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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아빠가 되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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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1.09.29 13:55
최근연재일 :
2011.09.29 13:55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99,729
추천수 :
1,099
글자수 :
467,525

작성
11.08.16 13:50
조회
846
추천
10
글자
10쪽

아빠가 되주센! - 069

DUMMY

-잠시 뒤.



“그래서 말야...”



“진짜? 와, 거 참 거시기 했겠다.”



“그치 그치? 어휴, 그래서 내가...”



어쩌다보니 나와 승희 모두 펜을 놓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니 우리 둘 모두 상에서 나와 침대에 기대고 얘기했다. 한참 깔깔대면서 웃고 떠들다가, 문득 상황을 지각한 듯 승희가 한숨을 푹 쉬고 자조하는 말투로 말했다.



“에효... 또 공부 안하네, 우리.”



“그러게.”



“...슬슬 배고파.”



“엄마한테 밥 차려달라고 하자. 먹을거지?”



“응!”



승희는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집에 와서 논 적은 많지만 저녁까지 우리 가족하고 같이 먹은 건 처음이다. 엄마는 저번처럼 며느리 드립(?)을 치면서 막 웃고 좋아하고, 승희도 대충 웃어 넘겼다. 저녁 먹고, 승희는 늦게까지 머물고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승희랑 있어서 좋긴 했는데... 또 공부 못했네. 젠장. 으아아아.




“오늘은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할꺼야! 으으...”



“나... 아마 사상 최악의 점수가 나올 것 같아. 승희야.”



“나는... 나는...! 으흐윽...”



승희는 얼마나 시험을 못 봤는지 평소 승희가 쓰지 않는 말투까지 써가며 격한 감정을 표현했다. 정말 장난 안 치고 눈물까지 글썽이려고 하는 승희다.



“죽어도... 죽어도 오늘은...!”



승희는 전의를 불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오늘은 집에 안 가. 학교에서 공부할거야.”



“오, 그래? 그럼 잘 되겠다. 잘 해봐.”



“무슨 소리야, 너도 한다니까! 왜 자꾸 빠지려고 해!”



“나는 좀 포기한다니까 왜 잡는겨!!”



포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가서 게임하려고 했는데 승희의 성화에 붙잡혀버렸다. 게다가 강제로 6반으로 끌려갔다.






“......”



아무래도 어색하다. 승희가 우리반에 놀러오는 건 많아도 내가 승희네 반에 가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묘하게 6반에는 아는 애가 거의 없다. 뭐 시험기간이다보니 애들이 별로 없으니 딱히 어색할 건 없지만. 시험기간중엔 공부하라고 교실을 개방해놓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 남지 않고 집에 간다. 곧 죽어도 학교에는 있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심리이다. 하미잔 우리는 정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학교에 남아있는 것이다.



“음...”



“에헴.”



도서실만큼은 아니지만 조용한 분위기. 게다가 시각은 나른한 오후. 거기다 더해서, 매우 익숙한 학교 교실이다. 곧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졸기 시작했다.



‘꾸벅.’



“졸지마.”



‘꼬집’



“끄아아악!”



승희가 날카롭게 말하며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살을 한움큼 떼어버리는듯한 그 고통에 난소리지르며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났다.



“아 쫌!”



“아 쫌! 뭐.”



“자자.”



“안돼, 그럼 뭣하려 남았어! 공부해야지.”



“자려고.”



“그런게 어딨어, 일어나!”



이렇게 아옹다옹 하다가 문득 주위를 보니 애들이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가 싸우는 걸 쳐다보고 있다. 한 여자애가 한숨쉬며 작지 않은 소리로 말했다.



“에유 승희 연애질 때문에 여기서 공부 못하겠네.”



“하하하하하하.”



“아, 아냐 이건 그냥...”



“커플에겐 그냥이겠지만 솔로들에겐 염장이랍니다.”



“하하하하하하.”



여자애의 놀림에 승희는 얼굴이 빨갛게 돼서 내 등 쪽을 잡아댕겨서 앉혔다. 힘없이 털썩 의자에 앉은 나. 창피하긴 한데 재밌어서 같이 웃었다. 눈치없이 웃으니까 승희가 등을 한 대 철썩 때려준다.




‘후루루루룩.’



“망했네, 이번 시험.”



“뭐, 이제 절반이나 지나갔으니까... 헤헤, 망했다~ 야~”



“내내 놀기만하고...”



저녁은 간단하게 컵라면이다. 앉아서 먹을수도 있겠건만, 승희가 괜히 폼 좀 내보자고 창가에서 서서 먹고 있다. 창밖을 보면서 라면을 먹는다. 나름대로 운치있다. 게다가 승희랑 둘이서 이렇게 하니까, 평소에 안하던 짓인만큼 재미지다. 바깥엔 자동차들이 나다니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갑자기 이 학교라는 틀에 가둬져 있는 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새처럼 날아보고 싶다. 그래, 날자.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나는 날아갈꺼야~~”



“뭐하는거야! 멍청아!”



창틀에 발을 대고 뛰어오르려고 하자, 승희가 사색이 돼서 말린다. 장난인데... 오후 내 공부도, 이럭저럭 시간떼우듯이 놀아버리고 저녁도 그럴 것 같다.





시험 마지막 날 마지막 과목이 끝나고. 아이들은 예전과 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여기저기 쏘다니며 좋아한다.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애들도 있고, 시험 못 봤다고 좌절하는 애도 있다. 나는 그냥 앉아있는 쪽. 시험이 끝나서 좋긴 하지만, 그 결고가... 매우 못 봤다. 어쨌든 끝난 게 끝난거니까 기쁘지만 뭔가 씁쓸하다. 뒷맛이 개운치가 않은 느낌. 이래서 옛 선현들이 공부할 거면 여친 사귀지 말라고 하는 건가... 광복이 된 마냥 만세를 외치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헤쳐 나아가며 6반으로 갔다.



“승희야!”



“......”



“왜 그래...?”



승희는 심각한 표정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머리카락에 가려서 표정이 잘 보이진 않지만 사뭇 비장한 표정이다.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승희는 잠자코 일어나더니, 양 팔을 하늘로 뻗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제대로 놀꺼야!!”



“오오.”



그러더니 승희는 나를 보고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와 말을 걸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살 짝 놀랄 정도.



“나, 시험 못 봤어.”



“나야 뭐 말할것도 없이 못 봤지. 기분 그렇다.”



“...가자, 효성아.”



“어?”



“오늘은 정말, 미친듯이 놀 꺼야. 그동안 시험 때매 제대로 못 논 거, 확실하게 보상해 주자고.”



“아아, 그래.”



승희는 고개를 쳐들고 나지막이 말했다.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교문을 나서고 시내를 향했다. 막상 나오니까 할 거 없다고 승희는 투덜댔지만, 일단 나의 권유로 PC방에 갔다. 승희는 어떻게 여자애를 PC방에 데려올 생각을 하냐고 막 뭐라고 했지만 곧 같이 게임을 했다. 의외로 승희가 스타를 알고 있어서, 같이 여러판 했다. 의외네, 여자애들은 이런 게임 아예 모르는 줄 알았는데. 승희가 특이한 건가?

다음엔 노래방엘 갔다. 나야 부를 노래가 별로 없어서 탬버린만 쳤지만, 승희는 애창곡과 신곡 등 많은 노래를 지치도록 연속으로 불렀다. 부르면서 목이 다 쉬도록 외쳤다.



“오늘은 죽어도 놀꺼야~!”



“야야~ 좋다~!”



마침 오늘은 아저씨가 기분이 좋은 지 서비스를 2시간이나 넣어줬다. 다 부르고 나오니 벌써 어둑어둑 해졌다.



“후아아- 속이 다 시원하다.”



“하하, 승희 너 목 완전히 나갔어.”



“그러게. 켁켁, 에에... 히히히.”



저녁에 시내에 나오는 건 되게 오래간만이다. 오래간만에 나온 시내는 불빛이 빛났다. 우린 그냥 시내를 돌아다녔다. 펜시 샵도 들어가고,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와 순대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9시가 되었다.




“아- 오늘은 진짜 많이 놀았다.”



“효성아.”



“응?”



승희의 부름에 뒤를 보니, 승희 표정이 또 뭔가 있다. 승희는 걸음이 느려지고 조금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애.”



“...뭐가?”



“아무리 사귀고 있어도... 우린 학생이잖아.”



“어... 그렇지.”



“다음 시험땐, 이렇게 타락하지 말고 제대로 공부하고 놀자, 알았지?”



“아아, 그 소리였어. 그건 내가... 미안해. 괜히 놀아서.”



“아니 거기서 왜 네가 사과해. 내가 사과해야지. 같이 놀았는데.”



얘기하다보니 서로 길 한가운데서 사과하고 있다. 그래도 처음에 승희가 갑자기 말 꺼낼 때는 덜컥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애’ 하길레, 헤어지자는 줄 알고... 그럴 리가 없나? 하하, 뭐. 재미나게 놀고서 돌아가는 길. 집 앞에서 승희와 헤어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엔 유나가 컴퓨터 앞에 붙어있다. 나는 교복을 벗고서 대충 평상복으로 갈아입고서 컴퓨터 옆 침대에 앉으면서 말했다.



“유나, 시험 잘 봤어?”



“네? 네 뭐...”



유나는 대답만 짤막하게 하고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요새 통 유나랑 얘기를 안 했더니, 유나 이녀석 삐쳤나? 이렇게 말을 짧게 할 애가 아닌데. 나는 다시금 말을 걸었다.



“유나야... 삐졌어?”



“예? 아니에요.”



“아니... 그런 거 같은데.”



“아니에요, 삐치긴... 헤헤.”



“그래도 미안하긴 하네. 내가 너무 승희하고만 노니까, 요즘엔.”



“괜찮아요.”



미안해서 혼잣말하듯이 말하자, 유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엄마하고 아빠하고 사이좋게 있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보고싶은 게 저니까요, 괜찮아요. 저, 그 정도로 삐치는 속 좁은 딸 아니에요.”



“흠...”



그렇게 말하는 유나의 눈은 살짝 웃고 있다. 반짝 빛나는 그 눈은, 참 귀엽다. 그리고 뭔가 되게 더 미안해진다. 웃고는 있지만, 그치만 미안하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안함. 유나는 이어 뭔가 더 말했다.



“그치만, 저도 엄마 못지 않게 아빠가 좋으니까, 저하고도 가끔은 놀아줘요. 그거면 되요.”



“......”



나는 감격해서 아무 말도 않고 유나를 쳐다봤다. 내가 뭉클한 눈초리로 쳐다보자, 유나는 의문인듯 고개를 갸웃 하며 쳐다본다. 더는 참지 못하고 유나를 쳐다보다 유나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구, 우리 귀여운 딸! 왜 이렇게 예쁘냐!”



“우아악, 무슨 짓이에요!”



“그치만 너 너무 귀여운데- 이게 진정 내 딸이라니.”



“떠, 떨어져요~ 그리고 그거 너무 위험한 발언이잖아요-!”



저녁에도, 유나랑 같이 놀았다. 아. 어떻게든 시험이 끝나서 좋다.

하늘의 별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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