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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상경했더니 뼛속까지 연예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2.20 14:20
최근연재일 :
2024.03.01 16: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78
추천수 :
16
글자수 :
54,337

작성
24.02.28 16:35
조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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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천재 아니야?

DUMMY

며칠 뒤 첫 촬영에 들어갔다.

내가 찍을 장면은 오후에나 시작되지만 일찌감치 분장을 하고 촬영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본 순서대로 촬영하는게 아니구나.'


나는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을 보며 카메라의 위치들과 동선들을 체크했다. 역시 베테랑 답게 두 주인공들은 열연을 펼쳤다. 중간중간 대사를 까먹어 NG가 나기도 했지만 첫 촬영임에도 불구하고 큰 이벤트 없이 지나갔다. 잠시 후 내 차례가 오자 스텝이 나를 찾았다. 카메라 감독님들 뒤에 서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조용히 손을 들자 감독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왜 거기 서있어. 스텝처럼."

"아 첫 촬영이라 일찍 왔습니다."

"자세 좋고!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감독은 나를 불러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악인이지만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야 하는 최장수 역에 대한 이해도를 부탁하는 듯 했다.


"근데 호영씨 얼굴이 너무 선하게 생겨서.. 일단 한 번 찍어보고 안되면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걸로 합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첫 촬영에 들어갔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첫 대사를 시작했다. 선생님께 배운 시선 처리, 카메라의 각도까지 신경쓰... 고 싶었지만 긴장한 탓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맞은 편에 서 있는 민후씨는 긴장하지 말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액션! 이라는 감독님의 소리와 동시에 나는 무언가에 빙의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최장수가 몸에 들어온 듯한?

대사 한 번 틀리지 않고 연기를 이어나갔다. 컷 소리가 들려야하는데도 들리지 않아 멈추지 않고 대사를 쳤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민후씨였다.


"컷! 좋아! 아니 호영씨. 뭐야 진짜. 천재야? 내가 원하던 모습 그대로 연기하네."

"카메라 빨도 좋은데요? 눈이 선해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선한 눈인데도 소름 돋았어요."


감독님부터 카메라 감독님까지 여기저기서 칭찬이 쏟아졌다.


"감독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했는걸요."

"연기 천재를 왜 이제야 데려온거야. 그냥 최장수 그 자체네."

"박이사가 데려왔다던데? 여전하네 사람 보는 눈."


너무 극한 칭찬에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이자 감독님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에 나는 소품위에 앉아 대본을 다시 훑어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음료수 하나를 들고 민후씨가 다가왔다. 민후씨는 대사가 틀려 흐름을 끊었다며 미안해했다.


"아휴 아닙니다. 저도 컷을 안하시길래 흔들리던 참이었어요."

"이러다 주인공 자리 뺏기는거 아닌가 몰라요."


민후씨는 소문과 다르게 서글서글 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니까. 이 사람과 괜히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그런 말을.. 민후씨 나오신 영화나 드라마 보면서 공부 많이 했습니다. 배울점이 너무 많은 배우세요."


역시 이것이 사회생활이지. 연기를 해서 그런가 상대방을 혹하게 하는 칭찬이 입에서 술술 나왔다. 입에 발린 거짓 칭찬은 아니었지만 나도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제가 뭐 대단한 연기를 했다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호영씨 나이가 스무살이죠?"

"네."

"저는 스물 다섯 이예요. 제가 형인데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원래 같으면 손자뻘이었기에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어쨌든 스무살이 됐을때 넘어왔으니 형은 형이지.


"그럼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응. 찍는 동안 잘 지내보자."

"네. 저 그런데 이 장면에서요.."


나는 대본을 꺼내 민후에게 감정선과 동선 등에 대해 물었고 민후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다시 이어진 촬영에서는 나와 민후의 호흡이 잘 맞아 아까보다 더 좋은 장면이 연출됐다. 마지막 컷 소리에 첫 촬영이 끝났다.

민후와 번호도 교환하고 나는 차로 돌아왔다. 어차피 첫 장면만 끝이지 촬영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짧은 한 장면 촬영임에도 온 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촬영이라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생했어요. 민후씨랑은 많이 친해지셨네요?"

"네. 제가 민호, 민후 요런 이름 가진 사람들이랑 잘 맞나봐요."

"하하. 그래요? 이따 이사님이 촬영장으로 잠시 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며칠 못 봬었네요."

"워낙 공사가 다망한 분이시라. 일단 조금 쉬세요. 이따 다시 촬영할 때 말씀드릴게요."

"저기 민호씨."

"네?"

"그냥 호영아, 라고 부르세요. 형이잖아요."


민후와 이미 호형호제 하기로 했는데 먼저 만난 민호와는 존대하고 지내는게 괜히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할배..."

"헐."


민호는 나를 놀렸지만 그의 배려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쪽에서 딱 스무살일 때 넘어왔는걸요. 더 산 것도 아니고. 시간만 바뀌었을 뿐인데."

"알겠어요. 편하게 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민호는 필요한 것들을 사오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잠시 잠을 청하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대본을 다시 보려던 차에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 첫 촬영 어땠노?"

- 칭찬 받았다 행님. 잘한다고. 근데 김동훈 선생님 하고는 통화 잘 했나?

- 선생님은 개뿔. 여전하더라. 티비에서나 가오잡지 여전히 개구지고 웃기더라. 다음주에 포항 내려오기로 했다. 니 덕에 옛 지기 찾았다.

- 어디 펜션에?

- 어. 하루 자고 간다더라. 니도 오던지.

- 괜히 말 꼬이면 피곤해진다. 나는 다다음주에 갈께. 그때 촬영 없거든.

- 오야. 밥 잘 챙겨먹고. 아 맞다, 우리 아들 찾아 갔더나.


나는 형에게 조카가 왔다는 걸 말해주었다. 믿기 힘들어 하면서도 나를 삼촌으로 대해 주었다고.


- 금마가 그래도 한 번 충성하면 의리도 있고 글타. 내 아들이지만 좋은 놈이다. 필요하거든 연락해라. 여 펜션에서 맨날 죽치고 있는 것보다 니 따라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고.

- 매니저 해보고 싶다나?

- 딱 그런건 아닌데, 니가 삼촌이라고 지 머리에 딱 입력된 후로는 사기 당하는건 아닌지, 어디서 해코지 당하는 건 아닌지 맨날 걱정이다.

- 맞나. 알겠다. 혹시 일 있으면 연락하께.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형과의 통화가 끝났다. 아직도 나를 삼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줄 알았던 조카가 내 걱정을 하고 있다니 괜히 코끝이 찡했다.

다시 대본에 몰두하기 위해 코를 슥슥 비비고 펼치려는 찰나 누군가가 창문 유리창을 두드렸다. 창문을 조금 내리자 민후가 앞에 서 있었다.

민후는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찾아와 갑자기 난데없이 게임을 하자고 졸라댔다.


"게.. 게임?"

"여기 두 사람하고 나는 같은 소속사야. 한 번씩 촬영이 겹치면 내기 게임 하거든. 같이 할래?"

"무슨 내기인데요?"

"밥차 쏘기 내기."


밥차 쏘기?


"밥차가 뭐예요?"


민후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밥차 몰라?"

"제가 이번 영화가 첫 영화라.. 밥을 차에 실어 오는 건가요?"

"뭐 비슷해. 이동식 식당? 같은거."

"그거 엄청 비싼거 아니예요?"

"그.. 그치?"


이제 영화를 갓 시작한 나는 밥차를 살 돈이 없는데... 난처한 표정으로 돈이 얼마나 남았나 계산하는 나를 보고는 민후는 촬영장이 떠나가라 웃었다.


"이기면 되잖아!"

"지면 어째요."


그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밥차 콜! 호영아! 가자가자!"


뒤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민호가 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망아지 같았다.


"콜이라고 하네 매니저가. 매니저까지 같이 하면 되겠다. 우리 매니저랑 2 대 2!"


헉헉거리고 뛰어온 민호는 사온 물건을 차 안에 던지다 싶이 넣어 놓고는 내 옆에 섰다. 나는 민후에게 민호를 소개했다.


"아. 호영이 h&g구나. 인사해 여기는 우리 매니저 호동이. 민호씨랑 동갑이네."

"오 이 조합 좋아. 반갑습니다. 그럼 어떤 내기로?"

"시간만 많으면 pc 게임으로 하겠는데.. 힘으로 밀기?"

"아 그건 너무하잖아요! 호동씨 덩치가.."


민후의 매니저인 호동은 덩치가 아주 컸다. 나와 민호를 합친 것 만큼.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시장에 가면이라는 게임을 하자고 호동이 제안했다. 시장 가서 뭘 사오는 건지, 시장에 가자는 건지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민호가 게임 규칙을 설명해줬다.


"저 그런데.. 남자 넷이서 그걸 하자구요?"

"남자 넷이 하면 안돼?"


민후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었다. 이 사람.. 진짜 볼수록 이상하다. 탑스타면 콧대도 높고 일명 서민들이 하는 게임은 절대 안할텐데 오히려 두 팔을 걷고는 의지에 활활 타고 있었다. 나는 의욕 충만한 두 민민 형님들의 등살에 어쩔 수 없이 게임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다.

민호에게 대충 설명을 듣긴 했지만 두 번 정도는 연습 게임을 한 후 정 게임으로 들어갔다. 처음 한 바퀴때는 재미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게임에 진심인 남자들 사이에 있으니 점점 승부욕이 발동했다.

우리는 다섯바퀴가 돌 때까지 틀리지 않고 이어 나갔다. 탈락자가 없자 시장에서 파는 물건도 점점 특이해졌다.


"시장에 가면 생선도 있고, 파리도 있고.... 있고, 플레이스테이션 파이브도 있고."


그건 또 뭐야. 모르는 단어가 나와 당황하다 보니 앞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호동의 차례가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시장에서 판 물건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플..플.. 아우."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호동과 민후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나라라도 구한 줄 알겠다.

시무룩해 있는 나를 보자 민호는 꼭 복수하겠다며 두 눈이 더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감독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야!! 제발 조용히 좀 해! 뭐하는거야 다 큰 놈들이!"


촬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했는데도 우리 소리가 크게 들렸나보다. 감독님이 메가폰을 들고 쫓아오는 시늉을 하자 우리는 차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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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차 오디션 24.02.24 26 1 12쪽
5 새로운 신분으로 +1 24.02.23 30 2 11쪽
4 행님. 지 맞습니더. 24.02.22 28 2 11쪽
3 내 원래 나이는 말입니다. 24.02.21 25 2 11쪽
2 40년이나 지났다고? 24.02.20 30 2 11쪽
1 가난한 엿장수의 아들 +2 24.02.20 4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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