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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상경했더니 뼛속까지 연예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2.20 14:20
최근연재일 :
2024.03.01 16: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70
추천수 :
16
글자수 :
54,337

작성
24.02.20 14:20
조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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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가난한 엿장수의 아들

DUMMY

꼬르륵


수업 중 배에서 큰 소리가 났다. 혹시나 옆에 짝궁이 들었을까봐 얼굴이 벌개졌다. 점심 때 밥을 먹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웠더니 배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다.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줄 여유가 없었다. 아침 일찍 아버지는 장터로, 어머니는 머리에 짐을 이고 장사를 하러 나갔다. 점심을 먹으러 집까지 뛰어갔다 오기에는 거리가 꽤 멀었다. 내겐 익숙한 일이었기에 이번 시간만 참자는 마음으로 다시 책에 집중했다. 집에 가도 어머니가 밥을 해주실 때까지 딱히 먹을 건 없지만 남은 누룽지라도 있는지 가마솥을 뒤질 생각이었다.


"오늘도 모두 고생했어요. 참, 호영아. 오늘 남아서 선생님 좀 도와줄래?"


나는 선생님 말이 반가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도와달라고 하는 날에는 빵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그 날 수업 시간에 본 시험지를 채점하면 선생님은 꼭 빵과 우유를 주었다. 한 날은 먹지 않고 집에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는 꼭 세 개씩 챙겨주었다. 집에 가져가면 형이나 동생에게 빼앗길 걸 아시는 듯 했다.

아이들이 모두 가고 나는 채점을 시작했다. 그래도 수학은 곧 잘 했기 때문에 내 시험지는 늘 100점 이었다. 선생님은 잠시만 기다리라를 말을 한 후 잠시 뒤 빵 세개와 우유 세개를 가져와 내 앞에 놓아 주었다. 채점 도와 줘서 고맙다고. 내일도 부탁한다고. 하나를 얼른 먹고 나머지 우유 두개와 빵 두개는 가방에 넣었다.

'아 내일도 빵 먹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채점을 위해 나를 남긴게 아니라 배고픈 제자를 위해 제자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채점을 마친 나는 아버지가 일하시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 마을에는 잘 오지 않으시지만 오늘은 우리 마을로 온다고 했기에 빨리 갈 수 있었다.

뭐가 잘리기라도 할까 싶은 큰 가위는 생김새와 다르게 신명나게 박자를 타며 움직인다. 아이들은 부모 몰래 찌그러진 냄비등을 가져와 엿장수에게 건넨다. 선한 웃음을 짓는 엿장수는 엄마에게 허락 받고 오라며 아이들을 돌려 보낸다. 그 때 엄마 손을 붙잡고 오는 민수는 냄비를 건네고 엿 한움쿰을 받아간다. 그 모습이 부러운 듯 아이들은 민수 뒤를 졸졸 딸라가지만 민수는 엿을 줄 생각이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작년까지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러워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부끄럽지 않았다. 꼬질꼬질한 차림에 까까머리를 한 내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작은 주먹밥을 줄 때도 있고 개떡을 하나씩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가위 장단이 좋았다. 혼자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아버지 따라 노래 부르기도 했다. 아버지는 손에는 가위로, 발로 줄을 차면 등에 있는 북으로 장단을 맞추었다.

가끔 짓궂은 친구들이 엿장수 아들이라고 비웃었지만 속상하지 않았다. 엿장수 아들이 맞는 걸. 다만 나는 아버지가 좋았지만 아버지처럼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밥 한끼도 겨우 먹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다.


"호영아 인자 집에 가자."


아버지는 해가 지고 있다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집 근처에 가자 밥 냄새가 났다.


"어매!"


나는 뛰어 들어가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는 등에 업혀 있는 호식이만 내게 전해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 장사가 잘 안된 모양이었다. 나는 호식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호식아 형이 오늘 빵 받아왔데이. 이따가 밥 다 잘묵으면 주께."


호식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게 안겼다. 호식이는 4살이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라는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지만 옹알이 수준일 뿐이었다. 어릴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병원을 갈 형편도 안되었기에 그저 말이 터지길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다.

잠시 후 학교 갔다 돌아 온 큰 형이 오자 어머니는 밥상을 차렸다. 보리밥에 김치. 된장국 하나. 소박하지만 나는 집 밥이 가장 맛있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호식이와 놀고 있을 때 건장한 남자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어이 최씨.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지."


한 번씩 찾아오던 남자들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형과 나는 어머니와 호식이를 지키기 위해 두 사람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그 사람들 앞에 섰다. 아버지는 뒷간에서 급히 나와 한 남자의 손을 잡았다.


"이보게. 내가 다음 보름때까지 꼭 줄테니까네 애들 겁주지 말고 돌아가주소."

"맨날 다음, 다음. 아재 너무 한거 아인교. 우리는 뭐 땅파서 장사 합니꺼."


남자는 미간을 한 껏 찌푸렸다. 나와 형은 여차하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짜입니더. 믿어주소. 다음 보름에도 못갚으면 내가 내 손이라도 줄라니께."

"아재 손 갖다가 뭐할라꼬요. 저 큰아들 힘 좋게 생깃네. 다음 보름까지 못 갚으믄 저 큰 아들은 공장으로 일하러 가야됩니데이."

"뭐라노. 자는 안된데이. 공부하는 아입니더. 이라지 말고 진짜 갚을테니까 기다려 주소."

"공부고 나발이고 장남이 빚 갚아야지예. 그래야 장남 아입니꺼. 아무튼 그래 알고 있으소."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는 돌아섰다. 큰 형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제가 그냥 공장 갈께예."

"헛소리 말고 니는 공부나 해라."

"아버지!"


형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말이라면 늘 예예하던 형이었기에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이노무시키가 어디 소리를 지르노! 내가 다 알아서 한다."

"엿장사 해가 언제 다 갚아요 그거를. 내가 몇달만 가면 되는거 아입니꺼."


아버지는 순간 형의 뺨을 때렸다. 나도 놀라고 형도 놀랬다. 어머니는 뛰어 나와 아버지를 말렸지만 형도 아버지도 서로 물러나지 않았다.


"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기껏 공부 시켜놨더니만 헛소리를 하고 있노!"

"공부 안해도 됩니더. 어차피 대학 갈라고 해도 돈 든다 아입니꺼. 와요. 또 빌릴라고요."


아버지는 또 한 번 형을 때리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막아섰다. 형은 그대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버지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한 번도 거스른 적 없는 형의 말에 충격이 심했던 것 같았다. 나는 어찌할 줄 몰라 안전부절 했다. 어머니도 울고 아버지도 우는 모습, 말도 못하는 동생이 우는 모습, 뛰어나가버린 형. 가난이라는게 화목한 가정조차 가질 수 없을 만큼 큰 죄인가 싶었다. 가난하지만 않았다면 형은 돈을 벌 생각을 안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어머니도 울지 않았을 거고 나 역시 이런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을끼다.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돈 벌러 갈야지.'


고작 11살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 엿장수가 될 수도 없었다. 나는 국민학교만 졸업하면 목공장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그 때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어깨가 쳐진 아버지가 안타까우면서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19살이 될 때까지 형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받은 월급이라고 집에 돈을 조금씩 보내주는게 전부였다. 나는 12살이 됐을 때 목공장에서 작은 심부름으로 시작해 사장님의 신임을 얻어 어린 나이에 성인 못지않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월급날이 되면 목공장으로 와서 모두 받아갔고 나는 단 한푼도 만져볼 수 없었다. 사장님이 내가 안쓰러워 조금씩 따로 넣어주셨지만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집에 보탬이 되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일한 월급도 내가 받아보지도 못한다 생각하니 노예같은 이 삶이 지겨워졌다.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목공장 사장님께 그동안 일 한 돈을 미리 받고 인사를 드렸다.


"어디로 갈라꼬. 어디 갈데는 있나.?"


"울산으로 갈라고요. 형이 울산쪽에 있다고 형 친구가 얘기했어가 형도 찾아볼까 하고요. 여기 있다가는 미칠거 같아예."


"안그렇겠나. 12살부터 지금까지 7년이다. 니도 참을 만큼 참았을끼라. 매번 오셔서 월급봉투 받아가뿌니까. 자 이거 받아라."


"이거 뭔데예."


"퇴직금이라 생각해라. 내가 월급봉투는 못지켜줬지만 니 퇴직금은 지켰데이."


사장님은 500만원이나 되는 봉투를 내게 건네 주었다. 나는 그 큰 돈을 어떻게 받냐고 거절했지만 사장님은 끄끝내 내 주머니에 넣어주셨다.


"니가 아무리 똘똘한 놈이라케도 낯선 곳에 가서 자리 잡을라하면 힘들꺼라. 울산에서 혹시 일자리가 없거들랑 여 찾아가봐라. 내 지기가 거 일하고 있다."


사장님은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힌 종이를 전해주었다.


"내가 미리 언질해놨으이 부담없이 찾아가그라."


"진짜 감사합니데이. 사장님 만나서 행복했어예."


"별 소릴 다한다 징그럽그로."


나는 사장님 앞에 큰 절을 했다. 아버지 같은 사람. 나중에 내가 꼭 되고 싶은 사람.

사장님은 어여 가라며 손짓했다. 나는 가방을 메고 목공장을 나왔다.

마지막 기차를 놓칠까 싶어 뛰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나니 알 수 없는 기분에 도착하는 내내 울어버렸다. 형처럼 나도 내 고향, 내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조금 진정이 됐을 때 밖을 바라보자 칠흙같은 어둠뿐이었다. 주위를 보니 마지막 기차여서인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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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차 오디션 24.02.24 25 1 12쪽
5 새로운 신분으로 +1 24.02.23 30 2 11쪽
4 행님. 지 맞습니더. 24.02.22 27 2 11쪽
3 내 원래 나이는 말입니다. 24.02.21 25 2 11쪽
2 40년이나 지났다고? 24.02.20 30 2 11쪽
» 가난한 엿장수의 아들 +2 24.02.20 47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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