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처음 입사했을 때 직속 사수는 말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너만 괴로울 거다.”
당시 어리버리한 신입이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네.”라고 대답했다.
곧 바쁜 업무와 교육으로 정신이 없어 잊어버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보조’ 새끼가 어디서 나대고 있어.”
“네?”
“하······ 이거 완전 폐급이네. 야, 이 녀석 교육 담당 누구야. 당장 튀어나와.”
막 1년 차가 지난 시점.
언제나 그랬듯 던전 공략에 나서려는데, 담당 구역 리스트를 본 수석 헌터가 내 사수를 호출했다.
뭔가 잘못한 게 있나 리스트를 살펴보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영문을 몰라 얼이 빠져있는 사이.
부름을 받은 내 사수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후임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이야? 너 5년 차면서 이런 것도 내가 하나하나 지시해야 해?”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을 개뿔. 시발, 일 벌어지고 뒤처리하면 일 잘하는 줄 알지. 그러니까 너네들이 ‘보조’인 거야.”
“······.”
“알았으면 공략 개시 전까지 던전 담당 리스트 새로 작성해서 올려.”
“알겠습니다.”
사수는 표정 변화 없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물러났다.
곧바로 난 끌려가듯 흡연장으로 향했다.
혼날 거라 생각했지만 사수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한참이고 줄담배만 피워 댔다.
결국 참지 못한 내가 입을 열었다.
“······왜 화를 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 분명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변명이 가소로웠던 걸까.
사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공영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그래, 잘못한 건 없지.”
“그럼 왜······!”
“잘못한 게 없다고 해서 혼날 게 없는 건 아니야. 학교와 달리 직장에서는 몰라도 혼이 나는 법이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허공에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재떨이에 비벼 끄는 사수의 동작은 살아오며 쌓인 허탈함이 느껴졌다.
어색함이 전혀 안 느껴지게 자연스럽지만, 바람에 날리는 재만큼이나 가벼워 보였다.
“신입. 너 헌터 보조가 뭐라고 생각하냐?”
“헌터의 몬스터 토벌, 던전 공략을 지원 및 보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과서만큼이나 딱 떨어진 답이네.”
“······제 답이 틀렸나요?”
“아니. 정답이야. 현실성 제로에 가까운 정답.”
“······.”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걸까.
걱정스레 눈치를 살폈지만, 사수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혼을 낼 때나 가르칠 때 표정 변화 하나 없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네가 혼난 건 다른 게 아니야. 보조 주제에 헌터 일에 겁 없이 끼어들었으니 말이지.”
사수는 내가 작성한 스케줄을 건네주고 한 곳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여기. 왜 헌터가 아니라 널 집어넣은 거야?”
“그건······ 인원이 부족해서 여유 인원을 집어넣다 보니······.”
“이전에 내가 짠 스케줄을 봤을 거 아니야. 다른 헌터를 집어넣으면 되잖아.”
“하지만 이미 몇 시간 전에 몬스터 토벌을 하셔서 규정상 연속으로는······.”
“규정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실제로 뛰지도 않으니까.”
“네?”
규정과 양식은 절대 틀려서도 안 된다고 내게 가르쳤던 사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믿기 힘들었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
“당연히 안 되지.”
“그럼 어째서······.”
“던전 공략에서 헌터가 빠지면 추후 연봉 정산에서 문제가 생겨. 그리고 헌터 님들의 입장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
과연 헌터의 입장이란 게 뭘까.
“생각하지 마. 이럴 때는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사수는 정답을 말하듯 설명을 마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무슨 설명을 해도 못 알아먹을 거라 여겨 그리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사실 사수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거다.
헌터 ‘보조’로서 일을 하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는 걸 이미 알았던 거다.
***
헌터, 그리고 헌터 보조.
몬스터와 던전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두 개의 직업군.
같은 현장과 비슷한 업무를 공유하고 있지만, 지위와 권한은 명백하게 달랐다.
몬스터 토벌과 던전 공략을 주로 맡는 헌터.
이에 수반되는 여러 업무를 맡는 헌터 보조.
맡은 바 일에서 둘 사이에 수직적 관계는 생길 수밖에 없었다.
[헌터 보조는 헌터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만, 그건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실제로 사회는 귀천은 물론, 삶의 대부분을 직업이 결정한다.
같은 헌터이긴 하지만, 끝에 ‘보조’라는 딱지는 낙인과 같았다.
헌터는 인정받고 영웅시되고 모두가 동경하는 직종이었지만.
헌터 보조는 멸시받고 등한시되며 모두가 꺼리는 직종으로, 헌터가 되지 못한 낙오자들이 된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나도 비슷한 경우였다.
헌터 아카데미는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등급 심사에서 D를 받았다.
C~D급은 애매한 등급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식 헌터로 협회나 길드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운이 없으면 밀려날 수도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리고 난 정말 운이 없었다.
하필 내가 등급 시험을 받는 해에 C급으로 이미 정식 헌터 자리가 다 차고 말았다.
내게 있어 주어진 선택 사항은 이대로 헌터를 그만두던가, 아니면 헌터 보조로 길드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때의 난 정식 헌터는 되지 못했지만, 헌터 보조로 희망찬 미래를 꿈꿨다.
실력만 있다면 정식 헌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헌터 아카데미 시절 괜찮은 성적이었기에 보조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차후에 정식 헌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2%.
헌터 보조가 정식 헌터로 전환되는 비율.
거의 가망이 없는 확률이었다.
그야말로 정식 헌터 전환은 말로만 존재했다.
헌터 업계에서 ‘보조’ 딱지는 노예의 낙인 마냥 절대 벗을 수 없는 족쇄였다.
그리고 그걸 난 업계 들어오고 5년 후에 깨달았다.
이미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던 거다.
***
“자, 제3팀 모두 모여봐.”
팀장, 이성훈의 부름에 모두가 모였다.
“이번 주 스케줄 확인했지. 우리 팀에 배정된 토벌과 공략 업무는 총 5건이다.”
“와, 꽤나 많네요. 우리 3팀만 너무 뺑이 치는 거 아닌가요, 팀장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좀 일해라, 자식아.”
팀장 이성훈이 정권우 헌터를 타박하자 모두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 둘은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했다.
“그래도 팀장님, 평소 권우 헌터의 말이 시답지 않긴 해도 일주일 스케줄 치고는 빡빡한 건 사실인데요.”
“잠깐만! 내가 언제 시답지 않은 소릴 했다는 건데!”
“지금도 그런데요. 평소 자신의 행실을 너무 모르는 거 아니에요?”
“아, 정말!”
동기인 이한영 헌터가 지적하자 정권우가 불만스런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한영은 묵묵히 말했다.
“언제까지 신입티 낼 거에요. 같은 동기인데도 왜 이런지······ 그렇죠, 현석 씨?”
“하하······ 뭐······.”
갑자기 내게 말이 넘어오자 눈치를 보며 얼버무렸다.
가끔 뭔가 대답을 기대하고 이한영이 물어보면 난감했다.
대게 정권우를 깎아내리는 이야기다 보니 나로선 어떤 대답도 하기 어려웠거든.
그녀가 딱히 악의를 가지고 하는 건 아닐 테지만, 그만해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도 정권우가 묘한 눈으로 날 보고 있지 않은가.
“자, 자. 권우 녀석이 이상한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팀장님!”
“아무튼, 이번 주 일정이 빡빡하니까 모두 정신 차리고 가자고. 너희들도 빈틈 생기지 않게 서포트 잘해주고.”
“네.”
팀원들과 힘차게 대답하고 곧바로 필요한 걸 메모했다.
던전 공략이 3개, 몬스터 토벌이 2개.
그중에서도 급한 건 던전 공략이다.
토벌이야 몬스터 관련 정보만 미리 확보해 보고하면 끝이다.
하지만 던전 공략에 경우에는 던전 정보뿐만 아니라 협회에 사전 던전 공략 신청과 던전 정보 및 몬스터 출현 종류와 규모를 조사해 취합하여 준비해야 한다.
던전 공략 개시 전까지 준비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응?”
업무를 정리해 후임들에게 지정해주려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날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오늘 있을 던전 공략 준비로 분주하다.
“기분 탓인가.”
손으로 뒷머리를 쓸며 찜찜한 불안감을 털어냈다.
***
던전 입구 앞은 부산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길드 내 타 팀을 포함해 타 길드에서도 모여든 인원으로 바글바글했다.
전투 인원만 백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이번 던전 공략은 규모가 남달랐다.
“다른 시선도 있으니까 오늘만큼은 실수 없이 가자. 모두 준비는 됐겠지.”
“네, 팀장님.”
“좋아. 그럼 시작하자.”
미리 정한 대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방패를 든 이한영을 선두로 팀장인 이성훈이 가운데, 그 뒤로 우리의 호위를 겸하여 정권우가 뒤따랐다.
“나 참, 보조들 호위 따위를 왜 해야 하는 건데······.”
정권우는 투덜투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래도 저건 무난한 편에 속한다.
보통 정식 헌터에게 보조의 호위를 맡으라고 하면 거친 반응을 보인다.
그나마 팀 내에 불화를 원하지 않는 팀장님의 내규로 인해 정권우는 괜한 짓을 자제했다.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애써 시선을 피하면서 현장에 집중했다.
던전에 들어온 이상, 뒤에서 지원만 하는 보조라도 정신 빠짝 안 차리고 있다가는 목숨을 잃기 딱 좋다.
사람 다섯이 동시에 지나갈 폭의 길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왼편으로 깊이가 어느 정도 될지 모를 절벽이라 발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오른쪽 벽에 딱 붙어 움직이면 당장은 안전하지만, 절벽 쪽을 보며 떨어질 것 같아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지어 던전 안은 어둠이 내린 듯 깜깜했다.
미리 준비해온 야광 막대기로 길을 밝히면서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때, 선두에 있던 이한영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멈춰 섰다.
“전방에 몬스터네요.”
“종류와 수는?”
“케이브 울프. 수는 대략······ 10마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이한영의 보고를 들은 팀장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나와 이한영 헌터는 전방에 몬스터를 맡겠다. 혹시 다른 몬스터가 있을지 모르니까 권우 너는 자리를 지키고 있어.”
“네? 하지만 팀장님! 저도 싸우고 싶은데요.”
정권우가 반발했지만,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잔소리 말고 지시에 따라. 지금이 아니라도 몬스터와 싸울 일은 많으니까.”
“······.”
불만 가득한 정권우를 뒤로하고 팀장과 이한영은 몬스터 토벌을 위해 나아갔다.
둘이 시야에 사라지자 정권우는 화풀이하듯 돌멩이를 발로 찼다.
“젠장! 싸우겠다는데 왜 말리고 지랄이야. 하아······ 정말이지.”
있는 대로 쏟아내던 짜증은 이내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나와 보조들에게 향한다.
아, 뭐가 올지 감이 오는 내가 싫다.
“어이, 보조 나부랭이.”
“왜 그러십니까, 정권우 헌터님.”
“뭐야 평소에 팀장이나 이한영 앞에서는 당당하더니만, 두 사람 없다고 꽤나 얌전해지네.”
퍽!
돌연 조인트가 날아왔다.
“크윽······.”
“야. 누가 움직이라고 했어. 똑바로 안 서.”
시발 새끼.
마력을 담아서 차기냐.
이거 잘못 맞으면 다리 못 쓰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맞기 직전에 몸에 마력을 둘러서 다행이지.
“호, 꼴에 버티네. 보조 주제에.”
“······.”
“야. 이한영이 동기 동기 하니까 내가 진짜 네 동기라고 생각하냐?”
“······그렇게 생각한 적 없습니다.”
“없긴 시발. 그럼 그 눈빛은 뭔데. 하늘 같은 헌터를 보는 눈빛이 아니잖아.”
아니, 하늘 같은 헌터를 보는 눈은 도대체 뭔데.
처음 3팀에 나와 배치되었을 때부터 이한영과 달리 이 녀석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뭔가 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재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언제 깔까 각을 재고 있었던 모양이다.
팀 회의 직후 느꼈던 묘한 시선도 이 녀석이었겠지.
하, 좀 나대기는 해도 괜찮은 녀석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헌터는 다 똑같았다.
“야, 보조는 영원한 보조야. 네 녀석이 팀장을 통해서 정식 헌터가 되려는 모양인데, 쓸데없는 짓 말고 짜져 있어. 그것도 빽 있는 녀석이야 가능한 거니까. 너 같이 아무것도 없는 보조 새끼는 몇백 년이 지나도 똑같다고.”
알고 있었던 건가.
정권우 말 대로 보조가 정식 헌터가 될 길이 있지만, 그게 유명무실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미력한 실력이 괜찮아 보였던 건지 팀장님은 간간이 정식 헌터로 날 추천했다.
물론 소용없는 일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마음 자체가 고마워 거부하지 않았다.
근데 설마 그게 이 녀석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
애초에 나와 팀장님만 아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니까.
“저, 저기······ 헌터님. 이 정도로 하시고 그만하심이······.”
“누가 끼어들라고 했어. 너 먼저 죽고 싶냐?”
“······?!”
“가만히 있어.”
말리려고 하는 후배 보조를 제지했다.
어디까지나 내게 불만이 있는 건데 다른 데로 불똥이 튀는 건 원치 않았다.
다행히 후배 녀석이 물러나자 정권우의 시선이 다시 내게 향했다.
하아, 오늘 하루 쉽게 흘러가기 힘들겠구만.
술이 급격하게 땡기는 가운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
“뭐, 뭐야! 저, 저건······!!”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던 보조들이 먼저 발견하고 놀라 소리쳤다.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형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몬스터였다.
집채만 한 골렘이 무심하게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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