고, 냉장고에서 김밥을 고른다. 늦잠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는 것인가. 이전의 나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삶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르다. 저런 잉여인간(?)과는 다른 것이다. 일하고 있잖아 지금! 에헴, 이래봬도 주말인데도 일찍 일어나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데. 뭔가 뿌듯하다.

‘삑. 삑. 삐비삐삐삐비빅!’

“??!?”

청년은 얌전히 카운터에 라면과 김밥을 놓는다. 포스기의 빨간 불빛 나오는 것으로 바코드를 인식하는데 문득 기계에서 엄청난 삑삑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엄청난 패닉. 몰라 뭐야 이거 왜 이래. 컴퓨터로 치면 ESC 키에 해당되는 ‘CLEAR’ 버튼을 연속해서 눌러 간신히 소리를 껐다. 얼핏 화면을 보니 ‘유통기한이~~’ 어쩌고 돼 있는 것 같다.

김밥을 들어 뒷면을 살피니 유통기한이 오늘 날짜 아침 9시까지. 아, 유통기한이 다 된 거구나. 이런 것도 잡아내다니, 영특한 기계일세. 그보다 나, 유통기한 체크하는 거 까먹고 있었구나. 일을 잘 하고 있기는 개뿔, 이런 자그마한 것 하나 챙기지 않았는데. ‘죄송합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인데…… 잠시만요.’ 하고 카운터에서 나왔다. 혹여라도 다른 김밥들 중에도 유통기한 지난 게 있나 보려고. 아니나 다를까, 김밥 4개 중에 1개 다른 김밥이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다. 굉장한 실수를 한 것 같아 진땀이 흐른다. 정작 청년은 별다른 감정이 없는 듯 무감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청년. 다시금 편의점에 혼자 남았다.

“아우. 아우. 미쳤지, 미쳤어.”

일을 시작하고 처음 한 실수에 혼잣말하며 호들갑스럽게 이것저것 물건들을 본다. 분명히 나미누나한테 배웠는데, 유통기한 관리 하는 거. 김밥이나 샌드위치, 햄버거 따위는 일일단위로 들어와서 유통기한이 쉬이 지나가니까 특정 시간마다 보라고. 우유나 빵 종류도 가끔 봐 주면 좋다고. 분명하게 배웠는데 멍 때리다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

“음…… 음…… 음…… 괜찮을거야, 암 그렇고 말고.”

편의점엔 아무도 없고 내 목소리가 처량하게 울려퍼진다. 주말이라 그런가 꽤 재고가 많이 나왔다. 도시락 2개, 김밥 2줄, 삼각김밥 1개, 샌드위치 1개, 흰 우유 2개. 이렇게 재고가 많이 나오면 편의점 장사가 되나 싶다. 이 또한 나미누나한테 팁을 받았었다.


─폐기 나오면, 원래는 버려야 하지만 먹어도 되. 어차피 유통기한 얼마 지나지 않은 거니까. 유통기한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간 같은 뜻이니까!

─어…… 점장님한테 걸리면요?

─점장님도 가져가시는데? 애기들 없어서 못 먹는데. 너도 나오면 먹어도 되! 나도 도시락 같은 건 먹는데. 맛있어!


“그래, 그렇지, 괜찮을 거야. 아무도 몰라.”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않는데 나는 짐짓 혼잣말했다. 카운터를 가리키는 반짝이는 CCTV. 뭐, CCTV는 이 좁은 편의점 4군데에나 설치돼 있다. 구석에 ‘STAFF’라고 써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면 CCTV 화면을 볼 수 있다. 점장님이 계산 틀렸을 때나 누가 행패를 부리거나 할 때 녹화된 걸 돌려 보신다고 하는데. 어쨌든 녹화되고 있는 거잖아. 감시 당하는 기분이다. 인터넷 뉴스에서 예전에 봤었는데, 어플로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다고. 21세기 형 판옵티콘인가.

고민하는 나는 계속해서 나미누나의 말을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샌드위치와 우유를 집어 들었다. 마침 시간은 10시 근처. 아침을 일찍 먹었기에 출출할 만도 할 시간이다. 카운터에서 먹기엔 눈치도 보이고 CCTV가 녹화하고 있기도 하니 의자 네 개가 있는 작은 상에 앉아 먹는다.

“음! 맛있네! 오, 전혀 안 상했어. 맛있네.”

혼자 있다 보니까 혼잣말이 느는 것 같다. 이 샌드위치, 거의 사 먹어본 적 없는데. 빵은 부드럽고 안의 샐러드는 맛있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어서 사먹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건 공짜니까. 그래서 그런가, 더 맛있다. 우유도 상한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다. 뭔가 더 꿀맛인 건 기분탓이겠지. 굉장히 이득 보는 기분이다.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공짜로 먹을 것도 먹고. 일석삼조구나, 하하!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벌써 두 번째. 이런 점은 짜증나는구나. 힘없이 대답하고 카운터 쪽으로 돌아간다. 때는 점심시간. 점심시간이라고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적당히 알아서 먹으면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장점 중 하나가 근무시간 동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신에 이런 단점도 있지, 이 안에 있는 동안은 맘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없고 계속 근무시간의 연장이라는 점.

“안녕히 가세요.”

‘딸랑딸랑.’

이렇게 힘이 없는 이유는, 막 밥을 먹으려 했던 참이기 때문이다. 오후 1시 정도, 슬슬 점심을 먹어볼까 하고 재고로 나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편의점에서 햄버거나 삼각김밥 같은 건 많이 사 먹어봤지만 도시락은 사 먹어본 적이 없다. 이유는 샌드위치와 동일. 비싸잖아. 3000원이라는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난한 고등학생에겐 굉장히 비싼 돈이다. 나는 이렇게 한 푼 두 푼 아끼는데 자신이는 그런 것도 모르고 한 잔에 3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물 마시듯이 마시겠지. 어휴,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카드를 함부로 주면 안 됐어.

따끈하게 데워진 도시락을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꺼내 상 위에 올렸다. 잘 데워저 김을 내는 흰 밥과 검은색 햄버그 스테이크. 튀김도 두세개 있고 고기볶음도 있다. 우와, 요즘 도시락은 호화판이네. 막 앉아서 젓가락을 뜯고 먹으려는 찰나, 손님이 들어왔다. 황급히 카운터로 돌아가 가만히 대기한다.

첫 번째 손님은 뭔진 몰라도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끈다. 도시락 먹어야 되는데, 다 식어버리는데. 그나마 다행이야, 컵라면으로 안 끓여서. 컵라면이었으면 이럴 시간에 다 불어서 맛없어졌겠다. 오랜시간 고민 끝에 산다는 게 겨우 과자 한 봉지. 아니야, 손님이 무얼 사던 그것을 욕할 필요는 없잖아. 첫 번째 손님을 보내고 ‘꺄하핫 신난다’ 하며 밥을 먹으려고 막 자리에 앉아 밥을 젓가락으로 뜬 순간 두 번째 손님이 왔다. 기운이 팍 상하고 짜증이 팍 솟구친다. 일할 의욕 또한 순식간에 내려간다.

“에휴, 내 팔자가 그렇지 뭐…….”

두 번째 손님도 보내고 자리에 앉았다. 불안해서 밥을 못 먹겠다. 사회에서의 삶이 이렇게 힘들구나. 밥 한 번 제대로 먹질 못 하니. 그래도 이제는 손님이 안 올 것 같다.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햄버그 스테이크도 잘라 먹는다.

음, 도시락 치곤 괜찮네. 뭐, 어찌됐든 가공식품이니 진짜의 맛하곤 한참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3000원 정도의 값 치곤 굉장히 괜찮은 맛이다.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는 수준. 거기다 재고로 남은 거니 공짜잖아. 또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엄청난 이득을 본 기분. 젓가락으로 새우튀김처럼 보이는 것을 집어 먹는다. 우왁, 이건 맛없다. 새우는 무슨 실처럼 적은 양이 있고 그냥 눅눅하고 기름맛 나는 튀김. 거지같네. 고기볶음 먹어볼까~

‘딸랑딸랑’

“하아, 어서오세요.”

신나게 밥을 먹으려는 때에 다시금 울리는 저주스런 문의 방울.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뜨끔 한다. 아니, 지금 첫날 첫 아르바이트에 벌써부터 이렇게 요령 피우가 짜증을 부리면 어떡해. 사명감 가지고 일을 해야지. 편의점이니까 당연한 거잖아. 나만 점심때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점심때니까, 라면이나 김밥을 사러 온 거겠지. 아니면 밥 다 먹고 후식으로. 나만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모두를 배려해야지. 혼자 사명감에 빠져 마음이 찡해진다. 그래, 열심히 일하자, 이기민!

“어.”

“……엇.”

손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고 묵묵히 카운터로 들어왔다. 고개를 팍 들어 손님을 보니 익숙한 옆모습. 정식이다. 나도 모르게 한 마디 소리를 내니 정식이는 물건을 고르다말고 고개를 옆으로 한다. 서로 마주치는 눈.

“뭐여, 뭐해. 알바?”

“어, 응…… 아르바이트 하고 있었어.”

“이야, 이야~ 장난 아니네? 이야.”

“아하하…….”

정식이는 감탄하며 나를 쳐다본다. 괜히 부끄러워진다. 남자애 앞에서 수줍어하다니, 이게 무슨 짓이람. 굉장히 불쾌한 광경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아르바이트 하는 걸 친구한테 보이는 건 부끄럽긴 부끄럽다. 자신이야 같이 살다보니까 ‘친구’ 느낌보단 ‘식구’ 같은 느낌이 강해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뭐 사려고?”

“대충 라면이나 끓여먹으려고 했는데. 아 밥 먹고 있었어? 내가 방해했네.”

“아니야, 아니야. ……도시락 먹을래?”

“도시락? 뭔 도시락?”

가만히 정식이를 쳐다보다 문득 냉장고 맨 밑에 잘 안 보이는 칸에 둔 재고품들이 보인다. 도시락이 2개가 나와서 하나 남아 있는 게 생각났다. 정식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우와, 장난 아니네. 돈도 벌고, 도시락도 공짜로 먹고. 엄청 좋은 거 아니여?”

“응, 오늘 첫날인데 되게 괜찮은 것 같아.”

“아하, 나도 알바나 해야 하나. 어차피 주말에 하는 것도 없는데.”

“흐흥.”

정식이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다. 혼자 먹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같이 먹으면 적적하지 않고 좋잖아. 어차피 공짜로 남는 것이기도 하고. 정식이는 감탄하며 나와 같은 감상을 말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공감하며 말을 잇는다.

“아르바이트는 왜. 뭐 사고 싶은 거라도 있어? 컴퓨터?”

“아니, 용돈이 벌써 다 떨어져서. 자신이가 내 카드 다 긁어서 옷 같은 거 사고 그랬거든.”

“아. 하하, 벌써부터 아내한테 바가지 긁히는 가장 같네.”

“하하, 그럴 리가.”

솔직하게 말하니 정식이는 웃으며 말한다. 자신이가 와이프고 내가 남편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 아니, 뭐 자신이 정도면 요리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성격도 활발하고, 일등 신붓감이겠지만 어째…… 계속 시달리는 입장이니 그것도 좀 그렇다. 아내가 돈을 저만큼 쓴다면 아무리 예쁘고 참해도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덕분에 벌써 여자의 외모보다는 내면을 보게 되다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래도, 멋지네. 보통은 돈 없다고 부모님한테 징징대서 돈 타내잖아. 근데 스스로 벌 줄도 알고, 대견하잖아? 멋있어, 굉장해.”

“……아니, 누구나 할 수 있는건데 뭐.”

“챙피혀? 허허, 생각보다 소심하네.”

정식이의 칭찬에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허둥지둥 말했다. 이렇게 대놓고 칭찬을 받으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보다 잔뜩 부끄럽기도 하고. 딱히 그렇게까지 칭찬 받을 만한 건 아닌데. 그냥 하다보니까 하는 거고.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생각했지만 막상 남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몸이 간질간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얼른 대화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

정식이는 점심을 먹고 적당히 떠들다가 갔다. 신기하게 정식이랑 밥을 먹는 동안은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알바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점심 먹으며 떠드는 시간인 양 즐거이 밥을 먹었다. 밥 다 먹고 좀 떠드는 데 손님이 와 정식이는 ‘그럼 수고해. 이만 갈게.’ 하고 편의점을 떠난다. 아,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얼른 종종걸음으로 카운터로 돌아가 손님을 맞이한다.


“으으…… 으으으…….”

7시 52분 33초. 너무나 지루하다. 점심 먹고 이후로는 그저 그런 시간들이었다. 손님은 적은 수준. 몇 명 안 왔다. 아무래도 주말이니까 그러려나. 굉장히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들이다. 일이라고 해봐야 기껏 손님 받고, 바닥 쓸고 물건 각 잡아서 정리해보고. 그 외엔 딱히 일이 없다. 나미누나 말에 따르면 원래 평일엔 6시 즈음에 부족한 물건들이 꽤 많이 들어와서 그거 정리하다보면 시간이 엄청 잘 간다는데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 물건도 안 들어온다. 그래서 하염없이 휴대폰만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긴긴 영겁의 시간을 지나 겨우 퇴근시간 임박. 아직 8시가 안 됐지만 7시 30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자꾸 창문 쪽만 보게 된다. 저쪽에서 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밤 되니까 손님도 거의 안 온다. 한숨 쉬고 다시 휴대폰을 쳐다본다. 시간도 더럽게 안 가고 휴대폰으로 볼 것도 없다.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것 같아. 시간은 안 가.

‘딸랑딸랑.’

“어서오세요.”

“…….”

방울 소리에 본능적으로 일어나며 휴대폰을 놓았다. 아아. 아침에 헤어졌던 그 점원 형. 아침과 마찬가지로 피곤에 쩌든 묵묵한 표정이 일품이다. 하지만 그 무뚝뚝한 표정의 점원 형이, 나에게는 부처님처럼 자애로운 얼굴로 보인다. 퇴!근!이!다!!!

“다 맞네요. 가 봐요, 수고했어요.”

“네, 네! 감사합니다!”

혼자서 신나하는 사이 점원 형은 숙련된 솜씨로 돈을 센다. 아, 아침에도 했지만 아르바이트 교대할 때 금고 안의 돈을 센다. 돈 받는 걸 실수했을 수 있으니까. 실수하면 내 시급에서 빼버린다고 한다. 정신 차리고 했는데 다행히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점원 형의 말에 나는 굉장히 기뻐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니폼을 벗어 창고에 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아, 공기마저 상쾌하다. 벌써 어둑어둑한 밤이지만. 오늘은 그냥 순전히 아르바이트로 하루가 지났구나. 저녁 8시니까…… 집 가서 밥 먹고 씻고 하면 아홉시. 내일도 7시 즈음 일어나야 하니까 아무리 늦게 자도 12시엔 자야한다. 그러면 남는 시간은 세 시간…… 어휴, 좀 아쉬운데. 게임도 하고 싶고 더 빈둥거리고 놀고 싶은데. 그래도, 생에 최초로 잉여롭지 않은, 생산적인 주말을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시급이 4500원이라니까, 54000원…… 우왓, 그냥 편의점에서 앉아서 시간만 죽이다 나왔는데 54000원이나 벌다니! 굉장히 즐겁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어제는 잡생각에 빠져서...... ㅠㅠ 성실연재를 깨버리면 안 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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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07화 - 4 14.12.03 321 2 17쪽
27 07화 - 3 14.12.02 292 1 18쪽
26 07화 - 2 14.11.27 153 1 19쪽
25 07화.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14.11.09 346 4 23쪽
24 06화 - 4 +4 14.11.02 204 5 22쪽
23 06화 - 3 14.11.01 322 4 21쪽
» 06화 - 2 14.10.31 286 1 21쪽
21 06화. 다 보장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죠! +10 14.10.29 354 2 19쪽
20 05화 - 4 +6 14.10.27 321 4 18쪽
19 05화 - 3 14.10.26 325 3 20쪽
18 05화 - 2 +4 14.10.25 326 3 20쪽
17 05화. 되는데요. 14.10.24 180 2 19쪽
16 04화 - 4 +2 14.10.23 315 2 17쪽
15 04화 - 3 +4 14.10.22 311 4 19쪽
14 04화 - 2 +4 14.10.21 323 2 20쪽
13 04화. 내가 여자애들을 봤는데, 안될 거야 아마. +2 14.10.20 288 3 19쪽
12 03화 - 4 +4 14.10.18 371 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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