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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번

환생해 보니 낭만 따윈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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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번
작품등록일 :
2024.08.21 19:29
최근연재일 :
2024.09.05 12: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175
추천수 :
30
글자수 :
55,795

작성
24.08.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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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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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졸업(2)

DUMMY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마법사 제자 3년이면 주문 서너 개 정도는 읊게 되더라.


그렇다고 대단한 마법은 아니다.

적당히 편리하지만 밥벌이해 먹기엔 조금 애매한 재주.

맨손으로 불붙이고, 손 안 대고 물건 좀 날리거나,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현해 본 정도랄까.


아, 그리고 물은 정말로 답을 알고 있더라.


“참나. 멀쩡하던 강물이 말라버릴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뭄에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산 아래 작은 마을.

마을의 생명줄이던 작은 강이 완전히 메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송이. 네가 한번 알아보겠느냐?”

“요즘 은근 저한테 자꾸 미루십니다?”

“끌끌. 제자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늙은 스승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니더냐.”

“아, 예에 예.”


나는 수통의 물을 넓은 그릇에다 부었다.

그리곤 손을 살짝 담근 뒤, 수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속삭이듯 말을 건다.


“이 강의 물들이 어디로 갔는지 내게 알려다오.”


질문에 답하듯 수면이 잠깐 일렁이다 다시 잠잠해진다.

이윽고 어떠한 풍경들이 슬라이드처럼 순서대로 지나가며 비친다.


“폭포. 무너진 토사. 수몰된 숲. 산사태의 영향으로 지류가 바뀐 건가.”


절벽 한쪽이 깎여 내려갈 정도로 큰 산사태.

이런 일이라면 강줄기의 형태가 바뀌는 것도 이해된다.


“산사태요?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큰비가 왔을 때 유난히 흙탕물이···.”

“새로 생긴 폭포에서 원래 강 쪽으로 새로 물길을 파주면 해결되겠군요.”

“그, 그렇습니까?”

“물론 근처 지반이 아직 불안정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겁니다.”


내 솔루션을 듣고 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게다가 성인 남성이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일 여력은 없을 테고, 그 귀중한 노동력마저 자칫하다 잃을 위험성마저 있다.


“혹시 마법사님들이 어떻게든···.”

“글쎄요. 저희에게도 마냥 쉽지는 않은 일이라.”


물론 영감님이 지팡이 몇 번 휘두르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맨입으로 쓰려고 하면 안 되지.


“아참. 마법사님들!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내가 한참 뜸을 들이자, 촌장이 갑자기 자기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내 엉덩이로 영감님의 지팡이 빠따질이 날아온다.


“이놈아. 그렇게 대놓고 눈치를 주면 어쩌자는 게냐. 네 눈엔 이 마을 사정이 안보이더냐?”

“아, 제가 언제 금화라도 달랬습니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달라 이거죠.”

“쯧. 개미 더듬이까지 빨아먹을 녀석 같으니라고. 선행을 베풀 때는 대가를 바라지 말라고 내 누누이 가르쳤거든.”


그러는 영감님도 정작 말리지는 않았으면서.

이 음험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내가 툴툴대며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자, 집으로 들어갔던 촌장이 무언가를 들고 다시 나온다.


“이걸로 될지 모르겠지만, 받아주십쇼. 마른 강바닥 아래서 발견한 건데, 혹여 비싸게 팔릴지 몰라 들고 있었습죠.”


촌장이 들고 온 건, 흙투성이에다 검게 녹슨 금속 원반이었다.

오, 녹의 색깔을 봐선 은이려나?


“호오. 이것은···.”


영감님의 축 처진 눈꺼풀이 보기 드물게 번쩍 뜨인다.

역시 은인가!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유물일세. 고맙게 받겠네.”

“그렇습니까? 드릴 게 마땅히 없던 차에 다행이군요!”

“아닐세. 강물 문제는 우리가 꼭 해결해 줄 터이니, 걱정 붙들어 매게.”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혹여 촌장의 마음이 바뀔세라, 영감님은 유물을 잽싸게 챙겨 품에 넣는다.


나는 그런 영감님을 불만 가득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뭐, 선행을 베풀 때는 대가를 바라선 안 된다고?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영감님은 실없이 허허 웃으며 지팡이로 내 허리를 쿡쿡 찌른다.


“서두르자꾸나, 애송이. 해 떨어지기 전에는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그게 대체 뭡니까? 그거 때문에라도 산사태 난 절벽에 가려는 거죠?”


유물에 묻은 흙은 이 주변의 흙과 색이 확연하게 다르다.

아마도 산사태가 일어났을 때, 물길이 막히기 직전 쓸려 내려온 토사에 섞여 있던 거겠지.


“하여튼 눈치 빠른 녀석이로고.”

“영감님 제자 해 먹으려면 눈치가 빨라야죠. 맨날 이상한 수수께끼 놀이나 해대잖습니까?”

“끌끌.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하자꾸나.”


그리하여 우리는 일단 당나귀가 끄는 수레에 올라타 문제의 절벽으로 향했다.



* * *



덜그럭거리는 수레 위에서.

영감님은 지팡이 끝으로 유물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후드득 하고 묻어있던 흙과 녹이 단번에 벗겨진다.


“이게 어느 시대 유물인지 알겠느냐?”

“네? 갑자기요?”

“내가 그간 가르친 게 있으니, 한번 맞춰보거라.”

“흐음. 어디 보자···.”


유물의 중앙에는 기하학적 도형이, 그 주변에는 한글 자음을 닮은 기호가 둘러 새겨져 있다.


“문양만 봐선 전혀 짐작이 안 되는데. 재질을 고려하면 은의 시대라 불리던 파르반 왕조이려나요?”

“틀렸다. 답은 알 수 없다 이니라.”

“···이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녀석. 속으로 할 말이 새어 나와버렸구나.”


따악!

오랜만에 인간 목탁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진다.


“쓰으···. 그래서 연대 미상인 이유가 뭡니까? 그걸 얘기하고 싶었던 거 아니에요?”

“그래, 맞다.”


영감님은 만족한 듯 껄껄 웃으며 유물을 도로 품속에 넣는다.


“이건 아마도.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지 않은 잊혀진 시대의 유물일 거다.”

“대충 아득히 먼 옛날 물건이란 거군요.”


사실 나로서는 공룡이 쓰던 밥그릇 같은 게 아니고서야 별로 놀랍지는 않다.

그래도 저만큼 오래된 거면 상당히 비싸려나.


“애송이. 너는 신들이 실재한다고 믿느냐?”

“거참 위험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십니다?”


우리 말고 듣는 사람도 없으니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영감님 표정을 보니, 내 신앙심을 시험해 보려는 건 아닌 듯하다.


“인간끼리 태양신이 남자냐 여자냐 놓고 치고받고 싸우는데. 신이 아무 반응 안 하는 걸 보면 없지 않을까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이 세계의 인간들이 허구한 날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이 놀랍게도 바로 그거거든.


“솔직히 제가 신이었다면, 제 불알 달렸냐 안 달렸냐로 싸우는 인간들 보고 바로 불덩이 날렸습니다.”

“허허. 고놈 말하는 꼬락서니하곤.”


그래도 곧장 지팡이가 날아오지 않는 걸 보면, 영감님도 내 말에 공감하고 있단 거겠지.


“나는 말이다. 신화란 강대한 힘을 가진 마법사를 향한 경외심에 생겨난 이야기라고 생각하느니라.”

“꽤 파격적인 가설이네요. 그래서 그와 관련된 유적을 찾아 그걸 증명하시려는 겁니까?”

“끌끌. 딱히 그럴 생각은 없다. 내가 역사학자도 아니잖느냐.”

“그러면요?”

“흠···.”


평소엔 뭐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던 영감님이 드물게 침묵했다.

정작 이 세계 사람들 신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얘기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서 말이다.


“말씀하기 싫으면 얘기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당나귀 고삐를 쥐고서 묵묵히 수레를 몰았다.

낯선 침묵이 흐르며, 낡은 수레의 덜컹거리는 소리만 숲길에 퍼진다.


“애송아.”

“네, 영감님.”

“네 생각엔 말이다. 천둥과 폭풍을 부르고, 땅을 가르며. 홍수를 일으키고, 불의 비를 내리는 마법이 실재한다면 어떠할 것 같으냐?”


그러니까 양판소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고위 마법 말인가.


솔직히 로망이다.

물론 나 혼자만 쓸 수 있다면 말이지.


“솔직히···. 그런 게 세상에 퍼지면 위험하겠네요.”


버튼 한 번으로 도시를 지울 수 있는 세계에서 살다 와서 그런가.

그런 종류의 마법이 세상에 미칠 영향이 오히려 쉽게 상상된다.


현실이 아닐 때나 좋은 거라고.


“허허. 넌 그리 생각하느냐.”


영감님은 그리 웃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혹시 영감님은 그런 마법을 손에 넣고 싶은 건가.

평소엔 오지랖 부리며 남 돕길 좋아하면서, 의외의 야망이네.



* * *



숲길에 수레를 세워두고, 말라버린 계곡을 따라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저 멀리 절벽 아래 무너진 토사들이 쌓여 만들어진 둑이 보였다.


“애송이. 위험하니 뒤로 물러나 있거라.”


영감님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쳤다.

그러자 연못에 돌 던진 마냥 땅 위로 파문이 퍼져나간다.


곧이어.

심상치 않은 땅울림이 찾아오며, 발밑이 흔들린다.


아니, 근처 지반도 불안정할 텐데 왜?


“영감님? 혹시 뭔가 실수한 건···.”

“허허. 애송이. 스승에 대한 믿음을 키워보거라.”


하지만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절벽 쪽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흙과 돌무더기가 쏟아진다.


이 노망난 노친네가!

2차 산사태를 일으켜서 어쩌자고.


그나마 우리 쪽으로 토사가 덮쳐오지는 않아서 다행···.


“옳거니. 제대로 찾아온 듯하구나.”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

절벽에 파묻혀 숨겨져 있던 고대의 유적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1미터 이상의 거석들을 쌓아 올린 거대한 건물.

거석의 단면은 두부를 자른 것처럼 반듯하다.

게다가 사이 사이엔 얇은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 맞춰져 있었다.


“새삼···. 영감님을 따라다니길 잘한 것 같네요”

“녀석. 갑자기 웬 닭살 돋는 소리냐.”


영감님이 다시 한번 지팡이로 지면을 내리치자, 굳게 닫혀있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린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릴 적 즐겼던 게임에서 숨겨진 던전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 다시 떠오른다.


“멍청히 있지만 말고 들어가 보자꾸나, 애송이.”

“예에 예, 영감님.”


그래, 이게 바로 모험이고 낭만이지.

기왕 판타지 세계에 환생했으면, 이런 이벤트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 * *



영감님의 지팡이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며, 캄캄한 유적 내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어둠을 치워도 고요함은 지우지는 못했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없네요.”

“허허. 무슨 고대인의 유령이라도 나와주길 바란 게냐?”

“아뇨. 뭐, 굳이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지만···.”


내부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그래도 역시 관광처럼 둘러보기만 하는 건 좀 지루하달까.

하다못해 퍼즐 기믹 같은 거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기왕이면 목숨을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걸로.


“어라? 여기 혹시···.”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음엔 절벽을 파며 만든 건축물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예를 들어 벽에는 창문이 왜 있나 싶었는데···.


“이 유적. 그 위를 흙과 바위로 덮어서 절벽을···. 아니 산을 만든 겁니까?”

“아마도 그럴 게다.”

“고대인들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글쎄다. 이 시대에 관해 남아있는 문헌이 없으니, 난들 알겠느냐.”


영감님이 강대한 마법 어쩌고 얘기하는 이유가 조금 이해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생각 이상으로 훨씬 거대한 규모의 건물도 놀랍지만.

그 위를 덮어 산을 만들었단 사실은 더욱 경악스럽다.


아니면 단순히,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만들어 낸 자연현상인 걸까.


“흠···. 저쪽인가 보구나.”


영감님은 갈림길 앞에서 전통적인 길잡이 점술, 지팡이 쓰러트리기를 시전했다.


“영감님. 그거 마법 맞죠?”

네 스승이 그리도 못 미덥더냐? 잔말 말고 따라오거라.”


이후로 몇 개의 층계를 올랐다가, 도로 내려가기도 하고, 비슷해 보이는 복도를 서너 번 지나치는 등.

영감님의 길잡이 점술이 슬슬 의심되려 할 때쯤.

뭔가 중요해 보이는 방 앞에 도착했다.


참고로 그곳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어찌 아냐면···.


“영감님? 뭘 그리 뜸 들입니까? 제가 문 열까요?”


오늘따라 영감님답지 않은 망설임이 자주 보인다.

마치 미래를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결정하고 행동하던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


“음, 아니다. 가자꾸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기둥이 촘촘히 세워진 넓은 공간이 나왔다.


잘 보면 기둥의 양식이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다.

마치 기둥을 전리품처럼 전시해 놓은 듯한 장소랄까.


하지만 영감님은 기둥들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안으로 쭉 들어갔다.


“역시 이곳에도···.”


기둥의 방 맨 안쪽에는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영감님은 그것을 보자마자, 깃펜과 수첩을 꺼내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비석에 적힌 글···.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애송아? 방금 뭐라고 한 게냐?”

“아, 그게 말이죠. 왠지 여기 적힌 걸 읽을 수 있는 것 같달까요?”

“허허. 네 놈이 농담에 재능 없는 건 알고 있다만. 듣던 중 가장 재미없는 농담이로구나.”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적혀있는 글자는 바로 한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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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거짓말(4) 24.08.30 6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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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거짓말(2) 24.08.27 104 3 13쪽
5 거짓말(1) 24.08.26 120 3 12쪽
4 졸업(3) 24.08.25 140 3 12쪽
» 졸업(2) +1 24.08.24 152 4 13쪽
2 졸업(1) +1 24.08.23 195 3 13쪽
1 프롤로그 +1 24.08.23 205 4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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