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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번

환생해 보니 낭만 따윈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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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번
작품등록일 :
2024.08.21 19:29
최근연재일 :
2024.09.05 12: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176
추천수 :
30
글자수 :
55,795

작성
24.08.29 12:35
조회
85
추천
3
글자
11쪽

거짓말(3)

DUMMY

“흐음. 그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하구먼.”


데렌은 차근히 내 얘기를 듣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빌모어 경에겐 그 사기꾼이 옆에 붙어있는 편이 좋아. 자네가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는 없네.”

“네? 여기 영주가 그렇게나 쓰레기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예상 밖의 일이다.

이곳 웨이룬은 한적한 시골 영지이긴 하지만, 그만큼 평화롭기도 하단 뜻.


내가 쓰레기 같은 새끼가 다스리는 동네에서 태어나봐서 아는데, 데렌이 뭔가 착오한 게 아닐까.


“이 친구 위험한 소리 하기는! 길거리에서 그런 소리 했으면 벌써 돌 맞았을걸세!”

“음? 빌모어 경은 영지민에게 사랑받을 만큼 좋은 사람인가요?”

“그러엄! 내 꽤 많은 도시를 돌아다녀 봤지만, 그만큼 어진 영주는 보기 드물지!”


역시 내 생각대로 이곳이 영주 덕분에 한적하고 평화로운 듯한데.

그러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래서 그런 사람이 사기꾼에게 등쳐 먹히게 놔둬야 한다고요?”

“그래. 당연히 그 얘기 아닌가?”

“지금 우리 뭔가 대화가 안 맞는 거 아시죠?”

“허어?”


데렌은 그의 두툼한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벗겨진 이마를 찰지게 탁 치며 탄식을 내뱉는다.


“어이쿠야! 설마 만월 어르신이 그것도 말씀하지 않은 건가!”

“뭘 말입니까?”

“우리의 사명 말일세!”


사명이라.

솔직히 그 얘기를 들어봤자, 유적에서 날 죽이려 한 영감님밖에 안 떠오르는데.


“혹시 그 유적의 비석에···.”

“어허이! 이 친구 큰일 낼 친구네!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 저언혀!”


데렌이 황급히 귀를 틀어막고선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적혀있는···.”

“으허어어! 어어!”

“신들의···.”

“으워어! 워어!”


내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데렌의 얼굴이 점점 사색이 된다.


저 반응을 보니 대충 알겠다.

보통은 그 한글 비석의 존재 자체를 아는 것만으로 살해당하는 건가.

그리고 만월의 표식을 물려받은 난 그게 허용되는 거고.


“예에 예, 알겠어요. 그 유적 안에 뭐가 있는지는 형제들 앞에서도 함부로 말하지 말란 거죠?”

“후. 십년감수했구먼. 자네 날 암살할 셈이었나?”


데렌은 그새 식은땀에 홍수가 난 넓은 이마를 소매로 닦아냈다.

이 아저씨 보기보다 갖고 노는 맛이 있네.


“크흠! 잘 듣게. 우리의 사명은 말이지,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것에 있네.”

“예? 그거랑 영주와 사기꾼 마법사가 무슨···. 아!”

“역시 만월 어르신의 제자로군. 바로 이해한 건가!”

“아, 예에. 뭐, 대충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떤 의미론 그게 균형이 맞지.

그렇긴 한데···.


“잊지 말게, 리안. 영웅의 탄생은 세상을 되레 혼탁하게 할 뿐이란걸.”


역시 이 리브라 기사단인지 니부랄 기사단인지 하는 놈들이랑은 오래 엮이면 안 되겠다.



* * *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얘기를 들어봤다.

당연히 대화의 주된 주제는 영주 빌모어와 마법사 란돌프.


먼저, 빌모어라는 인물에 대해 종합하자면 이렇다.


‘영주님? 사람은 참 착하지!’


그의 인품에 관해서는 하나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능력 면에서는 다소 떨떠름한 반응.

그러니까 지하에 그런 거대한 비밀 아지트가 멀쩡히 돌아가는 거겠지.


물론 주변 영주들과 좋은 관계를 두루 유지하는 것도 유능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영지민이 체감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그들의 평온한 나날은 당연하게 누려온 것이니까.


다행히 빌모어는 자신의 행정적 무능력을 자각하는 듯했고, 항상 인재 기용에 신경 쓴듯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유능한 인재도 결국 유능한 영주들이 먼저 선점하기 마련.

결국 빌모어 곁에는 호구 영주 밑에서 날먹하려는 놈팽이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화룡점정이 란돌프라는 자칭 마법사.


‘바다 건너서 유학하고 온 마법사라는데. 솔직히 그놈이 온 뒤로도 뭐가 바뀐 건 없구려.’


그나마 바뀐 점이 있다면 한가지 오락거리가 생겼다는 거랄까.


달에 몇 번 란돌프가 광장에서 연설하며, 화려한 마법을 선보인다고 하는데.

솔직히 구경하는 재미는 있어 그날을 기다리게 된다고 한다.


‘뭐 어디는 알거지 발톱 때도 벗겨 먹는다던데. 우린 그런 게 없으니 참고 사는 거지.’


그렇다고 란돌프나 다른 관리들이 완전 악인은 아니었다.


적당히 선 넘지 않고 눈치껏 해 먹는 등.

어떻게 보면 이상한 쪽으로 유능한 부패 공무원들이다.


“시부럴. 참 절묘한 균형이다.”


어찌 보면 데렌의 말이 옳았다.


망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발전도 없는, 적당히 굴러가기만 하는 상태.

이런 황금 밸런스는 일부러 만들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빌모어와 란돌프의 조합은 좇같은 균형의 수호자들에겐 완전 대꼴이겠지.


“네 생각엔 어떻냐, 페라리? 이게 맞나?”


나는 건초를 야무지게 씹고 있는 당나귀에게 묻듯 혼잣말했다.

참고로 페라리란 이름은 당연히 내가 지었다.


“누군 전생에 개 같이 일하다 과로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환생해서도 똥통에 굴러다녔는데···”


사람처럼 살아보겠다고 아득바득 발버둥 쳤다.

그럼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었다.


고생 뒤엔 그저 골병만 기다릴 뿐이었다.


“전생에도 저런 좇같은 새끼들 때문에 개고생만 했는데. 어딜 가든 꼭 있냐.”


영감님 제자가 된 뒤로 교양 좀 쌓였다고 끊었던 욕이 다시 튀어나온다.


귀족이야 타고난 출신 문제니 어쩔 수 없다지만, 저 부패 공무원 새끼들은 그런 것도 없잖아.

왜 저놈들은 내가 평생 누리지 못한 걸 누리는 거냐고.


“하, 씨···. 다시 생각하니 좇나 억울하네.”


시발. 판타지가 별거냐.


유니콘과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 이딴 게 무슨 판타지야.

노력하는 놈이 제대로 보답받는 세상.

그게 진짜 판타지지.


“그렇지, 페라리? 나도 이제 그 꿀 한번 빨아봐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언젠가.

내게 시한폭탄과도 같은 저 지하의 음습한 균형 성애자를 싹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 * *



영감님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무렵.

그분은 내게 대뜸 이러한 질문을 던졌었다.


‘마법사와 요술쟁이의 차이를 아느냐?’


여기서 요술쟁이는 전생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술사에 가까웠다.

당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영감님이 해준 말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마법이든 요술이든 결국 둘 다 속임수에 불과하다. 다만. 요술이 사람을 속이는 거라면, 마법은 이치를 속이는 것이니라.’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서 3년쯤 지나, 처음 마법으로 불을 피워냈을 때.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영감님이 내게 뭔가 특별한 주문 같은 걸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저 불꽃에 관해 탐구하고 있던 도중에 불현듯이.


‘어 이거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직감에 따랐더니 정말로 됐다.

그러니까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버그를 찾은 셈이었다.


그런데 이게 문제는 마법사 본인들도,


‘어 그냥 해보니까 되던데요?’


이런 꼬락서니인지라 마법만 다이렉트로 전수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마법을 배우는 과정이란 게 무엇이냐.

그저 스승이 마법이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었다.


영감님이 쓸데없어 보이는 잡학만 내게 가르쳤던 게 그런 이유였다.


그걸 굳이 있어 보이게 포장하자면.

수많은 지식 속에서 남다른 통찰력으로 마법의 단서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결국, 이 지극히 비효율적인 교육 커리큘럼은 마법사 한 명을 육성하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고.

그로 인해 도중에 많은 낙오자를 낳기도 했다.


그리고 소위 요술쟁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이런 부류가 많았다.


“나는 어젯밤 별 무리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았다!”


웨이룬 광장 한가운데에 마련된 무대 위.

광대인지 마법사인지 헷갈리는 화려한 복장의 사내가 연설 중이었다.


전당포의 드워프 노인이 말하길 젊다고 하더니, 확실히 마법사치고 젊은 편이다.

많아야 30대 후반이려나?


“내게 미래를 보여준 그 별빛의 조각을 이 병 속에 담아뒀으니···!”


란돌프는 병의 마개를 열고 물이 담긴 투명한 크리스탈 그릇에 내용물을 부었다.


“보아라, 시민들이여! 곧 웨이룬의 금빛 미래가 비춰질 것이다!”


란돌프가 그릇 위 허공에서 손을 휘젓자, 처음엔 투명했던 물이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한다.


“오오! 신기하다 신기해!”

“이보게, 그런데 저게 우리 미래랑 무슨 상관있나?”

“에이 뭐 어때? 공짜로 신기한 구경했으면 됐지!”


시민들은 저 마술쇼의 실용성에 의문은 품으면서도, 일단 신기하니 박수 치고 본다.


“마법사님! 더 보여줘요! 더!”

“보아라! 나의 신통한 비기를!”

“와아아아! 멋지다!”


이후로도 색색의 불꽃을 내거나.

물건을 공중에 띄워 보이는 공중부양 마술을 선보일 때마다 연신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하, 시불···. 저게 광대지 어딜 봐서 마법사냐.”


생각 이상으로 유치한 쇼에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저 쇼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가짜 마법이라고 폭로하는 건 의미 없을 듯하다.

교육이 부족한 민초에겐 과학이나 마법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직접 보니 어때? 내 말이 좀 이해되나?”

“···데렌. 언제 왔어요?”

“그야 방금.”


간 떨어질 뻔했네.

아무리 군중 속이라지만 기척도 없이 내 등 뒤로 다가오다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내다.


“그래서 어떤가? 자네 감상은.”

“예. 확실히 완벽한 균형처럼 보이네요.”

“허헛. 그렇지?”


란돌프는 영주 빌모어의 완벽한 대척점이었다.

영주에게 단순히 기생하고 있는 다른 부패관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비록 유치한 쇼이지만.

군중이 이토록 열광하고 있다.

마법사 란돌프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동시에 사랑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빌모어와 닮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그러니 자네도 불필요한 수고는···.”

“하지만 머지않아 깨질 균형이네요.”

“응? 뭣?”


란돌프는 가짜 마법사일 뿐, 역시 무능하지는 않다.


음악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화려한 시각 효과로 이목을 끌어모은다.

그러는 동시에 자신이 하고픈 말을 군중에게 착실히 각인시킨다.


나는 전생에 이런 재주를 가진 역사적 인물을 알고 있었다.


“댁들은 민중을 이끄는 능력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모르는군요.”


설령 당장은 광대짓으로 보일지라도.

언제든지 계기만 있으면 훌륭한 선동가로 바뀔 수 있다.


“흐음. 솔직히 잘은 모르겠네만···.”


아마도 그럴 거다.

이 세계도 때때로 농민 봉기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기사들의 무력에 금방 제압되곤 하니까.

민중의 힘 따위 우스워 보이겠지.


“그렇지만 자네 스승은 생전에 내게 이런 얘기를 했었지.”

“영감님이요?”

“드디어 그토록 꿈꾸던 자신과 같은 제3의 눈을 가진 제자를 얻었다고 말이야.”


데렌은 이마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씨익 웃는다.


뭐지? 제3의 눈이라니.

난 영감님에게 그런 말은 못 들어봤는데.


“그분과 같은 눈을 가진 자네를 한번 믿어보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게나.”


어찌 됐든 인간 거짓말 탐지기의 도움을 얻게 되었으니, 일 처리가 조금은 수월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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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졸업(3) 24.08.25 140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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