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요한 새벽너울

상경했더니 뼛속까지 연예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2.20 14:20
최근연재일 :
2024.03.01 16: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77
추천수 :
16
글자수 :
54,337

작성
24.02.27 16:35
조회
20
추천
1
글자
11쪽

피터지는 기싸움

DUMMY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나로 인한 불화같아 좌불안석이 되었다. 여주인공은 결국 리딩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작가도 마찬가지.


"죄송합니다 괜히 저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호영씨가 무슨 잘못이라고. 두 사람 기 싸움이니 걱정 말아요. 선생님들 죄송합니다."


감독은 중년 배우들에게 죄송하다며 다음 리딩 날짜를 잡겠다고 했다. 그때 김동훈 선생님은 그냥 이어가보자고 제안했다.


"작가님이 안계신데 해도 될까요?"

"지금 영상을 찍어 작가님에게 나중에 따로 보여주세요. 여기 배우들 다 바쁜 사람들입니다. 물론 리딩 연습은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지만 첫 스타트부터 이런식이면 곤란하죠."

"알겠습니다. 호영씨 아까 대사부터 다시 시작해요."


자리를 일어나 나가려던 배우들은 김선생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 후부터는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만큼 긴장했고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길고 긴 리딩 연습이 끝났다.


"고생했어요. 이런 일 비일비재해. 괜한 자존심 싸움이지. 기 싸움이고. 아무 필요 없는데 말이야. 어차피 하차할 생각도 없고 배우를 바꿀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첫 리딩 연습이었을텐데 고생많았어요."


김선생님은 내게로 와 악수를 청했다. 주인공 민후씨도 잘 부탁한다며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말고는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손에 어찌나 땀이 났던지 대본 한 귀퉁이가 젖어 있었다. 모두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마지막으로 리딩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민호를 보자마자 쓰러질 뻔했다. 어지러움에 휘청거리자 민호가 나를 잡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일단 숙소로 가서 쉬고 싶어요."

"얼른 가요."


민호를 나를 부축해 차에 앉혀두고는 급히 약국으로 뛰어갔다.


"이거 좀 마셔요. 긴장하고 어지러움증 호소한다니까 약사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혹시나 더 어지러우시면 말씀하세요 바로 병원가게."

"네. 어렵네요 배우."

"리딩실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지민씨도 뛰쳐나오고, 작가님도 화가 잔뜩 나셔서 나가시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기싸움 하셨구나."

"원래 그래요?"

"원래 그래요. 보통 감독이랑 배우가 하는 경우도 있고, 작가와 배우, 배우와 배우, 배우와 여러 스텝들. 그 안에서 기싸움이 일어나는건 보통이죠."

"아휴. 연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데... 어쨌든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아니요. 호영씨가 아니었어도 어디선가는 트집을 잡았을거예요. 근데 아마 다음 리딩때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올거예요. 어느 쪽에서든 먼저 풀게 되어 있어요. 아마 이번엔 지민씨 쪽이지 않을까 싶어요."

"왜요?"

"사실 지민씨는 2순위였거든요. 1순위였던 다른 배우가 스케줄 상 거절했고, 3순위도 물로 있구요."

"아.."

"아마 2순위로 뽑힌 것만으로도 좋았을텐데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면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니까. 대충 이해되죠?"


딱히 그들의 세계가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김동훈 선생님과는 어땠어요?"

"정말 좋으신 분 같던데요. 응원도 해주시고."

"응원을요? 그럴분은 아니신데. 진짜 좋게 보셨나봐요."


칭찬에는 인색하신 분이라 했지만 오늘 나는 그 분덕에 큰 산을 넘을 수 있었다고 했다.


"다행이네요. 이민후씨는 어땠어요? 그 분은 좋다는 분 반, 싫다는 분 반이라."

"첫 인상은 좋았어요. 응원도 해주셨고. 딱히 거짓 응원이라는 생각도 안들었구요."

"작가님과 지민씨 기싸움만 아니면 꽤 괜찮은 출발이네요. 아, 일단 눈 좀 감고 쉬세요. 도착하면 말씀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전쟁터에 나갔다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다음 리딩때는 절대 대사를 바꾸지 말아야지. 근데 그게 또 내맘대로 안되니...

머리가 복잡했다.

잠시 후 숙소에 도착한 후 민호는 회사로 돌아갔다. 필요하면 부르라는 말을 남기고. 숙소에 누워 살짝 잠이 드려는 찰나 초인종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민호씨가 다시 왔나?'


인터폰 화면에 조카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문을 열어주고 조카를 맞았다.


"어서와. 어쩐 일이야."


조카의 얼굴은 어쩐지 어두웠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소파로 안내했다.


"무슨 일이야. 혹시 형님한테 무슨 일 있어?"


조카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진짜 우리 아버지 숨겨둔 자식 아니예요? 진짜 동생이예요? 그것도 40년 시간을 지나온?"

"아직도 못믿어? 결과가 나오면 믿을거라고 했잖아. 결과 나오면 다시 이야기해."

"결과 나왔어요. 그래서.. 혹시나 진짜 숨겨둔 자식이 아닐까.."


선한 눈매가 아래로 더 쳐졌다.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이상한 듯 쳐다보는 조카에게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형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의 이야기. 조카는 잠자코 듣고 있다 조금씩 믿음이 가는지 내려간 눈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그러게 말이야. 만약 내가 그 시절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니가 태어났다면 정말 이뻐했을거야. 삼촌으로써 못해준거 앞으로 다 해줄게."

"아니예요. 아직도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삼촌.. 말 믿을게요."

"고맙다."

"혹시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어찌나 순한지. 진짜 원래 있던 곳이었다면 물고 빨고 했을 것 같은 조카였다.

조카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아무래도 리딩 연습 때 기가 너무 빨린 듯 했다. 여자들의 불꽃튀는 싸움인지, 작가와 배우의 자존심 싸움인지 두 번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만 또 겪어야겠지. 다음 리딩 연습날이 두려웠다.


이틀 후, 다시 리딩실로 향했다. 오늘은 미리 청심환을 먹고 하나 더 챙겨가고 있었다.


"혹시 다른 분들도 필요할까 싶어서 넉넉히 주머니에 넣었어."

"오늘은 괜찮을걸요?"

"진짜 그럴까요? 후아."


민호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떨리는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오늘은 절대 대사 안바꾸고, 실수 안하고, 인사 잘하고."


문 앞에서 한 손을 들고 혼잣말로 외치고 있으니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김동훈 선생님이 서 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뭘 그렇게 혼자 한 손을 들고?"


선생님은 내 행동을 따라하며 웃었다.


"저 때문에 지난 번 싸움이 난거 같아서요."

"아니야. 걱정 말게. 그런데 자네 전에는 어디서 살았나?"

"경주에서 살았습니다."

"경주? 어느 동네?"


경주라는 말에 선생님의 눈이 반짝 거렸다.


"경주역 근처에 살았습니다."

"허허 이거 참. 나도 그 근처에서 자랐는데. 어쩐지 정감이 가더라니."


선생님도 경주 출신이셨어? 아 그러고 보니 낯이 익는 것도 같고.. 만약 내가 그대로 살았으면 나랑 비슷하거나 형이랑 비슷한 연배실텐데..


"그 경주역 근처에 떡집 아시나? 아.. 아직 어려서 모르려나."

"훈이 방앗간 말씀이십니까?"

"허허. 자네가 훈이 방앗간을 어째 아는가?"


헐! 기억이 났다. 훈이 방앗간 셋째 아들!! 김동훈.

아버지랑 엿 팔러 나가면 가끔 아주머니가 팔고 남은 떡을 조금씩 주시곤 했다. 따끈한 가래떡도 두어번 받아 먹은 적도 있었다. 배고플 때 아주머니는 내게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 없었다.


"그 아주머니가!"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아 그러니까 저희 아버지.. 제가 많이 늦둥이입니다.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형님하고요."

"형님 성함이..?"


그 때 작가와 감독이 리딩실 앞에 도착했다.


"우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합시다. 여기서 동향 사람을 만났네. 하하."

"안녕하세요. 호영씨랑 동향 분이세요?"

"그렇네요. 얼른 들어갑시다."


형님에게 동훈이 형을 만났다고 하면 기뻐할 것 같았다. 여기서 형이라고 할 수 없지만. 마치고 바로 전화해야지.


리딩실로 들어가서 분위기부터 살폈다. 그런데 배우들 앞에 컵이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모두 착석하자 지민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번엔 죄송했습니다. 제가 그 날 컨디션이 안좋아 실수 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작가님 감독님께 죄송합니다."

"됐어요 지민씨. 우리 잘해봅시다."


이미 두 사람은 이야기가 끝났는지 작가님도 지민씨도 웃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얼음장 같은 분위기는 안생기겠구나.


"호영씨에게도 죄송해요. 사실 그날 연기 너무 좋았어요."


지민씨는 내게 생긋 웃어보였다. 칭찬을 받으니 얼굴이 시뻘게 지는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어찌됐던 나는 이 곳 막내니까.


리딩은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쭉 이어나갔다. 모든 대사들이 끝나고 나서 서로 피드백을 해주며 회의를 이어나갔다. 아직 본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나에 대해 꽤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김선생님부터 두 주인공까지 내게 거는 기대가 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설사 빈말이라고 해도 나는 행복했다.

리딩을 마친 후 나는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혹시 훈이 방앗간 기억나나?

-기억 나지. 거 셋째 아들이 형 친구 였잖아.

-맞제! 동훈이 형!

-그래 가 유명한 배우잖아. 와.

-이번에 내랑 같이 한다 연기.

-진짜가? 니 내 동생이라 했나?

-이름은 말 안했는데 해도 되나?

-해도 된다. 가도 내 집나갈 때 나가서 배우 된거라 상황 자세히 모른다. 내가 혹시 만나면 둘러대 줄테니까 걱정 말고. 이래저래 아는 사람 있으면 니도 편할거 아이가.

-알겠다. 형 언제 올라오노.


형은 다음 주 첫 촬영 전에 한 번 올라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김선생님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형님 성함이 어떻게 되는가?"

"아 최호민 입니다. 방금 형님이랑 통화했더니 어릴때 지기시라고."

"호민이! 진짜 니가 호민이 동생이가?"


김 선생님은 갑자기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까탈스럽지만 젠틀해 보이던 사람이 동네 푸근한 삼촌 처럼 느껴졌다.


"근데 호민이 동생 우리랑 나이 차이 많이 안났는데?"

"늦둥이 입니다. 선생님도 17살에 집을..."

"쉿쉿."


김선생님은 내 입을 막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집을 나간건 비밀인가보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형의 번호를 알려줬다. 그러자 김선생님은 그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걸었고 나중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는 리딩실을 떠났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으니 덜 떨리네. 의심은 안해야 될텐데."


나도 기다리고 있는 민호에게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상경했더니 뼛속까지 연예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씹어먹네 씹어먹어. 24.03.01 18 1 11쪽
10 멜로 눈알을 가져라. 24.02.29 14 1 11쪽
9 천재 아니야? 24.02.28 15 1 10쪽
» 피터지는 기싸움 24.02.27 21 1 11쪽
7 떨리는 첫 리딩연습 24.02.26 23 1 11쪽
6 2차 오디션 24.02.24 26 1 12쪽
5 새로운 신분으로 +1 24.02.23 30 2 11쪽
4 행님. 지 맞습니더. 24.02.22 28 2 11쪽
3 내 원래 나이는 말입니다. 24.02.21 25 2 11쪽
2 40년이나 지났다고? 24.02.20 30 2 11쪽
1 가난한 엿장수의 아들 +2 24.02.20 48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