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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4:49
최근연재일 :
2018.01.29 14:52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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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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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수 :
6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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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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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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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불굴 5화

DUMMY

굳어져있는 에비슨을 향해 내가 말을 이었다.

“자, 어서 잘라주시오.”

“그러지요.”

자리에서 일어선 에비슨이 가위와 빗을 챙겨왔다. 잠깐 방에 들어섰던 의사 하나가 그것을 보더니 서둘러 나간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화이팅을 비롯한 의사 서너 명이 몰려왔다.

“리, 자르십니까?”

하고 화이팅이 물었으므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이팅의 얼굴은 굳어져 있다. 그때 여의사 하나가 나에게 말했다.

“그 자른 머리는 저한테 기념으로 주세요.”

그러자 내가 화이팅을 보았다.

“닥터, 당신한테 드리고 싶은데.”

“아, 난 싫습니다.”

화이팅이 바로 머리를 저은 순간에 상투가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방안이 조용해졌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 상투를 자른 에비슨도 움직임을 멈추고 있다. 그때 내가 영어로 말했다.

“조선인 이승만의 목이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으므로 나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런데 얼굴 근육이 굳어졌는지 일그러진 느낌이 든다.

“내가 목을 주웠네.”

허리를 굽힌 화이팅이 상투를 집어 들면서 웃어 보인다. 에비슨이 다시 가위질을 했고 방안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렇다. 조선인 이승만의 머리가 떨어진 것이다.

학당에 들어올 때 껍질을 다 벗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던 조선조에 대한 미련은 상투와 함께 떼어졌다. 나는 적극적인 개혁에 나서겠다는 내 스스로의 약속으로 상투를 자른 것이다. 자진해서 뛰어들었다.

내 상투는 아까 달라던 여의사가 받더니 소중하게 헝겊에 싸들고 나갔다. 에비슨이 상투가 잘린 내 머리를 다듬을 때까지 화이팅은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자, 리, 어때요?”

하고 에비슨이 거울을 건네주었으므로 나는 상투가 잘린 내 얼굴을 처음 보았다.

낯선 사내가 거울 속에 박혀 있었다. 그 사내는 외롭게 보였다. 굶주리고 지친것도 같다.

그때 화이팅이 말했다.

“양복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머리네요.”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에비슨과 화이팅에게 절을 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그때 내 옆으로 사내 하나가 다가섰다.

“나리, 나리 아니십니까?”

놀란 듯 눈을 치켜떴던 사내가 와락 눈물을 쏟더니 내 팔을 움켜쥔다. 기석이다.

“나리, 내 처가 풀려났습니다요. 모두 나리께서······.”

내가 아니다. 이충구가 나 대신 힘써 주었다.



“머리를 잘랐군.”

내 머리를 본 서재필(徐載弼)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실크햇을 책상 옆에 내려놓은 서재필의 단정한 머리는 윤기가 났다. 머릿기름을 발랐기 때문이다. 배재학당의 교수실 안이다. 작년(고종 32년 1895년) 11월에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은 올해 5월부터 배재학당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중이다.

서재필은 친일 친러를 막론하고 개화파 지식인에게는 우상 같은 인물이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의 주도세력이었으나 개혁이 실패한 후에 김옥균과 함께 일본으로 피신했던 서재필은 그 후 미국으로 옮겨 워싱턴 의대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미국 시민권을 얻은 후에 워싱턴에서 의사로 개업하고 있다가 이번에 귀국한 것이다. 12년만의 귀국이었고 미국인 부인과 동행이었다.

벽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마침 교수실에는 둘 뿐이었으므로 내가 서재필에게 물었다.

“왜 조각(組閣)에 참여하지 않으십니까?”

서재필이 쓴웃음을 짓는다. 하긴 그렇다. 작년 말에 서재필이 귀국했을 때 김홍집 내각에서는 외무대신을 맡기려고 했다. 만일 맡았다면 아관파천이 그 직후에 일어났으니 눈이 뒤집힌 민중들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새 내각에서도 서재필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무안해진 내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처럼 식견이 넓고 깊으신 분께서 조정을 이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보게, 이군, 나는 민중 교육을 시키기로 결심을 했네.”

서재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나에게는 이런 일이 내 능력과 적성에 맞는 것 같네.”

“그렇습니까?”

나보다 열한 살이나 연상인데다 서재필은 19살 때 별시(別試)에도 급제한 수재인 것이다. 지금 서재필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올해(1896) 4월부터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있다. 순 한글로 주 3회 발간되는 독립신문은 서구의 문물을 찬양하는 대신 이미 힘이 떨어진 청을 비판했다.

나는 서른셋의 장년이 되어 돌아온 서재필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서재필이 외국으로 피신하자 일가족은 몰사했다. 부모와 형, 아내는 음독자살을 했고 동생은 참형을 당했으며 아들은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저 단정한 옆모습의 신사 가슴에 그토록 처절한 사연이 박혀있다고 누가 믿겠는가?

그때 서재필이 앞쪽을 향한 채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이군, 세계는 힘이 지배하고 있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혈맹도 버리는 세상일세.”

그리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지금 조선 왕실은 러시아 공사관에 들어가 외줄 타는 것 같은 외교를 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견딜지 모르겠네.”

갑자기 머리끝이 일어난 느낌이 든 내가 숨을 죽였고 서재필의 말이 이어졌다.

“일본의 군사력은 급격히 증가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은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일본을 지원하고 있네. 이렇게 세계정세는 자국의 이득을 목적으로 운용된다네.”

나는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이미 조선 땅이 열강의 도마 위에 놓인 고깃덩이라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밖에서 관찰하고 돌아온 서재필의 말을 듣고는 마치 내 자신이 도마 위에 누운 느낌이 든다.

내가 서재필의 옆얼굴에 대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 뛰어들려고 머리를 잘랐습니다. 선생님이 조정을 개혁 하셨던 때는 저보다도 약관이셨습니다.”

그렇다. 그때 서재필의 나이는 스물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그해 7월 25일이다. 사흘 전 갑자기 안방에서 쓰러지셨던 어머니는 내가 제중원에서 지어온 약도 드셨지만 안색이 파랗게 변한채로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떠나기 전날의 늦은 밤, 나는 누워있는 어머니 옆에 앉아 있었다. 밤 날씨는 선선했고 바람이 좀 불었다. 방구석에 놓인 호롱의 불꽃이 흔들렸다. 벽에 붙여진 내 그림자도 흔들린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뱉는다. 화이팅은 어머니가 심장이 나쁘신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나이는 올해 예순 넷, 마흔 둘에 손주 같은 자식을 낳고 지성으로 기르셨다. 사방은 조용했다. 아마 밤 12시쯤은 되었으리라.

앉은 채로 깜박 졸았던 나는 눈을 뜬 순간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돌아와야 된다.”

어머니의 두 눈이 번들거렸으므로 나는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을 쥐었다. 어머니의 마른 손이 뜨겁다. 다시 어머니가 말을 잇는다.

“꼭 돌아오너라, 어미한테.”

그렇지. 어머니는 나를 잉태할 때 용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 그래서 내 아명(兒名)이 승룡(承龍)이다.

내가 어머니의 손을 힘주어 쥐고 대답했다.

“어머니, 돌아옵니다. 꼭 옵니다.”

“아가, 승룡아.”

해놓고 어머니가 다시 눈을 감았는데 그것이 유언이 되었다. 어머니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새벽에 돌아가셨으니까.

다음날 함흥의 친구 댁에 놀러 가셨던 아버지가 보름 만에 돌아오셨다. 친구분 주소를 몰라 애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도우신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앓아누웠다. 고열에다 땀이 나더니 온몸이 떨리는 바람에 나는 꼼짝 못하고 사랑채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절대 무리하면 안돼요.”

문상차 왔던 에비슨 박사가 나를 진찰하고 나서 말했다. 그러더니 눈을 치켜뜨고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잘못하면 줄초상이 납니다.”

조선말이었으므로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알아들었다. 내 머리맡에 앉아있던 이충구가 입맛을 다신다.

경무사 제복의 금줄이 번쩍거리고 있다.

“어, 거참, 선생께서도 별 말씀을.”

해놓고 이충구도 정색하고 나를 보았다.

“선생 말씀 명심하시게. 몸을 보중해야 어머님 은혜를 갚게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덧붙였다.

“장례는 우리가 다 알아서 치룰 테니 어머님 생각해서 움직이지 마시게.”

조문객이 많았다. 배재학당 동기는 물론 선생님들, 제중원의 의사들, 이충구를 비롯한 개화파 관료들, 오지 못한 관료들은 조문품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놀라실 정도였다.

어머니의 운구가 황해도 평산(平山) 장지로 떠난 후에 나는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내 아들 봉수와 기석이의 딸 미자다.

두 살짜리 봉수와 다섯 살짜리 미자는 금방 동무가 되더니 잘 논다. 마당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는 기석이다. 제 처가 풀려 나온 후부터 기석이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뭇짐을 해왔고 부서진 담장을 고쳤다. 그렇게 매일 들락거리더니 초상이 나자 제 식구까지 데려와 거들고 있다.

나는 다시 열이 났으므로 눈을 감았다. 문득 어머니의 유언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나는 기를 쓰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어머니한테 꼭 돌아갑니다.”

좀 개운해진다. 그래. 결국은 어머니한테 돌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었더냐?



갑신정변(고종21, 1884)을 일으킨 김옥균, 서재필 일파는 변법개화파 또는 일본당으로도 불린다. 그들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민비 세력을 타도하고 신정부를 수립했지만 사흘 만에 붕괴되었다.

민비의 요청을 받은 청군이 일본군과의 격렬한 총격전 끝에 임금을 빼내왔기 때문이다. 그 후부터 임금과 민비 주도의 정권은 자주적 개화정책을 시도했지만 청은 조선을 속방화(屬邦化) 시키려는 노력을 가중시켰다.

또한 일본도 물러난 것이 아니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도 이해에 따라 격동했다.

그러다가 고종 31년(1894),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주도권이 다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일본의 전횡에 반발한 왕실이 고종 32년(1895) 8월, 친러, 친미 내각을 구성하자 일본은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가 지휘하는 낭인 무리를 궁궐로 보내 국모인 민비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고종 33년(1896) 2월, 임금은 이제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 새 정권을 출발시킨다. 조정은 기를 쓰고 있었지만 마치 범의 눈앞에서 뛰는 토끼 모양이다.

강의를 마친 서재필이 나를 불렀을 때는 12월 중순의 오후였다.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어둑한 날씨, 서재필이 빈 강의실의 창가로 나를 데려가더니 나란히 교정을 향하고 섰다.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을 한지 10개월이 되어간다.

서재필이 입을 열었다.

“협성회에서 조정을 비판하지 말라는 지시가 아펜젤러한테 내려온 것 같네.”

긴장한 내가 몸을 굳혔고 서재필의 말이 이어졌다.

“조정은 독립협회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네.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어.”

“누가 그렇게 합니까?”

불쑥 물었던 내가 곧 어깨를 늘어뜨렸다.

협성회(協成會)란 배재학당 학생들로 구성된 토론회를 말한다. 서재필이 지난달에 구성했는데 주제를 놓고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독립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 사회, 제도 등 모든 것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참신했고 처음에는 회원이 몇 명 안되었지만 급격히 늘어나는 중이다.

나는 협성회의 서기(書記)를 맡고 있는 것이다. 내가 창밖을 향한 채로 말했다.

“행여 왕권이 침해 당할까봐서 그러는 것이지요. 하나에서 열까지 왕실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요.”

“쉿.”

하면서 주위를 둘러본 서재필이 쓴웃음을 짓는다.

교실은 텅 비었다. 이제 어둠이 덮여지는 중이었고 눈발은 더 굵어졌다.

서재필이 말을 이었다.

“나는 왕실에 대항하고 싶지는 않네. 이 난세에 자중지란까지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러시아 공사관에 파묻혀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볼 겨를이나 있겠습니까?”

“궁여지책 아닌가?”

“선생님의 독립협회를 통해 백성들의 중지를 모으고 의지하도록 해야 됩니다.”

“허어, 자네가 열사(烈士)가 되어가는군.”

하면서 서재필이 웃었지만 나는 얼굴에 박힌 어두운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

바로 12년 전에 서재필은 그런 열사였던 것이다. 서재필은 일본당이라기보다 개혁당이라고 불러야 옳다. 개혁을 위해 일본세(日本勢)를 빌리려고 했다.

서재필이 다시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그땐 무모했어.”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서재필이 말을 잇는다.

“너무 순진했고,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네.”

나는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가슴이 끓어오른다.



“이시다는 공금을 멋대로 뿌렸다는 죄를 짓고 본국으로 잡혀갔다는데요.”

하고 기석이 말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들었다.

6월 하순의 오후, 학당에서 돌아온 나는 마루에 앉아 모처럼 찾아온 기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기석은 넉 달 전부터 미국 공사관의 하인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물론 내가 에비슨에게 부탁을 했다. 이제 기석은 한 달에 백미 7말을 받아 세 식구가 가장 편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내가 물었다.

“공금을 유용했단 말이냐?”

“제 멋대로 뿌린 것은 맞습니다.”

해놓고 기석이 설명을 한다.

“배오개에 하나, 제물포에 하나, 소인이 아는 것만 해도 첩 둘한테 살림을 차려주었으니까요. 다 그 돈입지요.”

“허어.”

“소인한테는 한 달에 백미 두말을 주고 매일 밤늦게까지 부리면서 엽전 한 푼 가욋돈을 주지 않는 놈이 만나는 관리, 친위대 장교, 대감댁 후실한테까지 몇 백 원씩을 뿌렸습니다요.”

“그 돈이 다 어디서 났을꼬?”

“군에서 받았다고 합니다.”

대번에 대답한 기석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한다.

오늘은 기석이 혼자 왔다. 부엌에서 봉수와 봉수엄마, 복례까지 셋이 두런거리고 있고 방은 비었다. 아버지는 평산의 누님댁에 가셨는데 요즘은 한 달에 보름은 그 쪽에 계신다. 어머니 장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머리를 든 기석이 나를 보았다.

“나리, 이시다하고 왕래를 한 조선인 고관들을 알려드릴까요?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집을 아니까 다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요.”

“······.”

“모두 이시다한테 뇌물을 먹고 일본국 앞잡이 노릇을 한 역적들이지요. 나리께서 친구이신 경무사 나리께 전해주시면 큰 공을 세우게 되실 것입니다.”

길게 숨은 뱉은 내가 기석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기석의 표정에는 진심이 배어져 있다. 그러나 지난번에 제 처가 잡혀 갔을 때는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던 놈이다.

“놔두거라.”

부드럽게 말한 내가 머리를 저었다.

“그러다 조선사람 다 죽인다. 만일 다음에는 일본군이 임금을 일본 공사관으로 모시면 어떻게 될꼬?”

“예에?”

당황한 기석이 눈을 껌벅이다가 곧 쓴웃음을 짓는다.

“러시아군이 가만있겠습니까? 땅 덩어리가 일본의 수십 배가 된다던데요.”

“청은 안그런가? 백성도 수십 배나 많았다.”

말문이 막힌 기석이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나를 보았다.

“어떻게는 나리나 경무사 나리께 은혜를 갚고 싶어서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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