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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elWr.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의 미친놈들 : The Melting 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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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elWr.
작품등록일 :
2023.03.25 21:01
최근연재일 :
2023.04.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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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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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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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첫 시련 - 4

DUMMY

그 둘이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하는 데는 하루 정도가 걸렸다. 도일은 이것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는데, 이 회복력은 그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놀라는 반응을 본 켄트는 “우리 몸이 좀 튼튼하다니까.”라며 빙글빙글 웃었다.


그들은 행정관의 인도에 따라 일곱 굴방 중 가운데에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는데, 각 굴방의 사이에는 석재로 된 난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기술공들이 고생 많이 했지. 이제 튼튼한 나무로 마감하기만 하면, 굴방끼리는 언제든 이동할 수 있을 거야. 뭐, 지금도 마음먹으면 가능은 하지만.”


켄트가 도일의 의자를 당겨주며 말했다. 그는 그 호의를 받아들여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아무튼,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창고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알아야겠어. 리더, 말해줄래?”


도일이 잠시 할 말을 고르는 동안, 크리스가 먼저 끼어들었다.


“회의 진행은 리더가 해야지. 안 그래, 행정관?”

“그새 둘이 정이라도 들었나? 재밌네.”


보리스가 큭큭 웃었다.


“웃지 마, 서기관. 지금 네 이빨을 모조리 부숴버리고 싶은데 간신히 참아내는 중이니까.”

“이거 참, 왜 이래?”


켄트가 나서서 둘의 중재를 시도했지만, 크리스는 그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예측도 틀렸고, 건물도 무너졌어. 내가 알기로 예측은 서기관, 건물 유지는 기술총괄이 맡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공교롭게도 전부 다 참모 실책이구만.”

“비약이야, 뱅가드.”

“그게 비약이더라도 실책은 실책이지.”


급조된 회의실에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켄트는 자신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말을 꺼냈다.


“네 생각은 알겠어. 하지만 그건 시련이 끝난 다음에 얘기하지.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좋아, 리더가 회의를 진행하도록 해.”


크리스는 그다지 성에 차지 않는 듯 했지만 행정관의 합의를 거부할 마음은 없는 듯했다.


도일은 크리스가 자신을 옹호하려 하는 듯한 말들에 잠시 그의 속셈을 의심했으나, 우선은 회의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떤 상황이 필요한 거지? 뱅가드의 말대로 창고는 무너졌어.”


도일의 말에 켄트가 곧바로 대답했다.


“사막과 침식은 식량과 물자를 창고에 한꺼번에 보관해야 하지만, 삭풍은 반대로 굴방에 분산 시켜 둬야 하지. 하지만 우린 예측에 실패했고, 노력은 해봤지만 물자는 얼마 확보하지 못했어. 즉, 지금 우리에겐······ 식량이 얼마 없어. 보급구멍이 바로 옆이라서 건축자재는 충분했던 게 다행이지.”

“그렇다면 얼마 정도 버틸 수 있어?”

“짧으면 사 일, 길어도 육 일. 그래서 창고의 상황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남은 물자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가져와야 하니까.”


도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보았던 상황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했다.


나무 기둥이 터져나가고 창고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순간. 그 속에서, 사토시의 등이 뚫리고 네드의 팔이 뜯겨져 나가는 장면을 간신히 지워내자, 비교적 명확하게 창고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지상층은 완전히 무너진 게 맞아. 하지만 지하층은 잘 모르겠는걸.”

“지하층은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커.”


주환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듣던 중 다행인데.”


켄트가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크리스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른 듯 물었다.


“잠깐, 지금 시련이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지?”

“사십 시간. 이런, 시계를 깨 먹었어? 그거 귀한 건데.”


휑한 그의 손목을 바라보며 행정관이 입맛을 다셨다. 뱅가드는 그 반응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쿠키’는 이미 떨어졌겠군?”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보안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떨어졌지. 두 달된 신입 가드가 경계를 서는 동안 발견했어. 내부 탐험 구역 그리니치 삼십쯤이라더군.”

“설마 그걸 찾으러 가겠다는 소리는 아니지?”


켄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고, 보리스가 그의 말을 받았다.


“이번 시련은 해결이 불가능해. 버텨야 하는 거라고!”

“그럼 여기서 사이좋게 굶어 죽겠다는 말인가?”


크리스의 도발적인 말에 켄트의 표정이 굳었다.


“지하 창고가 남았다며. 그것만 확보하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날 바보 취급 하지 마, 켄트. 완전히 남았을지도 의문일뿐더러, 그곳에 기껏해야 얼마만큼의 식량이 저장되어 있지?”

“그래도 안 돼. 탐험 구역에 나갔다간 떼 몰살을 당할 거야.”

“굶어 죽는 건 떼 몰살이 아닌가? 아, 그때처럼 먼저 죽는 녀석을 잡아먹기라도 하게?”


도일은 그 말에 고개를 팩 돌렸다.


잡아먹는다고,


······뭐를?


소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그가 절대 깨선 안 될 금기를 무참히 박살 낸 듯한 반응이었다.


도일의 표정을 본 켄트가 수습에 나섰다.


“어쩔 수 없었어. 그땐-”

“어쩔 수 없었다? 서기관은 맨입으론 못 먹겠다며 살점 위에 향신료를 뿌렸다지. 그 와중에 소금간을 하다니, 아주 미식가야.”


크리스가 큭큭 웃었다. 보리스가 마침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의 멱살을 잡았다.


“네가 식량을 모조리 들고 탐험을 나가지만 않았어도 그럴 일은 없었어, 이 개자식아!”

“그때 난 나흘 만에 시련을 해결했지. 그간의 굶주림도 참지 못했나? 음, 그동안 시체가 썩어버리면 먹지 못하니 미리 먹어 두자는 생각이었겠지. 멋져, 다들. 하지만-”


크리스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손을 간단히 꺾어버리고는 으르렁거렸다.


“나라면 동료를 먹을 바에야 굶어 죽기를 선택했을 거야, 서기관.”


도일의 감이 지금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소리 질렀다. 그는 인육이라는 말에 몹시 혼란스러웠으나, 재능의 조언을 우선했다.


“그만해.”


그는 핏물이 모조리 빠져나간 듯한 피부색들의 소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과거는 과거에 남겨 둬. 행정관 말대로, 지금은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할지가 더 중요해.”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군. 허둥대던 신입 주제에.”


보안관은 여전히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신입’이라는 말에 보안관을 빤히 쳐다보자, 그는 어쩌라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맞세웠다.


“쉽게 말하지 않았어. 잠시 미뤄두자는 얘기지.”


도일은 한 번 더 참기로 결심했다.


“정리하면, 지금 탐험을 나갈지, 굴방에서 버텨낼지 두 가지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


소년들은 간신히 진정되었는지 굳힌 표정이나마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곳에 머무른다 치고, 어떻게 버텨낼 거지?”


그의 물음에 행정관이 대답했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조리 있게 말을 시작했다.


“굴방끼리 연결한 난간들 봤지? 그것처럼 최대한 창고에 가까운 곳까지 작은 기둥을 설치하고 줄로 엮을 거야. 그럼 최소한 날아갈 걱정은 하지 않고 창고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그런 다음 아직 남아있는 식량과 물을 가져와서 남은 시간을 버텨내면 돼. 안전하고, 확실하지.”


평소 그의 모습처럼 논리 정연하고 매끄러운 계획이었다.


“기둥이 부러지진 않을까? 창고처럼.”

“우리도 그게 무, 무너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 아주 높은 건물도 아니었으니까. 다만 원체 오래되기도 했고, 또, 또, 지난번 열대 기후 때문에 나무가 많이 삭았던 것 같아.”


기술총괄이 죽고 싶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말했다시피 그 일은 잠시 넣어두고. 그럼 이건 안전한 건가?”

“응. 바닥을 파서 석재로 고정할 거야. 한두 개가 부러질 수는 있어도, 음, 나머지는 안전해.”


도일은 잠시 그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럼 넌 무슨 계획이야?”


크리스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간단하지. 우리가 여기까지 왔던 방식으로 균열까지 접근해서 밖으로 나갈 거야. 탐험 구역은 기본적으로 냄비 구렁텅이 보다 시련의 영향이 적고 구조물도 많으니까 충분히 활동할 수 있어. 그리니치 삼십이면 돌산 지대인가? 오히려 좋군. 군데군데 동굴 비슷한 게 있으니.”

“땅거미는 어, 어떻게 상대하고?”

“바람에 두들겨 맞는 건 땅거미도 마찬가지야.”


기술총괄의 걱정스러운 말을 크리스가 여유롭게 받아쳤다.


도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떼었다.


다섯 소년의 시선이 일순간 그에게로 몰렸다.


“탐험 구역으로 가야 해.”

“리더!”


켄트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다시 생각해 봐. 저 바람을 뚫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리더의 결정에 전부 따를 것처럼 살랑거리던 모습은 어디 갔지?”

“크리스, 조용해.”

“그러지.”


크리스가 으쓱해 보였다. 도일은 그의 입을 그렇게 간단히 막고서 소년들을 돌아봤다. 주환은 어두운 표정이었고, 보리스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으며, 켄트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행정관. 사실 내 판단엔 네 계획이 더 생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정말이야.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게 마음에 들어. 여기까지 뱅가드와 오면서 정말로 죽을 뻔했거든.”


그 말에 켄트가 얼굴에 희망의 빛을 떠올렸다.


“역시 그럼,”

“아니. 그래도 나가야 돼.”

“그러니까 도대체 왜!”

“소리 지르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우리에게 남은 식량이 얼마나 된다고 했지?”

“사 일에서 육 일.”

“지하창고까지 포함하면?”

“꽤 소실되었을 테지만 아끼면 최대 십 일까지 가능할 거야.”

“그럼 그다음에는 별수 없이 굶어야겠군.”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리더.”

“좋아, 정 걱정된다면 사냥숲까지만 나가서 사냥을 하자. 어때?”


켄트가 갑작스레 끼어들었고, 도일은 고개를 저었다.


“맞아. 그렇게 한다면 분명 버틸 수 있겠지. 그런데 다음 시련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보급만 받으면 충분히-”


크리스가 보리스의 말을 끊으며 크크- 웃었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재능인가?”

“웃지 말고 말해, 뱅가드.”


크리스는 테이블에 양손을 턱 짚으며 소년들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생각해 봐, 친구들. 그 잘난 머리를 굴려 보라고. 우리가 잃은 게 어디 식량뿐인가? 아냐. 그건 정말 극히 일부지. 우리가 진짜 잃은 건 창고,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모든 비축 물자들이라고! 수통도, 훈제기구도 이젠 없어. 사냥과 보급으로는 절대 못 메꿔.”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 우린 식량만 잃은 게 아니야. 저 노란 정수기도 몇 개 빼고는 창고에 두고 왔다고 했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은 유용한 물건들이 다 부서져 버렸을 거야, 식량을 구해도, 물을 구해도 담을 상자가 없고, 물통이 없어. 그 많은 물량을 보관할 창고조차 없지. 안 그래?”


이미 대세는 그에게로 기울었음을 도일은 알 수 있었다.


“수습할 시간이 필요해. 간단하게라도 창고를 짓고, 물건들을 만들고, 식량과 물을 다시 수급할 시간. 그렇지 않으면, 다음 시련에야 말로, 우린 떼몰살을 당할 거야.”


켄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정도면 보급기간 동안에 빠르게 처리하면 돼.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고.”

“그만, 행정관. 뭐가 옳은지 난 알 수 있어. 내 선택이 맞아. 우린 탐험 구역으로 나가야 해. 최대한 빨리 시련을 끝내야 한다고.”


그의 확신에 찬 말에도 켄트와 보리스의 굳은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새벽, 간의 회의실로 사용했던 굴방에는 여러 소년들이 각자 휴식을 취하거나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바람이 슁슁 불어댔고, 가장 안쪽에 설치된 모닥불에는 한 소년이 나뭇가지를 몇 개 더 집어넣고 있었다.


도일은 감자 조금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벽에 걸터앉았다.


결론적으로, 이틀 뒤 정오에 탐험을 떠나기로 했다. 물론, 이틀이라고 해봤자 삼십 시간이 조금 넘게 남았을 뿐이다.


또한, 매우 강력한 요청으로 그 역시 탐험대에 소속되었다. 혹시 켄트가 말릴까 조금 걱정했지만 그는 도일의 주장에도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에게 호의를 가진 켄트를 괜히 배신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으나 도일은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어이, 리더. 살아있었구만?”


지드였다.


겨우 이틀 만에 다시 보는 그였지만, 어찌나 반갑던지 도일은 그를 힘껏 껴안았다.


“여긴 무슨 일로 왔어?”

“내가 못 올 곳에 왔나? 그리고 너 탐험대에 지원했다며, 왜 그런 거야?”

“······판단에 책임은 져야지.”

“미쳤군. 아주 미쳤어. 멀린이랑 똑같은 짓을 하는구만.”

“가야 한다고 펄쩍 뛰던 뱅가드도 있는데 뭐.”

“걔는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뭐, 아무튼, 그 소식을 듣고 가르쳐 줄게 생각나서. 인사해, 여긴 네가 죽이라고 소리쳤던 길잡이 잭. 누구 도움을 받아서 일일 보조로 초빙했어. 얼굴은 다 가라앉았으니, 앙금도 털어버리라고.”


그가 대회의에서 흠씬 두들겨 주었던 길잡이 녀석이었다. 기본적으로 탐험대와 가드는 나머지 역할에 종사하는 소년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 사실인지, 잭은 지드의 말에도 인상을 쓰며 입을 꽉 다물었다.


“사감은 없었어, 잭.”

“상관없어. 내가 생겼으니까.”

“그럼, 날 구하러 왔을 때 처리하지 그랬냐?”


그 말에 잭이 머리를 번쩍 들었다.


“깨어 있었어?”

“반쯤.”


도일이 약하게 미소 짓자, 잭이 고개를 휙 돌려 외면했다.


“자자, 그러지 말고 이거라도 좀 먹고 화 풀어. 너도 리더가 제 역할을 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잖아?”


지드는 허리춤에서 조그만 봉지를 꺼내더니 안의 초콜릿을 꺼내 잭에게 내밀었다. 잭의 눈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혹시나 그의 마음이 바뀔까 그것을 낚아챘다. 지드가 도일에게 잭 몰래 윙크했다.


“참, 너 지도 갖고 있지? 그거 좀 쓰자. 내가 주로 설명할 테니까, 너는 옆에서 좀 거들어줘.”

“분명히 말해두는데, 초콜릿 때문은 아니야. 네 말대로 리더가 제 역할을 해야 내가 편해지니까.”

“누가 뭐래?”


지드가 비식비식 웃었다.


잭은 마지못한 척 종이를 꺼내 들어 바닥에 펼쳤다. 지도에는 여러 실선과 점선, 지형, 그리고 여러 주석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우선 우리가 발 딛는 이곳, 저 돔이 뒤덮은 모든 구역을 통틀어서 우리는 그레이 홈(The gray home)이라고 불러. 돔의 색깔이 회색이고 이곳에서 다들 집처럼 안락하고 즐겁게 살고 있으니 기억하기 어렵지 않지? 그리고 그 안에 멜팅팟과 탐험 구역이 있는 거야.”


지드는 그가 처음 이곳에 왔던 날처럼 약간의 반어와 함께 조근조근 설명을 시작했다.


“탐험 구역은 크게 내부 탐험 구역과 외부 탐험 구역, 그리고 중앙 구역으로 나눠. 참고로 중앙 구역은 브리오둠이라고도 부르는데, 유일하게 다른 냄비들과 공유하는 구역이지. 아, 다른 냄비에 관해서 내가 설명해줬던가?”

“······그것 때문에 회의에서 망신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

“어쩔 수 없었어. 내 커리큘럼 상 말할 필요가 없었거든.”

“퍽이나.”


도일이 투덜거렸다.


“아무튼 브리오둠은 난 가본 적 없어. 넌?”

“바로 얼마 전에 가봤지.”


초콜릿 덕분인지, 잭이 금세 대답했다.


“그렇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곳은 정말 처음이었어. 끔찍했지.”

“뭐, 이번엔 습격의 시련도 아니고, 갈 일은 없을 거야. 쿠키가 어디로 떨어졌다고 했지?”

“내부 탐험 구역 그리니치 삼십.”

“뒤에 붙는 말은 무슨 뜻이야?”


도일이 새로운 지식에 눈을 빛냈다.


“그건 방향을 말해. 자, 제대로 설명해 줄 테니 여길 봐.”


지드는 다이아몬드 형태로 이루어진 전체 지도에서, 남쪽의 모서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조그만 동그라미가 각을 대신하고 있었다.


“여기가 우리가 있는 곳이야. 알다시피 멜팅팟. 다른 냄비들도 마찬가지로 모서리에 위치해 있어. 그리고-”


그는 중앙의 ‘브리오둠’이라고 쓰인 중앙과 멜팅팟의 중간에 위치한 호선을 가리켰다. 그것은 멜팅팟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다이아몬드의 양쪽 변에 닿아있었다.


“여길 기준으로 안쪽은 내부, 바깥쪽은 외부로 나뉘고, 그 기준은 참혹의 강이야. 참고로 그 강은 강한 산성을 띠기 때문에 그냥은 식수로 못 써. 길잡이가 들고 다니는 중화제를 타야 먹을 수 있지. 보여줘 잭.”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엄지손톱만 한 병을 들어 보였다. 병 안에는 푸른색 액체가 조심스레 찰랑거리고 있었다.


“지원품으로 늘 나온다고 해. 이게 없으면 탐험을 못 하니까.”


잭의 표정이 약간 으쓱해졌다.


“그리고, 냄비와 정 가운데를 똑바로 이은 이 점선을 영도, 혹은 그리니치라고 불러. 그걸 기준으로 왼쪽으로 가면 그리니치 오, 그리니치 십, 오른쪽으로 가면 그냥 오, 십, 십오, 라고 표현해. 당연히 둘 다 사십오까지 있지. 직각이니까. 그러니, 지금 쿠키가 위치한 곳은 대략,”


지드가 ‘비범한 산’이라고 적힌 곳을 가리켰다.


“이쯤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지. 비범한 산. 사실 비범하지는 않고 그냥 돌산이야. 왜 그런 식으로 전부 이름을 지어서는. 돌산, 산성 강, 중앙 구역이라고 말하면 될걸.”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탐험대의 낭만을 알아?”


잭이 역정을 냈다.


“그렇다기엔 뱅가드도 돌산이라고 부르던데.”


도일의 말에 잭은 빈정이 상한 듯, 팔짱을 꼈다. 선생 지드는 그 이후로도 여러 구역의 특징적인 지형에 관해 설명했다. 그 이후로는 탐험대의 구성과 역할 등을 말해주었고, 도일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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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시련 - 3 23.04.01 10 0 9쪽
7 첫 시련 - 2 23.03.31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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