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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상경했더니 뼛속까지 연예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2.20 14:20
최근연재일 :
2024.03.01 16: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72
추천수 :
16
글자수 :
54,337

작성
24.02.22 19:12
조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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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행님. 지 맞습니더.

DUMMY

대충 점심을 먹은 나와 민호는 프로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갔다. 사진 촬영이 처음이라 작가가 요구하는 포즈를 쉽게 잡지 못해 혼이 나기도 하고 주눅들어 손이 벌벌 떨렸다. 그런 나를 민호가 응원해 주었지만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장장 6시간이 걸친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아린의 사무실로 향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힘드셨죠?"

"아휴 사람 할 짓이 못되네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거예요. 저와 이사 몇 분이 상의를 해봤는데... 다들 호영씨 말을 믿지 않더군요. 저 역시 아직 긴가민가 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호영씨를 놓치면 큰일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저와 계약하시죠."

"아니 저는 그냥 몸으로 움직이는 일을 주시면 되는데..."

"이것도 몸으로 움직이는 거죠. 몇가지 생각해봤는데요. 우선은 호영씨가 너무 가난하게 태어나서 출생신고도 못했다, 그래서 늦게 출생신고를 해서 호적을 찾는다, 주민번호를 새로 만든 후 활동을 이어간다. 여기까지가 제가 세워둔 계획이고 그 후에 차차 연기 배우면서 단역부터 활동해 봐요."


연기에 연자도 모르는데 무슨 연기자를 하라는 건지. 아무리 배운다 하더라도 재능이라는게 있어야 하는데 박아린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나는 못한다고 얘기를 했지만 자신은 보석을 알아본다며 자꾸 이상한 말만 하는 아린과 더이상의 대화는 불가했다.


"자 계약서. 계약금은 호영씨 호적 찾고 은행 계좌 만드는데로 입금 해드릴게요. 혹시 지금 사용하실 돈 없으시면 민호에게로 어느 정도 먼저 입금해드릴 수 있어요."

"쓸 돈은 있어유. 그런데 돈의 모양이 좀 바뀌어서 낼때마다 이상하게 보던데."

"아 그래요? 그럼 혹시 가지고 계신 돈이 얼마 정도 돼요?"


나는 가방을 열어 노란 봉투 안의 돈 300만원과 만원짜리 지폐 5장, 천원짜리 지폐 3장을 내놓았다. 민호는 신기한 듯이 돈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와 지폐 모양 바뀐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도 기억이 가물가물. 이건 제가 바꿔 올게요."

"어디서 바꿔요?"

"은.. 행이죠?"


정말 모르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민호의 눈빛에 민망해져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돈 뭉치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혹시나 도망가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에 문을 계속 쳐다보았다.


"안훔쳐가요. 하하하. 걱정마시고 계약서 한 번 자세히 보세요."


계약서를 대충 읽어보자 계약 기간은 7년 등 여러가지 조항들이 적혀 있었다.


"치,,,칠년이요? 7년동안이나 못하는 연기를 해야된다구요?"

"7년이면 짧죠. 나중에 대배우 되시면 잊지 마시고 꼭 재계약 해주세요."

"쫓아 내지나 마이소. 그럼 여다 지장 찍으까요?"


싸인이면 된다며 아린은 내게 볼펜을 건네 주었다. 갑작스러운 시간 이동에, 배우 계약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아린은 건물 뒷쪽으로 가면 회사 소속의 숙소가 있으니 그곳을 쓰라고 알려 주었다. 내일부터 당장 배우 수업을 시작한다고.


"저기 그런데요. 혹시 형님 성함이나 생년월일은 알고 계세요?"

"당연히 알죠.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살아계시려나. 우리 형 이름이...


나는 형의 이름과 생년월일, 생활하던 곳을 알려주었다. 아린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아린은 며칠 후면 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갑자기 시간 여행을 왔다고 나타난 동생을 형은 믿어 줄 것인가. 지금의 얼굴이 그때의 얼굴과 같으니 믿을 것도 같았다. 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민호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민호는 현금 30만월을 주고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


"요즘은 현금을 안받는 곳이 있어서 제가 제 이름으로 통장 만들어서 넣어뒀어요. 나중에 호영씨 통장 만들면 그때 제가 이체해 드릴게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저때문에 괜히 불편하게."

"별말씀을. 호영씨는 선택? 받은 사람이니까. 사실 배우가 되기 위해서 완전 밑바닥 극단부터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빛을 못보는 분들이 훨씬 많고. 물론 우리 회사는 그런 분들을 위해 많이 후원하고 있지만 사실상 타고나지 않으면 힘들기도 하죠. 그런데 호영씨는 우리 신의 손 박아린 이사님께 선택 받으셨으니 당연히 뭐든 도와드려야죠."


나는 손바닥을 살짝 펴서 민호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여요?"

"다 들립니다. 하하. 이 바닥에서는 제가 좀 유능해요. 자만심이 아니라 그정도로 열심히 뛰었으니 자신감이라고 해두죠. 아무튼 형님을 찾으면 호적을 새로 찾는 건 더 빠를 거 같아요. 그럼 오늘은 우선 연습실이랑 둘러보시고 숙소도 가서 보시고. 그리고 민호랑 필요한 생필품들 사세요. 민호야 법카로 해."

"예썰!"


민호는 힘차게 대답했다.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와 민호는 사무실을 나와 숙소를 둘러보았다. 어제 묵었던 호텔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 깨끗한 투룸 정도 되어보였다. 원래 같으면 퀘퀘한 여인숙에서 묵었어야 하는데 이 정도면 호강도 이런 호강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구들과 가전은 이미 구비가 되어 있어 속옷과 세면도구 등을 사러 회사 근처 대형 마트에 갔다. 처음 보는 대형 마트에 눈이 휘둥그레해진 나를 보더니 민호는 차근차근 현대 사회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세상이 참 사람 살기 좋아졌구만."

"그렇긴 한데 예전같은 정은 없죠. 옆집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르니까."

"아 그래요?"

"네. 따뜻함은 없어졌어요. 그래서 저는 아날로그 시대가 그리워요."

"아.. 아 뭐요?"


민호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큰 카트를 끌며 필요한 것들을 담았다. 너무 많아 다 쓸까 싶을 정도로 담고 나서야 계산대로 향했다.


이틀 뒤, 아린의 전화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린은 형을 찾았다고 했다.


"최호민씨는 현재 포항에서 살고 계신다고 해요. 동생 얘기를 하니까 실종되서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냐고 우시던데. 흠. 지금 모습으로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형님이 울었어요? 가야죠. 살아 계시면 가야죠."

"형님은 생각보다 잘 살고 계시더라구요. 알아보니 대기업에 들어가셔서 일하시다 지금은 퇴직하시고 작은 편의점을 운영중이시라고 해요."

"지금 바로 가봐도 될까요."


아린은 민호와 함께 다녀 오라며 차를 내어 주었다.


"비행기 타고 가세요. 포항에 공항 있는데 그 근처에서 편의점을 하고 계신다고 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숙소로 가서 가방을 챙겼다. 그래도 며칠은 형님 옆에 있다 오고 싶었다. 잠시 후 민호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고향에서 형이 먼저 떠난 후 한 번도 못봤으니 형은 나를 몇 십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셈이었다. 당연히 나를 알아볼 것이라 생각했지만 또 이 모든 상황을 이해시키려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형만 생각 하기로 했다. 나를 그리워한, 내가 그리워한 형님을 보는 것만 생각하기로.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포항 공항에 도착했다. 대기 중이던 택시를 잡아 타고 형이 운영하고 있다는 편의점 주소로 향했다. 요즘 세상에는 기계에 주소를 입력하니 바로 길이 나오다니 이 와중에도 신기한 광경에 놀라고 말았다. 10분 정도 지나 택시는 한 편의점 앞에 멈추었다. 편의점은 어느 펜션 앞에 자리잡고 있었다. 펜션 뒤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조심히 편의점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하고 나를 바라보는 형의 눈빛에는 놀란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민호는 나와 형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무슨 일로."


물건을 고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형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형님."


나는 조용히 형님을 불렀다.


"네? 지를 아는교."

"형님. 지 호영입니더."


호영이라는 이름에 눈을 크게 뜨고 놀라던 형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놈이 사람 놀리나! 니 누고! 니 누군데 남의 동생이름 함부로 말하노!"


그 때 민호가 상황을 정리했다.


"최호민씨. 안녕하세요. 어제 h&g 라는 곳에서 전화 받으셨죠?"


민호는 명함을 내밀었다. 호민은 잠시 명함에 눈길을 주고는 급히 거두었다.


"근데요. 아니 동생 찾았다카드만 아들뻘인 새파랗게 젊은 놈 데려와서 뭐합니까 지금. 가족 가지고 놀립니까?"


형은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화가 날 때마다 나타나는 특유의 미간 주름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형 앞으로 다가갔다.


"놀라셨지예. 놀라지 마시고 제 이야기 좀 들어보소. 형님 우리 아부지 이름이 최을 자 수 자 아입니꺼. 어무이는 권순 자 자자 시고예. 그리고 우리 밑에 동생 하나 더 있었지예. 호식이라고. 4살까지 말을 몬해가 우리 다 벙어린줄 알았다 아입니꺼. 호식이는 잘 있습니꺼."


형은 호식이가 말을 못했다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형님 울산으로 떠난다 하시고 우리 몇년을 못봤잖아예. 그때 형님 만나러 가려고 울산가는 기차를 탔다가..."


나는 천천히 형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믿지 않는 듯 하면서도 내 말을 끊지 않고 듣고 있는 걸 보니 조금씩 믿음이 생기는건가 싶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마소. 우리 동생이 지금이면 환갑이 넘었을 나이인데 그쪽 몇살인교? 스무살? 우리 아들보다 어린데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다. 형은 믿지 않고 있었다. 형의 말을 듣자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찾던 형을 만났는데 알아보지도 못한다니. 무슨 이런 곡할 일이 다 있냐고.


"형. 지 얼굴 좀 보소. 화 내지 말고, 믿기지 않겠지만 천천히 나를 함 보라고요."


거의 울듯이 말을 하는 나를 형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형이 본 마지막 모습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어릴때의 얼굴과 형과 닮은 눈썹, 아버지를 닮은 눈매를 형은 꼭 알아볼거라 생각했다.


"이쪽으로 좀 와보소."


형은 내 팔을 당겨 옷 목둘레를 손으로 내렸다. 그리고 왼쪽 어깨 위의 점을 찾았다.


"점 있지예. 형 점볼라고 하는거지예. 지 호영이 맞다니까요. 행님."


형은 점을 확인하자 더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믿고 싶지만 믿기지 않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고. 진짜 호영이가. 이 자슥아. 내가 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나. 내 만나러 떠났다는 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내가 얼마나 죄책감, 자책감에 살았는지 아나."


형은 나를 믿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내 얼굴에서, 내 말에서, 내 숨소리에서 형은 나를 느끼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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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떨리는 첫 리딩연습 24.02.26 23 1 11쪽
6 2차 오디션 24.02.24 25 1 12쪽
5 새로운 신분으로 +1 24.02.23 30 2 11쪽
» 행님. 지 맞습니더. 24.02.22 28 2 11쪽
3 내 원래 나이는 말입니다. 24.02.21 25 2 11쪽
2 40년이나 지났다고? 24.02.20 30 2 11쪽
1 가난한 엿장수의 아들 +2 24.02.20 4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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