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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리피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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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스트맨
작품등록일 :
2019.03.09 00:54
최근연재일 :
2019.06.03 17:0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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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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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쪽

35화

DUMMY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리피트는 먹을게 가득 담긴 반지 하나를 받고는 곧장 어제의 산으로 향했다. 마나 포션은 아직 여유로웠다.


리피트는 머릿속에 있는대로 기술을 실현하기위해 부던히 애썼다. 그라트에게 배운 검술에 적용도 해보고 마법을 한층 더 세밀하게도 써보고. 하지만 무언가 벽에 막힌듯 리피트가 원하는 대로는 절대 사용되지 않았다.


단 한 걸음. 한걸음만 더 내딛으면 될거 같은데, 그 한 걸음이 도저히 내딛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또 다시 산에 가려던 리피트를 익숙한 목소리가 불러 세웠다.


"리피트 씨!"


"어?"


리피트가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한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이 있었다.


밀레느와 쥘렌이 황궁에서 돌아왔다.


ㅡㅡ


리피트 일행은 곧장 쥘렌의 방으로 불려갔다. 밀레느 또한 같이 들어왔기 때문인지 쥘렌은 굉장히 정정해보였다.


"그동안 잘 지냈냐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서 중요한 이야기들만 전하겠네."


흠흠. 쥘렌은 목을 한번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황제께 드린 영상기엔 조작이 없다고 나왔고, 황제폐하께서 급히 산맥쪽 군대를 시켜 확인을 해보신 결과, 자네의 말이 맞다는 게 거의 확정된 분위기일세. 그리고 황재 폐하께선 이 일을 미리 알려준 자네에게 포상을 내리기로 하셨어. 그러니 자네는 나와 함께 황궁으로 가야 할것 같네."


"황궁이요? 아니, 제가 드린 정보는 공작님과 거래로 드린 거잖아요? 그러면 포상은 공작님께서 받으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쥘렌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받았네. 폐하께선 자네에게도 주시려고 하시는 거야."


리피트는 혼란스러웠다. 안줘도 되는데 굳이 왜?


"우선은 빨리 출발해야 되네. 지금 당장 출발할건데 괜찮겠나?"


"저야 뭐 딱히 챙길 건 없긴한데, 그래도 정리할 시간은 조금 주세요."


"알겠네. 그럼 두시간 뒤에 출발할 테니 그때까지 준비를 마치고 있게."


"네."


'확 도망가버릴까?'


뜬금없이 황제의 부름을 받았다. 리피트가 생각하기에 황제가 이렇게 아무나 부를려고 하진 않을것 같았다.


혹시 이게 누군가가 리피트를 잡으려는 함정이라면? 쥘렌은 그럴듯하게 속아 넘어가 사실을 모른다면?


'그럴 땐 싸워야 되는데..'


리피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만의 기술이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아쉬울 뿐 못 쓸 정도는 아니었고, 파괴력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누가 덤비면 다 쓸어버려야지.'


리피트는 자신의 검을 꼭 잡았다. 어제 검을 이용해 마법을 써본 후 느낀거지만, 리피트의 골렘소드들은 마나에 감응도가 높은, 상당히 귀한 재료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간 마법을 사용하면 금세 망가져버렸다. 혹시 몰라 예비용을 만들었지만 언제 다 부서질지 몰랐다.


'검이 필요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리피트는 빠르게 짐을 챙겼다. 짐을 챙긴 뒤엔 재빨리 물약 상점으로 가서 마나 포션을 탈탈 사왔다. 수도로 향하면서도 계속해서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리피트가 저택에 돌아왔을 땐 출발할 이들의 마지막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저번에 봤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따라가는것 같지는 않았다.


리피트가 주변을 둘러보자 근처애 미르네와 데르카스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게 보였다. 리피트는 근처에 다가갔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당신들 마차인 줄 어떻게 아냐고? 이건 내 마차라니까?"


"이게 미쳤나? 그건 우리 차야. 말 없이 그냥 굴러가는 차가 흔한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손님용 마차보관소에 있잖아!"


"하, 공작가 손님이 당신들 뿐인지 알아? 나도 손님이야. 손님!"


가슴을 두드리며 화를 내는 처음보는 남성. 미르네는 그 사람과 화를 내며 싸우고 있었고, 그 옆의 데르카스는,


'이런 빨리 말려야겠군.'


화를 감추지 못하고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리피트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미르네가 리피트를 돌아봤다.


"리피트!"


미르네가 남자에게 손가락질했다.


"이 미친 새끼가 우리 차를 자꾸 지꺼래!"


"이건 내꺼라니까? 너야말로 왜 니꺼라고 우기는거야?"


리피트는 옆애 있는 마차를 슬쩍봤다. 리피트 일행이 타고다니는 차가 맞았다.


리피트가 마차에 다가가려 하자, 남성이 리피트의 몸을 밀었다.


"어허!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건 내 마차야 절대 손대지마!"


리피트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리고는 그 남자의 팔을 꽉 잡았다.


"아악! 뭐야! 당신 뭐야!"


리피트는 순간적으로 두들겨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그 남자를 그대로 끌고 갔다. 리피트의 뒤를 데르카스와 미르네가 따랐다.


"이거놔! 당신 미쳤어? 난 이 공작가의 손님이야!"


리피트는 남자를 끌고 그대로 쥘렌을 찾아갔다. 미안한 일이었지만 리피트는 쥘렌의 방문에 노크없이 그냥 문을 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곳엔 펠튼과 밀레느까지 같이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찾아온 리피트 일행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피트는 붙잡고 있던 남자를 방 한가운데에 던져넣었다.


"이 사람이 자꾸 저희 마차를 자기꺼라고 우깁니다."


그러자 던져진 남성이 곧장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당신들 누구야. 난 이래뵈도 테르덴 공작님께 정식으로 초대받은 사람이다! 나한테 이런짓을 하...면..."


쥘렌이 한쪽 눈을 의뭉스럽다는듯 찡그렸다.


"내가 초대한 이는 저기있는 저분들 밖에 없는데. 펠튼, 너냐?"


"전 여태껏 단 한번도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론 공작가에 손님은 저 세분 뿐인데... 아시다시피 저흰 최근 몇년간 아무도 저희 저택에 머무르게 하시지 않으셨잖아요?"


고개를 젓는 펠튼과 말을 보태는 밀레느.


"흐음?"


쥘렌이 남자를 지긋이 쳐다봤다.


"누구시오?"


남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 그.. 제가 착각을 한것... 같네요.. 하하... 제 마차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왜 제 마차라고 생각했을까요.. 하..하하하..."


주섬주섬 밖으로 도망가는 남자. 리피트는 어느새 문밖으로 나온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문 밖으로 나오자마자 전력을 다해 달리려 했지만.


와당탕.


리피트가 뻗은 발에 걸려 넘어졌다. 리피트는 쥘렌의 방문을 닫아준 뒤, 넘어진 남성에게 다가갔다.


"잘 들어. 이따위로 나와 내 일행들을 엿먹이려 한건 우리의 기분이, 특히 내 기분이 아주 나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남자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거기 있었으면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거야. 저기 있는 친구가 굉장히 화가 났었거든."


남자의 고개를 잡고 데르카스에게 눈을 맞춰주는 리피트. 그리고 이번엔 고개를 돌려 미르네에게 시선이 향하도록 했다.


"저기있는 저 친구가 마음만 먹으면 넌 평생 지옥 속에서 살 수가 있었어. 난 그걸 구해준거야."


그러곤 남자의 고개를 돌려 리피트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근데 나는 말이야. 이렇게 너를 구해줬지만, 저 친구들을 무시할 순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때문에 미친듯이 짜증이 나거든? 그러니까 원래 니가 겪을거보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혼내줄게. 그래도 되겠지?"


"살... 살려주십쇼!"


리피트는 싹싹비는 남자의 입을 아공간에서 꺼낸 천으로 막아버렸다.


"미르네, 데르카스."


두 사람은 분노한 눈빛을 띄고 있었다. 마차를 아끼는 마음이 유난히 각별한 둘이었다. 리피트는 그들에게 자그맣게 복수할 기회를 주었다.


"저주 걸어."


ㅡㅡ


외전.


"헉, 허억. 씨발. 씨발!"


사기꾼 독베비는 미친듯이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과 팔에 새겨진 이상한 문양들은 그의 몸에서 힘을, 그리고 그의 머리에선 지능을 뺏어가 점점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고 있었다.


크르르르.


"히익!"


독베비는 뒤쪽에서 들리는 몬스터의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더욱 깊은 숲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커다란 나무의 밑에 만들어진 작은 구멍을 발견한 독베비는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재빨리 그 안에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잠시 뒤,


크르르르르.


툭 툭 발걸음을 내딛는, 검은 색의 마수는 독베비가 숨어있는 나무둥치까지 다가왔고,


'흡..읍..'


조금의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숨을 참으면서도 입을 틀어막는 독베비의 근처까지 다가왔다가.


크르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휙, 떠나가버렸다.


고개를 내밀어 마수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서야 숨을 내뱉는 독베비.


"흑흑흑.."


둥치에 쭈그린 그는 몇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서럽게 울었다.


ㅡㅡ


사기꾼 독베비. 그의 이름은 음지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평범한 일반인부터 잘 나간다는 귀족까지, 그가 뒤통수를 안 때려본 이들이 없었다. 늙은 노모를 모시는 순박한 남자의 전재산도, 자신의 퇴직금을 싹싹 긁어모은 은퇴한 기사도, 여태껏 아들을 위해 모아두었던 노부부의 결혼 자금도, 그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귀족 여자의 투자금도. 모두들 그의 말 몇마디에 홀랑 삼킬 수 있었다. 그는 쓰레기였고, 그 사실을 자랑스레 여겼다.


"속지를 마시던가~."


오늘도 말 몇마디로 홀랑 뺏어먹은 가난한 농부의 땅을 비싸게 팔아먹은 독베비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짤랑짤랑 흔들며 다음 목표를 찾고 있었다.


"흠... 이번엔 공작가로 해볼까?"


사기꾼은 언제나 준비하고 있는 법. 본업은 사기지만 부업은 도둑질인 독베비는 자연스레 테르덴 공작가의 손님으로 위장했다. 그는 경비병들에게 걸리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훔치고 파는데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마차지.'


귀금속이 있는 곳은 손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그러나 마차를 보관하는 곳은 달랐다. 손님이라고 말하면 당연히 들여보내주었고, 심지어 요즘은 마차 붐이 일어난 시대기 때문에 매물을 내놓기만 하면 금방 팔 수 있었다. 그리고 장물을 파는데 필요한 화술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는 독베비였다.


"이쪽입니다."


자연스럽게 마차보관소로 들어간 독베비에게 단 한대의 마차가 보였다. 그리고 그 마차를 본 독베비의 눈과 입에 짙은 웃음이 지어졌다.


"비싼 금속을 잔뜩 썼군.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라도 되는듯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마차. 눈대중으로 마차의 가격을 두드리면서, 독베비는 재빨리 준비해온 마법해제 주문서를 가져와 마차에 붙였다.


일반적인, 아니 엄청 뛰어난 잠금 마법진이라도 순식간에 풀어버리는 해제 주문서. 독베비는 그 주문서가 발동 되는 걸 보곤 웃음지으며 마차의 문을 당겼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 마차에, 아니 자동차에 새겨진 건, 리피트가 자신의 온갖 지식을 담아 만들어낸 최고이자 세상에서 유일한 잠금 마법이라는 것을.


쿵.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문이 열리지 않자 의아해하는 독베비. 그러나 그는 단순히 잠금 마법이 해제가 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주문서로 눈앞의 것보다 훨씬 비싸보이는 마차의 잠금도 푼 적이 있었고, 거기에 독베비는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몸이어서 마법진이 풀렸는지 안 풀렸는지 애초에 알 수가 없었다.


"문 말고 다른데에도 마법진이 있는건가?"


주문서 몇개를 더 붙여봐도 마차의 문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자, 마차를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하는 독베비. 처음엔 소극적으로 눈으로만 기웃거리던 그는, 시간이 한참 지나도 해답이 보이질 않자 아예 온 몸을 이용해 마차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이런, 이거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금 마법이 해제되지 않는 이상 마차를 훔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독베비는 눈앞의 마차를 보곤 침을 꿀꺽 삼켰다. 비싸게 팔 수 있을텐데 그리고 분명 뭔가 허술해 보이는데, 마법이 해제가 되질 않았다.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포기하자.'


마법의 단어, '딱 한번만 더'. 독베비는 그 생각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채 다시금 마차에 들러붙었다. 그리고 그가 마차에 달라붙어 주문서를 붙이려는 그 순간.


"너 뭐야? 왜 남의 마차를 만지고 있어?"


독베비의 뒤에서 분노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ㅡㅡ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독베비는 당황했지만,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프로 중의 프로. 이럴땐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내 마차에 뭘하든 무슨 상관이야. 딴 일 봐."


"뭐? 그게 왜 니 꺼야? 그건 우리 마차야!"


'좋아. 일단 1단계는 성공이군.'


독베비의 사기를 치는 화술은 일단 상대를 화나게 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이대로 화를 내다가 결국 주인이 누군지 따지게 되겠지.'


이런 사소한 마찰의 경우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 있는 작은 법원에게 사건을 넘긴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그동안 판사는 열심히 뇌물을 뿌려온 독베비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다면 이들이 진짜로 테르덴 공작가의 손님일 경우였다. 하지만 독베비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손님용 마차보관소는 귀족을 만나러 온 이들 말고도 이곳에 들어온 상단이나 집사나 시녀들을 만나러 온 이들도 사용하는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테르덴 공작가는 최근 몇 년간 그 어떤 손님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독베비가 할 일은 눈 앞의 마차 주인을 화내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들이 진짜 마차 주인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선 절대 증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장 우리 마차에서 떨어져 이 도둑놈아!"


'좋아. 좋아.'


눈 앞의 여자의 반응에 씨익 웃는 독베비.


"아니, 그러니까 이게 당신들 마차인 줄 어떻게 아냐고? 이건 내 마차라니까?"


"이게 미쳤나? 그건 우리 차야. 말도 없고 그냥 굴러가는 차가 흔한 것도 아니고, 거기다가 손님용 마차보관소에 있잖아!"


"하, 공작가 손님이 당신들 뿐인지 알아? 나도 손님이야. 손님!"


길길이 날뛰던 여성이 뒤쪽에서 나타난 남자를 보곤 크게 소리쳤다.


"리피트!"


'흐음, 진짜배기 주인인가보군. 그러면 일단은..'


자신을 무시하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마차로 다가가는 남자. 독베비는 곧바로 그를 막아섰다.


"어허!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건 내 마차야 절대 손대지마"


'손만 못대게 만들면 이 마차는 고대로 내꺼가 되겠구만.'


벌써 재판 결과를 받고 활짝 웃는 자신의 모습과 무릎을 꿇은채 절망하는 눈앞의 세사람의 모습이 상상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는 독베비. 하지만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몇 년만에 테르덴 공작가에 오게된, '진짜' 손님이었고. 그들은 그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갈만큼 강한 힘의 소유자였으며.


덜컹.


쥘렌 드 테르덴 공작에게 직접 얼굴을 들이밀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ㅡㅡ


그 이후는 뻔했다. 귀족이 직접 본 이상, 그것도 공작의 위치에 있는 자가 누구냐고 믈어본 이상 독베비는 죽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눈 앞의 세사람은 곧장 죽일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살... 살려주십쇼!"


독베비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싹싹 비는 것뿐. 그들은 그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선 그를 숲으로 내던지고 사라졌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독베비는 목이 붙어있는 걸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일어났다.


크르르르.


"어?"


독베비가 던져진 곳은 몬스터가 없기로 알려진 숲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검은 마수는 누가봐도 몬스터 그 자체였다.


"으아악!"


그때부터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한 독베비. 그리고 지금, 그는 나무둥치에 박혀있게 되었다.


"헉.. 헉... 일단 마을, 마울로 가야해. 그렇지 않으면..."


후우.


"어?"


눈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콧바람. 고개를 든 독베비는 거대한 고릴라같이 생긴 몬스터가 그를 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몬스터의 입가에 뚝뚝 흐르는 침. 몬스터가 그에게 손을 들이미는 그 순간.


"끄아아아악!"


독베비는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그리고..


"뭐야, 저사람? 불안해하길래 손을 내밀었더니 비명만 지르고. 기분나쁘게."


따뜻한 온정의 손을 내밀었던 마을사람은 기분이 상한채 마을로 돌아갔다.


며칠 뒤, 테르덴 영지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을 보고 겁에 질려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는 한 남자의 소문이 항간을 떠돌았다.


ㅡㅡ


리피트와 미르네가 차 안에 누워 쉬고 있자, 쥘렌과 밀레느가 찾아왔다.


"곧 출발할걸세. 준비하고 있게나."


"넵."


"점심은 생략할거고 저녁을 먹을 때 휴식을 취할거야. 그때까지 알아서 지내야하네. 앞서가는 사람 잃지 말고 잘 따라오게."


"알겠습니다."


"아까 그 분과 일은 잘 해결 되셨나요?"


"네. 덕분에 잘 해결되었어요. 오해가 있으셨더라구요."


저희를 착하다고 생각한 오해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뻔 했지만 리피트는 잘 참아냈다.


'어디 멀리서 돌아다니고 있겠지.'


리피트는 이미 바깥 저 멀리에 남자를 던져주고 온 참이었다. 딱히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조심해서 운전해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구 이거."


리피트는 작은 상자를 밀레느에게서 받았다.


"데르카스 씨한테 전해주세요."


밀레느가 말을 마치곤 떠나갔다. 쥘렌도 곧이어 인사를 건네곤 떠났다.


리피트는 운전석에 자리잡은 데르카스에게 찾아갔다.


"데르카스. 밀레느가 너보고 운전 조심해서 하란다. 그리고 이것도 전해달래."


데르카스가 리피트에게서 상자를 건네받았다. 데르카스는 아무 생각없이 상자를 열었고, 안의 내용물을 슬쩍 보게된 리피트는 황급히 자리를 피해줬다.


'미르네, 미르네는 어디있지?'


다행히도 미르네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내심 미르네가 못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리피트였다.


궁금한 마음에 슬쩍 운전석을 들여다보는 리피트. 거기엔 행복한 웃음을 짓고있는 데르카스가 보였다.


'훗. 녀석 어느틈에 밀레느랑 그런 사이가 된거지? 입꼬리가 귀에 걸렸구만. 어? 잠깐만.. 밀레느가 몇살이지?'


왠지모르게 데르카스의 손에 수갑이 채워진 모습이 보이는 리피트였다.


마차는 곧장 출발했다. 마차를 따라가며 내달리길 한참, 어느새 해가 산 뒤로 숨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순식간에 땅이 어둠으로 뒤덮였다.


테르덴 공작가 일행들은 근처의 넓은 공터를 발견하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결정했다. 모두들 마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그 중엔 마차의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감상하는 이들도 있었다.


리피트는 그런 이들 중 한 사람인 쥘렌 공작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쥘렌 공작 주변엔 강해보이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리피트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펠튼 씨는 또 테르덴 공작가에 머무르시나 보네.'


도대체 얼마나 미운털이 박힌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쥘렌에게 다가간 리피트는 슬쩍 말을 꺼냈다.


"쥘렌 공작님, 저.. 혹시 밀레느 양은 올해 몇살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리피트의 질문을 받은 쥘렌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자네, 오늘 말투가 왜 그런가? 공작같은거 붙이지 말게. 오글거리니까."


"그래도 옆에 다른 분들이.."


"이 사람들도 나한테 공작이란 단어를 안 붙여. 내가 공작이란 이야기를 들을땐 황궁 안 뿐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쥘렌 님 아까 한 질문인데.."


"밀레느는 올해 20살일세. 생각보다 엄청 동안이지? 나도 가끔 그 아이와 이야기하다보면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곤 하네."


"다행이다."


"음? 뭐라고 했나? 못 들었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리피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데르카스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벗겨질 수 있게 되었...


'데르카스는 몇살이지?'


데르카스는 그냥 도둑놈이었다.


ㅡㅡ


공터에서 하룻밤을 보낸 공작가 일행과 리피트 일행. 공작가에선 아침을 먹는 등의 잠깐의 시간을 준 뒤, 출발했다.


리피트는 테르덴 공작가에서 받아왔던 음식들을 먹으며 황홀함에 빠져있었다. 그 옆에 있는 미르네도 마찬가지. 데르카스만 혼자 다 먹지 못하고 바로 운전을 해야했기 때문에 살짝 아쉬워하는 얼굴이었다.


"데르카스가 먹을 거도 꺼낼까? 그래도 운전하는데 배는 채워야지."


"도둑놈한텐 그런거 필요없어."


"?"


마차들이 길을 따라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대부분 3일쯤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지금쯤 절반 살짝 안되게 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누워있는 리피트에게 무언가 수상한 감각이 잡혔다.


'마나가 왜 이러지?'


길을 따라갈때 만나는 한 곳의 지점에서 마나가 이상하게 고요했다. 무언가 정체되어있는 듯한 느낌. 리피트는 급히 미르네를 쳐다봤다. 미르네는 리피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장 데르카스에게 말했다.


"데르카스! 앞에 이상한 건 알지? 언제든 문열고 나갈수 있게 속력 좀 조정해줘!"


데르카스는 그말에 조금씩 속도를 줄여나갔다. 수상쩍은 지점과는 얼마 멀지 않았기 때문에 속도를 줄여도 크게 뒤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공작가 마차의 선두가 그 지점에 도착하는 그 순간,


콰앙!


길의 양 옆에서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튀어나왔다. 마차를 덮치는 이들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데르카스는 튀어나오는 이들을 보자마자 바로 차를 90도 꺽었고, 덕분에 정면으로 향하게 된 문에서 미르네와 리피트가 튀어나갔다. 곧이어 데르카스도 차의 시동을 끄고 문을 잠군뒤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차를 덮친 이들은 암살자처럼 보였는데, 이들은 공작가의 기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쥘렌과 밀레느 쪽에 많이 몰려있었다.


리피트는 눈앞의 적을 베어버리고는 곧장 쥘렌 쪽으로 향했다. 마음만 먹으면 근처를 다 정리하고 갈 수 있었지만, 이들은 미르네와 데르카스의 기본적인 능력으로도 충분히 처리할만한 상대들이었다. 리피트가 굳이 쥘렌 쪽으로 향한 이유는 밀레느가 위험한 걸 보자 어느새 마나가 들끓고 있는 데르카스 때문이었다. 이 상태라면 데르카스가 언제 사고를 칠지 몰랐다.


-데르카스! 내가 쥘렌 님과 밀레느 양 쪽으로 갈게! 주변을 막아줘!


-알겠..습니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지만 리피트는 애써 무시했다. 데르카스가 해결하게 했다가 눈앞의 모든걸 파괴해버릴 순 없었으니까. 리피트는 눈앞에 보이던 이들에게 며칠간 연습했던 기술을 사용했다. 리피트의 검에서 마법이 사용되고, 검을 따라 생겨난 공간이 무너지며 주변의 모든 걸 찢어버렸다.


"크아악!"


"아아아악!"


리피트 앞을 가로막던 대부분의 자들의 몸이 찢겨져 나갔다. 그 엄청난 파괴력에 리피트는 눈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너무나도 많은 암살자들이 쥘렌 쪽에 몰려 그쪽이 뚫리기 직전이었다.


리피트는 계속해서 기술을 사용했다. 당황한 적들이 검으로도, 마법으로도 막아보려했지만, 찢어져버린 공간은 그런 걸 무시한 채 모두 잡아먹었다. 어떤 방법도 리피트의 공격을 막지 못하자 가면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당황한 표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리피트의 마음은 급했다. 공작가의 기사들이 잘 싸우고 있었지만, 물량으로 밀고들어오는 상대때문에 조금씩 틈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리피트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리피트를 가로막던 적들은 곧바로 몸을 돌려 쥘렌과 밀레느에게 뛰어들었다. 리피트는 재빨리 검을 그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리피트의 눈에 결국 기사들의 방어진이 뚫리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들을 넘어 상당한 수의 인원들이 밀레느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안돼!


리피트의 마음속에 데르카스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곧바로 데르카스 쪽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모이는 걸 느낄수 있었다. 느껴지는 마나의 움직임들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강력한 마나들.


'막아야 한다.'


데르카스를 막으려면 이 상황을 끝내야 했다. 리피트는 그동안 줄기차게 연습했지만 해내지 못했던 검술을 사용해야한다는걸 깨달았다.


리피트의 검이 세로로 그어졌다. 검격은 오묘하게도 공작가의 기사들과 쥘렌 그리고 미르네를 살짝 벗어나는 궤도를 그리고 있었다.


리피트의 검이 마나를 빨아들였다. 여기서 그대로 마법이 발동된다면, 리피트는 이전과 똑같은 기술을 사용한 것뿐이었다. 그러면 적들을 막을 만한 위력이 나오질 않았다.


다행히도 리피트의 검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너무도 자연스럽게 베어낸 선을 따라 공간을 잘라냈다.


리피트의 손이 떨렸다.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검술을 처음으로 해낸것 같았다. 작은 땀방울이 리피트의 한쪽 눈을 가렸다. 리피트는 순간적으로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곳은 전장, 리피트는 따끔한 걸 참으며 곧장 눈을 떴고,


검이 베어낸 선을 따라 찢어진 공간은 그 주변의 모든 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으아악!"


"억"


쥘렌과 미르네에게 달려들어가던 적들도, 리피트의 눈앞에 있던 괴한들도, 기사들에게 물량으로 들이밀던 가면쟁이들도. 거의 대부분이 리피트의 검격 한번에 찢긴 핏덩이가 되어 땅에 널부러졌다.


리피트가 검에서 마나를 회수하자, 아직까지도 주변을 찢어먹고 있던 균열같은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리피트의 손에서 검이 깨져버렸다.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던 데르카스의 엄청난 마나도 사라졌다.


암살자들이 재빨리 도망가려했지만, 기세가 넘어온 기사들과 데르카스가 그들을 모두 잡아왔다.


"고맙네. 자네 덕에 살았어."


"이닙니다. 저야말로 두 분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니면 데르카스가 다 날려 버렸을테니까요, 라는 말을 굳이 입밖으론 꺼내지 않는 리피트였다.


아직도 데르카스의 분노한 감정이 느껴졌다.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조금씩 식어가는게 느껴졌지만, 리피트는 불안해서 데르카스를 쳐다봤다.


다행히 데르카스는 밀레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울 내쉰 리피트가 쥘렌을 돌아봤다.


쥘렌은 묶여있는 이들의 가면을 벗겼다. 하지만 딱히 단서가 될법한게 없는 평범한 얼굴들이었다. 리피트는 주변의 시체들에서 무언가 알아볼만한게 잊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그들의 물품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근처의 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곳저곳을 찾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엇을 찾아냈다.


"쥘렌 님! 여기에 뭔가가 있습니다."


쥘렌과 일행들은 모두 그곳으로 다가갔다. 쥘렌을 부른 이는 시체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뒤쪽에서 다른 침입자들을 지휘하다가 리피트에게 죽은 자였다. 쓰러진 시체에는 어떤 문양이 새겨져있었고, 그가 끼고 있던 반지에도 그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이건..."


쥘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반지를 빼네 한번 더 문양을 살펴보는 쥘렌. 쥘렌은 반지에서 눈을 뗀 뒤 바깥에 나온 이들에게 모두 마차 안으로 들어가게 명령했다.


"빨리 황궁으로 가야할 일이 생겼네! 모두들 조금 더 속력을 내줘야 해! 빠르게 정리하고 출발하겠네."


쥘렌은 모두에게 말을 마치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밀레느도 마차에 따라 탔다. 그러자 바깥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리를 하고 마차에 올랐다.


정말 다행히 마차도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리피트의 덕이 제일 크겠지만, 그만큼 상대가 쥘렌과 밀레느만을 노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걸 느낀건 리피트 뿐만이 아니었다.


"리피트 님. 이번에 출발을 하게 되면 저희 마차는 쥘렌 님의 마차 뒤에서 가게 될겁니다."


"어?"


"저희가 제일 강한 자들인 것 같으니 제일 중요한 두 분을 지켜드리기 위해섭니다."


리피트는 데르카스의 강렬한 눈빛에 한번, 그리고 그에게서 전해지는 분노에 다시 한번 놀랐다. 데르카스의 의지가 느껴진 리피트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게 해. 그건 그렇고..."


리피트 뒤쪽을 돌아봤다. 그곳엔 아직까지 묶여있는 암살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피트는 원래 쥘렌에게 처리를 맡기려 했지만, 쥘렌은 이미 마차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리피트는 그들을 보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게 느껴졌다.


'저 자식들은 왜 공작가를 공격한거지?'


다른 곳도 아니고 공작가였다. 그들이 누군지 걸리기만 하면 제국에서 뿌리채 지워낼 수 있는 그런 위치의 사림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해가 안되네.'


고개를 갸웃거린 리피트는 묶여있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들을 끌고 근처의 으슥한 곳으로 데려갔다.


아직 마차가 출발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것 같아 보였다 끌려가는 이들이 비명 비슷한 괴성을 질렀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리피트는 다른곳에선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둑한 곳으로 오자, 발버둥 치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남을 죽이려 왔다는 건, 자신이 죽을 준비도 되어있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죠?"


눈 앞의 이들은 열심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리피트가 책에서 읽었던 암살자들과 달리 이들은 조금이라도 목숨을 유지하고 싶었는 모양이다.


그러나 리피트는 암살자들의 감정을 이해해줄 만큼 감성이 풍부한 자가 아니었다.


콰드드득.


공간이 갈라지더니 배부르게 포식했다. 리피트가 쥘렌 일행 쪽으로 돌아갔을 때, 어둑한 어느 곳엔 핏물만이 남아있었다.


ㅡㅡ


'눈에 핏발 선 거 봐라. 진짜 시비 거는 애들 하나라도 있으면 그 자리에서 세계 멸망시키겠다.'


테르덴 공작가를 향한 암살시도가 있었던 이후, 공작의 마차의 근처에 자리잡고 따라가고 있는 리피트 일행의 자동차. 그리고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데르카스의 눈빛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운전과 경계에 엄청난 집중을 보이는 데르카스를 보며 리피트는 제발 아무일도 없길 가슴에다 대고 기도했다.


리피트의 기도가 닿은 것일까, 공작가의 일행들 모두 아무일 없이 수도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테르덴 공작가의 목적지는 수도가 아니었고, 리피트는 쥘렌의 마차를 따라 황궁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ㅡㅡ


예상한 날짜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해가 조금씩 모습을 숨기는 중인 오후에 들어오게 된 테르덴 공작가 일행. 리피트 일행은 테르덴 공작가의 일행들과 함께 황궁의 손님용 방에서 안절부절하며 쥘렌과 밀레느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피트 님. 그렇게 안 떠셔도 됩니다. 황궁이라고 해서 황제 폐하의 맘에 안든다고 막 잡아가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애초에 여긴 저희들 밖에 없잖습니까."


어쩔 줄 몰라하는 리피트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거는 기사였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올 일이 없는 황궁에 온것도 부담이었지만, 쥘렌이 지금쯤 황제와 나누고 있을 대화는 리피트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일터. 리피트는 마치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경비병들이 찾아오면 내심 불안한 그 상황이었다.


잠시 뒤, 쥘렌과 밀레느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문을 열고는 곧바로 리피트를 불렀다.


"황제 폐하 께서 자네를 직접 만나고 싶어하시네."


그 말이 끝이었다. 하지만 그 말 만으로도 리피트는 무엇을 해야할 지 알수 있었다. 리피트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나가는 쥘렌의 뒤를 따라갔다.


긴장한 채로 쥘렌의 뒤를 따르는 리피트. 그런 리피트를 한번 돌아본 쥘렌은 씩 웃으며 리피트의 어깨를 툭 쳤다.


"괜찮네. 황제 폐하는 그렇게 무서운 분이 아니시네. 딱딱하기 보단 오히려 부드럽고 또 젊게 생각하시려 노력하시지. 자네에게 좋은 감정도 가지고 계실테니 너무 긴장하지 말게. 그리고 놀랍게도 나보다도 어리신 분이라구? 어려워 할 필요 없네. 그냥 자네가 할 수 있는 예의만 보여드리면 돼."


그제야 리피트의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긴장이 조금 풀린 리피트는 쥘렌과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다 어느새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화려하게 조각된 거대한 문. 그것도 흔히 볼수 없는 재료들도 만들어진 엄청나게 무거워보이는 문이었다. 리피트가 그걸 보며 감탄하고 있자니 쥘렌이 문을 두드리고는 말했다.


"폐하, 쥘렌 드 테르덴이 리피트를 모셔왔습니다."


그러자 문에서 바로 앞에서 말하는 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그 말과 함께 그 거대한 문이 밖으로 열렸다. 딱 쥘렌과 리피트가 서 있던 공간만이 문이 열리는 범위에서 벗어나있었다. 리피트는 무거운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장이라도 마법진을 분석해보고 싶었던 리피트는, 저 앞에 보이는 백색빛의 황좌에 앉아있는 자를 보곤 황급히 제정신을 차렸다.


쥘렌과 리피트 그리고 밀레느가 방안으로 들어갔다. 인사를 하려는 쥘렌에게 황제가 휘적 손짓을 하며 말했다.


"밀레느 드 테르덴. 잠시 나가 있어다오."


"네. 황제폐하."


밀레느가 문 밖으러 사라지자 문이 닫혔다. 그리고 쥘렌이 늙고 야윈 모습이 되었다.


리피트가 주변을 슬쩍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방 안엔 황제와 쥘렌 그리고 리피트 뿐이었다.


쥘렌은 다시 황제에게 인사했다. 이번엔 그의 인사를 막지 않았다.


"쥘렌 드 테르덴. 황제 폐하의 명으로 리피트를 데려왔습니다."


쥘렌이 리피트를 쳐다보자 리피트는 덜덜 떨리는 입으로 대답했다.


"리..리피트 라고 합니다."


"자네가 짐의 제국에 누구보다 큰 도움을 준 이로군. 고개를 들어라. 은인과도 같은 이의 정수리만 보는 취미는 짐에겐 없다."


리피트는 황제의 말에 어쩔줄을 몰랐다. 하지만 옆의 쥘렌이 눈치를 주자, 두려움을 참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멋있는 중년의 남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리피트가 고개를 들자 황제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황제의 근처의 있는 것들이 리피트의 눈앞에 날라왔다.


딱봐도 귀해보이는 금은보화. 리피트는 그 대우에 입이 떡 벌어졌다.


"받거라. 그리고 저기 보이는 빨간 카펫까지 오거라."


"저... 저기..."


"응?"


황제가 리피트를 쳐다봤다. 위엄이 넘치는 눈빛. 리피트는 그런 그의 눈빛을 받으며 쭈뼛쭈뼛 하려던 말을 전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하게 주시는게 아닌지..."


"과분? 그럴리가."


황제가 리피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같은,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프들의 힘을 무시하지.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과학 수준은 상당히 높다는 걸 짐은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이 대산맥 너머의 이들과 손을 잡고 양쪽 제국을 치려한다? 하루 이틀 준비했을리가 없고, 반드시 승리할 자신이 있기때문에 행하는 일일터. 그런데 다행히도 짐의 제국은 자네덕에 이를 미리 알 수 있었고, 쉽게 당하지 않게끔 대비를 할 수 있게 됐지. 짐은 자네에게 제국의 목숨을 빚졌는데, 자네 설마 제국의 운명이 가볍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거기에 더해서 자네 덕에 무언가 수상하던 모셀랑 왕국의 도발이 누구 때문인지를 알 수 있었지. 그 덕에 우린 모셀랑 왕국과의 전운을 치우고 최초로 동맹을 맺을 수 있었네. 흘릴뻔 했던 수많은 내 백성들과 병사들의 피를 자네가 막아준거야."


리피트는 더이상 황제가 주는 것들을 거절할 수 없었다. 리피트는 황제가 원하는대로 보화를 다 챙긴 뒤 빨간 카펫까지 다가갔다.


황제가 또 한번 손짓을 하자 무언가가 리피트를 향해 둥둥 떠왔다.


"여긴 우리 셋밖에 없으니 잠깐 이야기 하자면, 자네가 이 영상을 들고오기 전까진 짐은 귀족들이 힘을 키우는 것을 두고봐야만 했네."


검은색의 징표 같은게 리피트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이 사병을 늘리는 일을 막을 명분이 없었고, 견제하기 위해 황궁의 병사들을 늘리기엔 살짝 눈치가 보였지. 전쟁도 없는데 괜히 병사를 늘리면 귀족 녀석들이 자신들에게 창끝이 향할까 무서워서 짐을 방해할테니. 뭐 어쨌든 간에. 자네가 가져와 준 이 영상기 덕에 아무 제지를 받지않고 황제 고유의 병력을 키울수 있게되었고, 귀족들의 병사를 그들의 땅이 아닌 다른곳에 모이게끔 할 수 있었지. "


징표는 리피트의 손목에 시계처럼 사르륵 감겼다.


"이건 내 권력에 힘을 실어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예의일세.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리피트는 황제의 말이 끝나자 다시 쥘렌의 옆으로 돌아왔다.


쥘렌이 리피트에게 슬쩍 물었다.


"자네 그게 어떤 훈장인지 알고 있나?"


리피트는 대답대신 고개를 저어 보였다.


쥘렌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러고는 황제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폐하. 여기 있는 이 친구가 황제 폐하께서 내려주신 훈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뜻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자에게 설명을 해주심이 어떠하십니까."


그 말에 황제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피트가 훈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군. 내가 준 그 훈장은 북부 제국 사므엘로의 특수 기사훈장이고, 일단 지금도 알 수 있겠지만, 내가 자네에게 아까보단 격식을 좀 덜 차리고 있지? 그건 내가 자네와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뜻을 가진 물건이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보여주면 북부 제국 어딜가든 준남작급의 대우는 받을수 있고, 나와 관련된 자들은 자네에게 더욱 높은 대우를 해줄걸세. 그리고 그 훈장의 가장 특별한 점은."


리피트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리피트도 어느새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1년에 단 한번, 나와 독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물론 약속된 시간에 와야겠지만, 그건 훈장에 마나를 불어넣어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을걸세."


독대라는 말애 리피트의 눈이 크게 떠졌다. 황제와의 독대는 그만큼 메리트가 컷다. 사실상 소원을 하나 이루어주겠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는 말. 리피트의 안면에 싱글벙글한 표정이 나타나자 쥘렌도 그제야 만족한듯한 웃음을 지었다.


황제는 그런 쥘렌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쥘렌. 펠튼의 일 말인데...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만.."


"안됩니다."


어느새 웃고 있던 쥘렌의 표정이 엄한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그 친구가 제국을 위해서.."


"안됩니다."


"앞길이 창창한 친구지 않나? 이야~ 테르덴 공작가에 그런 대단한 인물이.."


"안됩니다."


"쳇."


황제가 이야기에 대해 포기한듯 보이자 즬렌이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황제에게 준비한 이야기를 풀었다.


"폐하.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엄청난 수의 적들에게 공격을 당했습니다. 저기 있는 리피트 저 친구가 애써주지 않았다면, 전 길가에 죽은 채로 내버려졌을겁니다."


"뭐라고?"


황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쥘렌은 품에 가지고 있던 반지를 꺼냈다.


"적들 중에 여기에 그려진 문양을 새긴 자가 있었습니다."


"이건?! 음..."


황제가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리피트를 슬쩍 쳐다봤다. 리피트는 자신이 들어선 안 될 이야기라는걸 느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폐하."


황제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래. 나중에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리피트는 황제의 그 말을 들으며 문 앞에 섰다. 문은 자동으로 열렸고 리피트가 밖으로 나오자 문이 다시 닫혔다.


문 근처에 머무르던 황궁의 시녀가 리피트가 아까까지 머무르던 손님 용 방으로 안내해줬다. 거기엔 혼자 다른 생강에 빠져있는 미르네와 정답게 밀레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데르카스가 보였다.


리피트는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다른 분들은?"


"그 분들은 각자 다른 방으로 안내되셨어요."


"그렇군요. 근데 밀레느 님은 여기 계셔도 되나요? 쥘렌 님이 언제 나오실 지 모르잖아요."


밀레느가 손목을 내밀어보였다. 그녀는 장신구 하나를 끼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저를 필요로 하실땐 여기에 연락이 와요. 전 그때에 맞춰서 가면 되구요."


"그렇군요."


그녀가 이곳에 여유롭게 있을 수 있던 이유를 알게 된 리피트. 리피트는 그런 여유를 자신이 깨부숴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꺼냈다.


"데르카스, 미르네. 떠날 준비를 해야돼."


그 말에 밀레느와 데르카스의 표정이 굳었다. 진한 아쉬움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이번엔 어디로 가?"


미르네의 질문애 리피트가 대답했다.


"아르카디윰 연맹."


"대장장이들의 지상 국가요?"


옆에 있던 밀레느가 미르네 대신 반응했다.


"왜 갑자기 그곳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이를 물어본 건 데르카스였다. 리피트는 아작이 나기 직전인 골렘 소드를 꺼내보였다.


"보여? 내가 테르덴 공작가를 찾아온 암살자들과 잠깐 싸운 사이에도 검이 못버티고 부서지기 직전까지 갔어. 이건 싸구려 재료로 만든 검도 아냐. 오크마을에서 가져왔던, 마법에 잘 버티고 마나와도 상성이 좋은 재료로 만든건데도 이래. 나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검이 필요하고, 그런 검을 얻으려면 드워프들의 교역도시인 아르카디윰 연맹국으로 가야돼."


그 말을 들은 데르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가는건 굉장히 타당하군요. 하지만.."


데르카스의 고개가 숙여졌다.


"조금만 더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겁니까.."


리피트는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면 너는 그냥 여기 있어. 마음이 정리되면 말해."


-나중에 괜찮아지면 지팡이로 돌아와. 지팡이랑 멀리 떨어져도 계속 존재할 수 있잖아. 그치?


데르카스는 리피트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가 없으셔도 되겠습니까. 제가 그곳에서 빠져나와 있으면 위험할 때 제 힘을 사용하실수 없으실겁니다.


리피트 또한 이 점에 대해 생각했었다. 하지만 미르네도 어느정도 힘을 찾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지금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베어낼 수 있었다. 데르카스가 없어도 더이상 자신을 위협할만한 이들은 딱히 없다고 느꼈다.


'지금은 비네바 왕녀와 싸워도 자신이 있어.'


그렇게 생각한 리피트는 데르카스에게 대답을 들려줬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너가 없어도 안 죽어. 근데 니 옆의 여자는 다른 이들에게 노려지게 되면, 너가 없으면 죽어. 그러니까 옆에서 지켜보다가 언제든 그 옆으로 돌아가서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뒤, 그때 우리한테 돌아와.


데르카스가 리피트를 잠시 쳐다봤다. 그러곤 꾸벅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지내고. 힘 조절 잘하고."


리피트는 배웅해주는 데르카스와 밀레느를 뒤로 한채 미르네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공작가에 있었던 일 때문에 마차를 아공간에 집어넣어놨던 리피트는 자신들의 마차를 꺼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난관을 만났다.


"이거 어떻게 하지..."


아공간에 집어넣기 위해 데르카스가 걸어주는 소형화 마법. 리피트도 미르네도 푸는 법은 물론 쓰는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리피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데르카스에게 찾아갔다.


ㅡㅡ


"출발한다?"


"그래. 그래."


부랴부랴 다시 데르카스를 찾아가 마법을 배워온 리피트는 침대에 누워 미르네의 운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르네는 예전의 오프로드를 벗어던지고 온로드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리피트의 마음이 편했다.


'데르카스가 없으니 이제 나도 운전을 조금씩 하게 되겠군.'


데르카스의 빈자리가 조금은 느껴졌지만, 그렇게 큰 거 같지는 않았다. 사실은 컷지만, 크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생각하는 리피트였다.


"아. 맞다. 리피트 내가 너한테 해줘야 되는 말이 있었는데 깜박 했어."


"뭔데?"


"아르보레! 밖으로 나와도 돼!"


그러자 차에 꽂혀있던 지팡이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상큼해보이는 어린 소녀가 나타났다. 수줍은 미소로 리피트에게 인사하는 그녀.


"안녕하세요. 미르네 엄마의 첫째 딸인 아르보레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


ㅡㅡ


외전.


제목: 리피트가 듣지 못한 이야기.


리피트가 밖으로 나가고, 황제와 쥘렌 두 사람만 남았던 시간.


"이걸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자네들을 습격했다. 이 말이지?"


"네. 폐하."


증표를 꽉 쥐고 부들거리는 황제. 뱀이 동그란 구체를 먹는 모양새. 이건 현재 1황녀와 2황자가 의식불명의 상태로 쓰러져있는 이유를 만들어낸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던 펠튼이 자신의 가문을 버려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심각한 표정이 된 쥘렌이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의 습격은 단순히 알림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다시금 이 세상에 나타날 준비가 되었다는."


"흠..."


"펠튼에게는 말했나?"


"아뇨.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말하지 말게. 안그래도 무거운 그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질거야. 그만 돌아가보게."


"예."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쥘렌. 황제는 그런 그를, 그리고 그의 둘째 손자를 떠올리며 씁쓸한 그리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펠튼과 쥘렌은, 쥘렌이 펠튼을 쫓아냈다는 설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펠튼은 해야할 일도 많아졌고, 쓸 수 있는 권력도 줄어들었지만 그는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북부 제국을 삼켜보려는 자들이라... 내가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는 한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황제는 두 눈을 감고,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약 5년 전 있었던, 황궁으로 들어온 암살단. 들어온 암살자들은 수십명, 그리고 그 암습을 알아차린 건 황족과 황궁에 머무르던 황족의 호위기사들뿐.


1황녀와 2황자는 분전 중에 그들의 사이한 마법에 혼수 상태에 빠졌었고, 1황녀의 약혼자였던 그 당시 제국 10검 중 한명은 그들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두 황족을 지켜낸 건, 당시 2황자의 호위기사중 한명이자 10대의 나이였던 펠튼. 당시 자신의 힘으로 암살자들을 모두 처리한 채 급히 황비와 황족들을 찾아다니던 황제는, 그가 자신의 딸과 아들이 기거하던 방문을 열었을 때, 온 몸에 검과 작은 칼날들이 꽂힌 채 자신의 검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암살자들을 도륙하던,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정신을 잃은 두 황족과 선채로 숨을 멈춘 스승의 시체를 지켜내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 일 이후, 호위기사 직도, 심지어 가문조차도 내던지고 그들을 추적하러 떠났었다. 약 2년 전 그가 돌아왔을 땐, 어느정도의 권력이 필요하다며 테르덴 공작가의 기사단장으로 들어가기 까지 했다.


온 몸을 무리해가며 아직도 그들의 뒤를 쫓고있는 펠튼. 솔직히 말해 황제는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 청춘? 그에겐 그런것따윈 없어보였다. 단지 암살자들을 향한 복수심만이 있을뿐. 그래서 황제는 펠튼이 다시 테르덴 공작가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되찾길 바랬다.


황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손에 들어온 증표를 노려봤다. 펠튼만이 그들을 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제또한 그들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펠튼이 가져다 준 정보들과 자신이 모은 정보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그들의 꼬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청춘을 낭비하게 한 죗값은 크다. 로루비움."


황제는, 최근에 알게된 그들의 단체명을 떠올리며, 그리고 오늘도 잠을 줄여가며 그들을 뒤쫓고 있을 한 남자를 생각하며 손에 쥔 증표를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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