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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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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天
작품등록일 :
2011.02.18 23:24
최근연재일 :
2011.02.1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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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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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프롤로그

DUMMY

후두둑, 투둑

창문을 두드리는 비를 바라보며 케이는 갑옷을 입던 손길을 잠시 멈추었다.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듯 비는 조용히 창문을 때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죽기에는 좋은 날씨다, 하고 케이는 생각했다.

"집사장님,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케이는 창에서 시선을 때어 시종을 바라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갑옷을 입었다. 시종이 다가와서 케이가 갑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케이는 자신에게 갑옷을 입혀주던 시종을 돌아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집사장인 자신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시종이었지만, 거의 모든 시종들이 도망친 이 마당에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종에게 고마웠다.

"집사장님, 이리로."

그가 생각하던 사이 갑옷을 다 입었나보다. 케이는 시종에게 공작께서 어디에 계신지 물어보려고 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이 성에서 집사장을 지낸 자신이 모르는 곳은 없기 때문에 혼자서 찾아가도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케이의 생각을 눈치 챘을까, 시종은 케이를 돌아보며 옅게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공작 전하와 집사장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케이를 바라보는 시종의 눈가로 희미한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케이는 그 물방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시종이 먼저 문을 열고 나섰고, 케이는 그 뒤를 따랐다.

솨아아아아

이 비는 하루 종일 내릴 생각인가 보다. 복도의 창문들은 비로 얼룩져 눈물 흘리고 있었고, 등잔불들은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었다. 평소 성의 아침이면 커다란 창문의 녹색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 때문에 '봄의 회랑'이라고 불렸던 이 복도마저도 성의 마지막을 아는 것 같았다.

"저들은 잔학무도한 반역자일 뿐이다!!모두들 겁내지 말고 진격하라!……"

외성벽에서 싸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울려 퍼졌다. 곧 외성벽이 떨어질 테고 이제는 이곳 차례일 것이다. 케이는 3백년에 걸친 크로아 공작가가 이렇게 끝난다는 것이 너무도 허망했다.

"집사장님, 이쪽입니다."

시종이 그를 안내한 것은 3층으로 가는 길이었다. 당연히 공작이 연병장에 있을 줄 알았던 케이는 의외라는 듯 시종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희미한 미소만을 지으며 케이를 안내하였다. 케이는 공작이 서재에 있나 보다, 하고 시종을 따라갔다.

시종이 안내한 곳은 공작부인의 방이었다.

"전하, 집사장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오거라."

케이와 시종은 공작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완전 무장 차림의 공작과 공작부인, 그리고 강보에 싸인 소공작이 있었다.

"집사장을 데리고 오느라 수고했다. 집 안에 하인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제 1시종은 저 혼자뿐이고, 제 2시종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성의 수비에 나섰습니다. 주방의 시종들은 주방장님의 지휘 하에 공성전 준비에 나섰습니다."

"그러한가… 그 동안 수고가 많았다. 이제 네 갈 길을 가도 좋다."

시종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공작 일가와 케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공작은 케이를 바라보고는 그의 완전 무장 차림에 슬픈 표정을 지었다.

"케이 경. 아니, 숙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케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공작부인이 아기인 소공작을 케이에게 맡기었기 때문이다. 공작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어 소공작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숙부님께서 저스틴을 맡아주십시오. 이 아이만은…아무 죄도 없지 않습니까."

케이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소공작을 바라보았다. 소공작 저스틴은 지금 주변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는 관심 없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케이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원래는 자신도 이곳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작은 자신에게 소공작을 맡김으로서 그럴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케이는 공작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공작을 안고 방을 나왔다. 방문을 닫는 그의 귓가로 공작부인의 흐느낌이 스며들었다.

그는 소공작을 안고 3층에서 이어져 있는 첨탑의 방을 향해 뛰었다. 자신이 옛날 어렸을 적 쓰던 그 방. 성에 있는 것이 심심해지면 자신의 형님인 세도 크로아 공작은 자신의 방으로 쳐들어왔다. 그러면 둘은 킬킬거리며 그 방에 있는 비밀통로를 통해서 마을로 내려가 놀다 오곤 했다. 어렸을 적 이후로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비밀통로. 자신과 형님이 킬킬거리며 만들었던 그 비밀통로가 이제는 크로아 가문의 마지막 적자를 위해 쓰이는 것이다.

방은 어렸을 적 자신이 쓰던 그대로였다. 다만 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뿌연 먼지만 내려앉아 있었다. 케이는 그 중 널찍한 천을 골라 먼지를 털어 낸 다음 소공작을 자신의 몸 앞쪽에 단단히 메었다. 크로아 공작을 상징하는 목걸이. 하얀 드래곤이 새겨져 있는 '라이네시아'에서는 그 역시 잠시 멈칫했었다. 크로아 가문의 시조인 화이트 드래곤 라이네시아가 만들었다는 목걸이. 그는 그 목걸이를 소공작 저스틴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곤 자신의 방패와 검을 점검했다. 외성이 공략당하고 있는 지금 도망쳐 봤자 적의 시선을 끌 뿐이다. 내성이 공략당할 때, 혼잡할 때를 타서 도망쳐야 한다. 이제 기다림만이 남았을 뿐이다.

저스틴 역시 분위기를 알았는지 울지도 않고 잠잠히 있었다. 밖에서의 함성은 점점 가까워졌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케이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멀리서 아련하게 크로아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전의 신호를 알리는 목소리. 마침내 적이 내성까지 진격해 온 것이다.

"전투 준비하라! 이곳 크로아 고성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떨어진 적 없는 천혜의 요새이다! 적을 분쇄하자!……"

때가 되었다. 케이는 침대의 매트리스를 들춰내고는 바닥을 더듬었다.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손잡이가 있었다. 그는 손잡이를 잡아 강하게 당겼다. 바닥이 열리며 옛날 개구쟁이 형제들만 알던 심연이 그 입을 벌렸다. 케이는 망설이지 않고 심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와 소공작의 모습이 성에서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크로아 공작은 3층의 테라스로 나섰다. 지금쯤 숙부인 케이가 저스틴을 데리고 탈출하였을 테니, 자신은 어떻게든 그들이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어야 했다.

"전하,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테라스에 서있는 공작에게 로브 차림의 마법사가 다가와 보고했다. 공작은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 사이로 외성을 뚫고 들어온 적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공작은 검을 빼들고 소리쳤다.

"전투 준비하라! 이곳 크로아 고성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떨어진 적 없는 천혜의 요새이다! 적을 분쇄하자! 마법사들은 마법을 시전하라!"

그가 내려다보는 테라스 아래로 병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곳 죽을 것임을 알고서도 이곳에 뼈를 묻는다고, 자신을 따르겠다고 이렇게 버티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

성의 2층에서는 마법사들이 마법진을 둘러싸고 영창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들이 내는 일관적인 목소리는 장엄한 하모니를 이루어 마법진을 밝게 빛냈다.

시이잉

콰아앙!쾅!콰아앙!

"크아악!"

"아악!"

적들의 투석 공격이 시작되었다. 외성벽이 무너지며 나온 돌을 끌어다 쏜 적들의 투석 공격이 내성의 좌측 날개에 작렬하였고 병사들의 피해가 속출하였다. 이정도로 정확한 공격 각도를 낸다는 것은 왕국 제일의 사수, 카산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전 대륙을 둘러보아도 한 번에 공격각을 정확히 산출해내는 자는 그자밖에 없으니깐.

자신은 현제 반역자로 찍혀있는 상태이기에 왕국군이 공격을 해 온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걸 알고서도 크로아 공작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바리스타는 대응사격을 하라! 사수들은 성벽을 지켜라! 마법사들은 아직인가!"

그의 명령이 전달되기도 전에 적의 마법공격이 시작되었다. 성벽 위로 먹장구름이 뭉치는가 싶더니 강력한 번개를 수도 없이 크로아군에 떨어트리기 시작하였다. 번개는 군사들의 철제 병장기를 타고 흘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거기에 내리는 비마저도 크로아 군에는 악재로 작용했다.

화아악!

콰드드득!

"마, 마수다앗!"

크로아 공작은 저도 모르게 테라스의 난간을 꽉 움켜쥐었다. 적군 마법사들이 소환해낸 마수가 내성의 성문을 부수고 튀어나와 병사들을 잡아먹으며 독액을 마구 뿜었기 때문이다.

"이놈, 아비스 크라티에 델로아!"

공작의 손아귀에서 난간이 부서져 나갔다. 그와 적을 지휘하는 장수, 델로아 공작은 오랜 세월 친우였기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저 마수 역시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때 마수의 주변으로 여러 색색의 룬 문자가 떠오르더니 마수를 강하게 얽매며 그 머리를 부서진 성문 쪽으로 처박아버렸다. 마수는 자신의 기다란 몸을 배배 꼬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주박을 풀 수는 없었다.

주박으로 마수를 묶어버린 공작의 제1마법사, 아디아스는 몰아치는 숨을 고르며 공작에게 외쳤다.

"전하, 퇴각신호를! 저대로는 내성 역시 버틸 수 없습니다!"

"…퇴각하라! 모든 병사들은 퇴각하여 본성으로 집결하라!"

비 때문에 명령이 전달되는 속도는 느렸지만, 왕국군이 내성에 집결하기 전에는 모두 본성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궁병 제 1대는 지붕으로, 2대와 3대는 성의 각 첨탑으로 가라! 보병들은 1층을, 기사들은 2층을 막는다!"

크로아 군이 본성에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사이, 적군은 내성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왔다. 원래대로라면 성문으로 당당히 입성하였지만, 내성의 성문에서는 마수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사다리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크로아 궁병들은 그런 왕국군을 하나 둘 떨어트렸다.

왕국군의 대부분이 내성벽에 올라섰을 때, 크로아 군의 마법이 작렬했다.

쿠르르릉

콰앙!콰드드드드

크로아 군의 마법은 내성 부근에서 지진을 만들어냈고, 그 여파는 왕국군을 휩쓸고 내성을 완전히 무너트려 왕국군에게 2중의 피해를 내버렸다.

"지금이다! 쏴라!"

공작의 명령에 지붕에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왕국군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대로라면 잘 하면 이길 수 있어!

파앙!

키야아아아!

공작의 그런 기대는 왕국군의 마수에 의해 깨져버렸다. 마수가 지진의 여파를 이용하여 주박을 풀어버렸던 것이다!

크로아 공작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똑, 똑, 똑...

"휴우……."

지하통로를 걷고 있는 케이의 얼굴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싸우는 소리로 미루어 보아 엄청난 마법들이 오가고 있음에 분명했다. 이 소란을 틈타 빨리 도망쳐야 한다! 케이의 발걸음이 좀 더 빨라졌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가면…….

케이의 앞에 작은 문이 나타났다. 혹시라도 있을 복병에 대비하기 위해, 그는 검을 빼들고 문을 발로 차 열었다.

"뭐, 뭐냐!"

케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검을 내질렀다. 이 비밀통로는 크로아 영지의 어느 한 집으로 이어져 있는 통로였다. 아마 그 집을 약탈하기 위해 들어와 있던 왕국군이리라. 그의 검에 적병은 어깨를 배이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여기에서 들켜선 안 된다!

케이의 검이 호선을 그리며 적병의 목을 넘겨버렸다. 50이 넘은 나이나 아이를 업고 있다는 것도 크로아 제일의 검객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는 적병의 시체를 뒤로 하고 마을 거리로 나섰다.

마을의 여기저기에서는 약탈과 방화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더 볼 것도 없이 적의 장교를 향해 달려들었다. 장교는 병사들을 지휘하다가 자신의 옆에서 짓쳐들어오는 케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칼을 휘둘렀다.

카앙!

푸욱!

"커헉…"

케이는 그 장교를 검째 베어 넘기고 장교의 말을 빼앗았다. 그가 장교의 시체를 떨구고 나서야, 적 병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병사들은 케이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케이의 검을 바라보곤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그의 검에 일렁이는 하얀 아지랑이를 보고는 멈칫한 거지만 말이다.


"끼럇!"

히히히힝!

케이는 병사들이 멈칫한 순간을 틈타 말을 돌려 달아났다. 어디로 가는지는 자신도 몰랐다. 다만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르티네스 대륙력 7236년, 대륙 최북단에 위치한 아센 왕국의 크로아 공작가가 반역의 죄 때문에 멸망한 해였다. 공작가의 모든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었고, 아센 왕국에서는 델로아 공작이 왕국의 실세로 떠올랐다. 크로아 공작가는 어린 크로아 소공작을 제외한 모두가 멸살 당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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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네요..이렇게 올린다는 것은..부족한 글이지만 봐주신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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