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CruelWr.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의 미친놈들 : The Melting Pot

웹소설 > 일반연재 > SF

CruelWr.
작품등록일 :
2023.03.25 21:01
최근연재일 :
2023.04.02 18:0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39
추천수 :
0
글자수 :
49,169

작성
23.03.29 18:00
조회
14
추천
0
글자
9쪽

시련의 시작, 그에 앞서.

DUMMY

“내일이면 시련이 시작될 거야. 늘 그렇듯이, 정오에 말이야. 대충 삼십 시간 남았군.”


대회의가 있었던 그다음 날. 도일은 일어나자마자 켄트에 의해 회의실로 끌려왔다.


“도대체 시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시계가 보급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유추할 만한 머리는 없는가 봐, 우리 신임 리더는.”


크리스가 이죽거렸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 주는 게 어때?”

“이미 준비해 뒀어.”


켄트가 나무 상자를 도일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동그란 시계와 가죽 스트랩. 조그만 단검 한 자루, 휘슬(whistle)이 차분히 담겨있었다.


“뭐, 어떻게 쓰는지는 다 알지? 단검은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지만 않으면 돼.”

“당연하지. 그런데 집행관은?”

“아, 데니스는 원래 참석 안 해. 혼자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개자식’ 수첩에다가 이름을 적고 다니지. 이 대책 회의에는 앞으로도 리더, 행정관, 뱅가드, 보안관, 기술총괄, 그리고 서기관. 총 여섯 명만 참석할 거야. 참고로 서기관은 정보관 겸임이니, 구체적인 사실이 궁금할 때는 종종 참고하라고.”


테이블에 앉아 펜을 돌리고 있던 소년이 씩-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서기관 보리스.


도일은 지드의 말을 떠올렸다.


“역할만 들으면 적어도 인구가 백만 명쯤은 되는 도시인 줄 알겠어.”

“그럼 그냥 구십 구만 구천 구백 명은 어디서 픽- 죽어버렸다고 생각해. 어이 행정관, 이제 시작하지?”


보안관이 신랄하게 말했다.


“좋아, 시작할게. 서기관에 따르면 이번 시련은 사막 혹은 침식일 확률이 높아. 맞지?”

“응. 둘 중에 하나 일 거야.”

“난 사막이 나아.”

“그래도 침식이 낫지.”


켄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지금 인기투표 하자는 거야? 새로운 리더에게 시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동안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끝나는지 알려줘야지.”

“나 참, 귀찮게.”


크리스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도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엉망이구만.


“그냥 내가 물어볼게. 행정관, 네 판단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까지만 시련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해줘.”

“멋진 자세야, 리더. 우선 하나만 기억해. 완전히 똑같은 시련은 하나도, 단 하나도 없어. 반드시 어느 부분은 다르고, 보통 그 차이는 꽤 치명적이야. 그러니까 우리의 경험, 너의 경험, 누구의 경험이라도 맹신 하지 마. 늘 상황 속에서 생각해야 해. 이게, 십 오 년 동안 여기서 굴러먹은 나의 몇 없는 지혜야. 좋아, 나머지는 사막의 시련을 예로 들어 짧게 말해주지.”


켄트가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련의 시작은 언제나 정오야. 그 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기온이 어마어마하게 오르기 시작해. 발에 화상을 입어서 걷기가 힘들 정도로. 물론 유일한 수원지인 우물도 메마르지.”

“그럼 미리 물을 담아둬야 하지 않아?”

“늘 그렇게 하고 있어. 기본이지. 기온이 오르고 나면 창고에 저장된 천들을 모두에게 배부하고, 평소에 각자 굴방에 저장하고 있는 물들도 창고로 옮겨. 다 같이 아껴야 하니까. 기술공들은 오줌을 마실 수 있는 물로 증류하는 일종의 정수기를 준비하고, 요리사들은 소금을 소분해 둬. 사막에서 소금은 필수거든. 또 가드들은 다른 소년들을 이끌고 밤에 있는 땅거미 같은 녀석들의 침략을 대비하지. 뭐, 다들 그렇게 사막 나기를 준비하는 거야. 시련이 끝날 때까지.”

“땅거미라.”

“탐험 구역에 사는 포식자야. 다리는 여섯 개밖에 없지만 그걸 보면 떠오르는 건 거미밖에 없거든. 게다가 죽여도 먹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최악이지.”


그 설명으로는 어떤 모습일지 짐작 가지 않았으나 그림을 그려달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시련은 어떻게 끝나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건가.”

“세 가지 조건이 있어. 하나는 방금 네가 말한 대로 보급 날까지 버텨내는 것. 두 번째는 열 다섯 명 이상이 죽는 것. 세 번째는 그전에라도 탐험대가······ 크리스 네가 설명할래?”


발 앞꿈치로 툭툭- 테이블 다리를 차던 크리스가 흥미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별로. 계속해.”


켄트는 도일에게 눈짓했고, 그는 그 의미를 즉시 깨닫고 크리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탐험대는 뭘 하는데?”


크리스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도일은 다시 한번 물었다.


“탐험대는, 뭘 하지?”

“······탐험을 하지.”

“재미없어, 크리스.”


보안관이 큭큭 웃었다.


“좋아. 말해주지. 시련 시작 후 좀 지나면, 하늘이 열리고 날개 달린 초콜릿 쿠키가 떨어져. 그걸 탐험대가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마침내 찾으면 시련 끝. 됐나?”

“······이 정도면 직무유기 아닌가?”


보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목을 주물렀다.


“······그래, 뱅가드가 잘 설명했지만 굳이 첨언하자면,”


켄트가 두통을 느끼는 듯 손바닥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시련이 시작된 다음 날 정오가 되면 저 높은 천장의 어느 한쪽이 자그맣게 열리고, ‘낙하산’이 달린 ‘나무상자’가 떨어지기 시작해. 그건 외부 탐험 구역에 착륙하고, 탐험대는 그 나무상자를 찾으러 탐험을 떠나지. 어딘가에 우릴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나무상자를 열어서, 안에 있는 버저(buzzer)를 누르면 그 시간부로 시련은 끝나. 그리고 그렇게 시련을 끝내면 ‘시련을 해결’했다고 하고, 그 나무상자를 우리는 ‘초콜릿 쿠키’ 혹은 그냥 ‘쿠키’라고 불러.”

“왜 하필 초콜릿 쿠키야?”


보리스가 대답했다.


“언젠가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때, 버저와 함께 초콜릿과 쿠키들이 잔뜩 들어있었으니까.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야. 무려 한 상자라니!”

“말할 가치도 없지.”

“나, 난 그것들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조, 좋아.”


기술총괄은 말을 더듬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말을 더듬는 것은 그의 버릇인 것 같았다.


도일은 몹시 의아하고, 약간은 어이없다는 눈길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본 보안관이 열을 올렸다.


“어이, 리더, 네가 어떤 생각으로 우릴 보는지 알아. 마치 간식에 사육되는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 손바닥에 발을 올리면 한 조각, 먹지 않고 기다리면 또 한 조각, 발라당 뒤집고 누워서 한 조각. 하지만 그건 이 거지 같은 똥통에서 유일한 낙이야. 그런 것마저 없다면, 우린 버틸 수 있어도 그럴 의미가 없다고.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우리 보지 마.”

“알았어. 몰라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열 올릴 필요 없어.”


그 상황에 켄트는 머리를 긁적거리다 숨을 후- 하고 내뱉었다.


“······사실 다른 것들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어. 급속 치료제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꽤 다양해. 참고로 구역별로 이걸 부르는 명칭도 다르지. 보안관?”

“우리는 초콜릿 쿠키, 서쪽의 광신도 녀석들은 구원, 동쪽의 병영 캠프는 전리품, 북쪽의 겁쟁이들은 그냥 ‘버저’ 정도로 불러. 재미없는 녀석들이지.”


갑자기 쏟아진 정보의 홍수에 도일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켰다.


구원, 전리품, 버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시, 뭐라고?”

“버저?”

“그거 말고. 서쪽이니 동쪽이니 그런 건 다 뭐야?”


도일을 제외한 나머지 소년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게 뭐냐니?”

“정말 몰라?”

“응.”

“지드, 이 자식은 도대체 뭘 가르친 거지?”

“심각하군.”

“아냐, 원래는 굳이 지금부터 알 필요는 없는 것들이잖아. 도일은 리더니까 예외인 거고.”


역시나 켄트가 나서서 소란스러워진 회의실을 수습했다.


“좋아, 리더. 간단하게 말해줄게. 이곳, 이 공간 전체를 칭하는 그레이 홈(Gray home)에는, 우리 말고도 세 개의 멜팅팟이 더 있어. 그곳에 거주하는 집단들은 각각 광신도, 군대, 겁쟁이,”

“우리는?”

“우리는 그냥 ‘우리’야. 하지만 다른 놈들은 우리를 두고 뭐라고 부르냐면,”

“야만인(savage)”


잠자코 듣고 있던 크리스가 대답했다.


“맞아. 야만인이지. 자기들은 얼마나 문명화되었다고. 아무튼 네 집단은 각자의 냄비(pot)와 탐험 구역을 갖고 있기에 마주칠 일은 그리 많지 않고, 가끔 만나서 교류하는 정도가 다야. 그러니까 기회가 되면 다음에 더 자세히 설명해줄게. 궁금하면 지드에게 미리 물어봐도 좋고.”


도일은 차분한 켄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지금은 내일 있을 시련을 대비할 때니까.”

“좋아. 그럼, 사막이나 침식일 경우에 각각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고, 무엇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지 각자의 입장에서 얘기해 줄게. 결정을 내리는 데 참고하도록 해.”


그때로부터 약 다섯 시간에 걸친 그들의 이야기를, 도일은 가능한 많이 머릿속에 쑤셔 박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기어코 다시 물었으며, 반드시 외워야 할 부분을 지적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끝끝내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세세한 부분은 켄트에게서 받은 노트와 볼펜을 이용하여 메모해 두었다.


내일부터 있을 시련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멸망한 세계의 미친놈들 : The Melting Pot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첫 시련 - 4 23.04.02 10 0 18쪽
8 첫 시련 - 3 23.04.01 10 0 9쪽
7 첫 시련 - 2 23.03.31 12 0 12쪽
6 첫 시련 - 1 23.03.30 13 0 10쪽
» 시련의 시작, 그에 앞서. 23.03.29 15 0 9쪽
4 신고식 - 2 23.03.28 15 0 13쪽
3 신고식 - 1 23.03.27 15 0 10쪽
2 첫날 23.03.26 16 0 10쪽
1 프롤로그 + 늙지 않는 소년들 23.03.25 34 0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