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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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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19.03.09 00:54
최근연재일 :
2019.06.03 17: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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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7
추천수 :
251
글자수 :
63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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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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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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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23쪽

51화

DUMMY

대산맥을 넘은뒤 리피트는 아공간에서 마차를 꺼냈다. 차에 올라탄 아르보레, 미르네 그리고 리피트. 안을 둘러보는 세사람. 북적거리던 마차 안이 세사람만 있으니 허전한 느낌이었다.


"일단 가볼까?"


"네."


리피트는 미르네가 운전대를 잡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대산맥 넘어서는 알려진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는 지역이었다. 아니, 기록이 있는게 하나 있긴 했다. 리피트가 따라다니는 고대 제국의 지도에는 산맥 너머의 유적지가 몇 곳 찍혀있엇다. 하지만 고대 제국 이후에는 대산맥 너머에 대한 기록은 전무했다.


리피트의 마음은 굉장히 설레고 있었다. 내딛는 것 하나하나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들일게 분명했다. 만약 리피트가 약했다면 그건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테지만, 리피트는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알수 없는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미르네, 사령부로 가기전에 유적지를 먼저 들릴 거지?"


"응. 내가 전에 말했던 곳 있지? 거기로 갈거야."


미르네는 엘프의 장로가 준 지도를 참고 삼아 목적지를 향해 계속 운전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리피트 일행은 몇 번 씩 마차를 세우게 되었다.


"와 애네 봐. 털 진짜 하얗다."


리피트 일행을 가로 막은 건 대산맥 너머에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수백 수천년을 서로 갈라진 채 살았기 때문인지 이들의 모습은 반대편 산맥의 몬스터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그 모습은 리피트에게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리피트는 길을 가던 중에 처음보는 몬스터가 보인다면 사진기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남기고 있었다.


물론 몬스터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리피트를 향해 공격해왔지만, 리피트는 손에 꼽힐만한 강자, 그래서 몬스터들을 잠깐만 교육해주면 모두들 얌전해져 리피트와 함께 예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지금 리피트가 쓰다듬고 있는 마물도 처음엔 리피트를 향해 덤벼들었지만, 지금은 얌전히 리피트가 시키는대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고릴라처럼 생긴 몬스터는 거대한 근육질의 몸뚱아리와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다람쥐의 얼굴과 부드럽고 긴 흰털로 온몸이 덮여있었다. 마물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리피트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고, 리피트는 앉은키가 자신의 키보다 높은 그 마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가볼께. 잘 지내고."


"끼잉. 끼잉."


강아지같은 소리를 낸 마물은 리피트가 손을 흔들자 두꺼운 허벅지 근육을 팽창시키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리피트는 손에 묻어있는 털들을 털어냈다.


"진짜 신기한 애들 많다. 이거봐."


리피트는 상당히 모인 사진들을 꺼냈다. 산맥 넘어선 보지도 못했던 몬스터들과 이 곳 대산맥에서 자라는 동식물들. 그렇게 모인 사진들을 보자니 괜시리 뿌듯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미르네와 아르보레에겐 별로 특별할게 없었다. 모습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예전에 이곳에 살던 동식물들과 크게 달라진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환경이 크게 변한적이 없어서 일거라고 아르보레가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숲으로 뒤덮인 산맥을 꾸준히 통과하고 있는 리피트 일행. 리피트는 대산맥을 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흥분과 설레임이 가득해왔다. 온통 처음보는 것들이 가득하다보니 마치 어렸을때 꿈꾸던 진짜 모험가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 리피트에게 또 하나의 소식이 들려왔다.


"곧 도착이야."


미르네가 유적지의 근처에 도착한 것 같다며 차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리피트의 표정엔 여지없이 흥분과 설레임이 가득했다.


"좋아. 어디 한번 찾아볼까?"


차 안에서 쉴새없이 자신이 유적지를 찾아낼거라며 웅얼거리던 리피트였다. 밖으로 나온 리피트는 미르네와 아르보레를 돌아보며 자신했다.


"아르칸 신술만 있으면 유적지가 어디에 숨겨져있든 찾을 수 있어. 그러니까 걱정들 말고 쉬고있어!"


"여기있다."


"여기 있네요."


"...?"


슬프게도 리피트 일행이 내린 뒤쪽에 거대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피트는 유적지가 당연히 숨겨져 있을거라 생각해 땅 위쪽을 쳐다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이 있는지도 몰랐다. 미르네와 아르보레는 멍하니 서있는 리피트를 지나 문으로 다가갔다.


"잠깐!"


리피트는 황급히 미르네와 아르보레보다 먼저 문쪽에 다가갔다.


"예전에 연구소 같아보이던 곳처럼 이곳도 분명히 문이 잠겨있을 거야. 내가 아르칸 신술을 운용하면 문이 저절로 열리겠지."


리피트는 몸속의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다가온 미르네가 문을 앞으로 밀었다.


"어? 안 열리네?"


"내가 조금 더 마나를 써볼게!"


미르네의 말에 더더욱 마나를 쏟아붓는 리피트. 리피트의 주변이 마나로 밝아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아르보레가 문을 슬쩍 건드렸다.


"어? 열렸어요."


"옆으로 미는거였네. 잘했어, 아르보레. 너 아니었으면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뻔했다."


"헤헤헤."


미르네는 아르보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리피트는 멍하니 입을 벌린채 서있었다.


"뭐해? 가자!"


"어? 어..."


미르네와 아르보레 덕분에 새파랗게 타오르던 리피트의 호기심과 흥분은 차갑게 식을 수 있었다.


리피트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수많은 기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정지된 채 흉물스러운 고물들이 되어있었다.


"여기는 뭐하던 곳이지?"


리피트는 기계 하나하나를 살펴봤다. 근처에 있는 기계에 손을 얹어 마나를 흘려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통해 리피트가 얻은 정보는 이 곳에 있는 기계들은 단순히 무언가를 조각하는 용도 하나뿐이었다는 것. 조각 방식만 새겨져있었기 때문에 무얼 조각하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꽤 넓은 건물이다보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리피트 일행. 그 중 아르보레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나머지 일행을 불러모았다. 아르보레가 부른 곳에는 마나석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이거 보세요. 엄청나게 많아요."


마나석은 마나가 고체화 된 연료로써 대부분 기계의 에너지로 사용되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양이라면 방금 전까지 보았던 기계들을 모두 돌리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대체 뭘 만들고 있었던 거지?"


리피트는 마나석을 하나 집어들었다. 그리곤 이를 흡수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마나석인데..."


"이거 쓸데도 없는데 모두 챙기자."


"그래. 다 아공간에 담자. 이상한 게 보이면 알려주고."


"네."


리프트는 두 사람과 함께 모두 똑같이 생긴 마나석을 아공간에 담아넣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마나석이라면 현재 폭발적으로 증가한 리피트의 마나량보다 많을 터였다. 리피트는 자신의 앞 쪽에 있던 똑같이 생긴 마나석들을 모두 집어넣은 후 건물의 다른 공간으로 향했다. 그러나 어딜 가도 모두들 같은 모습이었다. 수많은, 하지만 특별한 게 없는 기계들, 그리고 산처럼 쌓여있는 일정한 크기의 마나석들. 중앙으로 가는 길은 남겨둔 채 주변을 돌아본 리피트 일행은 딱히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남은 건 중앙으로 향하는 길 하나뿐.


리피트는 그동안 쌓인 마나석들을 한웅큼 쥐었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용도를 알 수가 없는 마나석들. 마나석들이란 원래 자연에서 마나가 모이는 곳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돌들이었다. 어디에서 생겨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가지는 돌.


"도대체 여기에 무슨 비밀이 있는거지? 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긴... 잠깐만."


리피트는 자신이 손에 움켜쥐고 있는 마나석들을 바라봤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생긴 수많은 마나석들.


"뭐야, 이거 다 똑같이 생겼잖아?"


리피트는 남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나석들도 모두 꺼내게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놀랍다면 놀랍게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나석들은 전부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리피트는 그제서야 수없이 놓여져있던 기계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마나석을 똑같은 크기로 깎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수상한 점이 보이자, 이상한 점들이 연달아서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에서 나오는 마나석의 색깔은 쌓인 마나량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지금 리피트 일행이 들고있는 마나석들의 색깔들은 모두 다 파란색으로 동일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물론 엄청나게 거대한 마나석을 쪼갠다면 이 정도의 개수를 만드는 게 가능은 했다. 하지만 마나석은 깨지더라도 깨진채로 색이 유지되는 광물이었고, 마나가 많이 모여 거대해질수록 색깔은 파란빛에서 하얀색에 가까워졌다. 마나가 별로 모이지 않은 파란색의 마나석, 그리고 모두들 일정한 크기. 즉, 이곳에서 인공적으로 마나석을 만들어 냈다는 뜻.


"마나석을 만들어냈다고?"


리피트는 가운데로 이어지는 길을 쳐다봤다. 그리곤 미르네,아르보레와 함께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Y자 모양으로 배치된 거대한 기계가 하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끝이 갈라진 사이에 동그란 원반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피트는 기계를 본 순간 이것이 본능적으로 마나석을 만들어내는 장치임을 알 수 있었다. 리피트는 곧장 그 기계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나를 기계에 불어넣었다. 그 순간, 리피트는 어떤 마법이 기계에 사용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계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놓여진 기계는 말그대로 주변의 마나를 추출하여 일정한 농도를 가진 마나석으로 바꾸어주는 기계였고, 거기엔 마나를 추출하는 마법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 마법은 자연스레 리피트의 몸에 익혀졌다. 리피트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가운데의 기계말고는 다른 건 존재하지 않은 듯 했다. 한번 더 주변을 살펴본 리피트 일행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리피트가 마나석들을 꺼냈다. 그러고는 방금 배운 마법을 통해 마나를 뽑아냈다. 여러개의 마나석이 리피트의 손 안에서 하나의 마나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개의 마나석이 뭉쳐져 만들어진 마나석은 아까보다 조금 더 하얀빛을 띄고 있었다.


'이걸 어디다가 쓰지?'


리피트가 가난한 사람이었다면, 땡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나석은 나름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에 마나석을 꾸준히 만들어 팔기만 한다면 상당한 돈을 수중에 쥘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리피트는 가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꼽힐만한 부자였다. 그의 카드에 들어있는 돈은 산맥 너머의 이들 중에 개인으로 따지면 정말 손에 꼽을...


'잠깐만, 나 산맥 넘어왔잖아?'


그러고보니 리피트 일행은 산맥을 넘어온 상태였다. 드워프 연합국에 내려갔을 때처럼 리피트의 카드는 또 한번 쓸모없는 명함 쪼가리가 되어버릴게 뻔한 상황. 그러니 다행히도 이번에 얻은 마법이 리피트가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듯 했다.


"미르네, 출발할...까?"


리피트는 유적지에서 자신의 힘과 관련된 걸 아무것도 찾지 못해 우울해하는 미르네를 쳐다봤다. 유적지에서 돌아온후 계속 저런 상태였다. 아르보레가 열심히 달래고 있었지만, 나름 상심이 큰 모양이었다.


'그럴만도 하지. 지도에서 자기가 모르는 곳만 찍어서 왔는데, 둘 다 허탕이었으니.'


어쩌면 미르네는 더이상 자신의 힘을 찾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랐다. 리피트는 미르네를 응원해주기 위해 다가갔다.


"미르네, 힘내. 우리 유적지를 다 돈 것도 아니잖아. 분명히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원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거야. 그리고 원래 목표는 '악'을 이겨낼 만큼 힘을 기르는 거잖아?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니 너무 조급해하지마."


"그치만... 나머지는 다 내가 아는 곳이야. 거기엔 특별하게 무언가가 더 있을 리가 없어."


그녀의 말을 듣던 리피트는 문득 다크엘프 마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분명 아르보레는 자신이 어느정도 힘을 나눠준 자이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자신의 힘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때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미르네에게 해줬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니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곳에 갔을때 오히려 네 힘을 찾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리고 우리 감옥에 갇혔을 때를 생각해봐. 거기서 네 힘의 조각을 찾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어? 그러니까 너무 우울해하지마. 어차피 네 힘이잖아. 다 돌아오게 되어있어."


"원래 만큼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럼. 그게 우리 여행의 목표 중 하나잖아."


리피트의 말에 미르네가 근심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웃으며 운전대를 잡는 그녀를 보니 리피트의 얼굴에도 자연스레 웃음이 피어났다.


"그러면 이제 이 지도에 적힌 목적지로 갈까?"


"응. 가는 길에 겸사겸사 새로 배운 마법 실험도 좀 해보고."


"알았어. 출발할게."


리피트 일행은 이렇게 지도에 또 하나의 X표를 늘리게 되었다.


ㅡㅡ


며칠 뒤, 리피트 일행은 지도에 적혀있는 사령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애초에 사령부가 거대한 산맥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고, 대산맥에는 마을조차 없었기 때문에, 리피트 일행은 천족,마족의 문화 한번 접하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리피트 일행은 장로가 전해줬던 증표를 보여주곤 사령부의 지휘실로 곧바로 들어갔다. 지휘실에 들어간 리피트 일행은 근육질의 몸을 가진 백발의 남자와 흑발의 남자 두 명을 볼 수 있었다.


"자네가 리피트군. 나는 알제스, 그리고 이쪽은 제펠이야."


백발의 남자가 리피트가 올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설명했다. 리피트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두사람은 각각 천족과 마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리피트라고 합니다. 이쪽은 일행인 아르보레와 미르네에요."


두 사람의 소개를 마치자 흑발의 제펠이 리피트를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H구역이라 적힌 곳으로 좀 가보게. 거기에 자네를 찾는 이들이 있어."


"저를요?"


"그래. 여기 올 때부터 자네들을 찾더군. 빨리가서 그들을 좀 조용히 시켜주게나."


"알겠습니다."


리피트 일행은 지휘실을 나왔다. 리피트는 방금 전 제펠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고? 1장로한테서 연락을 받은 사람인가?'


주변을 살펴보자 각 구역의 위치를 적어놓은 듯한 안내 표지판을 발견한 리피트는 그걸 보곤 곧장 H구역으로 향했다. H구역은 지나오면서 본 다른 구역들과 달리 유난히 작은 구역이었다. 천족과 마족이 산맥에 머무르면서 사용하는 텐트들의 수도 굉장히 적어보였다. 열려있는 아무 텐트에 들어가보는 리피트. 그리고 그곳에는,


"어? 리피트? 리피트잖아! 왜 이렇게 늦었어!"


두꺼운 안경을 쓴 루벨이 자리하고 있었다.


ㅡㅡ


"루벨, 안경 안 쓰면 안될까? 뭔가 좀... 안경이 두꺼워서 그런지, 원래 보던 얼굴이랑 미묘하게 틀린게 좀 느낌이 그래."


"왜? 난 안경이 맘에 드는데? 이거 봐봐, 나 왠지 똑똑해보이지 않아?"


리피트는 안경 자랑을 늘어놓는 루벨의 이야기를 1시간 째 듣고있었다. 일행이 온 걸 알게 된 페르와 파르 천마족 남매 와 엘프 쥬에나, 그리고 비네바 왕녀 등등 많은 이들이 찾아왔었지만, 리피트가 실수로 왜 안경을 끼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가 쏟아져나온 루벨의 바다같은 안경 이야기에 모두들 도망쳐버렸다. 지금은 이 일을 초래한 리피트가 대표로 끝까지 이야기를 듣는 중이었다. 루벨은 안경에 푹 빠졌는지, 텐트안에 온갖 안경이 가득한 상황이였다. 그런 안경 사랑꾼의 이야기를 한참동안 듣던 리피트가 잠깐의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다른 주제를 꺼내놓는 리피트였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넘어온거야? 물론 우리가 들릴 곳이 있어서 조금 돌아오긴 했는데, 그렇다고 크게 오래 걸리진 않았는데."


"아, 그게... 드래곤의 혈액이 결계를 넘어가는 열쇠라는 걸 알게 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답이 보이더라구, 그래서 마법을 만들어서 모두들 결계를 넘어올 수 있었어. 아마 너 가고 이틀정도 뒤에 넘어갔을걸?"


"그렇게 빨리?"


"응."


리피트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드래곤들이 직접 짜낸 결계인데 이틀만에 풀어지다니? 드래곤들이 누군가, 마법이면 마법, 무예면 무예, 어느 하나 부족함없는 최강의 종족인 것인데... 리피트는 루벨을 향해 눈을 돌렸다.


'얘 혹시, 마법에 굉장히 뛰어난 거 아냐?'


리피트가 루벨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좋아졌다. 어쨌든, 리피트는 그렇게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 짓고는 배정받은 텐트로 돌아갔다. 리피트가 돌아가고 안경을 하나 하나 손수 닦아주던 루벨이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맞다. 혈액을 있는 그대로 흡수 시키면 부작용이 있다는 걸 말 안해줬네. 뭐... 리피트는 괜찮겠지. 부작용이 있었으면 벌써 나타났을 거니까."


루벨은 고개를 다시 숙이고 안경을 닦는 일에 집중했다.


ㅡㅡ


외전.


리피트가 결계를 넘어간 이후, 루벨은 꾸준히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몰키베 할아버지..."


루벨은 리피트가 대산맥을 넘어가기 전 자신에게 전한 소식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정정하셨던 분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루벨. 그녀는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더욱 더 결계를 넘어갈 연구에 매진했다.


"흠, 결계를 통과하기 위해선 일정량의 드래곤의 피를 흡수해야 하는데, 대체 결계를 통과시키는 기준이 뭐지? 어떤 기준으로 세워놓은 결계길래 그걸 구분할 수 있는걸까?"


결계를 연구하던 루벨은 생각보다 빠르게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뭐야? 이거 그냥 체내의 마나함유량을 측정하는 거 였잖아?"


대결계를 설치한 건 당시에 있던 거의 모든 드래곤이라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당시 대부분의 드래곤이 모인 이유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마나를 제일 많이 품고 있는 드래곤이라는 종족들 전체를 위한 건강검진을 실행하기 위해 모였던 것 뿐이었다. 대산맥의 결계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드래곤들이 모두 모여 결계를 설치했다고 소문이 났지만, 이 결계를 설치한 건 당시에 장난기 넘치던 몇몇 드래곤이었다. 그 정도의 인원이 복잡한 결계를 만들어 냈을 리가 없었고, 그들은 단순히 건강검진의 최소치를 기록한 성인 드래곤의 마나 함유량을 기준으로 결계를 설치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된 루벨.


"이러면 그냥 잠깐 계측을 속이는 마법만 만들면 되겠다."


방법을 깨달은 루벨은 그냘부터 마법을 만드는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계측마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편법들을 잡아내며 발전한 마법. 루벨이 쉽사리 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연구에만 올인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곤 페르와 파르 남매가 어디서 구했는지 예쁜 안경을 하나 가져다 주었다.


"이거 쓰면 눈이 덜 피로하데요."


"어머. 고마워."


선물로 받은 안경을 착용하고 다시금 연구에 몰입하는 루벨.


"체내의 마나함유량을 높이려면... 드래곤의 피를 먹는게 제일이긴 한데."


리피트가 했던 것처럼 드래곤의 피를 흡수하면, 체내의 마나함유량이 높아지기 때문에 결계를 통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엔 큰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마나함유량이 증가하면서 몸 내부가 변화한다는 것. 더 정확하게는 내부가 드래곤의 신체처럼 바뀌어갔다. 처음부터 강한 신체를 가지는 데다가 오랜시간동안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 드래곤들은 몸속에서 드래곤하트가 생겨나거나 혈관을 마나가 채워나가는 등의 성장과정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만약 이런 일이 평범한 인간이나 엘프들에게 일어난다면? 그들은 아마 몸이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이었다.


"리피트는 뭐... 평범한 인간인 것 같지는 않으니까 괜찮겠지?"


살짝 리피트가 걱정된 루벨이었지만, 이내 별일 없을거라고 확신하며 다시금 결계 연구에 집중하는 루벨. 그리고 며칠 뒤 루벨은 계측기를 속여내는 마법을 만들어냈고, 이 마법덕에 대산맥에 머무르고 있던 이들 전부가 산맥을 넘어갈 수 있었다.


ㅡㅡ


대산맥을 넘어 천족 마족 연합군이 기다리고 있는 지역으로 나아가는 제국과 엘프, 수인족 연합 대표들. 오늘도 처음보는 숲속에서 하루를 머무르는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독특해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시선을 끌었다. 붉은 머리카락의 안경을 쓴 미녀, 그리고 아직 연합군을 만나지 않았는데도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린 천족과 마족. 그렇다. 이들은 바로 루벨과 페르와 파르 남매였다.


"진짜? 나 좀 똑똑해 보여?"


"네. 누나 지금 되게 공부 잘할것 처럼 보여요."


"언니는 안경이 엄청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안경을 벗으셔도 예쁘지만 안경을 쓰시면 매력이 몇 배는 올라가는 것 같아요"


안경을 쓴 채 거울 앞에서 이것저것 포즈를 잡아보는 루벨과 그 옆에서 열심히 칭찬을 남발하는 천마족 남매.


"헤헤. 그래? 쥬에나, 넌 어떻게 생각해?"


"켁, 켁."


뒤에서 얌전히 다과를 먹고있던 쥬에나가 사레가 들린척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여인. 그녀는 본판이 이뻐서인지 안경이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러나, 사실 쥬에나는 안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 중 하나였다. X경이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안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더 좋아하는 편. 그래서 별로 안 어울리다고 하려 했지만...


"엄청 잘 어울려요. 평소와는 다른 이미지? 그런것도 좀 있는 거 같아요."


"진짜? 히히."


'어떻게 안 어울린다고 말을 해...'


기대에 가득찬 똘망똘망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루벨을 보며 쥬에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원래 좀 맹한 구석이 있잖아. 근데 안경을 쓰면 그런 게 좀 사라져보이나봐. 앞으로 안경을 종종 이용해야겠는데?"


'저 이쁜 얼굴에 안경을... 그냥 쓰지 말라고 말할까?'


계속해서 거울을 쳐다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짓는 루벨. 쥬에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차마 안경을 쓰지말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이후, 쥬에나는 그녀의 얼굴에 어떻게든 안경을 씌우려 덤벼드는 루벨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나서야 그때 그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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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2화 19.06.01 141 1 25쪽
62 61화 19.05.31 155 1 23쪽
61 60화 19.05.29 150 1 29쪽
60 59화 19.05.27 159 1 18쪽
59 58화 19.05.26 172 1 21쪽
58 57화 19.05.25 175 1 23쪽
57 56화 19.05.24 176 1 26쪽
56 55화 19.05.22 165 1 16쪽
55 54화 19.05.20 152 2 21쪽
54 53화 19.05.19 159 1 14쪽
53 52화 19.05.18 186 1 19쪽
» 51화 19.05.17 185 2 23쪽
51 50화 19.05.15 180 1 16쪽
50 49화 19.05.13 175 1 30쪽
49 48화 19.05.12 190 1 21쪽
48 47화 19.05.11 202 2 25쪽
47 46화 19.05.10 185 1 22쪽
46 45화 19.05.08 211 1 21쪽
45 44화 19.05.06 225 1 31쪽
44 43화 19.05.05 179 1 16쪽
43 42화 19.05.04 189 1 21쪽
42 41화 19.05.03 182 1 19쪽
41 40화 19.05.01 187 1 12쪽
40 39화 19.04.29 204 1 21쪽
39 38화 19.04.19 200 1 30쪽
38 37화 19.04.17 195 1 20쪽
37 36화 19.04.15 189 1 22쪽
36 35화 19.04.14 229 1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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