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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elWr.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의 미친놈들 : The Melting 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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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uelWr.
작품등록일 :
2023.03.25 21:01
최근연재일 :
2023.04.02 18:0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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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추천수 :
0
글자수 :
49,169

작성
23.04.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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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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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첫 시련 - 3

DUMMY

준비라고 표현했으나, 별다르게 챙길 것은 없었다. 애초에 원래 그들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었으니.


다만, 도일은 침대 프레임과 책상으로 쌓은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기 쉽도록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고, 크리스는 몇 시간 동안 기절해 있느라 굳은 몸을 천천히 풀어주었다.


“슬슬 긴장해. 곧 바람이 약해질 거야.”

“그러지.”


크리스가 손목과 발목을 양쪽 번갈아 빙빙 돌리며 대답했다. 급속 치료제의 효과는 정말로 대단해서, 그 모습에서 불편함은 크게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후 도일이 예측한 시간이 되었고, 그의 말대로 바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야는 좁았지만, 귀청을 찢어버릴 듯하던 날카로운 바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둘은 속으로 초를 세다가 더 이상 바람에 변화가 없자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발을 밖으로 내딛는 그 순간부터 풍압이 온몸을 짓눌렀다.


예상보다 덜 약해진 바람에 도일은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다.


앞에서 몰아치는 바람은 여전히 걸음을 내딛기 어렵게 만들었고, 가시거리는 여전히 코앞으로 제한되어 있다. 모래 먼지를 잔뜩 품은 바람은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바리케이드는 무너뜨렸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 된다.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마치 기어가는 듯 걸음을 옮겼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걸음은 예상보다 훨씬 느렸다. 배고픔과 목마름, 찬 기온이 신체 능력에 꽤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속도라면 십 분의 시간이 주어져도 굴방 스무 개를 못 지나칠 것 같아, 그는 초조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크리스가 외쳤고, 도일이 답했다.


“삼 분.”

“벌써?”

“곧 사 분이야. 움직여 뱅가드!”

“젠장.”


이분이 더 지나자, 다시금 바람이 점차 몸을 비틀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도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운이 나쁘게도, 오 분짜리였나 보다.


그들은 결국 재빨리 굴방 안으로 몸을 던졌다. 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침대와 테이블, 의자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우고 나서야 그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우리가 몇 개를 지났지?”

“일곱 개. 큰일이군.”

“생각보다 바람이 세서 속도가 안 나.”

“우린 점점 지치고 몸 상태도 나빠질 테니 이것보다 더 느려질 텐데. 어쩌면 둘 중 하나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겠어.”


크리스는 말을 내뱉으며 큭큭 웃었다. 잠깐 사이에 그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진 것 같았다.


“몸은 어때.”

“너랑 싸워도 질 것 같은 기분이야.”

“농담할 기운이 있어?”

“난 진심이라고.”


십오분, 십분, 십분.


세 번의 시도가 더 있었고, 그들은 총 서른 개쯤 되는 굴방을 지났다. 하지만 한 번 굴방을 나설 때마다 그들은 몹시도 급격히 생기를 잃어갔다. 짧은 시간 온 힘을 쏟아붓는 전력 질주라고 해도 이 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겨우 새 굴방에 도착해도 물이 없어 목은 사막의 모래를 잔뜩 삼킨 것처럼 더욱 꺼끌꺼끌해지고, 배는 등가죽을 뚫고 나올 만큼 허기졌다. 게다가, 팔에 난 상처가 세찬 바람에 다시 뜯어져 피가 질질 흘렀다.


크리스의 상태는 더욱 나빴다. 온몸이 용광로처럼 들들 끓는 것은 물론이고, 세 번째 시도부터는 굴방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도일 혼자서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모닥불을 피웠다. 그 또한 너무도 지치고 피곤했지만, 크리스가 저렇게 된 것에 자신이 꽤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자코 해야 할 일을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다섯 번째에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바닥을 굳건하게 디딜 힘이 없어 바람에 날아갈 뻔했기 때문에, 결국 주어진 시간을 다 활용하지도 못하고 굴방에 들어온 시도였다. 도일은 생명의 위협에 여전히 덜덜 떨리는 팔다리를 억지로 옮겨 이전처럼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크리스의 장비를 이용하여 모닥불을 피우고, 움직이지 않는 허리 대신 팔을 이용해 겨우 일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온 몸에서 식은땀이 죽 솟아올랐다. 세상이 핑글- 몸을 뒤집었고, 바닥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그의 머리를 탕- 하고 때렸다. 그의 의식이 짧은 시간 픽- 꺼졌다가 희미하게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견디지 못하고 전원을 잠시 종료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볼에 닿은 거칠고 딱딱한 감촉을 통해 바닥에 엎어져 있다는 사실 또한. 눈이 저절로 감겼다. 모든 신체 부위가 절실히 휴식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절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지금 잠이 들면 모닥불이 꺼지기 전에 깨어나지 못해서 얼어 죽을 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그와 별개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머리를 땅에 박고 팔다리를 버르적거리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미 신체의 통제권을 박탈당한 후였다.


몸이 차게 식는 기분.


그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고, 마침내 완전히 멈췄다.


구석에는 크리스가 이미 던져놓은 짐짝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혹시 그놈 죽었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잭.”

“이 자식은 날 죽이려고 했다고. 이참에 그냥 처리해버릴까?”


몹시도 불손한 대화에 도일의 의식이 잿더미 속에 숨어있던 불티처럼 힘없이 켜졌다.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고, 손가락 하나 움찔할 수조차 없었지만.


육체와 정신이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몽롱함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하지도 못할 녀석이 허세는. 시간 얼마 없으니까 빨리 업고 나가자. 이러다가 리더와 뱅가드가 아니라, 그들이었던 시체를 옮기게 될지도 몰라.”

“설마 금세 그렇게 되려고.”

“의사는 네가 아니라 나야.”

“네네, 유일한 의사님. 권력 좀 쥐었다 이거야?”


거친 촉감의 천이 그의 싸늘한 몸을 휘감았고, 이내 불쑥 들어 올려졌다. 그는 극심한 구토감을 느꼈으나, 오로지 정신에만 국한된 문제인 듯, 그의 몸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도일과 크리스는 각자 두 명의 소년에게 부축되어 굴방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밖은 잔혹했으나, 소년들은 쌩쌩한 신체를 이용하여 바람을 가르고 나아갔다. 그리고는, 바로 옆의 굴방으로 둘을 집어넣었다.


도일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한탄했다.


그와 뱅가드는 단 하나의 굴방만을 남겨두고 쓰러진 것이었다.


온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닥불 앞에서, 소년들은 둘의 사지를 주무르고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다시, 이번엔 초록빛 끈적한 액체를 입에 넣고는 목을 주물러 강제로 삼키도록 만들었다.


먼저 반응이 있었던 것은 반쯤 의식을 차리고 있던 도일이었다.


그는 쿨럭쿨럭 거세게 기침하더니 이내 완전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소년들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이 말을 건넸다.


“정신이 좀 들어?”

“그래. 그런 것 같아.”


그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길잡이 녀석이 망을 보다가 누군가 옆 굴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것 같다길래 확인차 들렀지. 사실 정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다행이야.”

“불행 중에는 가장 운이 좋았군.”

“그나저나, 어떻게 거기까지 온 거야?”

“질문은 나중에 해, 휴고. 지금 팔에 상처 안 보여? 그리고 다들 방해되니까 조금씩 물러나 있어.”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더벅머리 소년이 인상을 썼다. 다른 소년들은 툴툴거리면서도 그의 말을 존중하는 듯, 도일이 있는 원형 공간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그는 흰색 거즈에 붉은빛 액체를 살짝 묻혀 도일의 상처를 닦아내고 그 위에 흰색 가루를 펴 발랐다. 날카로운 통증이 뼈를 긁어내는 듯했고, 이내 고통은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 되었다. 긁지 않기 위해 손을 부들부들 떠는 동안, 타이밍 좋게 크리스가 기침을 하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신세를 졌다, 올리버.”


그가 완전히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뒤지는 줄 알았는데.”

“거의 그랬어. 그리고 지금 일어서려다가는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뒤질 테니까 잠자코 누워있도록 해. 리더, 너도.”


올리버의 단호한 음성에 둘은 의사의 말을 따라 몸을 눕혔다. 대신 크리스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해야 할 말이 있어, 올리버.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알고 있어. 네가 살 수 있는 녀석을 뒤에 두고 오진 않았을 테니, 함께 있지 않다면······ 죽은 거겠지. 한숨 자고 나면 켄트가 와 있을 거야.”

“첫날에 네 명이라······”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도일은 차마 소식을 들은 소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다시 의식을 놓아버렸다.


“분명 리더가 무능했어 이번엔. 처음에만 대처를 잘했어도.”

“아직 신입이잖아. 어쩔 수 없지.”

“넌 그게 변명거리가 된다고 생각해?”


그런 말을 듣는 와중에도, 그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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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첫 시련 - 4 23.04.02 9 0 18쪽
» 첫 시련 - 3 23.04.01 10 0 9쪽
7 첫 시련 - 2 23.03.31 11 0 12쪽
6 첫 시련 - 1 23.03.30 12 0 10쪽
5 시련의 시작, 그에 앞서. 23.03.29 14 0 9쪽
4 신고식 - 2 23.03.28 15 0 13쪽
3 신고식 - 1 23.03.27 15 0 10쪽
2 첫날 23.03.26 16 0 10쪽
1 프롤로그 + 늙지 않는 소년들 23.03.25 32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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