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과 김창운
카피너 김현우의 시신을 멍하니 봤다. 명백한 나의 실수다.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너무 들떠 있었다. 사악귀 두 녀석을 신경 쓰지 않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이모탈 경제 70%의 대 위업을 만들어가는 자를 아무런 대책 없이 죽게 했으니 의뢰를 받은 헌터로서의 자격은 빵점이다.
나는 피의 팔찌를 왼손에 올려놓고 스킬 카피너를 발동시켰다.
완벽했다. 피의 팔찌에 나 있는 스크레치까지 완벽히 복제했다.
이것이 카피너의 기술. 복사하는데 수초도 안 걸린다.
페어링을 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피너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한 것이다. 물체는 복제하되 속성은 복제하지 못한다.
언노운은 카피너의 스킬은 왼손으로 물질을 원소 단계까지 분석하고 오른손으로 그것을 재구성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대신 물건이 가진 속성은 카피하지 못한다. 피의 팔찌가 가진 생기 흡수 +30의 속성은 아쉽게도 복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냥 평범한 가죽 팔찌 그 이상은 아닌 물품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 재화를 복사하는 수준에 딱 맞는 스킬이다.
내가 이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꼼짝없이 사대 길드에 붙잡히게 될 거다. 자유의 속박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쪼록 나는 이 기술을 숨겨야 한다.
대신 여기 박해진이 김현우의 역할을 해 줄 거다. 이식이 성공했다면.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카피너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사대 길드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줄 거고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호화로운 삶을 누릴 테니까.
[이식 완료, 카피너 업로드 완료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정말 카피너 스킬을 구현할 수 있을까?"
[확률 90% 이상입니다]
"그럼 10%는 뭐지?"
[그가 정신각성자가 아니므로 약간의 부적응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안돼. 이건 100% 완벽함을 도모해야 해."
[박해진의 심리적인 유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알았어, 어떻게든 해 보려니까. 아 그리고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어?"
[투입된 나노봇이 이미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분 여분이 더 지나서야 박해진은 정신을 차렸다.
이블 페이스를 얼굴에서 떼고 평범한 나로 돌아왔다.
"우! 어떻게 된 거지? 뭔가 폭발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도 많이 보였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정신을 차린 박해진은 옆에 죽어 있는 김현우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 뭐 없어요?"
"뭐? 떠오르는 거? 어라? 이게 뭐지?"
"할 수 있겠어요?"
"이어링에 뭐가 뜨는데? 카피너 스킬 등록이라고 떠. 이게 뭐지?"
"형씨 잘 들어요. 새로운 스킬을 익혔거든요. 한번 사용해 보시겠어요?"
"여기 시체가 많아. 이게 도대체."
"박해진씨 집중해요. 자 나를 봐요. 그리고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한번 해 보자고요. 이것만 잘 되면 팔자 피는 거예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박해진은 앉아서 두 팔을 벌렸다. 나는 아까 복사한 피의 팔찌를 박해진의 왼손에 올려놓았다.
"자 이걸 카피하는 거예요. 왼손에 있는걸 오른손으로 카피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 어? 생각이 떠오른다!"
박해진의 눈썹이 찡그려지더니 뭔가 집중하는 모양새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에 팔찌 하나가 나타났다.
"어라? 이게 뭐야?"
"후우! 됐다. 성공!"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휴, 머리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괜찮아요? 언노운 어떻게 된 거야?"
[정신 각성자 S 레벨급의 능력을 사용하여 뇌에 충격이 간 것 같습니다.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 아무리 유전자 이식이라고 하지만 그는 신체 각성자다. 카피너는 정신 각성자의 전유물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부하는 상당할 것이다.
언노운이 강제로 정신력을 활성화했기 때문에 당분간 뇌에 걸리는 부화가 클 수밖에 없었다.
"가요. 여기 더는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으니."
사체는 던전이 리셋되면 자연 분해 돼버린다.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 나갔다.
"해진 형 혹시 소속 길드가 어디예요?"
"나는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야."
"그것 잘됐군요. 혹시 김동희 박사 아세요?"
"잘 알지, 그 미친 싸이코 박사놈. 매드 사이언티스트 아니야?"
난 쓴웃음을 지었다.
"잘 들어요. 형은 이제 김동희 박사 밑으로 들어갈 거예요. 헌터 생활은 끝입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헌터 생활 끝이라고?"
"일단 저만 따라서 오세요. 설명하려면 길어요."
나는 일사천리로 미노타우로스 던전을 헤쳐 나왔다.
박해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벙긋 벌리면서 말했다.
"너, 진짜 천재구나. 이 길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지?"
대구 시청으로 왔을 때 답답한 얼굴로 왔다 갔다 하는 몇 무리의 헌터가 보였다. 그들의 복장, 무기들을 봤을 때 예사 헌터가 아니었다.
바로 카피너 때문에 길드에서 파견된 추적대 같았다. 그들의 얼굴빛은 매우 그늘 저 있었고 답답함이 그대로 묻어 나와 있었다.
나는 이어링을 통해 김동희 박사를 호출했다.
"네, 박사님 후, 찾긴 찾았는데 그는 사망했습니다."
"잠깐, 진정하시고요. 진정하세요. 대안이 있습니다. 대안이."
"네,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 할게요. 지금 바로 넘어갑니다. 준비하고 있으세요. 사람 하나 데려갑니다. 카피너입니다. 네. 네, 주위에 듣는 사람 없어요."
"그럼요. 보안 신경 쓰고 있어요. 지금 바로 넘어갑니다."
냉철한 김동희가 목소리를 높이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카피너는 사대 길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대구 게이트를 타고 임페리얼 테크로트리아 본사 게이트 출구로 나왔다.
게이트 앞에 연구원 복장의 사내 두 명이 나오는 나를 맞이했다.
"장석우 실장님"
"어서 오게. 박사님이 기다리고 계셔."
장석우 연구실장은 내 뒤에 따라온 박해진은 힐끗 보며 말했다.
"네가 이야기 한 사람?"
"네."
"그럼 같이 가자."
어리둥절한 박해진을 이끌고 10층 연구실로 올라갔다.
나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다만 김현우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약간 포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내 잘못으로 김현우가 죽었다고 말하기에는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카피너인 박해진을 소개했다.
김동희 박사는 김해진이 복사한 서류를 집어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된 거야? 뭘 숨기고 있지? 이걸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대충 넘어 가지죠. 지금 중요한 건 카피너이지 그가 왜 카피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죠."
김동희 박사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 네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구나. 150년을 보내면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는 사건들이 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어. 묘하지 않아? 자생 엘리시움도 그렇고 몬스터 요리법도 그렇고 아이템 감별, 아이템 강화 모든 것이 다 이상해. 이건 신의 능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번에는 카피너를 데리고 와?"
"저 먼저 가 볼게요. 박해진은 박사님이 알아서 하시고. 전 가 볼 곳이 있어요."
김동희 박사의 의구심을 뒤로하고 재빨리 연구실을 나왔다. 뒤로 김해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김동희 박사를 보면서 한 시름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보열람실로 들어와 카피너 김현우의 정보를 해킹했다. 언노운은 해킹에 대해서는 도가 텄다. 구석구석 그의 모든 흔적을 모조리 끌어 모아왔다.
그에게 18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고 아내는 사별. 나는 언노운이 띄워준 서류를 읽다가 아쉬움의 탄성을 내뱉었다.
평소 김현우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었나 보다 곳곳에 그런 행동이 묻어났다. 문제는 그가 S 레벨의 정신 각성자 카피너인 반면 아들은 무각성자다.
자료를 더 훑어보니 모계 유전 즉 무각성자인 어머니의 외탁을 받은 거다. 나는 내 실수로 김현우가 죽어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가 인터넷상에서 쓴 일기형식의 글을 접하고 아들에 대한 애증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부탁. 자기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무각성자는 헌터들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들은 집단 거주구역 내에 있어야 하고 외부로의 활동은 엄격히 규제된다.
나는 김창운의 주소지를 입력하고 길드를 나섰다. 김현우가 아들을 구해 달라고 한 것은 그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아직 남아 있는 사문위원회의 떨거지들이 그를 잡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무각성자의 거리.
조금은 침울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기 빠진 시체와도 같다. 아무런 미래도 없는 정체된 삶. 그것이 무각성자의 삶이다.
요즘은 무각성자의 인권을 요구하는 사회 운동이 많다. 단적으로 엘리엄이 위원으로 있는 정무위원회의 활동력은 이모탈 시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무위원회에는 각계각층의 고위 헌터가 가입해 있다. 그들 덕분에 무각성자들의 사회 진출 1호가 된 것이 고물상이다.
고물상은 일반 헌터처럼 시민증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리고 추방되지 않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무각성자의 직업이다.
나는 김창운이 평소 머물렀던 곳으로 왔다. 무각성자의 집중에서는 가장 호화롭고 멋진 단독주택이었다.
"3023, 주변 cctv부터 모든 데이터를 검토해, 김창운의 행방을 찾아"
[접촉 라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김창운이 머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각성자의 삶치고는 부유한 편에 속했다. 개인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컴퓨터의 전원을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통해 집 앞에 설치된 cctv를 해킹했다.
[일주전 마지막 영상입니다]
집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주차하더니 사내 두 명이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두 사람은 김창운을 좌우로 포위하듯 데리고 나와 차에 올랐다.
[차량 넘버 조회 중, 소요시간 측정 불가]
차량을 찾으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방안을 둘러 보다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언노운의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차량 위치 파악 완료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근처까지 온 나는 조심스럽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집이 층층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곳도 무각성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추방 직전의 버려진 삶을 사는 중년 부부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언덕을 올랐을 때 창운의 집 앞에서 봤던 은색 차량이 눈에 띄었다. 금이 간 시멘트 담벼락 아래에 주차된 차량을 밟고 담벼락 위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낡디낡은 집 한 채가 있었다.
"3023, 안에 사람이 있나 체크 해 줘"
[알겠습니다. 스캔합니다. 집 안에 있는 인원은 총 네 명입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요?"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대머리 한 명이 고개를 불쑥 내밀고 나를 봤다.
한눈에 봐도 동네 건달패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사람 찾으러 왔어."
그 말에 놈은 눈을 휘 번뜩거리며 외쳤다.
"형님. 손님이 왔습니다. 씨발 여기 들켰습니다."
곧 우당탕 소리와 함께 건달패 세 명이 뛰쳐나왔다.
"씨발, 저 새끼 죽여."
이놈들 움직임을 보니 F 레벨이다.
하.
비 내리는 날에 먼지 날만큼 두드려 팬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중충한 음식 냄새와 메케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방바닥에 손목과 발이 묶인 채 누워 있는 김창운을 발견했다.
"창운아 일어나, 창운아"
흔들어 깨웠으나 반응이 없었다.
언노운은 한동안 먹지 못해 기력이 완전히 떨어졌다고 했다.
묶인 손발을 풀고 안정된 자세로 침대 위에 눕혔다.
아비가 시티 최고의 카피너인 것을 창운은 알고 있을까.?
카피너인 그는 무엇 때문에 무각정자 여자를 아내를 맞이했을까?
그의 가족사를 완전히 파헤쳐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정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하필 무각성자로 태어나서 이 고생일까?"
나는 집안에서 먹을 것을 찾아냈다. 그동안 감금하면서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은 모양이다.
녀석의 입안으로 물을 흘려 주자 그제야 눈을 뜨고 물을 들이켰다.
"이것 좀 먹어 너무 오래 굶었어."
냉장고에 그대로 있던 음식이라 제대로 조리되진 않았지만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니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운 창운은 그제야 나를 올려봤다.
멍한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누구?"
"아버지 부탁으로 구하러 왔어."
"아버지?"
녀석의 얼굴에 실없는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반가움의 미소가 아니었다. 가증스러운 증오의 기운이 스며 있는 웃음이다.
"아버지? 그 사람이 왜요? 인제 와서 아버지 행세라도 하게요?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 마시죠."
돌연한 창운의 반응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 아버지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데."
"날 생각한다고? 무각성자로 만들어 놓고 뭘 생각한다는 말입니까. 하하하."
녀석은 웃음 속에 뭔가 빠진듯한 공허감이 묻어 있다. 나는 그 기분을 잘 안다.
나도 그 공허함을 뼛속 깊이 느꼈으니까.
"기껏 구해서 살려 놨더니! 그런 넋두리 들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나에게 부탁을 했기에 여기 온 거다."
"죽기 전에? 그가 죽었나요?"
"그래, 그는 죽었다."
"잘됐군요. 이제 무각성자 아들 때문에 부끄러워하거나 골치 아파할 필요가 없네요."
"너, 이 새끼, 말을 그따위로밖에 못해?"
"왜요? 무각성자인 제가 뭘 하겠어요? 슬퍼하며 울까요? 무각성자에게 뭘 더 바라요?"
-쫙
나는 그 자리에서 뺨을 올려붙였다.
"네가 무각성자인게 그렇게 한스러우면 너 때문에 죽은 네 아버지는 무엇이 되냐?"
"당신도 각성자죠? 후후, 그런 각성자가 무각성자의 삶과 고통을 어찌 알겠어요."
"알지 너무나 잘 알지. 난 너보다 더 못한 곳에서 살아봤어. 난 정크보이였다."
"···."
"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전혀 모를 거다. 그는 위대한 분이셨고 이모탈 시티를 살아 숨 쉴 수 있게 한 장본인이야. 넌 절대 그분을 미워해서는 안 돼. 가자 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보여 줄게."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