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기
이현희에게서 이동 게이트 장치를 건네받았다.
나는 왼손에 이동 게이트 장치를 올려놓고 이현희를 바라봤다.
"재미있는 게 보여 드릴게요."
나는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오른손에 또 하나의 이동 게이트 장치를 만들어 냈다.
마법처럼 오른손에 또 하나의 장치가 생겨났다.
이현희의 눈동자가 크게 부릅떠졌다.
"그건?"
"카피너죠. 저에게도 카피너의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두 개의 이동형 게이트 장치를 이현희에게 건넸다. 내가 그녀를 본 이래 가장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두 개의 게이트 장치를 살펴보았다.
"허, 정말 대단해. 이 정도일 줄 몰랐어.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처음부터 이런 기술이 있었니?"
"전 대상의 능력을 카피하는 기술이 있어요. 뭐 전부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입을 완전히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내가 남자 하나는 잘 본 거 같네."
"피이, 기술 하나 있는 거로 나의 전부를 보시면 안 되죠."
그녀는 게이트 장비를 다시 품 안에 넣고 입술을 달싹였다.
"뭘, 알고 싶은데?"
"어제 낙찰받은 물건. 불사의 회람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 거죠?"
"별거 아니야. 연합의 인물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어. 그 복수를 해 주려고 하는 것뿐이니까."
"자세히 알 수 없을까요?"
"여기에 네가 끼어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빠질 만큼 빠진걸요.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세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해. 이 이야기는···."
"마인은 왜 파벌을 나누고 싸우는 거죠?"
"같이 뭉쳐서 악마와 싸워도 모자랄 판 아니에요?"
"세상은 그리 쉽게 돌아가지 않더구나."
"힘을 가지면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하고 또 지배당하기 싫어하는 부류도 있지."
"연합이든 자치령이든 이모탈 시티를 등에 업으면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거겠죠?"'
"이모탈 시티는 매우 조심성이 높아. 그들은 약간의 모험도 하지 않으려 해."
"이모탈 시티는 불합리하죠. 몇몇 사람들에 의해 전체가 따라가는 구조랄까요. 위에서 정하면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왕이 정하면 신화와 시민은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지. 왕은 그만한 권력이 있으니까."
"그럼 그 왕이 잘못하면 누가 벌을 가할 수 있나요? 그걸 심판하는 것은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잘못된 왕이 잘못된 정치를 하면 그 피해는 우리가 져야 하니까요."
"너 정말 여기에 끼어들 거야?"
"네 그럴 겁니다. 누님이 입을 닫고 있어도 저 나름대로 방법은 있으니까요."
이현희는 끈적한 눈길을 나를 바라봤다. 가슴이 바짝 탄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입안에 넣고 정신을 집중했다.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 박민혁! 그 사람을 암살할 계획이야."
입에 머금은 커피를 뱉어낼 뻔했다.
박민현은 박정아의 아버지며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 총수다.
"정말 골치 아픈 이야기네요. 누가요? 자치령이 직접 나설 겁니까?"
"여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우리는 그 틈에 연합을 제거하려는 것이지 박민혁을 제거하는 것 하곤 상관없어."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박민혁을 제거하기로 한 것은 연합이야. 우리는 그 연합을 뒤에서 친다."
"연합이 왜 박민혁을 제거하려 합니까? 그런 거물을 건들면 손해 일 텐데요? 아니 자치령에도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데요?"
"그래서 암살이지. 누가 한 짓인지 모르게 하는 것이 암살 아니야?"
"이미 계획된 거네요?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왜 박민혁을 제거하려 하죠?"
"내가 너에게 이야기해 줘야 하는 이유를 하나 대봐."
"여기까지 다 말해 놓고 새삼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이 판에 네가 끼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셈을 놓고 있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요."
"아니, 우리에겐 아주 중요하지. 이번 계획과 너를 두고 저울질해야 하거든."
"으하하. 누님은 모르는 게 있어요. 누님이 말하지 않아도 이 정도 사건이면 제가 끼어들 요지는 충분하거든요. 그럼 이렇게 하죠. 지금까지 누님에게 아무 말도 안 들은 거로 칠 테니까. 제 생각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아서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넌 백 퍼센트 박민혁의 목숨을 구하려 할 테지? 그럼 구해놓고 보자 누가 박민혁의 목숨을 노리는 걸까?"
"연합이라면서요?"
"연합은 그저 하수인에 불과하지. 암살은 말이야. 암살 지령을 내리는 사람이 있고 암살을 직접 수행하는 암살자가 있지. 연합은 암살자에 해당할 뿐이야."
"암살 지령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설마?"
"호오? 그 설마에 누가 있을까?"
"불사의 회람 정성철, 정현규 두 사람 중 한 명이 아닐까 하네요."
"흠, 울 도련님은 꽤 똑똑한 편에 속하네."
"누님, 이제 농담 같은 소리는 그만 하세요. 전 심각해 죽겠는데. 정확히 정성철입니까. 정현규입니까?"
"정성철이야. 박민혁을 죽이려고 사주한 자는."
"누님은 어떻게 그 사실을 완벽히 알고 있는 거죠? 이번에 이모탈 시티로 건너온 것은 이 사건 때문인가요?"
"연합 쪽에 간첩 하나 정도는 안 심어 놓은 것 같아? 우리도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정성철이 왜 박민혁을 죽이려 합니까? 두 사람 앙숙지간도 아닌데?"
"정성철이 왜 박민혁을 죽이려는지 잘 몰라. 두 사람이 뭔가 관계가 있겠지. 하지만 불사의 회람은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의 과학력에 상당한 의존을 하지. 불사의 회람이 지금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의 과학력에 상당한 의존을 해 왔으니까."
"아니 그럼 친구 같은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의 수장을 왜 죽이려?"
"너는 참 순진하구나. 꼬맹아."
"음, 죄송합니다. 순진해서."
"생각해보라고 말 안 듣는 친구가 좋으니 말 잘 듣는 친구가 좋으니. 친구를 갈아 치울 수 있다면 잘 안 듣는 친구보다 말 잘 듣는 친구가 있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
"후, 아하."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정성철이 박민혁을 제거하는데 연합을 끌어들였고 연합은 어떤 대가를 받고 승낙했겠죠. 그 연합을 뒤통수 치려고 하는 게 자치령 아닙니까?"
"빙고. 이제야 답이 나왔네."
"정현규는 그런 자치령을 도와주고 있는 거고. 그럼 어제 낙찰받은 명동 성당의 십자가는 무슨 용도죠?"
"우리의 비밀 하나를 까발린 건데. 마인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재료야."
"박민혁의 통수를 정성철이 치고 그 아버지 통수를 아들이 치는 거네요."
"내가 그랬잖아. 얽힌 것이 많다고."
"누님이 제게 이 이야기 한 것을 따지자면 정현규와 나와 저울질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나도 손해 볼 수만은 없으니까. 네가 미쳐 날뛰기 전에 나는 셈을 끝내 놓으려고."
"답은 나왔습니까? 정현규와 나와 비교해서 어느 놈이 더 매리트가 있는지 말입니다."
"응, 답이 나왔어."
***
몸을 일으켰다. 내 목에 둘러쳐진 이현희의 팔을 살짝 걷어내고 침대 위에서 일어나 앉았다.
쓴웃음이 나왔다. 침대는 엉망이었다. 어젯밤의 화려한 아니 미친 짐승 두 마리가 엉겨 붙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꼴을 박정아가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배신자. 이런 생각을 하면 나 자신이 이상해진다. 나는 몸속에서 끓어 오르는 욕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현희의 끈적끈적한 욕정을 거부할 만큼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오히려 미친 한 마리의 늑대가 되었던 거다. 양심의 가책이 있을까?
그런 것 따위 애초에 없었다. 개나 줘 버려.
오늘 박정아를 만난다면 얼굴에 웃음을 띠고 가식적인 표정을 지어야겠지.
아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지금은 더욱 심각한 사안이 흘러넘치니까.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현희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의 몸에서 나온 향기에 완전히 덮여 버린 방안을 보면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침 햇살에 그녀가 부스스 눈을 뜨며 일어났다.
"아웅, 네 침대는 세상 어느 침대보다 편하네."
"모닝커피라도 한잔하실래요? 옷부터 좀 입으세요."
"모닝커피 좋지."
이현희와 커피 한잔을 나누며 마주 앉았다.
"정말 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난 서방님 하시는 일 방해 하지는 말아야겠네."
"꼭 그러길 기대합니다. 누님이라도 제 일을 방해하면···."
"방해하면?"
"···."
"큭, 큭, 큭."
"웃지 말아요. 그렇다는 말이니까."
"누님은 이제 뭘 하실 생각입니까?"
"간만에 이모탈 왔는데 쇼핑이 빠지면 섭섭하지. 며칠 쇼핑이나 좀 할까 하고."
"돈은 있으세요?"
"마인은 돈 쓸데가 없어서 항상 넘쳐 나지. 저번에 왔을 때 엄청 훔쳐서 숨겨 놓았거든."
"전 뒷조사 할 곳이 많아서 종일 바쁠 것 같네요."
"후후, 그럼 잘 해 보라고."
이현희와 헤어지고 임페리얼 테크노트리아로 넘어왔다.
박정아에게는 연락하지 않고 정보실에 들어갔다. 남들은 정보실을 말 그대로 정보를 위해 찾지만 나는 항상 해킹하기 위해 찾는다.
이곳 정보실은 각 길드 서버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있다. 해킹하려면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다.
"정성철이 박민혁을 왜 제거하려 하는지 그 이유를 먼저 파 볼 생각이다. 분명히 연결 고리가 있을 테니까.
길드 게시판의 글이며 검색할 수 있는 곳은 모조리 검색했다. 물론 그런 세련되고 감각적인 일은 언제나 언노운의 몫이다. 검색 결과 뜻밖에 인물이 하나 나왔다.
"어, 정아야. 난데. 한가지 뭐 물어 볼 게 있어서 말이야."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중요한 일임?"
"너 혹시 차성훈이라는 사람 잘 알아?"
"알다 뿐인가? 외삼촌인데?"
"후, 그렇구나. 외삼촌. 그분 정확히 하시는 일이?"
"외삼촌이야 아버지 오른팔이시지. 아버지 하시는 일 거의 같이 처리하시잖아."
"그분 말이야. 불사의 회람하고 잘 어울리니?"
"뭐, 정성철 회장하고 상당히 가깝게 지낼걸. 나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음, 잘 알았어."
"지금 어디야?"
"너희 길드."
"아, 그럼 얼굴 보자고 연락하지?"
"아, 바로 갈 곳이 있어. 오늘을 좀 바빠."
"알았어. 그럼 안 바쁠 때 전화해."
"그래."
전화를 끊고 난 확실히 뭔가 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 이현희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났다.
말 안 듣는 친구보다 말 잘 듣는 친구가 낫다는 말.
"이 사람은 저번 마인 테스트 때 보지 못했던 사람이라 눈치채지 못했던 거구나."
만약 박민혁 신변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후임으로 차성훈이 올라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성철에게는 차성훈이 말 잘 듣는 친구가 될 것인가?
대충 구도가 잡혔고 문제는 언제 어떻게 누가 박민혁을 암살하느냐다. 이걸 박정아에게 말해 봤자. 난리 치며 초 칠 것이 뻔하므로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에 그녀에게 말하는 것은 일단 유보했다.
문제는 어제 정성철이 만났던 마인은 연합인지 알고 있다는 거다. 그것은 자치령이 수를 쓴 것이다. 연합 행세를 해서 정성철을 만나 정보를 빼낸 것뿐 그리고 간 김에 정현규를 만나 연합의 마인을 제거할 수 있도록 마인을 죽일 수 있는 무기의 재료를 넘겨 준 것이고.
이현희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탄환으로 제조될 모양이었다.
차근차근 퍼즐을 맞춰 가야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
전체적인 그림은 완전히 파악된 상태다. 이제 맞는 부위에 하나씩 퍼즐을 끼워 나가야 한다.
어제 자치령의 마인 두 명은 그 건물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고 이현희는 홀로 움직이는 것 같다.
그때 최우신으로부터 연락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형님, 연합에서 건너온 마인은 세 명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건너온 마인은 뭔가 느낌이 좀 다릅니다. 제가 마인을 오랫동안 상대해 봐서 아는데 이번 온 놈들은 질이 좋지 않아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어. 놈들 잘 감시해. 반군 쪽 움직임은 어때?"
"두 명요.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놈들이 원하는 것은?"
"뭐, 이놈들이야 늘 그렇죠. GHB 구할 생각뿐입니다."
"GHB는 연합이나 자치령은 모르지?"
"그럴 겁니다. 아직 반군만 알고 있죠."
"너도 입단속 잘해. 그것 잘만 이용하면 큰 가치가 있을 테니. 그리고 반군 애들 쓸데없이 망둥이처럼 날뛸 수도 있느니 항상 잘 감시해. 감당 안 되면 바로 연락 주고."
"잘 알겠습니다. 형님."
판도 짜였고 구도도 잡혔다. 이제 등장인물만 등장시키면 모든 것이 완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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