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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번

환생해 보니 낭만 따윈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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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번
작품등록일 :
2024.08.21 19:29
최근연재일 :
2024.09.05 12: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177
추천수 :
30
글자수 :
55,795

작성
24.08.30 17:15
조회
66
추천
2
글자
12쪽

거짓말(4)

DUMMY

사막 왕국 아슬란에서 위대한 현자의 가르침을 받아, 젊은 나이에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천재 마법사.


이는 란돌프가 연설을 빙자한 마술쇼를 시작할 때 항상 하는 자기소개였다.

솔직히 무슨 서커스에서나 볼 법한 싸구려 문구이긴 한데···.


“예? 그러니까 어디서 어디까지가 거짓말이라고요?”

“마법사. 딱 그거 하나만 거짓말일세.”


순간 데렌의 거짓말 탐지기 기능이 고장 났나 싶었다.

앞에 부분은 몰라도 뒤에 부분도 마법사 빼고는 진심이었다니.


“자기가 진짜 천재라고 믿다니. 그건 좀 소름 돋네요.”


그자의 나르시시즘적 성향과 짙은 콤플렉스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니까 한번 대충 정리해 보자.

사막 왕국 아슬란에서 마법사의 제자로 공부한 유학파인 것은 사실.

그런데 그 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도망쳐 놓고, 자기는 더 배울 필요가 없었다고 합리화하는 거로군.


“그래서 그 외에 다른 거짓말은요?”

“어휴. 말도 말게! 연설 내내 온통 거짓말이라 숨이 턱턱 막힐뻔했다고.”


오늘 연설의 내용은 요약하면 대충 이런 거였다.


웨이룬의 미래를 점쳐서 번영으로 이끄는 법을 알아냈다.

그러니 너희도 그 번영을 누리고 싶거든 내 말을 무조건 따라라.

결론은 그런 얘기였다.


그러면서도 영주에 대한 찬양을 중간중간 끼워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마저도 자신과 같은 위대한 마법사를 곁에 둔 걸 보면, 신에게 사랑받는 거란 자뻑 멘트였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우스워 보이는 그 마법쇼는 선동의 밑 작업으로서 착실히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제가 장담하죠. 이대론 머지않아 빌모어 경은 란돌프의 꼭두각시가 될 겁니다.”


민중이 바라고 있다.

영지민을 지극히 아끼는 빌모어라면 그 말을 쉽게 넘기기 힘들 터.


민심을 조종하면 그것이 빌모어를 얽매는 실이 될 것이다.



* * *



따악!


“끄아아아악!”


막대기로 오금을 얻어맞은 하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이 녀석! 내가 시약의 비율을 조금이라도 틀리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거늘!”

“하, 하지만 전 분명 마법사님이 시키신 대로···!”

“어디서 말대꾸를! 까딱하다 네 실수 하나로 수백 명이 죽을뻔했단 걸 모르는 거냐!”

“히이익! 죄송합니다!”


란돌프가 막대기를 다시 들어 올리자, 하인은 공벌레처럼 몸을 만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마법을 광장에서 시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또 그런 중요한 일을 마법사도 아닌 평범한 하인에게 시키는 건 또 어떻고.


하인은 이런 의문을 가져볼 만도 하지만, 결국엔 입도 뻥긋 못했다.


“이번엔 나의 혜안으로 재빨리 눈치채고 힘을 조절해서 망정이지. 그러니 네 놈이 살인자가 되지 않게 막아준 내게 감사하거라.”

“예, 예옛!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마법사님의 은총입니다!”

“좋아, 오늘은 이만 봐주마. 물러가도 좋다.”

“가, 감사합니다!”


하인은 무릎을 절룩거리며 허겁지겁 마법사의 방을 나섰다.


물론 그는 알 턱이 없다.

첫째로, 자신이 조합했던 시약은 마시지 않는 이상 사람을 죽일 힘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 시약에 아무 문제 없었지만, 괜히 생트집 잡힌 거란 것을.


“천한 것. 꼴사납기는.”


란돌프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인에게 화풀이해도 그의 답답한 속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쯧. 나 같은 천제가 그 음험한 노인네 때문에 어릿광대짓이나 해야 하는 신세라니!”


그는 자신이 천재라고 굳게 믿었다.

단지 억세게 운이 없어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을 뿐.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의 부모는 별 볼 일 없는 상인에 불과했다.


그런 한심한 부모의 등만 보고 지내야 하는 나날은 괴로웠다.

그래서 언젠가 물려받을 유산을 ‘미리’ 챙겼다.

그리곤 아슬란 왕국의 유명한 마법사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그것이 큰 실수였다고 란돌프는 회상했다.


모래바람을 맞으며, 냄새나는 노인네 밑에서 자그마치 10년을 생고생했다.

그런데도 정작 원하던 마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10년은 더 공부해야 한다는 답만 돌아오는 게 아닌가!


“분명 내 천재성을 질투한 거다! 자기를 뛰어넘는 게 두려웠던 거겠지!”


란돌프는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스승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그자에게 속아, 많은 돈과 10년이란 시간을 헛되이 써버렸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지금의 신묘한 ‘마법’은 그때 배운 지식을 활용한 것이긴 했지만.


“나 같은 천재는 그 노인네 밑에서 헛고생할 것도 없이, 그딴 건 자연히 터득했을 거라고.”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란돌프님! 영주님이 찾으십니다!”


잠깐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노크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냐? 무슨 일로?”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손님···? 알겠다. 곧 가겠다고 전해라.”


란돌프는 영주가 손님 일로 부르는 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또 천한 것들의 하찮은 고민이나 해결해 달란 거겠지.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직 그는 영주의 명을 거부할 정도의 힘이 없었다.


“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이런 짓거리 하는 날도 얼마 안 남았다.”


날이 갈수록 그의 연설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사람들이 그의 마법에 빠져들수록,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들도 점점 생겨난다.


머지않아 민중의 목소리는 그의 앵무새가 된다.

어리석은 빌모어는 거기에 정신없이 끌려다닐 테지.


이것이 진짜 지혜고, 진짜 마법이다.


란돌프는 자신의 황금빛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내며 히죽 웃었다.



* * *



내 생각에 확실히 빌모어는 호인인 동시에 호구가 맞다.


“란돌프는 정말 유능한 친구일세. 그가 오고 나서 예전엔 해결 못 했던 문제들이 속속들이 해결되었다네!”

“그렇군요. 젊은 나이에 세상의 이치리를 깨달으셨다더니. 소문대로였나 보군요.”

“허허! 그럼 그럼!”


나는 영주가 대접해 준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쓴웃음을 가렸다.


내가 알기론 저 해결이란 게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니었다.


대부분 잔디밭에 사람이 자꾸 들어가자 아예 잔디밭을 없애버린 식의 솔루션.

그런데 그 점을 전혀 눈치채질 못하고 있으니, 이런 고구마가 또 없다.


“아, 그가 저기 오는군!”


한참 기다렸던 란돌프가 응접실로 뭉그적거리며 걸어온다.


그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떨떠름한 얼굴로 내 얼굴을 응시한다.

왜? 잘생겨서 떫냐?


“영주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여기 이 친구들이랑 인사 나누게. 소금장수와는 구면일 테지?”

“아, 기억나는군요.”


영주의 소개에 내 옆에 앉아있던 데렌이 훤한 이마를 뽐내며 고개를 숙인다.

기습 섬광탄 공격이라니, 제법인데?


“허허. 이런 미천한 놈도 마법사님이 기억해 주실 줄이야! 영광입니다!”

“그래. 자네 덕분에 식사때마다 배움의 시절을 다시 떠올리곤 하지.”


데렌이 취급하는 소금은 아슬란 왕국이 위치한 마르키나 반도의 암염이라던가.

란돌프의 표정이 그다지 좋은 추억을 얘기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젊은 친구가 자네에게 용무가 있다더군.”

“리안이라고 합니다. 마법을 탐구하는 무지한 학사가, 위대한 마법사님을 뵙습니다.”

“마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의 눈빛에 경계심이 생겨난다.

자신이 가짜라는 걸 들킬까 긴장되겠지.


“불행히도 최근 스승님께서 천명을 다하시어, 가르침이 부족한 상태로 배움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저런. 그것참 유감이로군.”


란돌프의 경계심이 한껏 누그러졌다.


아아,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애송이에 불과한가.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스승을 찾아 헤매던 중. 선생님의 고명하신 명성을 듣고 이리 찾아뵙게 됐습니다.”


제자가 되고 싶단 소리에 란돌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실룩거린다.

제자를 거느리고 있으면, 마법사로서 더욱 이상적인 모양새가 그려질 테니 구미가 당길 줄 알았다.


“제자라···. 난 아무나 제자로 들을 생각이 없다.”


하지만 자칫하다 정체가 뽀록날 수 있을 테니 고민이 될 터.

이 또한 예상대로의 반응.


그렇다면 미끼를 같이 던져줘야겠지.


“그러면 제가 위대한 마법사께 어울리는 제자인 것을 한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음?”


나는 건너편의 꽃병으로 손을 뻗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집중하는 척했다.


“흐읍!”


그러다 손끝에 힘을 주며 손을 달달 떨다가, 손을 위로 휙 젖혔다.


“하아압!”


내 손짓에 맞춰 꽃 한 송이가 위로 솟구쳤다.

그러면서 꽃잎이 폭죽처럼 터져 흩날린다.


“후우···.”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흘리지도 않은 식은땀을 닦으며 힘든 척 마무리.


“오오. 젊은 친구가 제법이로군! 란돌프! 자네의 제자로 어울리겠어!”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내 마법을 본 란돌프의 눈빛에서 복잡한 감정이 한데 뒤섞였다.


처음엔 당혹감이.

그러다 질투와 시기,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다가···.


“선생님이 광장에서 선보이신 것들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잔재주입니다만. 어떻습니까?”

“그렇군. 내 연설을 보았던 건가?”

“예! 그 경이로운 마법들을 보고서 제 새로운 스승은 선생님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좋다. 널 제자로 받아주마.”


이내 그의 눈빛에 탐욕이 깃든다.

자신이 얻지 못했던 진짜 마법을 손에 넣을 절호의 기회라고 느꼈을 터.


“다만 스승이 바뀌는 건 나무에 새 가지를 덧붙이는 것과 같다.”

“그 말씀은···?”

“너는 우선, 네 스승에게 배운 것을 내게 빠짐없이 보고해야 할 것이다.”


역시나 참으로 속이 뻔한 사내다.



* * *



데렌은 옷깃을 벌리며 크게 심호흡했다.


“휴우! 양쪽에서 순 거짓말만 늘어놓는 통에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진작에 목에 건 그걸 저한테 빌려줬으면 됐잖습니까?”


나는 그의 옷깃 아래에 언뜻 보이는 목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데렌은 화들짝 놀라며 수줍은 소녀라도 된 듯 황급히 옷깃을 여민다.


배 나온 아저씨가 저러니 좀 역겹네.


“쓰읍! 허튼소리 말게, 이 친구야! 이게 어떤 물건인데!”

“어떤 물건이긴요. 동족의 습관적인 은유법에 학을 떼는 괴짜 엘프가 만들어 낸 부적이죠.”

“···아니 어떻게 그걸? 내가 얘기한 적이 있던가?”

“지난번에 맥주 열 잔쯤 먹이니까 술술 얘기하던데요?”

“이런! 항상 이놈의 술이 문제야!”


데렌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리며 탄식했다.

저러니 머리가 벗겨지지.


그 밖에 리브라 기사단의 기밀 몇 가지도 캐냈었는데.

다행히 그것도 기억 못 하는 것 같다.


“그보다 녀석은 자넬 진심으로 제자로 받아들인 것 같진 않던데. 괜찮나?”

“아, 예. 어차피 제 마법만 쏙 빼먹을 심산이겠죠.”

“그래서 자넨 이제 뭘 하려고? 놈이 가짜란 증거라도 모을 셈인가?”


이 사람 비밀 조직의 일원답지 않게 제법 순진하네.

그런 정공법이 먹힐 리가 있나.


“녀석이 그런 거에 대비 하나 안 했겠어요? 왜 굳이 경비병이 지키는 문으로 지나가려 하는 겁니까?”

“엥? 그러면 뭐 하러 녀석의 제자로 들어가는 척을···?”


게다가 웨이룬의 시민들은 놈의 공연에 푹 빠져있다.

이런 노잼 도시에서 그나마 생긴 오락거리를 뺏으려 하면 오히려 반발만 일어날 거다.


“데렌, 선동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뭔지 알아요?”

“음. 그렇다면 역시 진실 아닌가!”

“아뇨. 진실은 오히려 선동 앞에 무력해요. 사람들이 언제나 진실만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

나는 이제부터 선동과 날조로 승부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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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졸업(3) 24.08.25 140 3 12쪽
3 졸업(2) +1 24.08.24 152 4 13쪽
2 졸업(1) +1 24.08.23 195 3 13쪽
1 프롤로그 +1 24.08.23 205 4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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